-
-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 불통의 시대, 소통의 길을 찾다
정관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심야 토론을 즐겨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끝 없는 자기들의 일방만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양쪽 패널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나고, 왜 저렇게 밖에 못하는 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어떨 때는 초등학생들 모아서 토론을 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맞다. 원래 방송토론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토론과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토론의 쌍방이 서로에게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방청객, 시청자, 청취자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하는 토론이기 때문이다. 또, 자기 진영의 사람들에게 토론이 끝나고 나면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무슨 주장이든 강력한 말 펀치가 작렬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토론이라면 전부 방송토론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관용, 우리나라에서 '토론 진행의 교과서'라 불리는 사람이다. 무려 1천회가 넘는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한 사람으로 우리사회에 뿌리깊히 박혀있는 불통의 원인을 밝히고, 나아가 소통할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대안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토론의 원칙을 잘 지켜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참여다. 강력하게 충동을 유발하는 극단주의자들을 날뛰지 못하게 견제하기 위해서는 중도에 있는 사람들이 적극 참여하여 이들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이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을 통해 합의를 이루거나 공통의 이해 기반을 넓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토론이 제대로 되려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고, 나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서로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서로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 역학적인 구도가 성립되게 된 배경을 저자는 고도압축성장에 따른 문화지체 현상과 중첩 결정된 정치문화라고 지적한다. 왕권사회, 식민지시대, 해방, 한국전쟁,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 첨단화까지 불과 100년사이에 이 모든 것을 이룬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급변하는 사회를 우리 체질에 맞게 소화하는 것이 더뎌져 결국 문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기다가 정치문화 역시 다르지 않다. 왕정에서 식민지시대, 해방으로 민주주의 이식까지 우리 힘으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갈등을 해소하기도 전에 다른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때마다 갈등이 계속 차곡차곡 쌓였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우리에게 보수와 진보는 비정상적으로 커왔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즉 보수란 원래 도덕적이어야 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특징을 가지는데 우리나라의 보수는 반대라는 것이다. 도덕적이지 못하고 부패하며 선진국을 따라 제도도 막 고치고 하는 것이라는 것. 그에 비해 진보는 사회변화나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데 오히려 극단적인 전체주의 진보만 남아 독선적 아집으로 똘똘 뭉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는 보수를 부도덕, 부패, 독점의 상징으로 보고, 그에 반해 보수는 진보를 독선적 아집에 빠진 무모한 파괴주의자라고 각각 인식하는 것이란다.
저자가 내놓은 결론은 세가지다. 첫째는 상호 존중까지는 안되더라도 상호 공존의 현실만큼은 인정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각 진영의 강경파와 과격파를 무시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건파와 전문가 중심으로 토론문화를 새로 만들어 가야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두르지 말고 세심하게 절차와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가자는 것이다.
소통의 문제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편가르기에는 언론도 시민사회단체도 있다. 정부 역시 비켜가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번째는 한심한 정치에 흥미를 잃고 나와는 무관하다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다. 두번째는 소통의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직접적인 개입을 피하는 부류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에 대해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부류다. 저자가 많아야 하는 부류가 마지막 부류다. 하지만 쉽지 않다. 보수와 진보를 너무 무분별하게 가르다보니 이젠 진력이 날만도 하다. 그래서 회색지대가 나온다. 저자는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비겁한 회색보다는 흰색의 장점과 검은색의 장점을 다 가지고 있는 회색인이 많아야 하고 이들이 중심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