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 사진하는 임종진이 오래 묻어두었던 '나의 광석이 형 이야기'
임종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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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그대는 짧게 살고 갔으나 기억과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

 

김광석이 급하게 가버린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사람들에게 모습은 보여줄 수 없으나 그의 노래가 남아서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을 거둔다. 임종진은 자신만의 방법인 사진이란 틀 안에 가두었으나 글과 함께 무한히 자유롭다. 

 

임종진 김광석이 1000여회의 소극장 공연을 할 대 찍은 사진과 함게 김광석과 연관된 사연들을 풀어 놓는다. 사진이야 문외한이니 호불호를 말할 수 없지만 글이야 조금은 읽어 보고 있으니 보는 눈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임종진의 글에는 사람의 감성을 건드려 눈이 아프고 코 끝이 찡하게한 것은 <노름마치>의 진옥섭 선생 이후 오랫만이다. 글쟁이도 아닌 사람들이 이렇게 눈물을 쏙 빼게하면 글쓰는 분들 긴장 좀 하셔야겠다.

 

사람마다 떠나버린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각자의 김광석에 대한 편린들이 모여서 김광석이라는 거대한 퍼즐의 부분들이 채워진다.

 

내게 있어 김광석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로 남았다. 다른 노래들도 있지만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눈물이 났다. 생의 마지막에서 돌아보는 시선을 목소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미 두 번 이상 생을 살아낸 달관 혹은 관조의 목소리가 그곳에 있었다.

 

김광석이 그리워지는 오훙는 김광석의 노래와 이 책으로 그리워하면 될 듯하다.

 

완유세설령에서 유랑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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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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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가 사실이 되기 혹은 이미지 뒤에서 영원히 살기

 

김연수의 글을 처음 읽었던 것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에서 산들놀이와 독서토론 모임이 열렸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고 기억한다. 그 후 많은 시간 잊고 지냈다. 그저 한국 문단의 젊은 작가 한 사람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었다.

 

최근 김연수의 신작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대한 호평이 넘쳐나고 김연수 마니아가 되어가고 있는 앨리스의 침 튀기는 소리도 들리는 걸 보면 뭔가 있는작가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책읽기 외에는 시니컬함으로 무장한 지인이 김연수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면 초기작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헌책방에서 집어온 <꾿바이 이상>을 읽어볼 준비가 되었다.

 

<꾿바이 이상>은 오감도의 시인 '이상'과 얽힌 이야기다. 이상의 데드 마스크와 오감도 제 16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이야기꾼 김연수의 자질과 노력이 묻어난다. 흩어진 10%의 퍼즐로 100%의 퍼즐을완성해낸다. 빈 틈을 김연수는 이야기꾼의 치밀한 상상력에 기대어 복원해낸다. 마치 심하게 훼손된 사체의 얼굴을 복원하는 전문가처럼 이상의 삶을 재구성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상의 데드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김연수가 아닐까 한다.

 

유랑인은 <꾿바이 이상>을 읽으면서 두가지를 생각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허구가 사실되기와 이미지 뒤에서 영원히 살기이다. 이러한 것은 '데드 마스크'와 '잃어버린 꽃' '새'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허구가 사실되기는 데드마스크 편에서 이상의 데드 마스크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기사 한 토막이 불확실한 존재를 확실한 존재로 탈바꿈 시키고 만다. 거짓이 사실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주 정교한 작업이 아니라 모두가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당위성과 전문가의 용인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문가의 견해라는 부분은 학자적 양심이 문제이긴 하지만 '새'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진실을 왜곡하는 힘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미지 뒤에서 영원히 살기는 김혜경과 이상의 투쟁에서 살필 수 있다. 이상의 죽음이 김혜경의 죽음인지 김해경이 창조한 오감도의 시인 이상의 죽음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죽음에 직면한 그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만약 김해경으로 죽었다면 평범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 자체로 끝인 죽음이 되지만  이상으로 죽은 것이라면 천재 시인으로 죽은 것이어서 존재가 소멸되더라도 다시 살아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상의 죽음은 김혜경이 만들어낸 이상의 가면을 쓰고 죽은 죽음인가 김혜경의 오롯한 죽음인가? 알 수 없다. 유랑인이 생각에는 인간 김해경이 아닌 이상으로 죽어 영원한 삶을 획득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글쟁이들이 꿈꾸는 로망을 김혜경이라고 바라지 않았겠는가?

 

사실 유랑인은 이미지 뒤에 숨은 자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어렵지 않게 청순가련한 이미지 혹은 단정한 이미지의 연기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 그렇다면 이 연기자는 분명 쌓은 이미지를 지켜서 거짓으로 만들어내 이미지의 삶을 살것인가 아니면 본성 그대로의 성격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미지만 잘 지키면 돈이 굴러들어오는데 쉽게 이미지를 버릴 수 없다. 이미지와 본성의 투쟁결과 이미지가 본성을 삼켜버린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김혜경은 김혜경과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지 않았을까? 여러분이라면 본성의 삶을 사시겠는가 이미지 뒤에 숨어서 영원한 삶을 사시겠는가?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기민한 언어감성을 가진 김혜경은 어떻게 결론 내렸을까?

 

여담으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서혁민에 관해서 이야기 - 사실 매우 중요한 열쇠를 지고 있는 인물이다- 해보자

 

  이상을연모하여 오감도 제 16호를 이상처럼 완벽하게 창조해낸다. 하지만 그것은 이상의 오감도 제 16호이지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3류일 뿐이다. 그는 필생의 역작을 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살아있다면 얼마전 읽었던 해이수의 <캥거루가 있는 사막> '환원기'편을 읽어봐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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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안녕하세요? - 글래디 골드 시리즈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4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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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에 바치는 오마주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사실 에거서 크리스티를 아는 것도 아니다. 바람에 들리는 풍문으로 에거서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만 알 뿐이다. 헌정되는 작품이니 에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았다. 어디 한 번 읽어보자

 

추리소설이니 탐정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젊은이들을 기대하셨다면 실망하실거다. 왜냐 이 탐정들은 기본 연령이 70대가 넘는다. 대표는 글래디인데 추리소설광이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 대략난감이다. 왜냐구 탐정의 어시스턴트의 능력이라고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혹들이다.이런 사람들이 글래디와 글레디에이터를 결성하고 심장마비로 꾸며진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아 이 추리소설 400페이지가 넘는데 300페이지가 수다다. 글래디와 그의 일당둘의 일상다반사와 수다로 이어진다. 심각한 추리게임을 생각하고 글을 읽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룰루랄라 읽을 책이 필요하다면 선택하시길 바란다.물론 이런 종류의 소설을 코지물이라고 한다. 소프트한 추리물이라는 이야기다. 그 옛날 기억하시는가 제시카의 추리극장 거기 나오는 아주머니도 룰루랄라 유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티비 드라마물이다. 바로 그런 류의 글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나는 좀 하드한 추리물을 히라시노 게이고 정도의 치밀한 구성의 글이 읽고 싶었다. 몰입이 필요했던 모양인데 글래디의 주체할 수 없는 수다를 만났을 때 그냥 덮어야하나 아니면 읽어야하나 생각했었는데 300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 겨우 사건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음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라는 글이 있었는데 이 책은 두 권 분량이었다. 이 책도 마지막 100여 페이지에 해결 실마리가 등장한다.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에서도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었다. 그다지 아닐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이다. 의외성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의외의 인물이 사건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는 식의 논리의 억지스러움을 <오늘도 안녕하세요?>에서 견뎌야 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뭐 어쩌겠는가? 기억하라 기억하라 이 소설은 코지물이다. 가볍게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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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 시대를 아파한 조선 선비의 청국 기행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
박제가 지음, 박정주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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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아파한 조선 선비의 청국 기행 북학의

 

요즘 시대극 중에 <이산>이라는 것이 있다. 정조 임금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 컷 중에 한 컷이 있었다. 대수와 이기사 단원들이 수원에 갔다가 쪼매난 사람한테 무지막지하게 맞는데 그의 몸짓은 이제껏 조선 서적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이었으니 그가 바로 후일 정조를 도와 <무예도보통지> 무예서를 편찬하게 되는 야뇌 백동수 되시겠다. 아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이 야뇌 백동수가 아니라 백동수랑 같이 다니던 사람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자막에 이렇게 나온다. 박제가라고 말이다. 서자로 태어나서 정조 시대 신진세력의 근거지가 된 규장각 검서관이되었다. 아참 밝혀두자 박지원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과 친구 먹었다. 그이가 쓴 중국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가 <북학의>다.  

 

시대를 아파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 낙후된 조선의 사정을 답답해 하면 선진문물이 가득한 청국을 여행하고 진보된 문명의 이기들을 보고 이러한 이기들이 보급되지 못한 조선이 답답해 <북학의>를 저술했다. 내편과 외편으로 된 2책 1권의 서지를 가지고 있다 서해문집본은 내편 외편 외에도 '진북학의'도 합본 되어 있는데 내편 외편의 요약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편은 중국에서 본 것들 그러나 조선에 없는 것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다. 수레와 벽돌 이야기가 그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실용성에 눈을 뜬 것이다. 명분과 실리에서 실리를 중요시한 서술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수레와 벽돌에 대한 이야기가 동일한 어조로 등장한다. 단순히 시기상으로 보면 박제가가 먼저 중국을 여행했고 , 박지원이 후에 중국을 여행했다. 스승이 제자보다 늦게 중국을 여행한 셈이다. 이 점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그늘에 박제가의 <북학의>가 묻히는 느낌이 들어 밝히고 간다. 이게 좀 과격하게 말하면 벽돌과 수레 성곽에 대한 자료를 박지원이 참고했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청출어람이라는 말로 덮어두고 가자 . 이 문제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외편은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많이 드러낸 부분이라 개인적 취향에 맞았다. 박제가의 눈으로 세상을 본 것 (내편)을 넘어서 뱍제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내편 외편 진북학의를 관통하는 것은 아마도 중국 즉 청국의 문물 - 선진화된 문물 -이다.

 

외편과 진북학의를 읽다가보면 중국에 대한 경외의 찬사들이 쏟아진다. 사실 중국을 배워야한다는 신념이 여러군데 보인다. 이러한 시각은 개화파의 시선과 겹친다. 급진적 개혁과 개화에 경도된 그들은 외국의 것만 받아들일 줄 알았지 그 것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조선의 청년이 서양의 옷을 입은셈이다. 모던보이들과 신여성들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그들의 모습은 그 당시의 조선과 조금은 불화한 모습으로 비친다. 이러한 의미에서 박제가도 시대와 불화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

 

박제가는 시대를 아파하기 보다는 시대와 불화했다고 봐야한다. 개인적 역량을 펼쳐보일 수 없는 신분제에 혁파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스스로 한계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찬사는 글자 그대로 읽었을 때는 외국의 문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진 딴스홀에서 춤추고 손님에게 호객하던 모던보이 밖에 되지 않는다. 심하게 오독하면 잘 만들어진 '모화론자'의 변을 읽게 된다. 이 세상의 문물들 중에서 중국 것이 최고야라고 읽힌다.  중국이라는 기호는 다시 한 번 선진문물이라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박제가가 중국 중국을 부릊짖던 것이 성립이된다. 아마도 박제가는 죽을 때에도 중국 중국을 배워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죽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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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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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다. 단지 '도서관'이라는 말에 꽂혔기 때문이다. 적극적 책읽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도서관에 대한 막연한 소망이 집약되기 시작했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히말라야에 도서관이 있다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히말라야 도서관>을 읽게 만들었다. 히말라야의 도서관은 낭만을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이 책은 존 우드라는 한 인간이 네팔을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에서 시작한다. MS에서 잘 나가던 존이 네팔의 학교에 도서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면서 하나의 작은 일이 점점 커지고 발전해가는 이야기다. 네팔을 넘어서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존이 직접 들려준다.

 

사람이 결심을 하기는 쉽다. 눈 깜빡 할 사이에도 한 번의 결심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루는 24시간 그 중에 8시간을 잔다고 생각하고 16시간을 결심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결심의 횟수는 미안하지만 난 계산하지 않겠다. 문제는 결심 그 다음이다. 결심 혹은 결정에 이어 나타나야 하는 것은 실행 혹은 행동이다. 존은 오래 고민했지만 결국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시작했다. 많은 행동가들이 지지를 받고 명예를 획득하는 것은 행동력 때문이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알고 지낸 지인이 태국으로 떠났다. 태국이 좋아서 봉사활동 겸 장기 체류 형식으로 간다고 했다. 태국으로 떠난 후 내게 한국어로 된 책을 보내줄 수 없겠느냐는 메일이 왔다. 마침 책관련 카페 활동을 하고 있었던 터라 카페에 공지글을 띄우긴 했다.  그러나 그 일은 그 단계에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여러나라의 자선파티와 기부문화였다. 어떤 일을 추진하고 기부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파티를 열고 기부를 유도하는 문화가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는 기부 문화가 아직 정착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대기업들이 지원을 하긴 하지만 그러한 지원이라는 것이 회사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광고용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책을 전단하는 것에서 시작했던 일이 도서관을 짓게 되고 다시 학교를 짓게 되는 거대한 사회 사업으로 확장한다. 확장되는만큼 많은 자금을 필요로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기부자를 찾고 기부금을 모으는 일들이 한 지역이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기에 이르렀다. 학교를 짓고 다시 소녀들을 지원한다. 소녀들은 미래의 어머니 어머니의 문맹률을 낮추어야 다음 세대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생각을 그저 가슴 속에만 두고 로망 혹은 판타지로 꺼내보게 되는 내 자신에 대해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직접 하지 못할량이면 뒤에서 조금이라도 후원을 하는 것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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