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 혁명의 구조(김명자 옮김)』 번역 비판>을 클릭하시면 번역 비판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 단어도 놓치지 않고 그 의미를 살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몇 구절 빼 먹은 곳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문장에 있는 모든 단어들을 꼼꼼하게 살려서 번역하려고 한 것 같다. 이 점만큼은 높이 평가해주고 싶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번역문이 너무 직역투여서 읽기가 까다롭다. 아래에 인용된 번역문들을 잘 살펴보면 문장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둘째, 주요 용어들을 일관되게 번역하지 않았다

셋째, 오역이 적지 않다.  

 

 

  

김명자(246쪽): 제5절에서는 그런 논증을 두 가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이론들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는 문제에 적용시키는데, 간단히 결론짓자면 엄청나게 다른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 상이한 언어 사회의 구성원으로 간주되고 그들의 의사 소통 문제가 해석의 문제로서 분석되도록 요구한다.

Kuhn(175쪽): Subsection 5 applies that argument to the problem of choice between two incompatible theories, urging in brief conclusion that men who hold incommensurable viewpoints be thought of as members of different language communities and that their communication problems be analyzed as problems of translation.

l       “incommensurable”을 “엄청나게 다른”으로 번역했다. 198쪽에서는 “incommensurability”를 “동일 표준상 비교 불능성”으로 번역했다. “incommensurability”는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한 용어다. 그런 용어를 일관성 없이 번역하면 안 된다. 나라면 이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를 “같은 척도로 비교할 수 없는”으로 번역하겠다.

l       “language communities”를 “언어 사회”로 번역했는데 앞에서 지적했듯이 “community”는 “공동체”로 번역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l       “translation”을 “해석”으로 번역했다. “translation”은 “번역”으로 “interpretation”은 “해석”으로 구분해서 번역해야 할 것이다. 과학 철학을 다루고 있는 책에서 “translation”과 “interpretation”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번역하는 것은 큰 문제다. 

 

 

김명자(247쪽): 과학 활동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당대의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신뢰가 적어도 대충 결정된 구성원 그룹 가운데 분포되어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그들의 사회적 제휴에 관한 물음에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Kuhn(176쪽): Most practicing scientists respond at once to questions about their community affiliations, taking for granted that responsibility for the various current specialties is distributed among groups of at least roughly determinate membership.

이덕하: 활동하는 과학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어느 공동체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즉시 응답하며, 당대의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책임이 소속이 적어도 거칠게라도 결정되는 집단들에 분산되는 것을 당연시한다.

l       “responsibility”를 “신뢰”라고 번역했는데 “책임”이 나은 것 같다.

l       “적어도 대충 결정된 구성원 그룹”은 뜻을 알기 힘든 번역이다. “소속이 적어도 거칠게라도 결정되는 집단들”이 더 나은 것 같다.

l       “community affiliations”를 “사회적 제휴”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역이다. “어느 공동체에 속하는가”를 뜻한다. 

 

 

김명자(249쪽): 가장 높은 수준의 주제, 전문 학회의 회원 그리고 구독되는 잡지는 일반적으로 매우 충분하다.

Kuhn(177쪽): Subject of highest degree, membership in professional societies, and journals read are ordinarily more than sufficient.

l       “Subject of highest degree”는 “가장 높은 수준의 주제”가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학위의 주제” 즉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를 뜻한다. 

 

 

김명자(258쪽): 예측들은 정확해야 한다. 정량적인 추론이 정성적인 것보다 바람직하다.

Kuhn(185쪽): they should be accurate; quantitative predictions are preferable to qualitative ones;

l       “prediction”을 처음에는 “예측”이라고 번역해 놓고 곧바로 “추론”이라고 번역했다. “추론”이라고 번역할 이유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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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9-09-05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덕하 님, 오랜 만입니다. 안녕하신지요. 이덕하 님의 번역 비판글을 보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선생께서 보여주신 다방면의 날카로운 번역비판은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더랬습니다. 이 점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명백한 오류가 다소 보이기에 지적하고자 합니다. 즉, 글 첫머리 부분의 “incommensurable”은 토머스 쿤(Thomas S. Kuhn)의 문맥에서는 “엄청나게 다른”(김명자 선생 번역)도 아니고, “같은 척도로 비교할 수 없는”(이덕하 님 번역안)도 아닙니다. 물론 두 분의 번역도 넓은 의미의 의역의 견지에서는 큰 오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incommensurable”은 1962년 이 용어와 개념을 처음으로 과학철학에 도입한 파울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와 토머스 쿤의 문맥에서는 〈통약불가능한〉 혹은 〈불가통약적인〉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개념어입니다. 이미 과학철학계에서도 그렇게 통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incommensurability”은 “동일 표준상 비교 불능성”(김명자 선생 번역)과 같이 번잡하게 번역하기보다는 널리들 통용하고 있는 〈통약불가능성〉 혹은 〈불가통약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 것입니다. 즉 정확성과 일관성과 간결성을 기해서 번역해줘야겠죠.

이 개념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학문적으로는 그다지 정확한 설명이 아니지만, 그러나 기본 착상에서는 동일하달 수 있고,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 가능한 설명으로서) 우리가 초중고 시절 수학에서 배운 “약분”이나 “약수”(a measure, a divisor) 그리고 “공약수”(common measure) 개념을 떠올리면 될 것입니다. 이들 개념을 머리 속에 두고 아래에 인용한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에 나오는 「과학 이론에서의 통약불가능성 The Incommensurability of Scientific Theories」 첫머리 부분을 읽어본다면, 우리는 문제의 개념을 어느 정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incommensurable”은 어원상으로 [in- (= not) + com- (= together; common) + mensura- (= measure) + able]로 분석할 수 있겠죠.

The term ‘incommensurable’ means ‘no common measure’, having its origins in Ancient Greek mathematics, where it meant no common measure between magnitudes. For example, there is no common measure between the length of the leg and the length of the hypotenuse of an isosceles, right triangle. Such incommensurable relations are represented by irrational numbers. The metaphorical application of this mathematical notion specifically to the relation between successive scientific theories became controversial in 1962 after it was popularised by two influential philosophers of science: Thomas Kuhn and Paul Feyerabend.

출처: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plato.stanford.edu/entries/incommensurability

(2009. 09. 05. 토요일. 맑음. 아침 06시 49분 올림)

이덕하 2009-09-05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통약불가능성" 또는 "불가통약성"이 학계에서 널리 쓰이는 번역어라면 그것으로 통일하여 쓰는 것에는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번역이나 김명자 씨의 번역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영한 사전에 따르면 commensurable은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는"과 "약분할 수 있는"을 뜻합니다. 어원으로 따지면 "약분할 수 있는"이 더 먼저일지 모르겠지만 쿤은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는"이라는 의미를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