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은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바꿀 수 있다는 만능감에서 비롯됩니다.

과거에 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질투 역시 본능적으로 생기는 감정이므로 스스로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능감 때문에 죄책감이 생겨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죄책감이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제어하려고 할 때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을 품으면 품을수록 만능감이 커지는 악순환 때문에 계속해서 죄책감이 늘어갑니다.

만능감이 커질수록 죄책감에 고통받는 이유는 자기중심적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은 자신이 겸손하며 남을 배려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만능감이 넘쳐 뭐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남을 위해 겸허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만능감을 키우는 일입니다.

만능감이 커지면 죄책감에 고통받고 서서히 자신을 부정하며 겸허한 자세를 갖추려는 악순환에 빠져듭니다.

속으로 ‘자기중심!’이라고 외쳐봅시다. 그러면 뒤틀린 세계가 회복되며, 주위로 무엇 하나 제어할 필요 없는 세계가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자유롭고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은 주변 사람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화를 내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든다고 여겨 감정을 억누릅니다.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주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분노를 억누르면 세계가 뒤틀립니다. 상대방에게는 의지박약에 자기주장 못 하는 사람이라 취급받고 경멸당하며,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전부 받아준다며 마구잡이로 이용당하는 악몽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은 자신의 감정이므로 이를 억누르면 상대방을 중심에 두게 됩니다.

언제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면 세계가 뒤틀리고 악몽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자신을 중심에 둘 수 있습니다.

치밀어 오른 분노를 그대로 표현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분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중요하게 여겨봅시다. 분노를 느꼈을 때 일으킨 행동을 자책하지 않도록 합니다.

분노가 오히려 불쾌한 사람과 거리를 두게 해줍니다. 자신을 이용하려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확실한 선을 그어줍니다.

자신을 중심에 두면 자신에게 딱 맞는 세계가 찾아올 것입니다.

이때도 좋은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겠지만, 점차 자신을 중심에 두어 회복된 세계가 결국 모두에게 행복한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은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는 상황입니다.

타인이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실망하거나 상대해주지 않는 상황을 무척 두려워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더라도 세계가 뒤틀린 이상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사람이 제아무리 노력해도 모두 조금도 행복해지지 않고 불행해지기만 하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자신을 중심에 두면 되지만, 좋은 사람은 지금까지 계속 남의 기분만을 생각해왔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자신을 중심에 둘 수 있는지 모릅니다.

미움받을까 봐 두려워 자신을 중심에 두지 못할 때는 지금까지 두려워서 하지 못하던 일에 도전해보면 좋습니다.

두려워서 하지 못하던 일에는 남들이 질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숨어 있습니다.

좋은 사람은 질투와 미움과 같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동이 걸려 주저합니다. 그러니 두려워서 하지 못하던 일을 찾아서 해보면 제동을 풀고 자신을 중심에 둘 수 있습니다

두려워서 못 하던 일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질투를 이겨내며, 자신과 주위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첫걸음입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의 장점은 타인의 행복을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타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탓에 지나치게 상대방의 기분에 신경 씁니다.

좋은 사람의 바람은 오히려 모두를 불행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은 되풀이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럴수록 세계는 더 뒤틀리며 상대방은 불행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듭니다.

남보다 자신의 기분을 더 소중히 여기도록 바꿔나가 봅시다.좋은 사람의 장점인 ‘진정으로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제대로 살리려면 자신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을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두려워하던 일에 도전해보면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며 꼭 필요한 사람이 다가와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고 자신을 행복하게 할 때 흐름이 바뀌어 모두가 행복의 길을 걷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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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오래 쓰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글을 써?"라는 질문입 니다. 그럼 언제나 저는 이렇게 대답하죠. "생각나는 대로 써!"

‘글’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대개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은 사람, 어렵고 복잡한,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이란 수식어들을 우수수 떠올립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혼자 무언가를 시작 해야 한다는 걸 두려워하기도 하죠.

이 책은 가장 짧은 글쓰기를 시작으로 ‘글’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밑받침이 될 것입니다.

모든 글이 어려운 게아니라는 점,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을 깨우치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글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글자로 만든 세계’에 더욱 빠질 거라고 믿습니다. 간단 명료한 글로 인해 어렵게만 여기던 글을 친숙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는 건 좋은 현상이죠

글에도 기술이 필요합니 다. 짧은 글은 특히 더 그렇고요. 보기엔 쉬워 보이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어렵잖아요. 큰 미사여구가 있지 않아도 마음을 훅 울리는 글은 어떻게 쓰는 것일까요?

책을 ‘제대로 정독’해 주신다면 저는 여러분들께 "글 좀 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 감을 드릴게요.

글은 누구보다도 주관적이고, 또 다양한 분야를 가지고 있기에 어떤 사람도내 글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쓰인 글도, 쉽게 쓰인 글도 글이며, 긴 글은 무게 있는 글이고 짧은 글이라고 가벼운 글이 아닙니다. 글에는 어떤 기준도 없다는 뜻이죠!

마지막으로 글을 쓰기 전, 나를 ‘완전한 백지’로 만드세요. 알고 있던 지식이 오히려 방해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처음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 봐요!

지금 당장 보이는 사물들만 10초간 공책에 나열하여 적어 보세요.
컴퓨터, 스탠드, 연필, 형광펜, 메모지, 지우개, 커피, 필통, 빗, 립스틱, 휴지, 머그잔, 가방
당장 내 옆에 보이는 것만 10초간 여유롭게 적어도 이렇듯 많네요.

이번에는 생각나는 감정을 서술어로 30초간 써 볼까요?
화목했다, 신 났다, 따분했다, 긴장했다, 화났다, 침울했다, 먹먹했다, 행복 했다

다양한 감정이 안 떠오를 땐 일과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거나,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들을 적어 보세요. 그 다음엔 쉽게 구한 글감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써 볼 거예요.

사소한 것일수록 기록해 두는 게 좋습니 다. 머릿속을 스쳐 가는 모든 걸 적는다는 느낌으로 사소한 것부터 큼직한 것까지 마음껏 적어 봐요.

글쓰기에서 "왜?"라는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나 요? ‘왜’는 우리에게 글감은 물론 스토리도 주고 글에서 범할 수 있는 오류들을 막아 주기도 한답니다.

다양한 글을 쓰고 싶다면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져 봐요!

곁에 있던 ‘당연한 것’부터 의문을 가져 봐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나무 볏짚은 왜 필요한가, 통신망은 어떻게 이렇게 빨라질 수 있었나, 링거를 맞으면 감기가 빨리 나을까, 터널은 어떤 순서로 만드는가, 물 위의 다리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어떤 의문이든 좋습니다.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꺼리는 소재가될 수 있으니까요. 의문을 가지면 해답을 찾아야 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글은 모습이 갖춰집니다.
자 이렇게 질문을 던졌어요. 그리고 의문의 답을 찾아봅니다.

흔히 쓰는 ‘꼬투리를 잡는다.’라는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 다. 어떤 답이 주어졌을 때 답변에 관한 꼬리 물기를 하며 질문 세례를 펼쳐 보세요. 스스로 질의응답을 하다 보면 생각의 폭이 점점 더 넓어지는 걸느낄 수 있을 거예요.

물음표가 없는 완성본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건 물론이거 니와 나의 생각과 반대하는 입장이 되어 나를 공격할 줄도 알아야 글의 오류가 줄어든답니다.

꼬리 물기가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다면, 반박은 글의 구멍을 막아 줍니다.
보통 이때 꼬리 질문은 칼럼이나 소설을 쓰기 전 활용하면 좋습니다.
타인이 반박할 여지를 사전에 미리 방지하는 거죠. 토론한다는 생각 으로 내가 얻은 사실에 반박을 해 보세요!

요즘 말로 일명 ‘감성 글’이라고 하죠? 읽기만 해도 감성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그런 글이요. 어떻게 해야 글에 감성이 묻어날 수 있을까요? 자신만의 감성을 그대로 녹여 내는, 한마디로 ‘주관적인 글’이란 자기의 견해나 관점을 기초로 글을 쓰는 겁니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막상 글로 꺼내려면 어려워하는데요.
자신의 시각을 세상에 투영시키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 니다. 이 장에선 어떻게 ‘주관적인 글’을 쓰는지 살펴볼게요.

대부분 인지를 못하고 있는 순간에도 내 글에는 나만의 시각이 투영 됩니다. 사물이나 사람을 빗댄 비유, 느낌, 상상까지 모든 건 주관적인 나의 시각에서 나오죠.

‘나’라는 필터를 끼워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사물을 바라보게끔 전달한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단순한 사실 위주의 서술 에도 나만의 시각을 더하면 풍경을 훨씬 생생하고 재밌게 그릴 수 있어요.

똑같은 행동을 보고도 사람들은 각각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가."입니다.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를 생각하고, 세밀한 관찰력 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심심할 법한 문장이 더 흥미로워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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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은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질투하고 있을 뿐입니다.

굴하지 않고 자신을 중심에 두는 자세로 나아간다면 미움받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원의 중심에 도달하면 상대방이 그저 잠시 질투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는 주변 사람들도 질투하지 않으며 좋은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질투는 흔히 욕설과 험담, 괴롭힘 등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충고, 주의, 걱정, 무시(무반응)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질투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가 말할 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확실히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이때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의기소침해지거나, 불안감 때문에 불쾌한 감정에 휩싸인다면 상대방이 나를 질투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말고 전류가 흘러나가는 발바닥의 감각에 집중하면 질투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분노와 반성을 무한 반복하는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됩니다. 머지않아 자신을 중심에 둘 수 있게 됩니다

‘말처럼 쉬울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한 분은 자신에게 험하게 말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발바닥에 신경을 집중하는 연습을 해봅시다. ‘내가 잘못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상대와 이야기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지면에 밀착한 발바닥의 감각을 확인합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디서든 감정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봅시다.

상대방이 질투할 때도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면 양쪽 모두의 마음을 모두 안정시키고 자기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으로 설명하면 ‘계통적 탈감작요법’이 됩니다.

질투를 받아 패닉 상태에 빠졌을 때 발바닥에 신경을 집중하여 마음을 안정시키는 연습을 되풀이하여, 안정을 질투에 조건화시킵니다. 그러면 질투를 받았을 때 발바닥을 의식하는 것만으로 조건화된 안정 효과가 나타나 침착하게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자기중심에 둘수록 인력이 커지므로 싫은 사람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싫어하는 인력이 큰 사람 주위를 맴돌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이 되면 껄끄러운 사람, 싫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연스레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담담히 생활하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생활하고 우선순위에 자신의 기분을 두면 인력이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력이 커지면 껄끄러운 사람과는 멀어지고 필요한 사람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껄끄러운 사람, 싫은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필요한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력이 작다는 사실을 깨닫고, 태도를 조금씩 자기중심적으로 바꾸어 인력을 키우면 됩니다.

껄끄러운 사람, 싫은 사람이 멀어질 만큼 충분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면 가장 소중한 사람이 다가오는 균형 잡힌 세계가 찾아올 것입니다.

싫어하는 기색이 태도에 드러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떻게 인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의외로 방법은 무척 간단합니다. ‘싫은 건 싫은 거야!’ 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 됩니다.

‘일이니까.’ ‘인간관계는 소중하니까.’ 같은 상식으로 자신의 싫은 감정을 덮어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싫은 건 싫은 거야!’ 이런 마음가짐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마음이 태도에서 드러나도 좋습니다. 만일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상대방의 질투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시다.

이처럼 자신의 싫은 감정 자체를 소중히 여기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을 중심에 두어 인력을 키우면 싫어하는 사람은 멀어지며,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만이 모여들어 즐거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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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 인도 우화집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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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주는 다양한 이야기!
재미있다👍🏻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

이런 이야기 책을 읽으면
어릴 때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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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진리나 비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목발을 집어던지고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대들도 나처럼 목발을 내려놓으면 된다. 나에게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다."

몇 달 동안 젊은이들은 그에게서 걷는 법을 배웠다. 어떤 제자는 그의 말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그러는 사이 차츰 더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숲으로 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고행과 금욕을 실천하며 목발 없이 걷는 수련을 하고, 계율과 교리를 만드는 이들도 있었다.

현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렇게 수만 명의 추종자들이 ‘목발에서 해방되는 법’을 배웠다.

그 보상은 다름 아닌 ‘목발 없이 자유롭게 걷는 내세의 삶’이었다.

한 가지 미스터리로 남은 것은, 이 수많은 추종자 중에 초기의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목발을 내던지고 자유롭게 걷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매주 기도회를 열고 경전을 암송하고 목발교 창시자를 찬양했지만 여전히 모두 목발을 짚은 상태였다. 군중 앞에서 설교하는 지도자들도 목발을 짚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목발교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교리와 가르침 밖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스러운 물건은 황금 유리관에 소장된, 현자가 불 속에 던져 버렸던 타다 남은 목발의 잔해였다.

나는 그대의 몸을 종이로, 신체의 변화라는 펜으로 편지를 썼다. 그리고 배달부는 잊지 않고 편지를 건넸다. 그 편지를 전달한 배달부는 ‘시간’이다.

몇 년 전, 그대의 머리가 희끗해졌다.
그것이 내가 보낸 첫 번째 편지였다.
그대는 그 편지를 무시했다.

치아가 흔들린 것이 내가 보낸 두 번째 편지였다.

세 번째 편지는 그대의 시력이 떨어졌을 때 보냈다.

그리고 네 번째 편지는 몸이 마비되었을 때이다.

"나는 짐을 지고 가는 게 아녜요. 이 아이는 내 귀여운 동생이지 짐이 아녜요. 그래서 나한테는 전혀 무겁지 않아요. 나는 동생을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쁨으로 임했을 때 어떤 것도 짐이 아닌 것이다.
비록 그것이 뜨거운 태양 아래 산길을 오르는 일일지라도.

사람은 화가 나거나 감정적이 되거나 몹시 다급하면 자신도 모르게 본성이 드러나 자기 본래의 언어로 말하게 되거든

우리는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연기하고, 지적이고 교양 있고 세련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우리의 본성, 본래 언어는 무엇인가?

화가 나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의 우리의 언어는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기분 좋을 때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남자는 자신이 원래 도둑이며 미천한 자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았다. 다시 밑바닥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유일한 길은 혼신을 기울여 성자 흉내를 내는 길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해에 걸쳐 온 존재를 다해 성자 연기를 한 결과 남자는 정말로 성자가 되어 갔다. 불안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졌으며, 생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더 이상 성자 흉내를 낼 필요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서 나는 어떤 연기를 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낯선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오. 나의 행운을 내 집 문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과 나눠야 했다면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 상상해 보시오."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에야 겨우 집 한쪽 귀퉁이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에 그 집을 떠나기 전에 크리슈나는 집주인을 축복하며 말했다.

"당신의 말이 옳소. 부는 더 많은 부를 필요로 하는 법이오. 당신은 이미 부자이지만, 내 축복에 의해 앞으로 더 많은 부를 얻게 될 것이오."

그토록 무례했던 부자에게는 더 많은 부를 가질 수 있도록 축원해 주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한 가난한 남자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기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두 사람 모두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부자인 사람은 부에 중독되어 있다. 나는 그의 물질적인 욕망이 채워지도록 더 많은 부를 그에게 주기로 했다. 더 많은 부를 가질수록 그는 더 외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돈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눈물 흘릴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기 시작할 것이고, 더 의미 있고 영속적인 무엇인가를 갈구할 것이다."

아르주나가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도 묻자 크리슈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선하고 친절한 마음씨의 남자가 언제까지나 외딴곳의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서 늙은 암소에 의지해 가난하게 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는 다른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그 오두막과 암소이다. 그것들을 버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거부하고 지금의 보잘것없는 삶에 매달려 있을 때,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신이 하는 일이다. 그는 그 장소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이 그를 진정으로 위한 일이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얼른 그 경비원을 불러오라! 그는 그대처럼 다듬어지고 훈련된 목소리가 아니라 나를 향한 진실한 가슴으로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대는 최고의 가수를 내쫓은 것이다."

진실한 감정은 누구나 느낀다. 들숨과 날숨에 혼이 담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는 어디에나 가닿는다. 인간의 가슴뿐 아니라 돌로 만든 신상에게도.

불행의 양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다만 그것을 어디에 담는가에 따라 불행의 크기가 달라진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라

소금의 양은 같지만, 얼마만 한 넓이의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짠맛의 정도가 다른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 100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열심히 노력하면 한두 가지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잃을 것이고, 늙을 것이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대의 101번째 문제는 삶에서 아무 문제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모든 것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마음이다.

만약 그대가 이 마음을 자각하고 그것에서 벗어난다면 100가지의 문제에서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평화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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