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한 진리나 비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목발을 집어던지고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대들도 나처럼 목발을 내려놓으면 된다. 나에게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다."

몇 달 동안 젊은이들은 그에게서 걷는 법을 배웠다. 어떤 제자는 그의 말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그러는 사이 차츰 더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숲으로 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고행과 금욕을 실천하며 목발 없이 걷는 수련을 하고, 계율과 교리를 만드는 이들도 있었다.

현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렇게 수만 명의 추종자들이 ‘목발에서 해방되는 법’을 배웠다.

그 보상은 다름 아닌 ‘목발 없이 자유롭게 걷는 내세의 삶’이었다.

한 가지 미스터리로 남은 것은, 이 수많은 추종자 중에 초기의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목발을 내던지고 자유롭게 걷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매주 기도회를 열고 경전을 암송하고 목발교 창시자를 찬양했지만 여전히 모두 목발을 짚은 상태였다. 군중 앞에서 설교하는 지도자들도 목발을 짚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목발교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교리와 가르침 밖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스러운 물건은 황금 유리관에 소장된, 현자가 불 속에 던져 버렸던 타다 남은 목발의 잔해였다.

나는 그대의 몸을 종이로, 신체의 변화라는 펜으로 편지를 썼다. 그리고 배달부는 잊지 않고 편지를 건넸다. 그 편지를 전달한 배달부는 ‘시간’이다.

몇 년 전, 그대의 머리가 희끗해졌다.
그것이 내가 보낸 첫 번째 편지였다.
그대는 그 편지를 무시했다.

치아가 흔들린 것이 내가 보낸 두 번째 편지였다.

세 번째 편지는 그대의 시력이 떨어졌을 때 보냈다.

그리고 네 번째 편지는 몸이 마비되었을 때이다.

"나는 짐을 지고 가는 게 아녜요. 이 아이는 내 귀여운 동생이지 짐이 아녜요. 그래서 나한테는 전혀 무겁지 않아요. 나는 동생을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쁨으로 임했을 때 어떤 것도 짐이 아닌 것이다.
비록 그것이 뜨거운 태양 아래 산길을 오르는 일일지라도.

사람은 화가 나거나 감정적이 되거나 몹시 다급하면 자신도 모르게 본성이 드러나 자기 본래의 언어로 말하게 되거든

우리는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연기하고, 지적이고 교양 있고 세련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우리의 본성, 본래 언어는 무엇인가?

화가 나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의 우리의 언어는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기분 좋을 때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남자는 자신이 원래 도둑이며 미천한 자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았다. 다시 밑바닥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유일한 길은 혼신을 기울여 성자 흉내를 내는 길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해에 걸쳐 온 존재를 다해 성자 연기를 한 결과 남자는 정말로 성자가 되어 갔다. 불안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졌으며, 생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더 이상 성자 흉내를 낼 필요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서 나는 어떤 연기를 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낯선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오. 나의 행운을 내 집 문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과 나눠야 했다면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 상상해 보시오."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에야 겨우 집 한쪽 귀퉁이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에 그 집을 떠나기 전에 크리슈나는 집주인을 축복하며 말했다.

"당신의 말이 옳소. 부는 더 많은 부를 필요로 하는 법이오. 당신은 이미 부자이지만, 내 축복에 의해 앞으로 더 많은 부를 얻게 될 것이오."

그토록 무례했던 부자에게는 더 많은 부를 가질 수 있도록 축원해 주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한 가난한 남자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기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두 사람 모두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부자인 사람은 부에 중독되어 있다. 나는 그의 물질적인 욕망이 채워지도록 더 많은 부를 그에게 주기로 했다. 더 많은 부를 가질수록 그는 더 외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돈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눈물 흘릴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기 시작할 것이고, 더 의미 있고 영속적인 무엇인가를 갈구할 것이다."

아르주나가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도 묻자 크리슈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선하고 친절한 마음씨의 남자가 언제까지나 외딴곳의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서 늙은 암소에 의지해 가난하게 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는 다른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그 오두막과 암소이다. 그것들을 버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거부하고 지금의 보잘것없는 삶에 매달려 있을 때,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신이 하는 일이다. 그는 그 장소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이 그를 진정으로 위한 일이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얼른 그 경비원을 불러오라! 그는 그대처럼 다듬어지고 훈련된 목소리가 아니라 나를 향한 진실한 가슴으로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대는 최고의 가수를 내쫓은 것이다."

진실한 감정은 누구나 느낀다. 들숨과 날숨에 혼이 담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는 어디에나 가닿는다. 인간의 가슴뿐 아니라 돌로 만든 신상에게도.

불행의 양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다만 그것을 어디에 담는가에 따라 불행의 크기가 달라진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라

소금의 양은 같지만, 얼마만 한 넓이의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짠맛의 정도가 다른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 100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열심히 노력하면 한두 가지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잃을 것이고, 늙을 것이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대의 101번째 문제는 삶에서 아무 문제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모든 것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마음이다.

만약 그대가 이 마음을 자각하고 그것에서 벗어난다면 100가지의 문제에서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평화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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