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네들이 단지 읽고 쓴다고 해서, 심지어 밤새도록 그렇게 했다고 해서 자네들이 열심히 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네. 무엇을 위해 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성실하다고 말하지 않겠네··· 자신의 지배적인 도덕원칙을 위해 그것을 할 때에야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본성과 끊임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겠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4.4.41;43

‘하고 있는 일’로 스스로를 평가하지 말고, ‘왜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성취하려 하는가?’로 평가하라. 여기에 좋은 답을 할 수 없다면 그 일을 그만두어도 좋다.

플라톤의 이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무릇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새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조망해야 한다. 재산, 무기, 농장, 결혼과 이혼, 탄생과 죽음, 법정에서의 소란, 불모의 땅, 외국인들, 축제, 장례식과 시장 등등. 뒤섞여 있는 모든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이면의 질서를 바라보라."

우리는 어떤 일을 원할 때 꼭 그것이 아니면 안 될 듯이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삶’이라는 대안이 남아 있다.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에 집중하면서 누군가 구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지금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집중하면서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적 의지에 권능이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일어서라. 자기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만큼 그렇게 하라."

선하고 성실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면 길을 바꾸라는 것이다. 삶의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길을 너무 자주 바꾸게 되면 오히려 길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하지만 길이 정체돼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도 길을 바꾸지 않는 것 또한 낭비다. 정체된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경솔한 짓도 변덕도 아니다. 그것은 용기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당신의 삶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각자 가능한 범위 내에서 목표를 달성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누구도 그런 당신을 막을 수는 없다. 어떤 외적 장애물(방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의로움, 자제력, 지혜로움과 함께 했다면 이런 장애물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 행동의 어떤 부분을 좌절시키려고 하다면? 그런 경우에는 기꺼이 그 장애물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조건에 주의를 기울여라. 그리고 즉시 대체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데에 더 도움이 되는 다른 행동을 취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32

로마의 작가 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물을 가장 쉽게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은 강이 시작되는 곳에서 건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평화로운 방향으로 안내하는 인생의 지침서 같은 것은 없다. 원칙을 가지고 운명 앞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데는 항상 두 가지 시야가 있다. 긍정과 부정.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아무리 어처구니가 없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일에도 그 원인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에 휩싸여 그 원인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은 세상과 멀어지고 마음의 문은 굳게 닫힌다. 닫힌 문을 여는 것은 오로지 당신이 어떤 손잡이를 잡느냐에 달려 있다.

둘째, 현명한 자들은 항상 최상과 최악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고려한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헛된 희망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기호에 맞춰 세상의 섭리에 대해 논평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섭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지 않고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침묵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상태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침묵을 하게 되면 답은 스스로 찾아온다.

몸과 마음에 활력을 가져다주고 골칫거리들을 풀 수 있는 해결법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운 야외에 나가 한나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번 좌절했다면 스스로에게 이 정도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 그러나 예전에도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면 우리는 서서히 약해진다네. 결국엔 자신의 실수를 되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종국에 가서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2.18.31

"미치광이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매번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동일한 패턴을 유지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을 고치려 하지 않고 행동을 바꾸려 하지도 않으면서 희망만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이유가 되는가?" "이 말싸움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가?" 현명한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하지 싸우기 위해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그는 후보자를 아침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그리고 식당 매니저에게 고의적으로 후보자의 식사 주문을 엉망으로 만들 것을 부탁했다. 후보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화를 내는가? 무례하게 반응하는가? 사소한 일로 중요한 자리를 망치는가?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로 이 불편함을 다루는가? 작은 역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는 것은 사소한 능력이 아니다. 거기에서 모든 역량이 드러난다.

거만함을 억제하는 것도, 분노를 조절하는 것도, 심지어 배은망덕한 사람을 돌보는 것도 가능하다. 누군가는 그렇게 했다. 사소한 문제를 푸는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해결책을 찾아갔다. 해법을 찾기 위해 헌신하고, 스스로를 도야하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 했다면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변명은 해결책이 아니다.

나는 훌륭한 왕이 되려면 철학적 사고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철학자야말로 처음부터 왕다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무소니우스 루푸스, 강의록, 8.33.32-34

첫 번째 유형은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면 즉시 그 호의를 되돌려 받을 준비를 한다. 두 번째 유형은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받을 채무가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자신이 베푼 행동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포도주를 만들고 난 후 다른 요구에 응하지 않는 포도나무, 경주를 마친 말, 사냥감을 쫓은 후의 사냥개, 꿀을 만들고 난 후의 꿀벌과 같다. 그와 같은 사람은 좋은 행동을 한 후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포도나무가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또 다른 호의를 베풀 기회를 기다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6

누군가 당신의 생각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어린 형제자매가 당신의 옷을 입는다든가, 당신 취향의 음악을 듣는 것으로 당신을 흉내 내는 것을 본 적은 없는가? 새로 이사를 갔는데 이웃이 따라쟁이들로 가득했던 적은 없는가? 젊고 경험이 없었을 때는 이런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그만 좀 따라해. 내가 처음이라고!"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 일찍 일어나는 것 하나가 무슨 대단한 일일까 싶다. 하지만 멀리 갈 것 없이 당신의 부모님만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양육이라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몸이 아픈 날조차도 잠의 유혹을 물리쳤다.

배우고 돈을 벌고 양육을 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준다. 그것이 고통만을 주는 것이었다면 이미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이런 질문들에 고민을 하다 보면 다소 불편한 답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질문은 교정을 위한 첫 걸음이다.

배우고 돈을 벌고 양육을 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준다. 그것이 고통만을 주는 것이었다면 이미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모든 악은 선한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창궐한다."

저 오이는 쓰다, 그렇다면 내다 버려라! 길 위에 가시덤불이 있다, 그러면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마라! 그러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귀찮은 존재들은 왜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와 같이 생각을 한다면 자연의 진실한 탐구자인 우리는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이는 마치 목수나 구두수선공의 가게에 톱밥과 가죽 조각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 그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쓰레기통이 있지만 자연은 그와 같은 것이 필요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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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말했다.
"사람들은 항상 그들이 처한 환경을 탓한다. 나는 환경을 믿지 않는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아다니고, 찾을 수 없다면 그 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 불평하든지 아니면 움직이든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슬럼프는 흔한 호모 사피엔스의 일’이므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점은 슬럼프를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슬럼프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게 이겨내는 것이다.

자꾸 멈춰지려 할 때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슬럼프를 이겨내고 싶다면 자신이 향하는 목적지를 그려보아야 한다.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다. 왜 공부를 하고 있는지,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어떤 삶을 감당해야 할지 생생하게 떠올릴 때 다시금 추진력이 생긴다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Saint-Exupéry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고 일을 지시하고 업무를 나눠주는 짓은 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어라."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을 보고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이 우리를 슬럼프에서 건져낼 것이다.

평범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모험’이고, 모험의 시작은 새로운 도전 과제의 부여인데, 그것은 사실 익숙했던 일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편안함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순간 말이다.

당신의 익숙한 일상에도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우선 침착하자. 당신에게 다가온 인생의 도전을 ‘모험에의 소명’이라고 생각해보자. 한 번뿐인 삶인데 멋진 모험과 끝내주는 여행담으로 가득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모험에의 소명을 받아들여야 영웅이다. 당신이라는 영웅은 거기서 출발한다.

. 어디를 향하건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 과정은 아무 데도 없는데, 그 어려움을 극복할 힘은 최종 결과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성공할 것을 믿는 사람만이 고생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다.
세상은 확신이 있는 자를 좋아한다. ‘이래도냐’ 하고 괴롭혀도 ‘고작 이것뿐이냐’ 하고 주눅 들지 않는 사람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이렇게 우리를 응원한다.
"그 길로 가라. 잘못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빛이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버섯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수가 필요하다. 바로 뿌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조건이다. 이를테면 기온의 변화나 토양의 산성도 같은 것이다. 이런 방해에 부딪히면 뿌리는 기존의 성장 전략에 변화를 꾀해 포자胞子의 형태로 번식 방법을 바꾼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로소 송이버섯이 만들어진다.

① 분량으로 적기: 영어 단어 50개, 혹은 헌법 교과서 p50~p120
② 내용으로 적기: 등차수열과 등비수열, 또는 공자의 생애와 사상
③ 시간으로 적기: 8시간 공부, 아니면 아침 9시~밤 10시까지 독서실
 

오늘이 달력 너머로 사라질 무렵, 계획과 실행을 한번 맞춰보자. 달성하지 못한 분량이 얼마나 되는가. 예상과 어긋난 정도는 또 얼마나 되는가. 그런 다음 생각해보자. 하루의 공부조차 이 정도 오차가 났다면 평생의 꿈에서는 얼마나 많은 오차가 발생할까.

하루를 온전하게 채우지 못한 사람은 평생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평생이란 시간은 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 것인 까닭이다.
하루의 공부와 평생의 목표 관계가 이와 같다. 전자를 온전히 채우는 사람만이 후자를 이룰 수 있다.

당신이 매일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당신의 삶은 얼마나 다른 모습이 될 것인가.

반드시 끝이 있다고 해서 시작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시작과 끝이 두 기둥처럼 자리 잡은 그 사이는 빈 공간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만두소를 채우듯 그 자리에 경험을 채워 넣는다. 경험은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지혜를 잉태한다. 지혜의 궤적이 바로 삶이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은 "사랑을 하다가 사랑을 잃는 편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라고도 말했다.

공부한 것은 언젠가 잊힌다. 하지만 시작과 끝이 그렇듯, 공부와 망각 사이에는 경험이 자리한다. 그 경험의 깊이가 당신 삶의 깊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라. 반드시 잊어버리게 될지라도 열심히 공부하라. 공부를 하고 잊어버리는 편이 한 번도 공부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당신이 만약 1시간을 빈둥거리며 흘려보낸다면 정말 최소한으로 계산해도 1시간의 최저 시급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은 오늘 얼마짜리 공부를 할 것인가.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갈 리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내 발목만 잡을 리도 없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 박경철, 『자기혁명』

삶은 한 번뿐이고, 기회는 열려 있으며, 당신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할 수 있는데 왜 평범한 사람에 머무르려 하는가."
당신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데, 왜 거기 머무르려 하는가.

공부의 목적은 공부하는 동안 이미 얻어진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해도 결국 집에 도착할 뿐이지만 분명히 건강해지지 않는가.

만약 당신이 선택의 순간에 늘 우유부단하다면 열심히 공부해보자. 무지는 어둠이요, 앎은 빛이다. 선택이 두려운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선택하는 이들은 다만 가야 할 곳과 가는 방법을 보다 잘 아는 것에 불과하다.

위대한 힘은 위대한 생각에서 나온다.
위대한 생각은 위대한 질문에서 나온다.
위대한 질문은 위대한 책임감에서 나온다

이따금 ‘공부가 어렵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환절기에 훌쩍이는 콧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춥다’고 느끼면 곧장 옷을 입고 몸을 따뜻하게 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것이 계속 자라나지 않도록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생각이 떠올라도 따라가지 말자. 마음에 있더라도 소리 내지 말자. 생각하는 것은 기도, 말하는 것은 주문이다. 잘되지 않을 것 같다고 계속 생각하는 것은 실패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구멍을 반쯤 파면 노력을 기울여야 할 방향을 알 수 있다. 어디부터 파기 시작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잘못된 구멍일지언정 인상적인 깊이까지 파 내려가는 편이 훨씬 낫다."
해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당신은 더 나아질 것이다. 무턱대고 앉아 있지 마라. 겁먹지 말고 나아가라.

미국 소설가 아이작 싱어Isaac Singer는 이렇게 말했다.
"잘 안 될 것이라고 계속 말하면 그 말을 증명할 좋은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세바스티안 라이트너Sebastian Leitner는 『공부의 비결』에서 "사람은 의미 없는 것을 외울 때 10배의 시간을 들이고도 10배는 더 빨리 잊어버린다"라고 말했다.

가수 김창완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삶이라는 것이 매 순간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구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오랜 세월의 집적이 아니라 ‘찰나’구나."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채우기를.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삶의 여기저기를 미완성으로 남겨두는 일이 없기를.

다산 정약용은 책을 읽다가 몸과 마음이 아울러 편안해지는 경험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요즘 퇴계 선생의 문집을 얻어 공부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근육이 안정되고 맥박이 편안해져 조급하고 들뜬 기운이 사라지니, 참 이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나의 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겠는가?"

언어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고, 정신은 육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언어를 접하면 언어에 담긴 에너지에 육체가 반응한다.

고난을 극복한 성공 스토리는 좌절감에 효과가 있고, 멘토의 따뜻한 조언은 불안감에 특효약이며, 오래 묵은 동서양의 고전은 방향을 잃었을 때 도움이 된다. 식탁 위에 비타민 병을 놓아두듯 책상 위에 마음을 위한 책을 올려두자. 곁에 두는 좋은 책 한 권은 옆자리에 앉은 스승과 같다.

우리의 꿈을 무의식 속에 새겨 넣기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바로 잠들기 직전이다. 꿈을 그리며 잠들면 잠자는 동안 무의식이 몸과 마음을 우리의 꿈을 향해 조정해놓는다. 미국의 목사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이 "잠자리에 들 때는 언제나 승자가 되어 있어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다. 꿈을 그리며 잠들자. 무의식에 닿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쓰레기로 채우지 말자.

"사실 우리는 모습을 변장하고 있는 신성神性이며, 우리 내면에 있는 그 신성은 완전히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디팩 초프라, 『성공을 부르는 일곱 가지 영적 법칙』

애매모호한 목표는 애매모호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당신의 꿈을 뚜렷한 목표로 바꾸고 그 목표를 머릿속에 새기자.

마사노리는 이렇게 당신을 응원한다.
"성공하기 위한 노하우가 분명한데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공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아직도 목표를 세우기 귀찮은 마음이 들거든 미국 소설가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Heinlein의 다음과 같은 경고를 기억하길.
"명확히 정해진 목표가 없으면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는 데 충성을 바치다가 결국 그 사소한 일들의 노예가 되고 만다."

작가들이 ‘뮤즈Muse’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다. 저절로 글이 써지게끔 도와주는, 이른바 ‘영감’을 주는 존재다.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도 이렇게 말했다.
"쓰고 또 쓰라. 영감을 기다리지 말라. 쓰다 보면 영감을 얻게 된다. 쓰고 또 쓰라."
위대한 작가들은 그렇다. 잘 써질 때 쓰기 때문에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쓰기 때문에 잘 써질 때가 오는 것이다.

"세계는 언제 어느 때에도 불완전하고 흙투성이어서 이를 참고 견디며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과 신념을 필요로 했다."
참고 견뎌야 한다. 편하고 즐겁지 않은 의자 위에서 버티며 당신의 우주를 가치 있는 무언가로 빚어내야 한다.

"바닷속에도 산이 있어 이를 해산海山이라 한다. 해산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섬이 되고, 수면 아래에 얕게 잠겨 항해에 위험이 되면 이를 암초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암초 위에 등대를 세워 오히려 항해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다."

항상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 찬 인생은 없다. 어려움은 어떤 식으로든 닥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매사에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을 비는 것과 같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어려움을 어떻게 피할까’를 질문하지 말고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까’라고 질문하자.

철학자 에머슨Emerson의 말처럼 "어떤 사람은 슬픔을 딛고 서고, 어떤 사람은 슬픔 밑에 깔린다." 당신의 목표를 방해하는 암초가 있거든 그 암초 위에 등대를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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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
김남규 지음 / 이지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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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는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인간이 아닌 ‘덩어리‘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환자를 만나고
아픈 사람을 대하는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일이니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는 싶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있어서인지
의사가 쓴 이 책도 곱게만 읽히지는 않았다

내가 의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면
실제로 나는 그런 병원과 의사만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하느님과의 수다책을 통해 마음가짐 바꾸는중) 생각이 드니
내 고정관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숭고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환자를 살리고 싶어하는 의사가 있다고
환자를 생각하는 병원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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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가치가 언제나 육신의 욕구를 넘어선다고 할 수도 없다. 착취당하는 농민들이 빵과 권리를 위해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켰고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이어졌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육신의 편안함이 꼭 영혼의 기쁨과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살아가면서 그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균형 있게 채워가도록 서로 배려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품위와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오래된 집을 잃어버린 어머니가 우리 집을 낯설어하지 않고 잘 적응하셨으면 한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사시면 좋겠다. 언젠가 어머니는 조용히 나를 불러 내가 어머니 때문에 곤란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큰 병이나 사고를 겪고서야 부모님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다. 너무 늦기 전에 사랑과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 어떨까? 지금 곁에 계시다면……

그동안 기고했던 글을 모아서 막상 책으로 내려고 하니 글이 더 필요하여 일기 비슷하게 써둔 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신변잡기 같은 내용이라 과연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삶과 죽음의 문턱이 일상인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부끄럽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기쁨은 어디에 있으며, 죽음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고통 중에 있는 형제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다면, 그 고통은 서로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실로 하느님의 큰 선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 함은 바로 이렇게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이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혈연 이상의 자매가 되어 하느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

제자들에게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병 때문에 여러분을 찾는 환자 70% 이상이 여러분보다 배움이 부족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분들일 것이다. 가슴을 열고 늘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의 손을 잡는다면 오히려 여러분이 행복해질 것이다. 의사는 결코 고상한 직업이 아니지만, 매우 숭고한 직업인 것은 확실하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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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이는 됐고 남편과 고양이면 충분합니다
진고로호 지음 / 꼼지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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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아이없이 남편과 살고 싶어한다(딩크족)
비슷한 점이 있는 줄 알고 읽게되었는데
고양이 엄마가 된 이야기가 추가되어있어서
아이없이사는사람 이라고 다 같은게 아니라
각자 다른 인생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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