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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철망앞에 남들이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한청년. 제목 <바그다드와 오디세우스>와 어우러지면서 청년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하고, 무언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사드는 아랍어로는 희망이고, 영어로는 슬픔이다. 주인공의 이름 사드 사드인 것은 이 소설의 내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책을 좋아하고 평소 은유적 표현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도서관 사서로 일한다. 사드 사드는 모슬림 사회에서 남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또 위로는 누나만 4명으로 아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에 더더욱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독자(?)로 자란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던 1990년부터 사건이 전개된다. 실패로 끝난 전쟁이 가져다 온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사드 사드는 두 매형을 전쟁에서 잃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유엔 결의에 따른 이라크의 봉쇄였다. 독재자 후세인을 고립시키기 위해 진행된 이라크 봉쇄가 후세인 정권을 더 강화시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엉뚱하게도 이라크 민중들이 직격탄을 맞았던 것이다. 12년간의 봉쇄로 이라크 민중은 백만명 이상 죽어갔고, 그중에는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던 중에 주인공 사드사드는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에서 후세인을 암살하는 단체에 들어간 사드 사드에게 사랑하는 레일라라는 여성이 생긴다. 한편 사드 사드는 911 테러가 있고난 뒤부터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이라크에 노골적으로 대량살상무기를 전쟁을 걸어오려는 미국에 대해 침략군이 아닌 해방군으로 인식해 버린다. 그래서 빨리 전쟁을 해주기를 바란다.
결국 미국은 2003년에 유엔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략한다. 마그다드가 함락되고 그토록 바랬던 민주화는 내전이 일어나면서 다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그러다 자신이 사랑하던 레일라의 아파트가 로켓포로 무너져 내리고 사드 사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는 자포자기한 상태가 된다. 그뿐 아니라 시내에서 자살테러로 나머지 두 매형마저 잃어버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미군기지로 가던 아버지 마저 잃어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어린 조카 둘마저 잃어버린 사드 사드. 그랬다. 미국은 점령군이었지 사드 사드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해방군이 아니라 더러운 검은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침략한 침략군일 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닳게 되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사드 사드는 고국인 이라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권고로 풀어가지만 뭐하나 바라볼 것이 없는 이라크에 강한 불만을 품게된 사드 사드에게 고국은 필요없는 거추장 스러운 것이 되어 버린지 오래된 것이다.
사드 사드는 이라크를 떠나 카이로, 몰타, 시칠리를 거쳐 결국 그토록 원하는 영국 런던에 도달한다. 마약밀매업자의 하수인이 될 때도 있었고, 마피아의 도둑질에 가담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물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런던에 가던 도중에 죽었다고 믿었던 레일라를 다시 만나는 행복도 잠시 가져보지만 결국 레일라는 불법체류자 단속반에 걸려 이라크로 추방되고 만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도달한 런던은 그가 그토록 바라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불안정한 신분뿐. 하지만 최종 종착지에 도착한 사드에게는 사랑하는 레일라가 있어 자신의 이름처럼 희망을 가진다는 메시지를 발에 생겨난 티눈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암시한다.
이 책의 저자인 에릭 엠마뉴엘 슈미츠는 프랑스 중견작가다. 그런데 바그다드를 묘사하는 부분은 그 곳에서 마치 직접 생활해 본 것처럼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만약 이 책이 어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도 생각해본다.
죽은 아버지가 계속 사드 사드를 따라 영국 런던 갈 때까지 동행하면서 서로 의사를 주고 받는 부분은 아마도 작가가 사드 사드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표현한 것같이 느껴진다.
특히 여행하는 과정에서 사귀게 된 몹이나 레오폴드같은 친구들의 입을 통해 유럽의 자유, 박애, 평등사상의 그늘에 존재하는 이질감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타성 등 유럽사회의 모순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또, 어느 공무원과의 대화를 통해 인류에게 국경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에 대한 원론적인 물음이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을 가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지난 10월에 본국 네팔로 추방당했던 이주노동자 활동가였던 미누가 불현듯 생각이 난다. 우리나라 역시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같은 불법체류자들은 사드 사드보다 더한 심한 환경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살아가기가 힘들다 해도 이들보다는 나으리라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