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 하던 앞집은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서 자리잡았다.

할머니와 내가 고향을 떠날쯤이 되어서는 온 마을이 거의가 비었고 무너져가는 집이란게 낮설지 않을때 였다.

닭집 딸네미를 다시금 본 건 참 오랜시간이 지나 먼 친척 뻘 집 애 결혼식에서였다.

역시나 먼저 알아본 건 내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겐 고질적인 안면인식 불량문제가 있다.


"너 잊어버렸는데 보니까 알겠더라"

"오빠가 너 보고 싶다고 울다가 아빠한테 맞았어"

"너 한테 간다고 집 나갔거든"

"아빠 지갑 들고서 말야"

"오빤  저기 있는데. 너 못 알아보더라고"


우린 전에도 친했을까.

기억하는 한 그 집 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 집 닭만큼이나 없다.

얘가 나에 대해 아는 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린 서로를 보고 있는게 아니라 서로 공유하고 있는 고향의 기억을 추억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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