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룻밤에 읽는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최희성 편역 / 아이템하우스 / 2026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고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호메로스 원작의 [하룻밤에 읽는 오디세이아]를 덮고 나면, 인류가 왜 그토록 오랜 세월 이 이야기에 매혹되어 왔는지 그 원초적인 힘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트로이 전쟁 이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한 오디세우스의 10년 여정을 담은 이 책은, 신들의 분노와 괴물들의 위협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투지를 장엄하게 그려낸다. 책의 부제인 '신에 맞서다'가 보여주듯, 이는 맹목적인 복종이 아닌 인간 의지에 관한 거대한 찬가라고 본다.
흥미로웠던 지점은 등장인물들의 이름 앞에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독특한 수식어들이었다. 텍스트는 주인공을 칭할 때 단순히 이름만 부르지 않고, '지혜로운 오디세우스', '지략이 뛰어난 오디세우스', '신중한 페넬로페와 같이 그들의 본질을 규정하는 관형어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반복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수식어들은 일종의 친절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인물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독자는 그가 수식어에 걸맞게 어떤 현명한 행동을 취하고 어떤 논리적인 언어로 상황을 돌파해 나갈지 자연스럽게 예상하고 기대하게 된다. 이는 캐릭터에 묵직한 일관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독자와 작가가 인물에 대한 깊은 신뢰를 공유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문학적 장치라 생각한다.
또 하나 감탄했던 부분은 원작이 가진 서사시로서의 리듬감을 훌륭하게 살려냈다는 점이다. 호메로스의 원작은 애초에 눈으로 묵독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들이 군중 앞에서 악기를 뜯으며 낭송하던 구전 문학이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마치 누군가 내 옆에서 옛날이야기를 구연해 주듯 리듬감 있고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텍스트를 다듬어냈다. 파도치는 바다의 묘사나 신들의 대화가 펼쳐질 때면, 글자 너머로 시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딱딱하고 건조한 번역투에서 벗어나, 원작 본연의 음악성과 서사시의 풍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낸 것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탁월한 성취다.
이타카를 향해 필사적으로 노를 젓는 오디세우스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치열했던 우리네 삶의 여정이 겹쳐 보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계에 도전하던 긴 마라톤의 트랙처럼, 혹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직장 생활의 거센 풍랑을 지나온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일에 대한 뾰족한 집착을 조금씩 내려놓고 삶의 여유와 안식을 찾아가는 중년의 시간은, 오디세우스가 숱한 유혹과 위기를 물리치고 마침내 자신의 진짜 자리(고향)로 귀환하여 평안을 얻으려는 여정과 묘한 공통점을 느끼게 한다.
고전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부수는 역동적인 모험기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의지와 지혜를 음미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누군가 곁에서 들려주는 듯한 장엄한 서사시에 몸을 맡긴 채, 우리 각자의 이타카는 어디인지 고요히 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