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유쾌하고 쓸모있는 과학 한 번에 이해하는 단숨 지식 시리즈 1
빅토리아 윌리엄스 지음, 박지웅 옮김 / 하이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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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처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매일 우리가 맞닥뜨리는 세상에는 어디에나 과학이 존재하고 있다. 과학이라는 건 우리 일상에 밀접하고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우리가 사는 일상은 과학적 원리와 그 원리를 활용한 발명품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과학이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전문가들의 연구만을 떠올린다. 어릴 때부터 과학적 사고로 왜라는 질문을 하라고 말하면서도 항상 틀에 박힌 과학 이야기, 교과서적인 이론과 개념만을 가르치다보니 과학이 어렵고 멀게만 느껴질뿐 일상 속에서 과학을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게 된다. 결국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머리 아프게 배웠던 과학이론들은 졸업과 동시에 다 잊혀버리고 사실상 과학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과학이라고 한마디로 말하지만 실제로 과학은 그 범위가 굉장히 넓어서 과학이라는 영역에 포함되는 분야는 굉장히 많다.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는 과학이라는 이미지도 다 다를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모처럼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을 읽어보려고 해도 전부 자신이 한정하고 있는 분야 내의 정보만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학이란 그렇게 좁은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생각해야 할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단순한 이론에서 벗어나서 좀 더 쉽고 실용적인 내용을 접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적 사고를 늘이게 하는 것과 어느 하나의 분야에 함몰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 지식을 두루 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꽤 유쾌하고 쓸모 있는 과학]은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 교과서적인 과학 이론이 아니라 생활 지식으로서의 과학을 다루고 있다.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주변의 현상에 대한 증명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과학적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과학적 지식이 많지 않은 과알못들도 과학적 지식을 쉽게 배울 수 있다. 또 물질과 재료, 파동, 우주, 지구과학, 힘과 운동, 에너지와 전기, 상태 변화, 생물과 생태계, 유전자와 진화, 인체 등 총 10가지 테마의 과학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게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과학적 지식을 취할 수 있다.


내용을 길게 끌고 가지 않고 모든 주제는 한 페이지로 설명을 끝마치고 있는데 그만큼 핵심적인 내용들만 간추려서 정리를 해놓았고, 복잡한 설명이나 어려운 내용이 없다보니 어렵지 않게 읽을 수가 있고, 최소한의 하지만 가장 기본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적어도 이 정도쯤은 알아야 한다라는 내용들만 골라서 보여주는 것이다. 텍스트는 줄이고 대신 그림, 사진, 삽화 등 시각적인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편하게 구성을 해 놓았다. 시각적인 데이터가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텍스트가 적어도 내용을 이해하기 용이하고 오래 기억된다.


각 내용마다 그 주제와 관련된 토막 상식을 한두가지씩 집어넣어서 흥미과 상식을 함께 키울 수 있게 해놓았으며, 하나의 챕터가 끝나면 그 챕터에 나왔던 내용들을 정리하는 쪽지 시험을 통해 다시 한번 내용 중에 나왔던 중요한 키워드를 확인하고 방금 읽었던 내용들을 정리할 수 있게 해놓았다. 아무래도 그냥 글만 읽는 것보다 쪽지 시험이 있으면 조금은 긴장하고 꼼꼼하게 읽게 되므로 쪽지 시험은 간단한 복습도 되고, 글을 읽을 때 텐션을 높혀주는 역할도 한다. 하나의 테마가 끝나면 그 장에 나왔던 내용을 퀴즈로 풀어보는 코너와 간략하게 요약해놓은 간단 요약 코너가 있어서 재미있게 두번 세번 복습을 하며 책에 나온 정보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게 된다. 이후 다시 책을 읽지 않더라도 간단 요약만 봐도 이전에 책을 읽었던 내용이 떠오르며 복습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배웠다는 기억은 있지만 정확한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학교에서 배웠던 과학 시간의 수업내용은 시험목적을 위한 암기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비교적 쉬운 내용들이라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다 잊어버린 성인들은 물론 과알못의 청소년들도 과학상식 입문서로 읽기에 적당한 것 같다. 사실 책의 내용들은 정말 초보적 또는 기초적인 내용들 뿐인데 그것조차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에서 스스로의 과학적 수준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약간 뜨끔했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 기초상식을 키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하며 유쾌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매우 쓸모있기는 한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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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페이지 세계사 365 - 세상의 모든 지식이 내 것이 되는 세상의 모든 지식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심용환 지음 / 빅피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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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역사란 과거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고, 여러 사건들의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알아보고, 그 흐름 속에서 현재를 고찰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는 학문이 아니라 그저 연표외우기와 사건들의 순서를 딸딸 외우는 것에 불과한 교과 과정의 하나의 암기과목에 불과하다. 여러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그저 시험을 위해 필요한 내용만을 외우기에 급급하다보니 역사란 것이 재미없고 지루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어졌다. 억지로 외운 내용들은 졸업과 동시에 모두 잊어버리게 되어서 실제로 머리 속에 남는 것도 없고, 그것에서 뭔가 교훈을 얻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이후로는 가끔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도 연표외우기의 악몽이 떠올라서 선듯 공부를 할 생각을 못 하게 된다.


[1페이지 세계사 365]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1페이지씩 서로 다른 테마의 365개의 역사 교양 지식을 하나씩 쌓아올리며 역사 지식을 확장시켜 나간다는 컨셉의 책이다. 인류의 역사의 시간만큼 세계사가 다루는 영역은 크고 방대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한번에 보고 익히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학교 수업처럼 비슷한 내용의 반복되는 역사 이야기나 암기에 치우친 학습법은 지루해지기 쉬워서 금방 흥미를 잃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동양사, 인물, 서양사, 예술사, 문명사, 빅히스토리, 도시사와 기술사 라는 7가지 요일별 테마를 정해놓고 매일 다른 역사 지식을 하나씩 섭렵하게 되므로 항상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지루하지 않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 사람들은 긴 서술형의 글을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글은 물론 영상까지도 짧은 짤로 만들어서 빠르고 간단히 소비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 책의 내용도 마치 짤이나 숏폼 콘텐츠의 느낌이 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길지 않고 간단해서 읽기에 부담이 없고, 암기가 필요한 내용도 없어서 기존의 암기 위주의 역사 공부 스타일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요일별로 하나의 테마를 적용하여 하나씩 역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굳이 책에서 정한 순서에 구애받지 말고 손가는 대로 읽어도 된다. 관심있는 요일의 테마만 묶어서 읽어도 좋고, 어차피 개별적으로 독립적인 내용이므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냥 아무곳이나 펼쳐서 읽으면 될 것 같다.


책은 인류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사까지 전 시간대를 아우르고 있고, 동서양의 세계사 중 가장 중요한 사건, 인물, 장소, 그리고 흥미로운 문화와 종교, 예술 까지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골고루 담아내어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세계사의 여러 지식들을 섭렵할 수 있다. 기존의 세계사는 서양의 유럽사를 중심으로 기술했던반면 이 책에서는 한국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동양사의 비중을 늘려서 한국의 관점에서 동서양의 역사를 균형감있게 다루고 있다는 것도 기존의 역사책과는 차별화된 점이다.


일단 테마 자체도 다양한데 테마별로 다루고 있는 주제들도 굉장히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정신병원, 성형수술, 전시 성폭력, 여아 살해, 성매매 같은 일반적인 역사책에서는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는 주제들도 있고, 참호전, 유격전, 덩케르크, 삼국지와 수호지 같은 전쟁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이나 에도 막부, 가마쿠라 막부, 신해혁명, 체 게바라,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굉장히 친숙하고 많이 들어는 봤지만 의외로 잘 알지 못하는 내용들도 있어서 제목을 보면 궁금하다는 생각과 함께 눈길을 잡아끄는 주제들이 잔뜩 포함되어 있다.


특히 동양사 중에서도 일본에 대한 내용이 많이 보이는데 생각해보면 학교 세계사 시간 때 중국사는 꽤 많이 배웠지만 일본사는 거의 배운 기억이 없다. 아무래도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일본의 역사까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일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이 없었는데 여기에 일본의 역사가 상당히 다루어져서 시대별로 중요한 내용들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어서 유용했고 기존의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서 벗어나있던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인도, 말라카 같은 소외되었던(?) 나라들에 대해서도 짧게 나마 알게 되어 좋았다.


하나의 내용은 모두 한페이지 안에 끝날 정도로 간략하게 핵심내용을 정리해놓아서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반대로 말하면 너무 축약해서 디테일한 세부적인 내용은 놓칠 수도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우선은 역알못들이 관심을 가지고 알아두면 유용한 핵심적인 내용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내것으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접근하면 좋을 것 같다. 매 요일마다 테마가 바뀌다보니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세계사 이야기를 읽을 수 있지만 하나로 쭉 이어지는 큰 흐름이나 맥락을 잡기에는 조금 불리할 수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의 연대기적 흐름이나 역사의 연속성을 배우기 보단 개별적인 사건과 아이템을 알아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것으로 세계사에 대해 척척박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적어도 그동안 역사라는 것에 괜한 거부감이나 암기에 대한 부담감을 가진 사람들이 역사라는 것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 책은 충분히 효과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역사가 결코 재미없고 지루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만 바뀌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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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 (리커버 에디션)
토머스 해리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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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해리스의 소설 양들의 침묵은 소설보다 영화로 더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91년에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벌써 30년이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 중에서 최고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극중 한니발 렉터 박사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의 강렬했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영화는 당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 여우주연, 각색상의 주요 5개 부문 수상을 했는데 남우주연상의 안소니 홉킨스는 영화 속에서 단지 15분 정도밖에 등장하지 않는데 상을 받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정도다. 고작 15분 정도 등장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인상 깊고 임팩트가 느껴진다.


88년에 출간된 동명의 원작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영화와는 약간 다른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해서 영화로도 소설의 느낌을 느낄 수 있다고는하지만 그럼에도 원작은 어떤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각색상을 받을 정도로 각색이 잘 되어있어서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다보니 굳이 소설을 읽을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는 아무래도 소설에서는 영화로 전부 보여주지 못하는 캐릭터의 구축이나 캐릭터들 간의 관계 설정의 묘사가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 있어서 영화로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영화와는 약간은 다른 좀 더 깊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나무의철학에서 영화 [양들의 침묵] 30주년을 기념하여 리커버 에디션이 새롭게 출간되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진지 30년, 원작이 나온지 33년만에 비로서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표지에는 스토리 상의 중요한 소재이자 캐릭터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나방이 날개를 활짝 펼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나방의 등에는 해골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원작 영화 포스터에는 이 해골이 살바도르 달리의 일곱명의 나체의 여자가 만든 해골 그림으로 되어 있다. 달리의 해골 그림은 작중에서 버팔로 빌이 캔자스 시티에서 7명의 여성을 납치하여 살해 후 살가죽을 벗긴 스토리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그 자체로도 상징성이 있는 것인데 책의 표지에서는 그냥 단순한 해골로 그려져 있어서 뭔가 아쉽게 느껴진다.


FBI수습요원인 스탈링은 잭 크로포드 부장으로부터 한니발 렉터 박사의 면담과 검사를 지시받는다. 구금 중인 연쇄 살인범들을 대상으로 면담과 검사를 시행하여 미제 사건 해결을 위한 심리적 프로파일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중 한니발 렉터만이 FBI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어서 스탈링을 보내는 것이다.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 사건 때문에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명목상의 이유지만 스탈링이 실력자이자 관련 상담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듯 하고, 잭 크로포드가 스탈링을 신뢰하는 듯한 인상도 보인다. 즉, 부장 찬스를 통해 경험치 획득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렉터 박사가 면담에 응하면 면담을 하고, 응하지 않으면 그냥 오라는 식으로 가벼운 튜토리얼로 시작했지만 의외로 렉터는 스탈링에게 관심을 보이고, 렉터가 면담에 응하자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의 심리상태나 그외 살인에 관련된 정보 등을 얻기 위해 연쇄살인범의 입장에서 버팔로 빌을 분석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잘 안다고 같은 연쇄살인범이자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인 렉터 박사의 조언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도중에 상원의원이 딸이 납치되자 렉터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잭 크로포드 부장과 상원의원은 렉터에서 여러 딜을 해오는데 렉터는 버팔로 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스탈링의 개인사를 이야기 해줄 것을 조건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렉터는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이용하는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렉터를 처음 접견하기 전부터 위험한 인물이니 절대 개인적인 대화는 금하라는 경고를 수도 없이 듣는다. 그렇지만 렉터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트라우마를 꺼내서 렉터에게 들려두는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나마도 교도소장의 견제로 계속 일은 틀어지는데. 렉터의 조언과 잭 크포로드의 도움으로 버팔로 빌에게 한발씩 다가가는 스탈링. 과연 스탈링은 버팔로 빌의 정체를 알아내고 납치당한 상원의원의 딸을 무사히 구출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도 그렇지만 원작 역시 전개 속도가 빠른 편이다. 특히 상원의원의 딸이 납치당하고 상해당하기 전에 구출해야 한다는 시간 제한이 생기면서 서스펜스는 높아지고 이야기는 급박하게 흘러간다. 영화는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스토리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지 원작 소설은 설명과 묘사가 들어가며 템포가 늦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와 비슷한 속도로 전개되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이미 중반 쯤 되면 버팔로 빌에 대한 정보가 나오며 진범이 누구인지 대충 특정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화나 소설의 구조와 비교하면 진행이 빠르고 하이라이트가 일찍 찾아오는 편이다. 말하자면 범인에 대한 궁금증을 후반부까지 끌고가며 긴장감을 쌓아가야 하는데 너무 빨리 절정이 찾아오니 긴장감이 풀릴 수도 있는 스토리라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계속 갈등 구조를 가져가며 끝까지 긴장감을 구축하는 것이 스토리가 탄탄하다고 하겠다.


양들의 침묵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없는 스탈링은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스탈링은 렉터 박사와 잭 크로포드라는 두 명의 아버지의 대리인을 통해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를 거치며 성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FBI수습요원인 스탈링은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수업을 듣고, 체력테스트를 해야 하며 남는 짧은 개인시간을 쪼개서 밝은 쪽의 아버지인 크로포드 부장의 미션을 수행해야 하고, 어두운 쪽의 아버지인 렉터 박사가 내는 미션도 수행해야 한다. 크로포드 부장은 무뚝뚝한 아버지의 상이고, 렉터 박사는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속마음과 고민 상담까지 해주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두 아버지 모두 스탈링을 걱정하고 여러 조언들을 해주고 도움을 준다.


크로포드 부장은 딱딱해 보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스탈링을 신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할 때마다 스탈링에게 조언을 하고 어려움에 처하면 쉴드를 쳐준다. 스탈링도 크로포드를 신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신뢰인지 사랑인지 부녀관계의 애정인지는 모호하다. 렉터 박사도 역시 스탈링을 걱정하고 그녀에게 마음을 쓴다. 스탈링이 처음 렉터를 만나러 오는 중에 렉터 옆 감방에 있던 죄소자가 스탈링에게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스탈링을 희롱한다. 그러자 렉터는 그 죄소자를 말로 자살하게 만들어버린다. 또 나중에 감옥에서 탈출한 이후에는 스탈링을 견제하며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만든 교도소장을 먹어치운다. 물론 교도소장에게는 개인적인 원한도 있겠지만 스탈링을 힘들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렉터는 딸의 역할인 스타링을 건드리는 인간들은 모두 처절하게 복수를 해준다.


소설이 출간된 80년대는 보이지 않는 남녀간의 차별이 존재하던 시기였고 더구나 FBI는 남성중심의 조직이다. 교도소장은 대놓고 스탈링이 여자라고 무시하고, 심지어 감방의 죄소자들조차 스탈링에게 성추행을 한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조직 내에서 체력적·신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남성 수사관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스탈링은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억압된 시대의 억압된 조직에서 어릴 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스탈링은 렉터 박사를 만나 자신의 억압된 내면과 마주하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찾게 된다. 반면 크로프트는 스탈링이 목표로 하는 FBI요원이 될 수 있는 직업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두 아버지의 도움으로 스탈링은 버팔로 빌을 죽이고, 납치된 상원의원을 딸을 구하고, 아카데미도 무사히 졸업하는 일련의 성인식을 거치고 성인이 된다.


버팔로 빌 역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버팔로 빌에게는 크로포드나 렉터 박사와 같은 멘토가 없다. 자신을 이끌어 줄 아버지가 없는 버팔로 빌은 스탈링처럼 통과의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버팔로 빌은 여자들을 납치해서 살해하고 목구멍 안에 나방 번데기를 넣는다. 번데기는 변화를 뜻한다. 벌레가 고치로 변하고, 고치는 다시 나비나 나방으로 변하듯이 버팔로 빌은 그것처럼 탈피를 꿈꾼다. 성전환을 하고싶은 버팔로 빌은 성전환 수술을 시도했지만 세 곳의 병원에서 퇴짜를 맞게 되고 몸집이 큰 여자들을 납치하여 그 여자들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으로 변화를 대신하려 한다. 아버지가 없는 버팔로 빌은 자신의 방식으로 통과의례를 치르려 하지만 그것은 실패한 성인식이고, 어른이 되지 못한 버팔로 빌에게 찾아올 것은 죽음 뿐이다.


스탈링은 어릴적 도축업장을 하는 친척집에 보내졌다가 이른 새벽 양들의 울음에 잠이 깨어 양들이 도축당하는 장면을 보고 그것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목자였던 스탈링은 어린 양을 구하지 못했고 거기서 오는 죄책감과 순서를 기다리며 차례로 죽어가는 약한 양의 모습에서 고아라는 약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느낀 공포가 상원의원 딸이라는 희생양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강하게 발현되는 것 같다. 상원의원의 딸을 구하면 어릴 때 구하지 못한 양들도 모두 무사해지고 어두운 새벽에 양들의 울음소리에 깨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는 믿음. 스탈링은 상원의원의 딸을 구하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버팔로 빌을 살해하고 만다. 스탈링이 남성중심의 조직에 여자라는 신분으로 어려움을 겪듯이 버팔로 빌 역시 스스로 성전환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세상은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고 남성중심의 세상에 안착하지 못한 상태다. 버팔로 빌도 스탈링처럼 고통을 받고 있는 양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을 인도해주는 목자가 없어서 늑대의 탈을 덮어쓰게 된 것일뿐. 그렇다면 스탈링은 상원의원의 딸이라는 양은 구했지만 버팔로 빌이라는 양은 구하지 못한 셈이다. 스탈링은 양을 모두 구하지 못했고, 소설에서는 단잠을 자는 스탈링의 모습으로 끝을 맺지만 어쩌면 스탈링에게 울리던 양들은 울음을 멈추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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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식물책
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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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숲의 도시에선 시골만큼 식물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여기저기 공원도 많이 조성되어 있고, 길가에 가로수나 조경수가 많이 심어져 있어서 의외로 도시에서도 식물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시에서 계절에 맞게 꽃들을 계속 바꾸어 주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가로수가 아니라 계절에 따라 바뀌는 시즌 한정 꽃들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딱딱한 도시에서 자연을 품은 식물을 마주하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특히 추운 겨울 끝에 봄꽃이 피는 것을 볼 때나 낙엽이 지는 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거리를 걷다보면 상당히 많은 종류의 식물을 만나게 되지만 정작 그중에서 이름을 알고 있는 식물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꽃과 나무를 봐도 무심히 지나쳤지만 조금 천천히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거리에서 만나는 나무, 카페에 놓여있는 꽃, 관상수, 야생초 등 매일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되는 식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식물들에 대해 알고 싶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름을 알고 싶고 관심을 가지게 된 식물이 있을 때에도 딱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또다시 그냥 넘어가게 되는데 그런 점이 참 아쉬웠다. [쉬운 식물책]은 말 그대로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식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해놓은 식물도감이다. 주변에서 흔하게 만나게 되는 관상수, 가로수, 산나무, 야생초, 화초, 곡식과 채소까지 무려 1,164종의 식물을 소개하고 있어서 식물에 대해 쉽게 배울 수 있다.


식물도감 등을 활용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떻게 내가 알고 싶은 식물을 찾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식물은 그 형태와 색상 등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체계적으로 분류하기도 어렵고, 분류에 따라 찾는 것도 어렵다. 때로는 종속과목강문계의 계층별로 분류하여 어느 정도 식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활용할 수 있거나 단순히 계절별로 나누어 놓아서 원하는 식물을 찾아내는 것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쉬운 식물책]은 분류가 굉장히 쉽게 잘 되어 있다. 우선 풀꽃과 나무꽃, 화초, 관엽식물, 작물, 고사리식물과 이끼식물로 크게 나누고, 각 부분은 우선 꽃이 피는 계절별로, 계절 내에서는 꽃잎의 색깔별로, 색깔 내에서는 꽃잎 수에 따라 디테일하게 분류를 하고 있다. 계절-꽃잎색-꽃잎수의 규칙에 따라 계절과 꽃잎의 색깔과 꽃잎 수만 알면 바로 바로 해당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바로 찾을 수 있다.


집 근처 작은 공원의 나무에 요즘 꽃이 한창 피었는데 꽃 모양이 특이해서 그 곳을 지나칠 때마다 어떤 나무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통해 자귀나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 뒤편 화단에 엄청나게 피어있는 꽃은 약모밀 일명 어성초라고 하는 약초였다. 어성초는 머리에 바르면 머리가 난다고 알려져서 한때 유행했는데 그 꽃은 처음 봤다. 아파트 화단에 심어져 있어서 매일 보던 꽃은 개망초와 홑왕원추리, 원추천인국, 애기범부채라고 한다. 화단에 핀 꽃들에 대해 가끔 이야기 할 때가 있는데 서로가 꽃 이름을 모르다보니 화단에 핀 그 주황색 큰 꽃 있잖아~ 이런 식으로 말을 했는데 이젠 꽃이름이 뭔지 정확히 알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꽃 중에는 생김새가 굉장히 비슷해서 헷갈리는 것들도 많이 있다. 같은 과의 식물인 경우가 그런데 가령 같은 국화과의 사데풀, 방가지똥, 큰방가지똥은 꽃만 보면 구분하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 장미과의 가락지나물이나 양지꽃 같은 경우도 초보자가 구분해내기 어려운데 이렇게 색깔과 생김새 등이 유사한 꽃들은 그런 꽃들끼리 모아서 소개하고 있어서 서로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서 구분하는데 약간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식물 사진 뿐 아니라 식물의 형태와 생태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첨가되어 있는데 복잡하거나 어려운 내용보단 기본적인 간략 프로필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해당 식물만의 생태적 개요와 외형적인 특징을 잘 소개하고 있어서 꽃에 대한 기본 상식을 얻을 수도 있고 비슷하게 생긴 식물을 구분해내는데도 도움이 된다.


사진은 꽃과 잎 등을 한번에 볼 수 있게 실물이 찍혀 있어서 꽃과 꽃잎 같은 식물의 중요 부위랄까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하기에 좋다. 나무꽃의 경우는 꽃과 함께 열매, 잎줄기나 시간에 따른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있어서 어느 한 시점의 식물의 모습이 아닌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이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다. 책의 서두에는 식물의 몸, 꽃의 구조, 꽃에서 열매가 되는 과정, 열매의 구분, 잎의 구조, 식물의 분류 같은 기본적인 식물의 정보를 알려주고 있어서 식물에 대한 일반적인 기초지식을 배울 수 있고, 마지막엔 용어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서 본문에 나왔던 용어들에 대한 해석이 첨부되어 있어서 식물의 이해를 돕고 있다.


식물의 상세 프로필에 학명은 빠져 있는데 학명은 책의 가장 뒤편에 모아놓아서 필요할 때 찾아볼 수 있게 해놓았다. 이것도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하는데 보통은 식물명에 꼬부랑 글씨로 학명을 함께 기술해놓은 경우가 많은데 사실상 식물 초짜들이 식물을 보면서 학명까지 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려워 보이는 영어명이 써있으면 괜히 부담만 된다. 학명을 전부 뒤로 빼놓은 것도 오히려 깔끔하게 보이고 좋다.


이름 없는 야생화라는 말을 하는데 이름없는 식물은 없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모를 뿐이다. 주변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여러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알고 싶어도 마땅히 알기가 어려웠는데 너무나 쉽게 식물을 찾아보고 그 식물에 대해 알 수 있게 잘 정리되어 있는 식알못들을 위한 식물도감인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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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로부터 - 과거에서 기다리고 있는 미래
민이언 지음 / 다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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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생각나고, 멀어질수록 더욱 또렷해진다. 누구나 지나간 시간의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다. 10년, 20년 전이라고 말로 하면 겨우 두 글자지만 지내보니 꽤 긴 세월이었고 다시 오지 못하기에 그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고 자꾸만 생각이 나는 것 같다. 몇 해전 응답하라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내가 스무살이었던 시절을 추억하며 그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에 젖어드는 것. 그것이 추억이 아닐까 한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로부터]는 본격 추억팔이 감성에세이다. 마치 20세기에 헤어진 초등학교 친구들을 21세기가 되어 다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20년 전의 이런저런 추억들을 떠들어대는 듯한 느낌의 감각들. 그 즐거움과 애틋함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그때 그 시절을 정의하는 고유명사들이 쭉 나열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느낌이 들고, 그 때 그 시간으로 추억여행을 하게 된다. 


물론 아마도 저자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나이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저자의 20년 전 기억이 나의 20년 전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응답하라 97, 응답하라 94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 3년의 시간차이에도 스무살의 청춘들이 느끼고 공유하는 문화나 정서는 엄청나게 많이 다르고 그들이 거쳐온 시대정신도 완전히 다르다. 심지어 같은 시절을 지내오며, 같은 시간을 보냈더라도 같은 시대정신을 가지고 똑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지난 시절의 추억이 저자와 똑같지는 않을 것이고 소위 말하는 공감하는 기억이 적을 수도 있다. 같은 시절의 다른 기억. 하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때가 찬란한 봄날이었다는 마음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이 책은 내가 떠나보낸 나의 봄날에 대한 마음과 지금은 사라진 내가 가졌던 고유명사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내 것인 적이 없었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 놓지 못한 텅 빈 시간들


A Better Tomorrow

영웅본색의 영어 타이틀이다. 책의 네번째 쳅터의 타이틀이 늦게 도래한 화양연화인데 나에겐 이 영웅본색이 늦게 도래한 영화였다. 영웅본색 세대이긴 했지만 당시엔 홍콩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웅본색을 보고서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냥 당시 흔한 홍콩의 액션 영화의 하나로만 기억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영웅본색은 뭔가가 달랐다. 홍콩 영화 사상 최고의 작품이란 평론가와 세간의 평가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다시 만난 영웅본색은 그야말로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내가 영웅본색에 마음을 빼앗겼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후였고 그 영화에 열광하며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공중전화 부스에 기대어있는 동시대적 경험을 하지는 못했었다. 저자는 홍콩에 갔을 때 장국영이 생을 마감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 가장 먼저 갔다고 한다. 그 후 영웅본색 2에 나온 공중전화 박스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철거되고 없어진 탓에 아무 공중전화 박스에 가서 분위기를 느끼고자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주윤발이 신문을 읽으며 담배를 피우던 오전 6시 40분의 대만의 시먼딩 교차로 육교에 서보고 싶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곳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걸어나오지 못한 것 같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을 멈춰 서게 한 듯한 그런 공간들


오이도의 추억

저자는 장례식장에 갔다가 아침에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서 탔고 눈을 뜨니 종점인 오이도였다고 한다. 덕분에 회사에 한참 늦었다고 하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전한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이도에 간 것이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오이도에 여러번 갔었다. 업무 때문에 그리고 연애 때문에 오이도에 참 많이도 갔었다. 하필이면 오이도에 사는 사람과 두 번 연속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서 서울에서 오의도로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 곳에서 사랑의 기쁨과 실연의 아픔을 맛보기도 하고,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 하다가 절망과 좌절을 겪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지하철에 앉아 오는 내내 눈물을 흘렸고 주위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처다보던 기억까지. 내게 있어 오이도는 한없는 사랑과 끝없는 아픔의 추억이 있는 장소이다.


소년의 여름에 찾아냈다

여기 영원히 부숴지지않는 다이아몬드


칵테일 사랑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나온 그 해 여름은 정말 더웠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시원하고 발랄한 레게풍의 음악이 대유행을 했었는데 김건모의 핑계의 대히트로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룰라의 100일째 만남 그리고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등이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죄다 통큰 데님팬츠나 7부 바지에 조끼와 워커를 코디하고 다녔었다. 지금 보면 참으로 아스트랄하지만 그 땐 그게 멋이었다. 개인적으로 칵테일 사랑은 뜨거웠던 여름과 아스트랄하고 멋진 패션들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저자는 학창시절 외출증을 받아들고 저녁 시간 때 교문 밖으로 나가 잠깜 동안의 자유를 만끽했는데 그 때 칵테일 사랑을 들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잠깐 동안의 자유와 이 노래의 몽환적인 느낌이 어울어져서 깊은 여운을 남긴 모양이다. 사실 내가 칵테일 사랑을 들으면 뜨거운 여름날을 떠올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94년 여름의 뜨거운 여름 태양에 흐물흐물 녹아든 배경 속에 이 곡이 함께 녹아들어 뒤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자유롭고 늘어지는 몽환적인 시간이 칵테일 사랑이란 노래와 정확히 싱크로 되어 그 추억의 배경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는 기억 속에서 햇빛 쏟아지던 날들의 풍경은 왜 그토록 찬란하던지


길 위에서 만난 순간

예전에는 길보드 차트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처럼 mp3가 아닌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 소위 삐짜 불법 복제 테이프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 많았다. 엄연한 불법이지만 누구나 그걸 당연하게 사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었다.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보니 웃기게도 리어카에서 

틀어주는 노래로 당시 최신 인기곡들을 가름할 수 있었고, 역으로 리어카에서 노래를 틀어줘서 많이 알려지고 인기를 끌게되는 일도 있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노래에 대한 밑바닥 민심이 그대로 묻어있는 바로미터였다. 물론 저작권이라는 것은 지켜져야 하고 불법으로 지적 재산권을 유통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카세트 테이프라는 것이 사라진 지금은 그리운 문화로 기억된다.


책의 소제목들은 영화 제목이나 노래 제목, 노래 가사, 만화책 제목 등을 차용한 것들이 많아서 소제목 자체만으로도 찡해지는 울림이 느껴진다. 그런데 내용들은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느낄 수 있을 만한 내용들보단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 더 많다. 그래서 광범위하게 모든 글에 공감하거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보편적인 추억팔이를 했어도 완벽하게 공감하지 못할 수 있는데 여긴 오히려 개인적인 일, 개인적인 경험, 개인적인 감정을 나열해놓아서 상당부분 나와의 공통분모를 찾기는 어렵다. 책에 나오는 저자의 개인적인 기억만을 따라가기보단 그와 관련해서 나의 개인적인 추억을 떠올려보면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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