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도널드 맥카이그 지음, 박아람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봤을 때의 감동은 몇 년간이나 지속되었다. 만든지 오래 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만큼 생생하던 배우들... 지금도 가끔씩 기억나는 몇몇 장면을 다시 돌려 보고 싶어지는 영화다. 유난히 기억에 남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의 마지막 장면 이후엔 스칼렛과 레트 버틀러가 만나 뒤늦은 사랑을 이어갈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서 어설픈 속편이 나오는 건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혹시나 원작의 이미지까지 깎아먹진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독자의 염려를 말끔히 씻어준다. '야곱의 사다리'로 실력을 인정받은 도널드 매케이그의 작품이고, 이미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여 걱정따위는 접어두고 읽을 수 있었다. 스칼렛에 초점이 맞춰졌던 영화와는 달리 레트 버틀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점도 색다르게 보였다. 두툼한 책을 한장한장 읽어나갈 때마다 영화의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했고,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이 채워지면서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배경으로 떠올라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뿐만 아니라, 남북전쟁 당시의 미국 상황을 재연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분노를 역사책을 보는 것보다 숨쉬듯이 가깝게 느낄 수도 있었다.

레트 버틀러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지나친 솔직함으로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패배할 거라고 말하여 사람들로부터 미운 털이 박히는 주변인의 성향이 강하다. 그런가 하면 사생아의 아버지란 의심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감싸준 신사이자 의리의 사나이로 등장하여 영화에서 그려지던 것보다 훨씬 속깊은 인물이란 걸 알 수 있다.

레트의 여동생인 로즈메리 버틀러라는 인물이 구체적으로 부각된 점도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이다. 로즈메리는 아버지와 의절관계이다시피 한 오빠를 존경하고 따르며, 가족과 연결하는 끈과 같은 역할을 한다. 훗날 멜라니와 교분을 쌓으면서 주고 받는 장문의 편지들에서 멜라니와 애슐리의 심리상태와 두 번의 결혼 후 홀로 꿋꿋이 설 만큼 강해진 로즈메리의 변화를 상세히 느낄 수 있다.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지 않아 원작의 분위기는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이 책에서 인종 차별의 시각은 찾아볼 수 없다. 되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시체마저 참흑하게 훼손되고 마는 투니스라는 인물을 통해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역으로 고발하고 있다. 광기가 서렸다고 표현될 만큼 흑인에게 집단 분풀이를 하던 백인들과 KKK단의 등장은 역사의 비뚤어진 부분을 그대로 보여주며 미국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만 같다. 때로는 한 편의 문학작품의 힘이 법조항 하나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더 많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부분은 이 소설의 긍정적인 면이라 볼 수 있다.

오래 전 본 영화에서 레트 버틀러의 이미지를 새롭게 쌓아올리며 끊어진 필름을 연결토록 해준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남북전쟁을 전후하여 급변하는 미국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다양한 인간 군상, 인물의 심리상태를 비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팬이라면 아마도 더욱 반가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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