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 무척 힘들겠다. 그치?"

돼지책 (100쇄 기념판) ㅣ 웅진 세계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0월

"아빠! 엄마 무척 힘들겠다. 그치?"

우리 아이가 이 책을 읽은 후 제게 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작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집을 나간 엄마가 더 나쁘다고 하더니 이제는 좀 컸는지 가사 노동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아는 것 같습니다.

다 읽고 나서도 "아빠, 나도 이렇게 같이 준비해야 해?"라고 걱정을 하면서 질문을 하고 또 정작 준비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과일을 깎는다거나 유리컵을 만지는 등 다소 위험한 것을 할 때만 도와준다고 하니...

그래도 요즘에는 자신의 그릇이나 컵 같은 것은 스스로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고 왜 아빠는 설거지나 요리를 하지 않는지 자꾸만 물어봐 저를 당황시키기도 합니다.

혹시나 동화 속 피곳 부인처럼 엄마도 집을 나갈까 걱정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엄마가 살림하는 것을 정말 돕고 싶어서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책을 읽다보면 거의 번역한 사람이 "허은미"씨 인데 이 책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체로 되어 있고 원문의 문장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영어로도 나와있는데 문장이 비교적 짧은 편이라 아이들 영어공부를 하기에 좋은 것 같아요.

처음 책을 읽었을 때에는 그림을 자세하게 보지 않았는데, 최근에 앤서니 브라운이 마그리트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고서 좀 더 눈여겨서 그림을 보게 되더군요.

그래서인지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그림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더니 저는 앤서니 브라운의 책 중에서 윌리 시리즈가 가장 그림이 멋진 줄 알았는데 이 책 역시 그에 버금가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타고난 작가의 개성과 유머가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지요.

고릴라와 바나나가 아닌 돼지들의 모습이 책 군데군데 잔뜩 나온 것이 너무 재미있어 아이와 숨은 그림을 찾듯이 책 속에 나타난 돼지 그림을 찾는데 엄청난 시간을 소요했답니다.

처음에 피곳 씨와 두 아이들인 사이먼, 패트릭은 멋진 정장을 말쑥하게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침이면 식탁에 앉아 회사에 혹은 학교에 늦겠다고 빨리 밥을 달라고 외치고 저녁이면 회사와 학교에서 돌아와 또 배가 고프다고 외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은 회사와 학교이지 결코 가정은 아닌 것입니다. 과연 피곳 씨와 사이먼, 패트릭에게 있어 아내와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 궁금해지는 장면이지요.

피곳 부인은 남편과 아이들이 떠나면 설거지와 침대 정리, 바닥 청소까지 마치고 일을 하러 갑니다. 또 집에 오면 다시 음식을 준비하여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고 설거지와 빨래와 다림질까지 하고 다시 먹을 것을 조금 만듭니다. 아마도 그 음식은 자신의 저녁일까요?

화려한 꽃무늬의 쇼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텔레비전을 보는 피곳 씨와 아이들. 그리고 벽지 역시 튤립 꽃이 너무 예쁘고, 거실 벽에 걸려있는 그림은 나폴레옹인지 멋진 인물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늘상 이런 하루하루가 반복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피곳 씨와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자 당연히 있어야 할 피곳 부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달랑 편지 한 장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너희들은 돼지야!"

그런데 엄마가 사라진 순간부터 집 안을 장식했던 모든 것들이 돼지 그림으로 변합니다. 튤립 벽지도 돼지로, 벽난로와 액자 그림도, 피곳 씨의 손과 얼굴, 아이들의 손과 얼굴도 모두 돼지로 변해있었지요.

그림 속에서 나타나는 돼지를 찾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양념병, 주전자, 수도꼭지, 전화기, 스탠드, 멋지고 화려한 꽃무늬의 쇼파까지 돼지 그림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다음 날에도 피곳 부인을 돌아오지 않고 집은 정말 돼지 우리처럼 되었고 피곳 씨와 아이들은 마치 돼지처럼 생활하게 됩니다. 설거지를 하지 않아 그릇이 쌓이고 빨래감도 쌓이고 정점 더 지저분해지고, 언제 엄마가 오는지 아이들은 꽥꽥거리고 피곳 씨는 꿀꿀거리기까지 합니다.

이제 먹을 것도 하나 남아 있지 않고 그 때 서광이 비추 듯 피곳 부인이 나타나고 피곳 씨와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요. 그리고 돼지로 변한 모습이 본래의 깔끔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돼지로 변했던 장식 역시 원래대로 돌아오고요.

이제 집 안 일은 온 식구가 분담을 하여 행복한 가정으로 탈바꿈합니다. 피곳 씨는 설저지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아이들은 침대를 정리하고 모두들 요리하는 것을 도웁니다. 함게 요리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이제야 비로소 엄마도 행복을 느낍니다.

해도해도 집안 일은 티가 나지 않고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곧 바로 지저분해 지는 게 바로 집이라고 하지요.

저도 될 수 있는 대로 집안 일을 도와야 겠다고 생각을 하였지요. 그리고 늘 살림을 맡으며 우리 집을 편안하고 아늑하게 만드는 제 아내에게 늘 소중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