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을 날아서
프랜시스 하딩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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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소녀 모스카와 거위 사라센의 행적을 따라가는 동안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의 세상으로 빠져들게 된다. 책 읽기가 금지된 세상에서 아버지로부터 남몰래 글을 배웠던 모스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줄곧 매여 일을 하던 방앗간을 탈출한다. 가던 길에 사기꾼 클랜트를 만나 함께 맨들리온으로 향하던 중, 권력자 공작의 여동생인 레이디 타마린드와 마주치고 그녀의 첩자로 일하게 되면서 여러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클랜트를 믿지 못하던 모스카는 레이디 타마린드를 위해 일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얼떨결에 시체를 유기하던 클랜트의 일을 돕게 되면서 주변 상황에 휘둘리게 되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 용기를 내며 당당하게 일어선다. 그것은 죄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거짓 증언을 강요한 클랜트의 말을 따르지 않고 경찰 앞에서 용감하게 사실을 밝히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도저히 애꿎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울 수 없었던 사라센은 정의로움은 물론이고 거위 사라센을 끝까지 지켜내는 다정함의 소유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모스카는 출판업자 길드, 열쇠장이 길드, 뱃사공 길드의 세상을 종횡무진하면서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는다. 까닭없이 느끼던 레이디 타마린드에 대한 동경심은 권력을 향해 따라가던 느슨한 마음이었다. 진실을 깨달은 모스카는 조금씩 사건의 조각을 끼워맞추는 동안에 12세 소녀가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의 집합체를 모아놓은 것처럼 용기와 지혜를 발산하면서 숨겨진 사실을 밝혀낸다.

모스카가 사라센을 안고 쫓기듯 뛰어가는 표지의 모습은 이 소설의 성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노란 색깔의 꿈을 꾸는 듯한 배경과 사방을 에워싼 묘한 분위기는 모스카가 헤쳐나가는 판타지 세계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판타지의 세상에서 휴머니즘을 만나면 현실에 없는 세상의 생경함 속에서도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클랜트조차도 속사정을 알고 보면 잡히기 이전에 묘사되었던 것처럼 악인만은 아니었으니,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함께 길을 떠나는 동반자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걸 보면 둘은 이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 듯하다.
제목대로 깊은 밤을 훌쩍 날아오른 느낌을 받으며 판타지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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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5%로 가는 역사탐구교실 4 - 근대사, 사회 탐구 총서
이정범 외 지음, 사회탐구총서 편찬위원회 엮음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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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5% 역사 교실 중 4편인 근대사에서는 열강으로부터 위협받던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암울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첫 장을 펼치면 흥선대원군 시대의 왕권 강화 정책을 비롯해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순으로 역사 풀이가 이어진다. 

그림과 사진이 풍부하고 주요 타겟이 초등 고학년이어서인지 그림도 꽤 많이 삽입되어 있다. 소단원 도입부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연표를 비교하며 동시대의 동서양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단락이 끝나면 '씨줄날줄 세계사'란 코너가 있어 미국의 발전이나 러시아의 변화와 같은 외부세계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쉬는 시간 교양 충전'은 일종의 팁처럼 상식이 될만한 이야기거리들을 전해준다.

을미사변을 다룬 부분을 읽어보니, 아이들이 읽는 책이란 것을 고려해서인지 역사적으로 전해오는 설들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다. 시해 순간에 대해 여러 주장들이 전해져 오지만 어떤 것이 정확한지 알 수 없는 입장에서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독립협회와 맞선 황국협회라는 어용단체의 대결을 다룰 때에는 고종 황제와 보수파 대신들이 독립협회를 탄압한 이유를 상세히 서술하여,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를 상층부에서는 그 누구도 중요시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중요한 부분이다. 

어른의 입장에서 읽을 때에는 전반적으로 압축된 역사 서술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이들이 국사의 전반적 흐름을 파악할 때는 이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중고교에 진학하기 이전에 여러 번 탐독하고 가면 우리 역사에 대한 흐름이 탄탄하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

상위 5%의 역사 시리즈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근현대사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국사를 배울 때에 영 부실하기만 했던 현대사 부분과 진도를 따라잡느라 빠르게 나가기 일쑤였던 근대사 부분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미진했던 점을 보충학습할 수 있어 좋다. 이 책 다음으로는 독립운동사와 현대사의 순서로 읽게 되는데, 특별히 독립운동사를 따로 편찬한 점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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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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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그림과 17세기 문명을 연관시켜 서술한 작품이다. 처음엔 베르메르의 그림에 숨겨진 부분을 파헤친 작품이 아닐까 했는데, 그런 내용도 포함하긴 하나 근본적으로는 그림에서 모티브만 잡아 당시 동서양간의 교류로 전파된 문명을 역사학적으로 파헤친 글이다. 저자인 티머시 브룩은 중국학쪽에 조예가 깊어 관련 책을 많이 편찬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과거의 연구들이 그림 속에서 발견한 소도구로 문명 교류의 역사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책의 앞부분에는 베르메르와 그 외 화가의 그림이 컬러판으로 실려 있고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장교와 웃는 소녀'에서는 모자가,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에서는 중국 접시가, '지리학자'에서는 지도가, '저울을 든 여인'에서는 은화에 집중하면서 해당 물품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국 화원의 풍경이 그려진 접시에서는 담뱃대를 물고 있는 신선으로부터 착안하여 서양에서 중국으로 담배가 전파된 과정과 이후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 나타난 물건들로 17세기의 사회상까지 파헤치는 과정이 흥미롭다. 다소 장황한 서술이 지루한 면도 있으나, 그림으로 시대상을 엿보는 시도는 참신했다.

덧붙이자면, 그림에 관심있는 사람들보다는 당시 역사적 배경에 흥미와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이 읽기에 좋은 책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그림은 역사를 읽는 도구로서 활용되었고, 미술 본래의 작품 감상에서 벗어나 또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의 내실있는 사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17세기 역사에 배경 지식이 있다면, 책의 내용을 더욱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으로 보는 역사의 한계상 지엽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역사를 보는 안목 없이는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런 점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아니지만, 반 데르 부르흐의 '카드놀이'란 작품에서 금귀걸이를 한 흑인소년이 하인으로 시중을 드는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고 아프리카인의 고단한 운명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화적 산물에는 당시의 사회상, 생활상이 연결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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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단숨에 읽는 시리즈
한잉신.뤼팡 지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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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란 낱말에서 떠오르는 것은 낭만적인 색채가 깃든 바다의 무법자 정도였고, 여러 만화나 소설을 통해 은근한 호감까지 지니고 있던 터였다. 소설 속에서 으례 영웅의 모습으로 등장한 해적이 보물을 찾는 흥미진진함과 더불어 평범한 생활을 거부하며 용맹함을 뽐내는 이미지를 풍겨온 까닭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해적은 궁핍한 삶을 엮어나가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목숨을 건 사투였으며 명백한 불법행위였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이 책에선 여러 명의 해적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해 소상히 설명되어 있는 걸 보면, 꽤나 골치거리였을 해적들임에도 불구하고 기록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었나보다.
해적 중에는 헨리 모건과 같이 뛰어난 머리로 많은 보물을 손에 넣은 전략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모건은 대중적 인기를 누려 기사의 작위를 받기까지 했으며, 자메이카 총독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사회와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에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던 듯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빴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최후를 맞는다.
많은 해적들은 생계가 어려웠던 까닭에 해적이 되었지만 , 귀족들의 오만함을 꺾고 모험을 즐기기 위해서 해적이 된 바르톨로뮤 로버츠와 같은 사람도 있다. 연승을 거두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그도 제비호와의 전투 중 사망하고, 그가 죽자 따르던 해적들은 대거 처형되거나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앤 보니와 메리 리드라는 여성해적의 삶과, '자유의 나라'를 꿈꾸었던 영국 해적들의 집단주의와 평등주의에 입각한 생활이었다. 더 나은 세계를 꿈꾸며 자유를 누리던 해적들도 한순간 존재했었다는 것에서 유토피아를 갈망하던 해적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일본의 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왜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해적이라고 하면 먼 유럽을 먼저 떠올렸었다. 그러나,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에도 해적의 역사는 존재한다. 정성공과 정일수와 같은 해적들이 있었고, 그들중 일부는 조정의 군대로 진출하거나 관리가 되기도 했다.
가까운 90년대까지도 해적 감시기구가 발족될 정도로 해적들은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이제 더이상 해적에게 낭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책의 뒤표지에 나와있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해적은 역사가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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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나의 10가지 약속
가와구치 하레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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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강아지 사진에도 끌렸지만,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다. 으례 그렇듯이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애틋하고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 줄거리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촘촘한 구성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단점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어버리는 매력적인 요소는 단연 표지와 속지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는 귀여운 개의 사진과, 개와 나의 10가지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 때문이 아닌가 싶다. 

10가지 약속을 하나하나 음미해 보니, 그간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너무나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했었다는 후회감이 든다. 나는 은연중에 사람은 강자이자 지배자, 동물은 약자이면서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하는 하인, 또는 잠깐 왔다 가는 손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식구로 맞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면 둘은 한 집안을 구성하는 동일한 구성원이므로, 사람에게 맞추기만을 바란다면 애완동물을 기르기 전에 조금더 고려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동물이 그런 마음을 따라주지 않을 때마다 갈등이 표출될 것이고, 상태가 지속되면 상처를 입는 것은 동물쪽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키우던 잉꼬새를 하늘로 보내고 뒤늦은 반성을 했다. 왜 깨달음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 이후에 찾아와 후회만 안겨놓는지 모르겠다. 집안을 어지른다는 이유로 못하게 했던 여러 행동들, 나에게 가하는 공격을 사람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미워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당신에게는 학교도 있고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신밖에 없답니다.
나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말을 안 들을 때는 이유가 있답니다.--


책 속의 아카리 또한 아끼는 삭스를 한때 멀리 하고 무관심했던 적이 있었다. 엄마의 유품인 옷에 얼룩을 묻혀 놓았다는 것이 주이유였다. 이후 바짝 말라가던 삭스는 한번 줬던 마음을 쉽게 돌리지 못하는 것에서 사람보다 더 충직하고 곧은 성품을 보여준다. 
애완동물을 키울 때에는 평생을 같이 할 친구로 여겨야 한다. 이 책을 간직해두고 틈틈이 보면서, 이 다음에 다시 애완동물을 키우게 될 때에는 그 점을 잊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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