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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베르메르의 그림과 17세기 문명을 연관시켜 서술한 작품이다. 처음엔 베르메르의 그림에 숨겨진 부분을 파헤친 작품이 아닐까 했는데, 그런 내용도 포함하긴 하나 근본적으로는 그림에서 모티브만 잡아 당시 동서양간의 교류로 전파된 문명을 역사학적으로 파헤친 글이다. 저자인 티머시 브룩은 중국학쪽에 조예가 깊어 관련 책을 많이 편찬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과거의 연구들이 그림 속에서 발견한 소도구로 문명 교류의 역사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책의 앞부분에는 베르메르와 그 외 화가의 그림이 컬러판으로 실려 있고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장교와 웃는 소녀'에서는 모자가,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에서는 중국 접시가, '지리학자'에서는 지도가, '저울을 든 여인'에서는 은화에 집중하면서 해당 물품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국 화원의 풍경이 그려진 접시에서는 담뱃대를 물고 있는 신선으로부터 착안하여 서양에서 중국으로 담배가 전파된 과정과 이후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 나타난 물건들로 17세기의 사회상까지 파헤치는 과정이 흥미롭다. 다소 장황한 서술이 지루한 면도 있으나, 그림으로 시대상을 엿보는 시도는 참신했다.
덧붙이자면, 그림에 관심있는 사람들보다는 당시 역사적 배경에 흥미와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이 읽기에 좋은 책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그림은 역사를 읽는 도구로서 활용되었고, 미술 본래의 작품 감상에서 벗어나 또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의 내실있는 사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17세기 역사에 배경 지식이 있다면, 책의 내용을 더욱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으로 보는 역사의 한계상 지엽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역사를 보는 안목 없이는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런 점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아니지만, 반 데르 부르흐의 '카드놀이'란 작품에서 금귀걸이를 한 흑인소년이 하인으로 시중을 드는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고 아프리카인의 고단한 운명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화적 산물에는 당시의 사회상, 생활상이 연결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