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의 정치학
손민정 지음 / 음악세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트로트의 정치학>이라는 책 제목을 듣고 선거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선거때 선거유세차량에 방송장비 메달아 가장 많이 개사되는 노래가 트로트이기 때문이다. 

지금 톱가수 대열에는 최근에 '어머나'로 유명해진 가수가 있었다. 얼마전에는 노홍철과의 장래를 약속한 사이라는 뉴스로 우리에게 친숙한 장윤정이다. 장윤정은 트로트 가수다. 트로트라는 장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장르라는 것이 작자의 생각이며, 왜 그런지에 대해 작자가 연구한 것을 토대로 이야기 하는 책이다. 

책을 끝까지 읽고난 뒤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노래가 트로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노래일까 하는 것. 내가 생각하기로는 송대관의 '네박자'다. 노래 가사처럼 그럴 때 부르는 노래가 트로트인 것이다. 노래 시간에서 3분의 인생드라마를, 노래 가사에서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모르고는 논할 수 없고, 꺽어 뒤집어 인생을 극복해 가는 끈기있는, 슬픈것 같으면서도 흥겨운 노래가 바로 트로트다. 

트로트하면 항상 따라오는 것이 있다. 엔카다. 요나누키 음계인 미-파-라-시-도 오음계를 사용하는 일본의 유행가인 엔카. 사실 엔카가 1920년대 즉 일제시대때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엘리트들이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트로트가 우리나라 문화에 맞게 정착되어버린 엔카와는 다른 트로트라는 장르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트로트가 이 땅에서 변신을 거듭해가는 과정을 4기로 나누어서 정리했다. 해방전 시대, 해방이후 독재시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 구별한다. 

최초의 트로트곡으로 발표된 '황성의 적(황성옛터)'는 아이러니하게도 고려의 옛 도읍지 개성에 연극단 공연을 위해 방문했다가 비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여관에서 만들어진 노래란다. 

아직도 일본인들은 조용필, 계은숙, 김연자를 대표적인 한국 출신 엔카 가수로 꼽는다. 그들에게 엔카는 일본의 심장이고 정신이다. 우리뿐 아니라 동남아 다른 가수들도 엔카 가수로 꼽는다. 이를통해 아시아의 심장이고 정신이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제1기 트로트가 형성되는 과정에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의아해 할 사람, 바로 홍난파다. 한국의 슈베르트. 초기에 항일운동에 가담했다가 옥살이까지 겪었던 사람. 하지만 사상전향서를 제출하면서 친일로 돌아서 버린 사람. 1930년대 후반에 그 역시 유행가 작사자로서의 활동했다고 하니 정말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뭐 그 시절 유행가 쪽에 작사, 작곡, 노래한 사람들은 여성가수의 일부를 제외하면 다들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 의외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인류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저자가 트로트를 연구하게 된 것도 미국유학에서 박사논문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가 밝히는 트로트의 미학은 크게 세가지다. '미덕'과 '흥', 그리고 '끈기'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한'이라고 들어왔는데, 우리나라에 트로트 가수만큼 경로잔치나 봉사활동을 무보수로 많이 하는 가수도 드물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는 '미덕'의 의미를 말한다. '흥'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저자는 '한'은 가진자, 양반들의 개인적인 정서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고, 우리같은 평민들의 정서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 그림에서 보여주는 '흥'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들어와도 불씨가 계속 살아남은 데서 '끈기'를 규정한다. 

우리나라에는 트로트 가수를 지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들이 그토록 트로트에 목메다는 건 간단하다. 소녀시대처럼 예쁘지 않아도 되고, 설운도처럼 나이가 많아도 된다는 것. 춤 못춰도 되고, 남자는 반짝이는 옷을 입는 예의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유행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유행가가 우리나라에 뿌리내리는 과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책속에서 사진으로 소개하는 원본 악보나, 그 당시의 레코드판과 레코드집, 그리고 옛날 포스터 등을 통해 일제 식민지시대 초기의 한글 표현법이나 디자인 감상도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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