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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 평전
리핑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얼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제작년엔가 서울에 갈 기회가 있었다. 구포역 대합실에서 서울로 가는 KTX 열차를 기다리다 매점에 덩그라니 꼽혀있던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저우언라이 평전>. 우리에게는 저우언라이 보다는 주은래로 더 많이 알려있던 사람. 중국혁명의 영원한 2인자로 결코 1인자 자리를 넘보지 않은 사람.
저우언라이는 그의 나이가 51세였던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날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장 27년간을 총리직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처럼 권력의 단물을 탐내고 사리사욕을 위해 지도자의 비위를 맞추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랐다. 오히려 지도자를 직접 길러내고 준비한 사람이다. 그는 현대화 된 미래의 중국을 위해 덩샤오핑(등소평)을 다음 시대의 확실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것도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했던 사람을 중앙무대로 다시 제기시키면서까지 말이다.
청년시절 프랑스로 근로유학을 간 뒤 그곳에서 여러 사조를 접하고 자신의 길을 맑스주의로 정해 공산당에 입당했고, 귀국 후에는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등 전쟁 수행에서부터 신중국 성립 후의 정치, 외교, 행정, 군사, 경제,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사실 그의 손에 세워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일전쟁을 위한 1,2차 국공합작의 중심이었고, 문화대혁명의 격변속에서도 분열되는 것을 원치않아 엄청난 고뇌를 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미국과 중국의 수교를 터는 핑퐁외교의 중심이었고, 그일을 계기로 다른 나라들과도 연달아 수교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었다.
오늘날의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사회적으로는 격변하는 중이다. 외환보유고가 세계 1위이고, 차이메리카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소비 중심인 미국 시장이 없으면 중국도 큰 문제가 될 지경에까지 온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중국 혁명 당시 주력부대가 농민이었지만, 지금은 농민이 천대받는 시대가 열려버렸다.
중국식 신자유주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사회주의 혁명에 온 생을 다 바치고 죽어가면서까지 시신을 화장해서 고향산천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던 사람. 단 한 뼘의 땅도 자신을 위해 쓰이기를 바라지 않았던 사람. 그런 사람이었기에 오늘날까지도 중국 국민들에게 본받아야 할 위대한 인물로 추앙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