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경제학 - 가짜뉴스 현상에서 미디어 플랫폼과 디지털 퍼블리싱까지 뉴스 비즈니스에 관한 모든 것
노혜령 지음 / 워크라이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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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종이신문으로 대변되는 레거시 미디어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때가 있었다. TV에 나왔다는 말 한마디면 그것은 사실이라는 인증을 받게 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던 시기였다. 그 어떤 거짓말도 TV와 신문에만 나오면 그것은 진실로 믿어졌고, 반대로 레거시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리 제대로 된 정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고, 믿지 않았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해 그렇게 묻혀진 진실은 너무나 많다. 그 방송, 언론의 힘을 알기에 권력자들은 권력을 잡게 되면 가장 먼저 방송을 장악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방송을 쥐락펴락했었다. 땡전뉴스, 땡박뉴스라는 말이 나온 것과 MB시절 철저하게 우익성향의 종편을 만들고,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친정권의 인사를 낙하산으로 꽂아 넣은 것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레거시 미디어가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편향되고 의도적인 기사를 쏟아내었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졌던 레거시 미디어는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로 점점 그 위세가 약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신문을 믿지 않고, 뉴스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기자를 기레기라며 비웃고, 의도적인 기사를 반박하고 정정하는 내용을 SNS 등으로 서로 공유하며 레거시 미디어의 가짜뉴스를 견제한다. 하지만 1인 미디어 플랫폼의 발달과 디지털의 발달이 이런 긍정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짜 유튜버들이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단체카톡방을 통해 확인되지도 않은 찌라시가 무분별하게 퍼지게 되었다. 지난 정권 때는 무려 국정원과 군사이버사령부, 경찰 같은 국가 권력 기관이 보수정권을 위해 댓글공작을 했다는게 밝혀졌다. 작년 조국사태 때는 무려 100만건이 넘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당시 기레기들이 써내려간 기사들은 모두 사실이 아님이 재판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는 물론 레거시 미디어까지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퍼트리는 혼란한 현실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까? 보통은 저널리즘의 윤리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하지만 이 책은 뉴스를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구글,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레거시 미디어의 매출이 줄고, 수익이 악화되면서 기사 품질도 나빠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자들은 소위 클릭장사를 위해 자극적인 타이틀로 확인되지도 않은 기사를 쓰고, 속보경쟁에 빠지고, 광고성 기사도 거리낌없이 싣는 것이다.


과거에는 책과 지면 신문이 유일한 대중매체였다. 그러던 것이 영화, 라디오, TV, 인터넷까지 지속적으로 기술 발전을 해오면서 오늘날과 같은 매스미디어의 모습으로 다양화되었다. 하지만 인쇄지면이건 인터넷이건 매스미디어의 형태는 크게 바뀌었지만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은 과거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현재의 저널리즘의 원형은 180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선보인 1센트 짜리 값싼 대중지이다. 그 영미식 저널리즘의 모델이 지금까지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하고 1인 방송이 대중화되면서 가짜뉴스가 많아졌다고 했지만 사실 가짜뉴스, 편향된 기사, 광고와 기사가 혼합된 네이티브 광고, 언론 매체의 난림 등의 문제는 디지털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이 자리 잡기 이전까지 뉴스 산업에 전반적으로 횡행하던 모습이었다. 디지털이 기존에 없던 언론의 문제점을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판이 커진만큼 그림자도 커진 것에 불과하단 뜻이다.


디지털이 없던 시대에는 당시의 시대상에 맞는 형태로 오늘날과 같은 문제점들이 발생하였다. 인쇄기술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인쇄는 거대 자본이 드는 대형 비즈니스였다고 한다. 활자와 판을 만드는 금속값도 비쌌고, 인쇄공의 품삯도 적지 않았다. 인쇄기와 활자판 제작에 필요한 설비에 큰 돈이 들었기 때문에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기간은 자연히 오래 걸렸다. 설비에 투자한 선비용은 매몰비용이다. 책이 팔리건 안 팔리건 회수가 안된다. 이것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찍어서 많이 파는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제작 단가는 점감되고 판매하는 만큼 매몰비용의 회수율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초의 매스미디어였던 인쇄 출판은 그 태생부터 대규모 경제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었다. 현재 지면 신문이 구독하지도 않는 신문을 마구 찍어내서 무료로 배포하는 것도 발행부수를 조작해서 광고가 붙게 하기 위함으로 똑같지는 않지만 인쇄물을 많이 찍어낼수록 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겠다.


우리는 미디어의 공공성에 대해 말하지만 최초의 인쇄술로 탄생한 대량 출판 서적은 공공성보다는 경제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책을 많이 찍어서 많이 팔아야 매몰비용을 회수할 수 있었고 여기에는 공공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애초에 공공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공공성은 역사나 국가, 사회에 따라, 심지어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가 미디어는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공공성이란 경계는 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디어의 공공성이란 처음부터 공공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 말은 작금의 레거시 미디어가 보이는 상업적인 형태가 미디어의 탄생에서부터 계속 이어져온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는 포탈 플렛폼이나 유튜브가 언론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디어 플랫폼과 유튜브가 강력하긴 해도 전통 미디어의 지배적 위치를 흔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파편화된 콘텐츠는 검색비용을 높이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란다. 기존 저널리즘 제도에 대한 불신은 과점 언론사를 믿지 못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그 결과 개인이 디지털 플랫폼에서 선호하는 분야와 이해관계에 따라 게이트키핑하여 뉴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즉, 조중동 같은 하나의 과점 언론사에서 정해놓은 틀에 따라 그 내용만 보는 것이 아니라 포털에서 내 입맛에 맞는 뉴스를 찾아서 골라골라 보는 것으로 콘텐츠가 파편화되었지만 스스로 많은 뉴스를 검색하고 각 기사간의 맥락을 이해하고, 행간을 살피고, 인과관계를 조사해야 하는 불편함과 비용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 그런 기사의 행간을 모두 정리해서 요약본을 알려주는 미디어가 넘쳐나고 있어서 굳이 내가 힘들게 파편화된 기사를 일일이 검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가령 보수 쪽에서는 신의한수나 홍카콜라 같은 방송, 진보방속쪽에서는 김어준, 이동형, 김용민 등의 방송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 경제 등의 현안을 그쪽 전문가를 불러서 심층적으로 살펴보고, 파편화된 콘텐츠를 모아서 이면에 숨어있는 행간을 알려준다. 물론 유튜브는 현행법상 '방송'이 아니어서 법적 제재를 받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신랄하고, 깊이있는 의혹제기를 할 수 있고, 이런 행태는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에겐 절대적인 믿음과 지지를 가지게 한다. 그래서 이런 스피커 역할을 하는 유튜버들은 구독자도 수십만이나 되고, 엄청난 팬덤을 몰고 다니고, 후원 수익도 수억이나 된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력은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에 맞먹거나 이미 뛰어넘고 있어서 콘텐츠의 검색비용이 높다는 단점 때문에 유튜브가 전통 미디어의 역할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란 저자의 의견에는 전혀 동의를 못할 것 같다.


물론 이런 유튜브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디어 문화가 가짜뉴스의 원산지이고, 공격적이고 국론을 양분하여 진영싸움을 하게 하는 원흉이긴 하지만 저자가 말한 것처럼 올바른 저널리즘의 측면이 아니라 순전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앞으로 유튜브를 중심으로 하는 미디어 언론진영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고, 그 영향력도 더욱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더욱 많아질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인쇄물에서 라디오로 다시 TV를 거쳐 인터넷으로 옮겨간 미디어 형태는 바로 가짜뉴스의 생산지인 유튜브와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현재로서의 종착역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튜브로 사람과 자본이 몰리는 것은 그곳이 돈이 되기 때문이고 말이다. 솔직히 기본의 전통 미디어들이 온갖 가짜뉴스와 편파적이고 편향된 뉴스를 생산하고 있는데 유튜브랑 다를게 있긴 한걸까? 기존의 미디어가 조금이라도 나았다면 기자들이 기레기란 소릴 듣지도 않았을 것이고, 애초에 이런 유튜브 미디어 진영이 활성화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존의 미디어 진영이 그렇게나 비판하는 유튜브 진영은 전통의 미디어 그 자신들이 업어키운 것이나 다름없다. 기존 미디어가 유튜브를 비판하는 것도 자신들의 광고와 구독자를 뺏어가는 것에 대한 불만일 뿐이라 이 역시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기존 언론이 기레기 소리를 듣는 것도, 가짜뉴스를 찍어내는 유튜브가 활성화된 것도, 기존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대립도 이 모든 것이 경제적인 이유인 것이다. 모든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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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 조선의 왕들, 주역으로 앞날을 경계하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13
박영규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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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운명을 예측하는 학문이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주역과 사주명리학이다. 가끔 이 두 가지를 혼돈해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주역의 원리는 2진법에서 출발한 하늘과 땅, 물과 불, 바람과 우레(천둥), 산과 연못 등 자연현상을 상징하는 여덟 가지의 기호를 중첩시켜 64가지의 괘를 만들고, 그 괘 각각에 의미를 붙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판단하고, 예측하는 것이다. 주역은 현재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사실상 일반에게는 돗자리 깔고 점괘를 보는 점장이 정도나 시대착오적인 미신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왕조시대 때는 이 주역이 제왕학의 교과서였다고 한다. 중국의 황제들은 국가 경영에 이 주역의 원리를 활용하였고, 조선의 왕과 선비들도 주역을 탐독했다고 한다. 특히 환란을 당했을 때는 더욱 주역의 힘을 많이 빌린 것 같다. 아마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주역에게 지혜를 얻으려 하는 행동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점장이들의 점괘처럼 치부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역의 괘 모양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는데 그 원리만 파악하면 쉽게 깨우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원리를 아는 것보다 그것을 보고 괘 안에 담긴 메세지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때부터는 상상력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확정적이지 않고, 생각하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는 점 때문에 반은 수학 공부이고, 나머지 반은 인문학 공부라고 한다. 말하자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식인데 결국 주역을 해석하는데는 임금이나 선비 개인의 사상과 가치관이 해석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가령 지금으로 치면 주역의 괘를 진보성향인 사람이 보면 진보적으로, 보수인 사람이 보면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식이 아닐까 싶다. 즉, 백성을 위하고, 좋은 정책을 많이 펼친 임금은 아마 주역이 없었어도 좋은 정책을 펼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주역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1000여건이나 담겨있다고 한다. 정조, 영조, 숙종, 세조 등 조선의 모든 군왕은 주역을 통해 신하들과 소통하고 민생을 돌봤다고 한다. 정조는 규장각 설치, 인사문제, 영농문제, 상업개혁 등 국정 운영 저난에 주역을 활용했고, 이순신 장군은 주역을 활용한 전략전술을 구사하여 왜구를 물리쳤다고 한다. 책에는 정조, 영조, 세조, 숙종, 세종, 성종, 광해군, 연산군, 이순신 등 16명에 대해 주역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장군이 주역 점을 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고 한다. 최고의 전술가이자 지략가인 이순신 장군이 주역으로 점을 쳤다는 것은 굉장히 생소하고 이미지와 잘 맞지 않는다. 컴퓨터 두뇌로 전장을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전술을 세웠을 것 같은데 주역으로 점을 쳤다니. 어느 날은 하루에만 세 가지 사항에 대한 점괘를 뽑은 날도 있다고 한다. 비가 내릴 것인가에 대한 점을 쳤는데 점괘대로 다음날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자 자신의 점괘가 절묘하다며 스스로 감탄했다고 한다. 좀 인간적인 면이 느껴져서 귀여우시다.


이외에도 점을 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길조의 점괘가 나왔을 때는 아내의 병이 낫거나 곽재우 등과의 수륙 연합 작전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왜국이 물러가거나, 풍신수길이 죽는 등의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이순신이 백의종군 할 때 원균에 대한 점을 치는데 흉괘가 나오자 원균이 대패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의 점괘는 의외로 꽤나 잘 맞는 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게 될 운명에 대한 점을 봤다는 기록은 없다는데 저자는 영웅도 자신의 최후를 내다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조차 알고도 글을 적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종대왕은 공부의 신, 공신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어 일찌감치 문리를 터득했고, 그래서 어전회의나 경연에서 신하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간의대, 측우기 등의 과학 기기들을 발명할 수 있었던 것도 독서 이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과, 이과 통합 올라운드 수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학문적 소양이 뛰어나다보니 당연히 주역에도 능통했던 모양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주역은 수학과 인문학에 많은 영향을 받는데 문과, 이과 통합 공신인 세종대왕이 주역에 능통한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종의 어릴 시절 세종의 동생인 성녕대군이 병에 걸렸을 때 세종이 주역의 점괘를 정확하게 풀이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왕조에서 두 명의 폭군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광해군의 경우는 광해군일기에 주역을 따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상황에 맞게 주역을 인용하며 신하들과 소통하고 정치를 살피는데반해 연산군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연산군일기에도 주역에 대한 에피소드가 수십 건 등장하지만 연산군은 단 한번도 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 아마 연산군은 주역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광해군은 국정에 대한 의제를 놓고 신하들과 자유토론이 가능했지만 연산군은 그런 식견이 없었던 것이다.


책을 처음 시작할 땐 주역은 해석의 학문이라고 하길래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다가 그 점괘를 잘못읽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점괘를 읽을 수 있는 식견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생각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즉, 주역을 읽고 분석할 정도의 교육수준과 식견이 되어야지 비로서 국정을 논하고 전장에서 필승의 전략을 짤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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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의 일본어 명문장
김연진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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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일본어를 배우게 되면 교재에 나오는 모습으로 글자를 쓰고 익히게 되는데 좀처럼 예쁘게 쓰기가 어렵다. 히라가나는 생김이 마치 도형 같아서 처음엔 쓴다기보단 거의 그리듯이 글자를 적게 되는데 따라서 글을 쓰는 것이 쉽지가 않다. 교재마다 글씨체가 다르기도 하고, 히라가나를 알려주는 사람에 따라서도 전부 글씨가 다르다보니 처음에는 글을 쓰기가 매우 까다롭다. 마치 글을 쓰는데 기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일어를 공부한 사람 중엔 교재에 나오는 인쇄체를 따라서 쓰게 되는데 이의 경우 글씨체가 굉장히 이상한 케이스도 꽤 많이 있다.


일본어 공부를 하는 사람은 예쁜 글씨체에 대한 바람이 있는데 예쁘게 쓰기가 어려운게 일본어이다. 한글의 경우는 손글씨 연습교재가 시중에 꽤 많이 나와있지만 일본어는 그런 것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이 책은 일본어의 명문장을 손글씨로 연습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예쁜 손글씨도 연습하면서 문장공부도 할 수 있는 1석2조의 일본어 손글씨 라이팅북이다.


하지만 일본어는 히라가나/가타카나와 함께 2000자 가까이 되는 상용한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책에 나오는 손글씨 예시만으로는 그 많은 한자를 커버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카타카나조차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이 책은 '일본어 라이팅북'이라기보다는 '히라가나 라이팅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일본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자를 쓰는 법은 이 책으로 전부 배우기 힘들지만 책에 소개된 한자를 익혀서 서로 적당히 조합하고 응용해서 쓰면 될 것 같다.


책은 총 4가지 테마로 되어 있는데 명대사, 드라마, 애니, 영화 속 명대사를 모아놓은 '우리가 좋아하는 꽃보다 명문장', 용기, 희망, 도전, 위로의 글을 담은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위로와 힘이 되는 명문장', 고백, 사랑, 연인, 우정의 글귀가 가득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사랑의 명문장', 계절, 하이쿠, 백인일수, 세로쓰기를 배울 수 있는 '여기는 리틀 포레스트 힐링의 명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문장과 그 한국어 해석을 적어놓았고 아래에는 그 문장을 따라서 쓸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각 문장에는 그 문장 속에 나온 단어를 따로 정리하여 공부할 수 있게 해놓았다. 문장 자체에는 한자의 후리가나를 써놓지 않고 아래에 따로 정리해두었다. 처음에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하여 점점 장문으로 글은 길어지기 때문에 조금씩 글쓰기 연습의 난이도가 높아진다. 각 테마의 마지막에는 특히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써서 보관하는 '나만의 명문장 간직하기' 항목이 있어서 정리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아쉬운 점은 그 문장의 출처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속 명대사는 그 출처까지 써놓았으면 좋았을텐데 대사만 나와 있어서 뭔가 부족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사랑에 대한 글들도 그 글이 일본의 노래 가사인지, 그저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을 저자가 뇌피셜로 일본어로 번역을 해놓은 건지 알 수 없어서 역시 맥락없고, 어설픈 느낌이 든다.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볼 곳은 테마4의 하이쿠 파트이다. 하이쿠는 상대적으로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이라 따라서 읽어도 보고, 시적인 표현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확인할 수도 있어서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의 번역을 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가장 유익했고, 세로 쓰기를 해볼수 있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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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함께 빵을 에프 그래픽 컬렉션
톰 골드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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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와 책을 읽는 독자, 문학작품, 책의 장르, 책 그 자체 등 책과 책의 주체 모두에 대한 패러디물이다. 패러디라는 것이 풍자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렇다고 책이 무언가를 강하게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패러디 영화처럼 책과 관련된 여러 주제들을 한번씩 비틀어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바탕 웃음을 준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문학계와 출판계의 잘못된 관행 등을 한번씩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문학작품 들은 오랜 기간 이어져오면서 장르적 특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리고 작가와 독자들도 책을 접하고 다루는 방식도 나름의 정형화된 틀을 가지게 되었고 출판업계도 마찬가지다. 책과 관련된 문화계 전반의 여러 클리셰를 패러디함으로서 웃음과 함께 때로는 진지하게 잘못을 풍자를 하기도 한다.


패러디라는 것은 오리지날을 비틀고 기발한 방식으로 반전을 줘서 새롭게 생각해보게 만들고 거기에서 웃음과 재미를 가져오는 것인데 이 말은 오리지날을 잘 알고 있어야 반전을 준 내용에 웃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리지널을 많이 알수록 패러디에 많이 웃을 수 있지만 원본을 모르면 웃음포인트나 비평하는 포인트를 몰라서 멀뚱거리게 된다. 그리고 웃음 코드라는 것이 우리와는 정서가 사뭇 다른 서구의 그것이라서 우리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헤비 리더이거나 문학에 대한 이해가 높은 편이 아니라서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고, 개그코드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곳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곱씹어볼수록 생각할 부분도 많이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유명을 달리하신 우리의 친애하는 책들..
여러 이유로 책을 잃어버리거나 손상된 경우를 나열했는데 목욕물에 빠지는 것보단 우리식으로는 라면 국물을 쏟거나 짜장면 국물이 튄 자국이 있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것 같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굉장히 아끼던 책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서 유명을 달리한 책에 대한 애틋함에 공감이 간다. 특히 이사를 가면서 책을 정리하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사라진 지금은 절판된 책을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다.



#현대 추리 소설 작가들을 위한 살해 방법 몇 가지
예전 추리 소설들에서 사람을 죽이는 도구는 은촛대, 굵은 밧줄, 조각상, 리볼버 같은 것으로 천편일률적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뀜에 따라 살해 방법도 그 시대에 맞게 바뀌는 것이 현실적이다. 스마트폰 충전 케이블로 목을 조르고, 독을 탄 고급 수제 브리오슈, 자율 주행 차로 치는 등은 정말로 시대상을 반영하는 내용 같아서 앞으로는 이런 클리셰가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오만한 서점
과거에는 책, 영화 등의 문학작품이 평론가들의 평론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었다. 평론가들이 이것은 좋은 작품, 이것은 괜찮은 작품, 이것은 좋지 못한 작품이라고 가치를 정해주고 사람들은 평론가의 평가대로 그것을 소비하기만 하면 되었다. 평론가가 좋은 작품이라고 하면 그건 좋은 작품이고, 아쉬운 작품이라고 말하면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블로그와 SNS로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시대가 되자 평론가의 평가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문학작품을 재평가하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위 고전 명작' 중에서 '엄청나게 과대평가 된 책'이라고 느끼는 작품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평가 역시 평론가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평론가의 평론에 선입견을 받지 않으려는 선입견이 작용해서 과대평가되었다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첩보 소설 원고를 출판사에 전달하는 방법
첩보 소설에는 항상 마이크로필름이 나오고, 무대는 항상 비엔나의 오페라 극장이다. 암호명은 수선화, 대사관에서 나온 중개인과 벤치에서 만나는 장면들이 클리셰처럼 등장한다.


#이번 시즌을 강타한 출판계 신경향:독신녀!
어떤 하나의 아이템이 성공하면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아류가 쏟아진다. 사람들이 질릴 때까지 그런 아이템으로 뽕을 뽑아먹고 다른 아이템으로 갈아타는 것이 마치 메뚜기 떼가 그 지역의 농장물을 휩쓸고 다음 마을로 가는 것을 연상시킨다. 업계 용어로는 우라까이라고 하는데 기존에 있던 히트작에 성공한 아이템을 끼워넣어 우라까이해서 날림으로 작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다. 소설 쓰는 법이 히트하면 고급가이드북, 깊은 생각, 모든 것, 이것만 알면 된다.. 와 같은 제목으로 비슷한 책이 쏟아진다.


#웃긴 책
영화도 그렇지만 그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통하는 게 있다. 내용을 말하지 않아도 책 제목을 말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나고 공감대와 유대감이 형성되는 그런 현상들. 감정은 설명이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예술
예술의 영역 안에서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대상을 조롱하고 마구잡이로 까고, 비난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그에 대해 제재를 가하면 표현의 자유를 들먹인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이 그 대상이 되면 명예 훼손이라며 분노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표현의 자유도 똘레랑스의 영역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내 서재
읽음, 읽을 작정임, 안 읽었지만 읽은 척함, 시간 날 때 읽으려고 아껴둠, 순전히 관상용, 읽었지만 기억이 하나도 안 남, 차라리 읽지 않는 편이 나아음. ㅎㅎ 이건 꼭 내 서재를 보는 것 같다. 책을 실제로 끝까지 읽었는지를 나타내는 호킹지수라는 것이 있는데 총균쇠같은 책은 가독성이 떨어져서 완독률이 낮다고 한다. 이런 책은 안 읽었지만 읽은 척함이나 순전히 관상용 코너에 들어가겠다. 책을 사서 서재에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나의 지식이 +1up되고 내 가치가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런 기분은 기분일 뿐이다.


#고전의 재발견
우리도 고전 한권을 읽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 거기서 소개된 고전은 '무려 그 방송에서 소개된 책'이란 띠지를 두르고 재발매된다. 그리고는 다음 방송에서 다른 책이 소개되기 전 일주일 동안 크게 화제가 되고, 책방에는 그 책이 채강 메인에 자리잡고, 사람들은 그 책에 몰린다. 그러다가 급기야 초판본, 양장, 페브릭, 금장 등의 표지전쟁이 일어난다. 마치 백선생이 이 집 맛있다라고 한마디 하면 다들 몰려가서 탠트치고 밤새 기다렸다가 기어이 그 음식을 맛보고 SNS에 맛평가를 올리는 무척이나 부지런한 사람들의 습성과도 같다.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와는 상관없이 유행에 따라 움직이고 유행에 자신의 성향을 맞추는 사람들. 하긴 개인 취향대로만 책을 읽는 것은 편협하고 어느 한 쪽에 취중될수도 있으니 다양한 독서를 위해서는 오히려 그런 것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도 같을 것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같다.

 

#찰스 디킨스가 오늘날 살아 돌아온다면
고전의 재발견과 이어지는 맥락이 있는데 요즘은 그냥 소설만 잘 쓴다고 인기를 얻고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인기 작가가 되려면 트위터로 그놈의 '소통'을 하고, 독자들의 피드백을 십분 반영하며 존재감을 끝없이 나타내어야 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석하거나 심사를 하여야 하고, 오프리 방송이나 아침마당에 나가야 한다. 혹은 TV 대본을 쓰면 드라마가 히트 했을 때 이름을 알리는 데 효과적이다. 블로그 활동도 좋다. 이것이 작가의 '현대적' 활동이라고 한다. 과거처럼 소설가가 소설만 써서는 안되는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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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 -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디자인경제
장기민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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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 좀 쌩뚱맞은 질문이다. 홍대 앞이 홍대에 다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니 홍대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럼 왜 유독 홍대 앞에는 젊은이들이 모일까라는 다음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홍대나 건대, 연남동 같은 소위 최근 핫플레이스라고 말해지는 곳에는 사람들, 특히 젊은층들이 많이 몰리는 데 이런 곳의 골목상권은 지역의 정체성과 타깃층이 명확하다. 홍대 앞의 상권은 홍대를 찾는 젊은이들을 위한 최적의 마케팅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사람들은 홍대 앞을 학교 앞이라는 이미지로 인식하지 않는다. 홍대 앞에서 만나서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젊음의 거리는 홍대라는 학교를 떠올리게 하지는 않는다. 디자인경제학의 인식경제에서는 사물이나 그것과의 관계에 대한 규정보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에 따른 결과가 더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즉, 사람들이 홍대를 학교 앞이라고 규정하는 것보다 젊음의 거리, 약속장소, 놀이터와 같이 인식하게 하는 것이 경제적 효과가 더 크다는 뜻이다. 잠실에 가자는 말이 롯데월드에 가자는 뜻으로, 용인에 가자는 것이 애버랜드에 놀러가자는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이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연남동 같은 골목에 처음에 카페가 한두개 생겼을 때는 개별적 경영활동이 되는 것이고, 그런 것들이 모여서 연남동에는 예쁜 카페가 있다고 인식되면 그 인식을 통해 카페거리가 형성되고 골목상권이 살아나서 지역경제가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문제는 그런 핫플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이미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디자인이라고 하면 광고, 패션, 건축, 영상 같은 상업디자인 같은 것을 떠올리는데 디자인의 영역은 훨씬 광범위하게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디자인적인 사고가 모든 비즈니스의 핵심이 되어간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개념을 디자인 씽킹이라고 한다. 홍대의 상권에도 이런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 씽킹이라는 것이 단순히 카페를 어떤 디자인 컨셉으로 만들고, 어떻게 디스플레이 하며, 가게를 어떤 색으로 할 것인가와 같은 말 그대로 '시각적이고 외형적인 디자인'에 국한된 개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적 사고란 대중의 잠재적 욕구와 니즈를 이용하여, 전략적으로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작업방식을 일컫는다. 그래서 제품의 외형뿐 아니라 서비스, 기획, 마케팅 등 비즈니스의 전 과정에 걸쳐 디자인적 사고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디자인적 사고는 단순히 비즈니스 분야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상생활, 인간관계, 지역경제, 국가전략, 문화전반 등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에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고, 디자인적 사고를 접목함으로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개성과 가치관을 디자인 속에 녹여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아이디어부터 구성, 설정, 제작 등 모든 공정에 자신의 세계관과 철학이 들어가고, 고객의 니즈를 완벽하게 맞추게 되는데 비즈니스를 할 때에도 이런 마인드와 이런 시스템으로 자신의 철학을 접목시켜 고객의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어 비즈니스를 디자인 한다면 성공하게 된다는 식이다. 물론 비즈니스 이외의 수많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창조와 혁신'의 개념과 유사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요즘은 무슨 말만 나오면 창조와 혁신을 외치는데 디자인 씽킹도 같은 맥락처럼 보인다.


그래서 책에는 수 많은 생활경제 속에서 편의점경제학, 스타벅스경제학, 스티브잡스경제학, 이모티콘경제학, 아이스아메리카노경제학 등의 이름으로 디자인을 찾아내고 함께 생각해본다. 이런 OO경제학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저자가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가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모티콘경제학은 문자나 톡을 할 때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소비)하는데 어떻게 감정을 소비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자는 식의 흐름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니 이모티콘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돈을 벌어들이고, 이모티콘 시장이 얼마나 큰지 따위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즉, 정.말.로. 경제학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나 인식, 이미지 따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제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다보니 디자인 경제라는 것에 대한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우리는 디자인이라고 하면 앞서 말한대로 흔히 이미지와 외형에 국한된 상업디자인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개념을 초월해서 개인의 일상은 물론 비즈니스와 지역, 국가에 이르는 모든 곳에서 디자인의 영향력을 찾아보는데 그래서 어떤 것이 디자인이라는 것인지 정확히 캐치하기가 어렵다. 다른 책에서는 그것을 창조적 아이디어라거나 창의성, 융합과 혁신 등의 이름으로 설명하였는데 여기서는 디자인이라고 말하니 디자인이 곧 혁신이라는 건지, 그 둘의 차이는 정확히 뭔지 등 개념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조금 더 디자인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잡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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