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ㅣ 현대의 지성 128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6월
평점 :
<<< 복거일의 말에 분노하지 말라 >>>
복거일이 이대에서 한 강연 때문에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나는 한
때 복거일이 어느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등극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여성은
결혼해도 언제나 혼외정사" 충격 발언
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120329020423&subctg1=&subctg2=
복거일 “기혼녀 혼외정사 감시”… 네티즌들 “미친거 아냐?”
http://dkbnews.donga.com/3/all/20120329/45132506/3
복거일, 이대에 항의 "내가 안한 말도 있다"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82245&kind=menu_code&keys=3
복거일 이대 특강내용이 여성비하?..."천만에"
http://www.ukopia.com/ukoCommon/?page_code=read&uid=146034
복거일 "여성비하라고? 병든 사회 단적인 예"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82043&kind=menu_code&keys=3
잠시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던 나는 복거일이 그 강연에서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복거일이 쓴 책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복거일은 자신이 쓴 책에서 진화 심리학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눈물을 무릅쓰고 복거일의 책을 샀다. 그리고 읽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중 한 부분에 대해 다룰 것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중 62~87쪽에 나오는 “이상과 천성의 충돌: 호주제와
부성주의(父姓主義)”가 바로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거일의 발언에 분노하는 것 같다. 나는 진화 심리학을
들먹이는 복거일에게 분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일에 분노씩이나 하면 분노가 분노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코미디 같은 이야기에 자신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분노가 알게 되면 “내가 왜
이런 하찮은 일에까지 나서야 하지?”라며 분노할 것 같다는 말이다.
진화 심리학에 대한 복거일의 이야기에는 분노보다는 조롱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어쩌면 복거일에게 분노나 조롱보다는 연민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복거일은 나름대로 상당히
진지해 보인다.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웃긴지 모르는 듯하다.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부분은 <개그 콘서트>만큼이나 재미있었다.
복거일의 글이나 말에서 진화 심리학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릴 것이다. 그것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재미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 한 편의
코미디를 감상한다고 생각한다면 『벗어남으로서의 과학』이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꽤 큰 웃음을 선사했다.
복거일에게 어울리는 것은 조롱, 연민, 또는 무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분노씩이나 한다면
분노가 분노할 일이다.
<<< 용어 설명 >>>
보통 “남성”과 “여성”은 인간에게만 쓰고 동물의 경우에는 “수컷”과 “암컷”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복거일은 동물에게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어를 쓴다. 복거일의
글을 읽을 때에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Male
philopatry: a social system in which males remain in the groups or home ranges
in which they were born while females leave at sexual maturity; this means that
a group of males is related it some way - brothers, fathers, uncles, or cousins
and these males attract unrelated females
http://pin.primate.wisc.edu/factsheets/glossary
Female
philopatry: a social system in which females remain in the groups or home
ranges in which they were born while males leave at sexual maturity; this means
that a group of females is related it some way - sisters, mothers, aunts, or
cousins and these females attract unrelated males
http://pin.primate.wisc.edu/factsheets/glossary
“male philopatry”는 “여성 족외혼(female
exogamy)”과 비슷한 말이다. 수컷은 자신이 태어난 집단에서 쭉 살고 암컷은 다른
집단으로 떠나서 짝짓기를 하는 체제를 말한다.
“female philopatry”는 “남성 족외혼”과 비슷한 말이다. 암컷은
자신이 태어난 집단에서 쭉 살고 수컷은 다른 집단으로 떠나서 짝짓기를 하는 체제를 말한다.
여기서 “exogamy”를 “족외혼”으로 번역하는 것에 약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족외혼”의 “혼”은 결혼을 뜻하는데 결혼과는 거리가 먼 짝짓기 체제를 말할 때에도
“female exogamy”라는 용어를 쓰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글에서는 그냥 “여성 족외혼”이라는 용어를 쓰도록 하겠다.
MPI(male parental investment, 남성 부모 투자,
수컷 부모 투자)는 수컷이 자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 호주제 옹호 논리 요약 >>>
여성 족외혼이
여성의 혼외정사의 기회를 줄여서 높은 MPI가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로 기능해온 것은 거의 확실하다. (73쪽)
모든 여성들의
궁극적 목표는 배우자들의 MPI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84쪽)
여성들은 높은
MPI를 얻기 위해 여성 족외혼에 동의했을 터이다. (75쪽)
호주제는 뜻밖으로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으면서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이다. 그것은 여성 족외혼에 바탕을 둔
가족 제도가 질서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수단들 가운데 중심적인 것이다. (77쪽)
결혼과 가정을
효율적 기구로 만드는 호주제는 본질적으로 여성의 이익에 봉사한다. (86쪽)
남성이 우선적으로
호주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78쪽)
여기까지 읽고 복거일을 그냥 무시하기로 결정했다면 이 글을 더 읽지 않아도 된다.
만약 복거일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계속 읽어 보시기 바란다. 복거일의
황당한 진화 심리학 모험의 한 단편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 여성이 원하는 것은 높은 MPI >>>
모든 여성들의
궁극적 목표는 배우자들의 MPI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권리와 복지를 늘리려 애쓰는 이들은 MPI를 격려하는 기구들과 정책들을 도입해야 한다. MPI가 부족한 가족들이 사회적 지원을 받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특권을 누릴 계층이 있다면, 그것은 가임기의 여성들일 터이다. 그리고 임신했거나 수유하는 여성들에 대한 지원보다 효율이 높은 사회적 투자는 없다. 태아들이 좋고 안정적인 환경을 누리도록 하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사람의
운명은 실질적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84쪽)
복거일에 따르면 “배우자들의 MPI를 극대화하는 것”이 “모든 여성들의
궁극적 목표”다. “대부분”도 아니고 “거의 모든”도 아닌 “모든”이다.
그리하여 여자와 짝을 이룬 레즈비언 여자의 궁극적 목표도 MPI 즉
“남성 부모 투자(male parental investment)”를 극대화하는 것이 된다. 그 여자의 짝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데도 말이다.
또한 결혼을 별로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여자의 궁극적 목표도 MPI의
극대화이다. 그 여자에게는 남편이 없는데도 말이다.
또한 자식을 별로 낳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의 궁극적 목표도 MPI의
극대화이다. 그 여자에게 남편이 있다 하더라도 돌볼 자식이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결혼해서 애를 낳은 여자의 경우에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꼬시러 다니는 것보다는 자신의 자식을 돌보기 위해
애쓰는 것을 대체로 선호한다. 하지만 그것이 왜 “궁극적 목표”씩이나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궁극적 목표에 가까운 것은 번식 최대화지 MPI의 극대화가 아니다. MPI의 극대화는 그것이 여자의 번식에 도움이
되는 한 여자 속에 있는 이기적 유전자에게 유리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위의 인용문에서 “따라서”에 주목해 보자. 설사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 볼 때 “MPI의 극대화”가 여성의 궁극적 목표라고 인정해 주더라도 그 때문에 “여성의 권리와
복지를 늘리려 애쓰는 이들은 MPI를 격려하는 기구들과 정책들을 도입해야 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논리가 통한다면 아래와 같은 논리는 어떨까?
모든 남성들의
궁극적 목표는 성교 상대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권리와 복지를 늘리려 애쓰는 이들은 한
남성과 성교하는 여성들의 숫자를 극대화도록 격려하는 기구들과 정책들을 도입해야 한다.
복거일은 지나가는 길에 “사람의 운명은 실질적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결정”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이미 유전자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태아들이 좋고 안정적인 환경을 누리도록 하는 일”이
“특히 중요”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수정이 될 당시에 이미 유전자가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궁 내 환경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인가? 복거일의
친지 중에 태교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도 있나?
복거일은 현대 사회에선 MPI가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선
MPI의 중요성이 전통적 사회들에서보다 훨씬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길고 비싼 교육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현대 여성이 구애에서 적극적이고
배우자 후보들의 재산 상태에 대해 관심이 크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69쪽)
길고 비싼 교육 때문이란다. 물론 교육은 중요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유흥비로 돈을 다 날리지 않고 자식을 위해 교육비를 댄다면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식에게 교육만 중요한가? 예컨대 생존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전통적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없는 자식의 경우 상대적으로 생종률이 상당히 낮았다. 그런데 현대 복지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없어도 자식의 생존률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MPI의 중요성이 훨씬 줄어들었다.
<<< 족외혼이 높은 MPI로
이어진다 >>>
아내의 부정을
막을 방책들을 마련하지 못한 남성들은 모두 자식들을 남기지 못하고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1쪽)
아내의 부정을 막을 방책 즉 질투 기제가 없는 남자의 경우 오쟁이 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남자가 “모두 자식들을 남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설사 전혀 질투를 하지 않더라도 보통 아내와 성교를 자주 한다. 따라서 아내가 낳은 자식이 남편의 유전적
자식일 확률이 꽤 높다.
이처럼 중요한
MPI는 남성이 자기 아내가 낳은 자식들이 정말로 자기 자식들임을 확신할 수 있을 때에야 나올 수 있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0쪽)
유전자 검사가 발명되기 전에는 자기 아내가 낳은 자식이 정말로 자기 자식인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옛날부터 많은 남자들이 자식을 엄청나게 사랑했다. 그런데도
복거일은 그런 확신이 있어야만 MPI가 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수컷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암컷의 자식이 자신의 자식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라면 MPI는 진화할 수 있다. 꼭
100%일 필요는 없다.
여성 족외혼의
보편성에 대한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그것이 높은 남성 부모 투자(male parental investment;
MPI)’를 허용한다는 사실이다. 높은 MPI가
여성 족외혼을 낳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여성 족외혼과 많은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66쪽)
예외들이 더러
있지만, 인류 사회들은 일반적으로 여성 족외혼을 채택해왔다. 즉
결혼할 나이가 된 여성들은 자기가 태어난 집단을 떠나 남편의 집단에 들어간다. 이런 사정은 필연적으로
남녀 사이에 권력의 불균형을 낳는다. 남성은 혈연적으로 가까운 구성원들과 연합하여 가족의 위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집단으로 혼자 들어온 여성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마련할 길이 없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64~65쪽)
그래도 여성 족외혼이
여성의 혼외정사의 기회를 줄여서 높은 MPI가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로 기능해온 것은 거의 확실하다. 남성의 친족들로 이루어진 가족은 그의 아내가 다른 사내와 접촉하는 기회를 차단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다. 남성의 자식들은 모두 그의 가족의 가까운 친족들이지만, 여성이
외간 남자의 자식들을 낳으면, 모두 유전적 관계가 없는 남들이다.
남성 족외혼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여성이 낳은 자식들은 아버지가 누구인가 가리지 않고 모두 그 가족의 친족들이다. 따라서 여성의 가족은 장가든 사내의 자식들을 선호할 까닭이 없고 여성이 다른 사내들의 자식들을 낳는 것을 굳이
막지 않을 것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3쪽)
여성 족외혼이 남성 족외혼에 비해 좀 더 높은 MPI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상당히 그럴 듯하다. 복거일의 말대로 여성 족외혼 체제에서는 남편의 친족들이 여성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이 바람 피우기가 힘들다.
또한 여성 족외혼이 여성 지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도 상당히 그럴 듯하다.
복거일의 말대로 여성 족외혼 체제에서는 남편에게는 친족이라는 등등한 동맹이 근처에 있는 반면 아내의 친족은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아내에게 불리하다.
이런 것들은 여성 족외혼의 효과(effect)다. 그런데 복거일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높은 MPI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여성 족외혼의 기능(function)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진화
생물학자들이 효과 개념과 기능 개념을 엄격히 구분한다는 이야기를 복거일에게 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궁금한
분은 아래 글을 참조하시라.
기능론: 목적론과 인과론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00
복거일은 여성들이 높은 MPI를 위해 여성 족외혼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들은 자기 아내들이 자신들의 자식들만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 여성 족외혼을 선호했을 터이고, 여성들은
높은 MPI를 얻기 위해 여성 족외혼에 동의했을 터이다. 여성들로선
남성 족외혼의 여러 이점들보다 여성 족외혼에서야 가능한 높은 MPI가 더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즉 여성 족외혼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로운 제도이다.
여성 족외혼은
여성들이 동의했으므로 생겨나고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는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아마도 이런 사정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급진적 여성운동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까닭일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거나 의식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여성 족외혼에 바탕을 둔 전통적 가족 체계가 자신들에게 다른 어떤 구도보다도 큰 혜택을 준다는
것을, 그리고 급진적 여성운동이 가족 제도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4~75쪽)
만약 복거일의 말대로 여성의 궁극적 목표가 높은 MPI라면 스스로
바람을 피우지 않으면 그만이다. 만약 여성이 스스로 바람을 피우지 않으면서 남성 족외혼을 채택한다면
높은 MPI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성의 지위도 높아진다. 만약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다면 더 높은 MPI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이 높은 지위를 이용해 남편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거일은 다른 곳에서는 여성이 여러 남성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하다고 이야기한다.
전략적으로, 여성은 여러 남성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하므로, 혼외정사는 필연적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0쪽)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바람을 피우는 것이 때로는 번식에 도움이 될 수가 있다.
만약 남편이 열등하다면 지위가 높거나 잘 생긴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워서 좋은 유전자(good
gene, 번식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품은 정자를 얻으면 더 잘 번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외간 남자와 성교를 하는 대가로 무언가 물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이유에 대한 진화 심리학 가설들이 더 있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면 높은 MPI를 얻는 데 방해가 된다. 왜냐하면 그러다 들키면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거나, 자식에 소홀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때로는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높은 MPI를 얻는 것 말고도 여성에게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즉
높은 MPI가 여성의 “궁극적 목표”라고 보기 힘들다.
복거일의 논리를 재구성해 보자: 여자는 바람을 피우는 것이 유리하므로
바람을 피우려고 한다. 그러면 남편의 MPI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여자가 바라지 않는 일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해결책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여성 족외혼이다. 여성 족외혼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추락시키고 자신을 남편의 친족들의 감시 하에 놓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바람기를 통제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렇게도 원했던 높은 MPI를
얻는다. 여자는 자신의 바람기를 제어하기 위해 스스로를 굴종에 빠뜨리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이 여자의 번식에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그냥 바람을 안 피우면 될 것 아닌가? 왜 바람을 피우려고 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통제하려고 남들(남편의 친족들)의 손을 빌린단 말인가?
나도 복거일의 가르침에 따라 고등학생과 처벌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전략적으로, 고등학생은 딴짓 하면서 노는 것이 유리해서 농땡이는 필연적이다. 교사가
가하는 감시와 처벌은 고등학생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고등학생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감시와 처벌 체제에 동의했을 터이다.
하나 더 할까? 이번에는 범죄자 이야기다: 범죄자의 궁극적 목표는 착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전략적으로, 범죄자는 강도, 강간, 절도를
하는 것이 유리해서 범죄는 필연적이다. 감옥은 범죄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범죄자들은 형법과 감옥 체제에 동의했을 터이다.
<<< 호주제에 대한 복거일의 결론 >>>
위에서 살핀 것처럼, 비록 눈에 이내 뜨이고 적잖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착오적 악습으로 비치겠지만, 호주제는 뜻밖으로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으면서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이다. 그것은 여성 족외혼에 바탕을 둔 가족 제도가 질서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수단들 가운데 중심적인 것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7쪽)
따라서 여성 족외혼과
MPI라는 맥락에서 남성 우월주의와 호주제를 살피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호주제를 폐지한 것은 신중한
처사라 하기 어렵다. 호주제를 “신분관계 형성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한 것”으로 본 판결은
분명히 무지에서 나온 진단이다. 호주제가 남녀를 차별한 것은 분명하지만, 위에서 살핀 바처럼, 그런 차별이 이유 없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그것은 삶의 궁극적 목적을 위한 양성(兩性)의 협력 과정에서 나온 외형적 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목적과
협력을 시야에서 놓치고 그저 겉으로 드러난 차별에만 주목한 것은 안타깝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81쪽)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결혼과 가정을 효율적 기구로 만드는 호주제는
본질적으로 여성의 이익에 봉사한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86쪽)
복거일은 험난한 여정을 거쳐서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호주제가 본질적으로
여성의 이익에 봉사한단다.
성적 평등은 그런
이상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호주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천성과 이상의 충돌이라 볼 수 있다. 호주제는 우리의 천성에 맞지만 우리의 이상에는
거스른다.
그런 뜻에서 이
문제엔 반어적(反語的) 측면이 있다. 여성 족외혼과 그것이 뜻하는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를 통해서만 높은 MPI가
가능했고, 높은 MPI를 통해서만 발전된 문명이 가능했고, 발전된 문명을 통해서만 성적 평등과 같은 인류의 이상이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성적 평등이라는 이상은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라는 눈에 보이는 악을 공격하고, 그런 공격은 궁극적으로는
이상 자신의 원천인 여성 족외혼을 공격하는 것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7쪽)
오직 여성 족외혼과 여자의 열등한 지위를 통해서만 높은 MPI가 가능했단다. 그런데 동물계를 잘 살펴보면 MPI가 높을수록 대체로 암컷의 지위가
높다. MPI가 암컷의 부모 투자(female parental
investment, FPI)보다 더 높은 종의 경우 대체로 암컷의 지위가 수컷보다 더 높아 보인다.
이것은 체격에서도 나타난다. 조류나 포유류의 경우 MPI가
낮을수록 대체로 수컷이 암컷에 비해 더 크다. 극단적인 일부일처제인 경우 암수의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 일처다부제의 경우 그 반대다. 즉 암컷이 더 크다. 보통 몸집이 크면 힘이 세며 지위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거일은
오직 여성 족외혼과 여자의 열등한 지위를 통해서만 높은 MPI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높은 MPI를 통해서만 발전된 문명이 가능했다고? 물론 발전된 문명을 이룬 것은 지구 상에 인류밖에 없으며 외계 생명체를 제대로 연구한 사례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침팬지는 인간을 제외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지능이 가장 높아 보인다. 하지만
침팬지의 경우 수컷은 정자를 제공하는 것 말고는 자식을 위해 하는 일이 거의 없어 보인다. 반면 극단적인
일부일처제인 여러 종의 조류의 경우 지능이 그리 높지 않다.
인류 진화에서 높은 MPI 덕분에 긴 유아기가 진화하기 쉬워졌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인류의 지능이 더 높아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가설일 뿐이며 아직 확실히 검증되지 않았다. 설사 인류 진화에서 높은 MPI가 높은 지능의 진화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하더라도 침팬지와 같이 MPI가
아주 낮은 짝짓기 체제에서 인간만큼 높은 지능이 진화할 수 없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 남자가 호주가 되어야 하는 이유 >>>
남성이 우선적으로
호주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호주는 가족의 유지에서 유전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이다. 가족의 구성원들 모두가 그와 유전적으로 가깝거나 그들의 배우자들이다. 당연히
그는 자신의 모든 자원을 가족의 유지에 바친다. 가족의 유지에서 호주 다음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남성
구성원들이다. 그들은 모든 남성 구성원들과 친족 관계에 있고 자신들의 어머니와 자매들과 유전적으로 아주
가깝다
여성 구성원들의
경우엔 사정이 상당히 다르다. 자기가 태어난 집단을 떠나 가족으로 들어온 여성의 경우, 자신의 친족은 친정 식구들이다. 자신의 자식들이 태어나야, 비로소 그녀는 가족에 유전적 이익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녀가 친정에
대해서 지닌 유전적 이익의 발현을 억제하는 일은 가족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리 사회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회들에서 엄격하게 지녀왔던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개념은 바로 그 일을 하는 장치다. 가족에서 태어난 여성의
경우, 그녀의 궁극적인 유전적 이익은 그녀가 낳을 자식들에 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은 다른 가족의 구성원들이다. 자연히 자신이 태어난 가족에 대한 그녀의 충성심은 갈수록 약해진다. “딸자식은 기둥뿌리까지 뽑아간다”는 말은 이런 경향을 가리킨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호주를 남성이 우선적으로 맡는 것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남성
구성원들만이 가족에 대해서 온전한 유전적 이익을 지녔고 가족의 유지에 헌신적이라고 기대된다.
실은 여성 구성원들의
승계 순서도 아주 합리적이다. ‘가족의 직계비속 여자’는
가족에 대해 지닌 유전적 이익이 다른 여성 구성원들의 경우보다 훨씬 크고, 자연히 가족에 대해 훨씬
헌신적일 터이다. 그들이 호주 승계에서 우선적 지위를 지닌 것은 자연스럽다. ‘피상속인의 처, 가족의 직계 존속 여자, 그리고 가족인 직계비속의 처’라는 승계 순서도 유전적으로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이렇게 보면 호주제는 오랜 진화를 통해서 가족의 형성과 유지에 가장 기여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진 셈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8~79쪽)
남자가 가족의 유지로 가장 큰 유전적 이득을 얻는단다. 그리하여 남자는
“자신의 모든 자원을 가족의 유지에 바친”단다. 정말 남자가 그렇게 사나? 한국에 널려 있는 룸살롱이 안 보이나? 남자가 왜 룸살롬에 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젊고 예쁜 여자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슴만
만지는 수준에서 만족하고 때로는 삽입 성교까지 한다.
남자의 입장에서 볼 때 많은 여자와 성교하면 번식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남자가 결혼한 이후에도 여자 꼬시는 일에 상당히 몰두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그렇게 산다.
여자가 대가족에 시집을 간 경우 처음에는 그 가족 구성원들이 유전적으로 볼 때 여자와는 남남이다. 하지만 여자가 자식을 낳고 나이가 들면 상황이 바뀐다. 여자의 남편이
가장이 될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면 그 대가족은 그 여자와 남편의 자식들과 손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이
때에는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 오히려 남자의 입장에서 볼 때보다 가족의 유지가 더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여자의 자손은 모두 그 여자의 유전적 자식인 반면 그 여자의 남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유전적으로 남남인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면 다른 남자의 유전적 자식을 낳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핵가족이 대세다. 핵가족은 부부와 그 자식들로 이루어진다. 이 때에도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 가족의 유지가 유전적으로 더 중요해진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자식들 중 일부는 남편의 유전적 자식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사 남자가 여자에 비해 가족의 유지에서 유전적으로 더 큰 이익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남자가 호주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는 과학의 교권의 명제인 반면 후자는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하는 명제다. 복거일처럼 전자에서 후자로 무작정 뛰어넘는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부른다.
<<< 여성 족외혼은 없앨 수 없다 >>>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다루려면, 우리는 아주 심중하고 어려운 물음 두 개에 먼저 답해야 한다: “여성 족외혼의 풍습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한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 두 근본적 물음들에 대한 내
답변들은 회의적이다. 우리가 가볍게 옆으로 밀어내기엔 여성 족외혼이 시행된 천만 년이 넘는 세월이 너무
무겁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82쪽)
하지만 이미 현대 도시에서는 여성 족외혼이 사실상 해체되었다. 과거에
여성 족외혼은 집성촌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집성촌은 이제 시골에서만 어느 정도 남았을 뿐이다. 한국 같은 사회에서 인구의 다수는 도시에 살고 있다. 따라서 도시에서
여성 족외혼이 해체되었다는 말은 곧 한국 사회 전체에서 대체로 여성 족외혼이 해체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미 해체된 여성 족외혼의 해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복거일은 자신의 이론에 너무 심취해 있다.
<<< 부성주의 >>>
이번에는 부성주의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보자.
부성주의(父姓主義)란 자식이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는 것을 말한다. 복거일은 부성주의를 옹호한다.
이름은 그것이
가리키는 사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름은 해당 사물이 다른 것들과 변별되도록 하고 그것의 성격에
대해 알려준다. 자연히 이름의 사회적 효용은 크며, 그것의
효용을 줄이는 조치는 사회의 효율적 움직임에 해롭다.
일상생활의 수준에서
사람의 성(姓)은 아버지와 부계 조상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의 성을 쓰게 되면, 성은 그저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성을 지녔다는 정보만을 지닌다. 이런 사정은 이름의 사회적 효용을 크게 줄일 터이다.
물론 성은 다른
정보들도 제공한다. 성은, 적어도 본(本)이 같은 경우엔, 부계
조상들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혈연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런 친척들은, 특수한 경우를 빼놓고는, 조상의 Y염색체를
공유한다. 혈연이 생명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이므로,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정보이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86~87쪽)
복거일의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일상생활의 수준에서
사람의 성(姓)은 어머니와 모계 조상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의 성을 쓰게 되면, 성은 그저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성을 지녔다는 정보만을 지닌다. 이런 사정은 이름의 사회적 효용을 크게 줄일 터이다.
물론 성은 다른
정보들도 제공한다. 성은, 적어도 본(本)이 같은 경우엔, 모계
조상들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혈연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런 친척들은, 특수한 경우를 빼놓고는, 조상의 미토콘드리아를 공유한다. 혈연이 생명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이므로,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정보이다.
이로써 모성주의(母姓主義)가
정당함이 입증된 것이다.
게다가 복거일의 논리에 따르면 부성주의보다 모성주의가 더 낫다. 왜냐고? 복거일도 잘 알다시피 어머니의 자식은 어머니의 유전적 자식임이 확실하지만 아버지의 자식은 아버지의 유전적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모성주의 사회에서 같은 성씨인 사람들이 미토콘드리아를 공유(복거일의 표현을 그냥 써 보자)할 확률이 부성주의 사회에서 같은 성씨인
사람들이 Y염색체를 공유할 확률보다 더 높다.
그건 그렇고 Y염색체를 공유한다는 정보를 도대체 복거일은 평상시에
어디에 써 먹을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아직까지 다른 사람의 성을 듣고 한 번도 Y염색체에 대한 정보를 써 먹은 적이 없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내가
Y염색체에 너무 무심했나 보다. 미안하다. Y염색체야.
미토콘드리아 하니까 생각난 것인데 최재천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사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여성이 주도권을 주장해도 남성이 반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핵 DNA는 정확하게 절반씩 투자하지만 미토콘드리아 등 다른 세포소기관의 DNA는
암컷만이 홀로 제공하므로 유전물질만 비교하면 암컷의 기여도가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32쪽)
어느 극좌파가 본 최재천 - 『여성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비판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C80/13
<<< 기타 >>>
복거일은 틈틈이 진화 생물학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자랑하기 바쁘다.
생물학에서 여성은
보다 큰 성 세포를 생산하는 성을 가리킨다. 즉 정의(定義)에 의해, 생식의 과업은 주로 여성이 수행하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65쪽)
“수행하다”는 “수행한다”의 오자인 듯하다.
성 세포를 만드는 것이 생식 과업의 전부는 아니다. 따라서 “정의에
의해”는 말도 안 된다.
모든 유인원들apes은 여성들이 자기가 태어난 집단을 떠나 남성의 집단으로 들어가는 풍습을 지녔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5쪽)
유인원에는 다섯
속genus들이 있는데, 그것들 가운데 아프리카 유인원인
사람, 침팬지, 고릴자의 셋이 사회적이고 아시아 유인원인
긴팔원숭이gibbon와 오랑우탄은 뚜렷한 사회를 이루지 않는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76쪽)
긴팔원숭이와 오랑우탄은 뚜렷한 사회를 이루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가
태어난 집단”이나 “남성의 집단”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런데도 복거일은 “모든 유인원”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애초에 ‘유전자 뒤섞음gene-shuffling’을 위해서 성이 발명되었으므로, 여성과 남성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고, 서로 달라야, 비로소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지닌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83쪽)
유성 생식(sexual reproduction)이 기생 생물에 맞서
싸우기 위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제라는 가설이 있다. 나는 이 가설이 가망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기능을 위해 유성 생식이 진화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암컷과 수컷이 서로 본질적으로 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성 생식의 존재 이유와 이형 접합(anisogamy)의
존재 이유는 별개의 문제다.
http://en.wikipedia.org/wiki/Sexual_reproduction
http://en.wikipedia.org/wiki/Anisogamy
하등동물들의 경우, 생식에서 남성은 정자만을 제공한다. 정자는 태아에 필요한 양분을
지니지 않았으므로, 남성 부모의 투자는 실질적으로 유전자들뿐이다. 좀더
발달한 종들에선,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서 남성이 먹이나 둥지를 제공하다. 이처럼 발전한 종일수록 MPI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경우, 남성 부모의 자식에 대한 투자는 매우 커서 실질적으로
여성 부모의 그것과 비슷하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66쪽)
현대 진화 생물학자는 “하등동물”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발전한 종일수록 MPI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포유류의 경우에는 수컷이 정자만 달랑 제공하는 종이 대부분이다. 반면
조류의 경우에는 수컷이 자식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종이 포유류보다 훨씬 많다. 이로써 조류가 포유류보다
고등동물임이 복거일에 의해 입증되고 말았다. 새가 하늘 높이 나니까 높을 고(高)자가 들어가는 고등동물인가?
이것은 뽀나쓰!
실제로 전체주의는
개인과 국가 사이에 가족과 같은 사회적 단위가 존재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다.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81쪽)
복거일은 나찌나 스탈린 체제에서 지배자들이 가족의 가치에 대해 얼마나 떠들어댔는지 모르는 것일까?
<<< 결론 >>>
복거일의 책 『벗어남으로서의 과학』을 읽는 것이 좋은지 여부는 여러분의 유머 감각에 달려 있다. 나와 유머 감각이 비슷하다면 약간이라도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그렇지
않다면 짜증만 날지도 모른다.
일부러 헛소리를 하려고 작정한 것도 아닐 텐데 이렇게 헛소리를 많이 하기도 힘들 것 같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복거일이 원래 바보인지 진화 심리학 이야기를 할 때만 바보가 되는지 여부는 나도 모른다.
제목을 “복거일의 코미디 진화 심리학: 1. 호주제”로 붙인 이유는 몇 편 더 써 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인데 과연 내가 복거일의 글을 더 읽고 비판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일까?
이덕하
201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