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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읽는 심리학 - 그리스부터 북유럽 신화까지
리스 그린.줄리엔 샤만버크 지음, 서경의 옮김 / 유아이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가장 오래된 고전이 무엇일까? 공자의 논어나 남자들이 좋아하는 손자병법 등이 떠오르는데 만화로 되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도 빠질 수 없으리라. 오래된 이야기인 신화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 등 내가 모르는 신화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신화들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지어낸 점도 있지만 사실에 배경을 두고 있으며 교훈을 남겨주기도 한다. 물론 꿈보다 해몽이라 했던가. 후세에 와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느낌도 다를 것이다.
우리가 신화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게 어머니와 아들이 결혼을 한다거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이다. 유교 문화가 자리 잡은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는 이야기인데 신이기 때문에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고대 이집트나 가까이는 고려 시대에도 왕족들 간에 근친결혼을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들은 왕족이므로 인간과 다른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유교 가치관의 파괴는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배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마치 나라가 망하는 징조라거나 요즘 세대들 큰일이라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이러한 갈등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아주 오래된 어쩌면 가장 오래되었을지도 모를 신화를 봐도 이러한 부모와 자식 간의 혹은 형제간의 갈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보통 카인이 최초로 사람을 죽인 사람 혹은 형제를 죽인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그 배경에는 편애하는 부모가 있었다. 사람은 아니 동물은 본디 이기적인 존재라 생존을 위해 서로 협업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자식이나 부모나 보이지 않는 계약에 의해 맺어진 관계이고 서로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를 반복하는 사이가 아닐까 싶다. 물론 핏줄이라는 매개체에 의해 처음부터 관계가 맺어져 있었지만 말이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기에 결국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내 인생에 책임을 질 수 없으며 부모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잘하든 못하든 짧든 길든 우리는 인생을 한번 살아가는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자식들이 내가 못한 일을 대신 이루어달라는 욕심으로 일류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어렸을 적부터 꿈을 간직하고 살기를 바라거나 강요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니 너라도 잘 되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한창 성장기에 있는 자식들을 키우는 부모들도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나이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즐길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이미 늦었다고 쉽게 포기하고 자식들이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것 역시 부모의 잘못된 욕심이라 본다. 자식들의 인생에 대해 평생 그리고 완벽히 책임질 수 없기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수천 년 전에 쓰여진 신화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유독 신화나 우리의 옛이야기를 보면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장례식을 치를 때에도 입관을 마치고 나갈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한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뭔가 미련이 남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해서 미래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도 될 것이고 죽은 자에 대해 미련을 두지 말라는 뜻도 될 것이다. 불의의 사고가 되었든 질병이 되었든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나의 곁을 떠나가는 일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간 이를 두고 지나치게 미련을 둔다면 살아있는 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지나간 과거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여 그때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며 땅을 치고 후회해본들 돌아오는 것은 화병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후회와 미련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화에 나오는 신들도 인간의 그런 속성을 잘 알고 교모하게 이용하였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사랑을 하지 않고 살아본 사람이 있을까?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 미혼인 사람들 중에서 제대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고 토로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나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너무 좁은 범위로 보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단순히 이성과의 사랑을 마치 사랑의 전부 인양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혹은 좋아하는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 내지는 좋아하는 물건에 대한 사랑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사랑이 때로는 집착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또는 사랑에 대해 오인하여 그 결말이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묘한 삼각관계라든가 눈먼 사랑도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다. 사랑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랑이 집착으로 바뀔 때는 어떠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고 또한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를 속이려 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심리학이란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탐구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서부터 궁금해하는 삶의 목적에 대해 해답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후회 없는 삶이 되는지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신화를 읽고 새로운 해석을 한다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과 우정, 배신과 복수는 가장 흥미로운 소재일 것인데 먼 옛날 올림푸스의 신들이 인간 세계를 만들고 지배하던 때부터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들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해석을 하고 교훈을 얻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