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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진검승부 - 조선왕조실록에 감춰진 500년의 진실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조선시대 관리들의 출퇴근 시간은 어땠을까? 본래 아침 7시경에 출근해서 저녁7시 퇴근이다. 그런데 근무중 음주를 하고, 출퇴근 시간이 제멋대로고, 직무유기하고 했다면 믿겠는가? 또 급제한 뒤에 신고식(허참례) 때문에 가산 탕진한 경우도 생겼다면 사실일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은 승자들의 기록인 동시에 사관들의 주관이 가미된 조선사 500년을 기록한 사서다. <조선사 진검승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40가지의 이야기를 개론이나 통사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한 일종의 해설서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진행된 고려왕족인 왕씨 제거사, 권력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왕족끼리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역사와 이를 부추기는 권력의 실세들의 싸움들. 사실 조선시대 만큼 세자가 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른 숫자가 고작 7번에 불과한 것은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권력다툼에서 역사공부에 회의를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생겨난다.
조선시대의 역사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밝히는 부분은 승부의 세계와 권력의 실체외에도 다양한 재미를 제공한다. 스캔들과 패륜, 흡연에 대한 논쟁 등 다양한 불편한 진실을, 허준도 못고친 치통과 관리들의 근무 태도 등 겉과 속의 부조화를, 그리고 경복궁을 설계한 환관 김사행 등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역사속에 파묻혀 있는 사람들 내지는 임진왜란으로 잘못 평가된 선조와 이순신의 이야기까지 저자가 내놓는 해설에는 나름대로 연구한 근거가 제시된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이야기 앞에 걸어놓은 4자성어다. 이야기를 가장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또 다른 재미는 아무래도 각 장 끝에 배치되어 있는 조선사 교양부분이다. 조선에서 정승이 되는 조건부터 시작되는 교양은 조선의 의견 수렴과정, 권력 지도, 명문가문의 부침으로 보는 조선 500년 등 다양하다.
승부와 권력을 제외한 내용은 대부분 저자가 실록에서 인용하지 않았다면 정사라기 보다는 야사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이야기들이다. 경복궁을 설계한 사람이 김사행이라는 환관이라는 사실, 우리는 때로 정도전이라는 이름을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선조에 대한 평가다. 임진왜란을 통해 부끄러운 패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저자는 실록을 통해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심성을 병들게 하는 역사어가 임진왜란이라는 것을. 그래서 선조의 굴욕보다는 이순신의 영웅적인 행위를 통해 보려고 하는 전형적인 역사외면의 현상을 지적한다. 저자의 말대로 임진왜란을 전체로 맞아야 한 선조와 부분으로 맞았던 이순신의 경우는 달라도 엄청 다르다는 것이다.
그보다 앞서 선조는 소학과 사서삼경을 언문(훈민정음)으로 번역서를 출간하라고 하여 훈민정음의 격을 올렸다는 데서 높은 평가를 한다. 서양에서 성서를 자국어로 번역한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이었다는 점에서 지식의 공유라는 측면으로 보면 문화 혁명에 비할 중대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조선시대의 역사에 잠시나마 몰입해 본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딱딱한 역사보다는 소설같은 역사를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