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리커버 에디션)
토머스 해리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토머스 해리스의 소설 양들의 침묵은 소설보다 영화로 더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91년에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벌써 30년이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 중에서 최고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극중 한니발 렉터 박사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의 강렬했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영화는 당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 여우주연, 각색상의 주요 5개 부문 수상을 했는데 남우주연상의 안소니 홉킨스는 영화 속에서 단지 15분 정도밖에 등장하지 않는데 상을 받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정도다. 고작 15분 정도 등장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인상 깊고 임팩트가 느껴진다.


88년에 출간된 동명의 원작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영화와는 약간 다른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해서 영화로도 소설의 느낌을 느낄 수 있다고는하지만 그럼에도 원작은 어떤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각색상을 받을 정도로 각색이 잘 되어있어서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다보니 굳이 소설을 읽을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는 아무래도 소설에서는 영화로 전부 보여주지 못하는 캐릭터의 구축이나 캐릭터들 간의 관계 설정의 묘사가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 있어서 영화로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영화와는 약간은 다른 좀 더 깊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나무의철학에서 영화 [양들의 침묵] 30주년을 기념하여 리커버 에디션이 새롭게 출간되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진지 30년, 원작이 나온지 33년만에 비로서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표지에는 스토리 상의 중요한 소재이자 캐릭터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나방이 날개를 활짝 펼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나방의 등에는 해골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원작 영화 포스터에는 이 해골이 살바도르 달리의 일곱명의 나체의 여자가 만든 해골 그림으로 되어 있다. 달리의 해골 그림은 작중에서 버팔로 빌이 캔자스 시티에서 7명의 여성을 납치하여 살해 후 살가죽을 벗긴 스토리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그 자체로도 상징성이 있는 것인데 책의 표지에서는 그냥 단순한 해골로 그려져 있어서 뭔가 아쉽게 느껴진다.


FBI수습요원인 스탈링은 잭 크로포드 부장으로부터 한니발 렉터 박사의 면담과 검사를 지시받는다. 구금 중인 연쇄 살인범들을 대상으로 면담과 검사를 시행하여 미제 사건 해결을 위한 심리적 프로파일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중 한니발 렉터만이 FBI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어서 스탈링을 보내는 것이다.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 사건 때문에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명목상의 이유지만 스탈링이 실력자이자 관련 상담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듯 하고, 잭 크로포드가 스탈링을 신뢰하는 듯한 인상도 보인다. 즉, 부장 찬스를 통해 경험치 획득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렉터 박사가 면담에 응하면 면담을 하고, 응하지 않으면 그냥 오라는 식으로 가벼운 튜토리얼로 시작했지만 의외로 렉터는 스탈링에게 관심을 보이고, 렉터가 면담에 응하자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의 심리상태나 그외 살인에 관련된 정보 등을 얻기 위해 연쇄살인범의 입장에서 버팔로 빌을 분석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잘 안다고 같은 연쇄살인범이자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인 렉터 박사의 조언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도중에 상원의원이 딸이 납치되자 렉터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잭 크로포드 부장과 상원의원은 렉터에서 여러 딜을 해오는데 렉터는 버팔로 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스탈링의 개인사를 이야기 해줄 것을 조건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렉터는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이용하는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렉터를 처음 접견하기 전부터 위험한 인물이니 절대 개인적인 대화는 금하라는 경고를 수도 없이 듣는다. 그렇지만 렉터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트라우마를 꺼내서 렉터에게 들려두는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나마도 교도소장의 견제로 계속 일은 틀어지는데. 렉터의 조언과 잭 크포로드의 도움으로 버팔로 빌에게 한발씩 다가가는 스탈링. 과연 스탈링은 버팔로 빌의 정체를 알아내고 납치당한 상원의원의 딸을 무사히 구출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도 그렇지만 원작 역시 전개 속도가 빠른 편이다. 특히 상원의원의 딸이 납치당하고 상해당하기 전에 구출해야 한다는 시간 제한이 생기면서 서스펜스는 높아지고 이야기는 급박하게 흘러간다. 영화는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스토리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지 원작 소설은 설명과 묘사가 들어가며 템포가 늦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와 비슷한 속도로 전개되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이미 중반 쯤 되면 버팔로 빌에 대한 정보가 나오며 진범이 누구인지 대충 특정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화나 소설의 구조와 비교하면 진행이 빠르고 하이라이트가 일찍 찾아오는 편이다. 말하자면 범인에 대한 궁금증을 후반부까지 끌고가며 긴장감을 쌓아가야 하는데 너무 빨리 절정이 찾아오니 긴장감이 풀릴 수도 있는 스토리라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계속 갈등 구조를 가져가며 끝까지 긴장감을 구축하는 것이 스토리가 탄탄하다고 하겠다.


양들의 침묵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없는 스탈링은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스탈링은 렉터 박사와 잭 크로포드라는 두 명의 아버지의 대리인을 통해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를 거치며 성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FBI수습요원인 스탈링은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수업을 듣고, 체력테스트를 해야 하며 남는 짧은 개인시간을 쪼개서 밝은 쪽의 아버지인 크로포드 부장의 미션을 수행해야 하고, 어두운 쪽의 아버지인 렉터 박사가 내는 미션도 수행해야 한다. 크로포드 부장은 무뚝뚝한 아버지의 상이고, 렉터 박사는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속마음과 고민 상담까지 해주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두 아버지 모두 스탈링을 걱정하고 여러 조언들을 해주고 도움을 준다.


크로포드 부장은 딱딱해 보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스탈링을 신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할 때마다 스탈링에게 조언을 하고 어려움에 처하면 쉴드를 쳐준다. 스탈링도 크로포드를 신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신뢰인지 사랑인지 부녀관계의 애정인지는 모호하다. 렉터 박사도 역시 스탈링을 걱정하고 그녀에게 마음을 쓴다. 스탈링이 처음 렉터를 만나러 오는 중에 렉터 옆 감방에 있던 죄소자가 스탈링에게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스탈링을 희롱한다. 그러자 렉터는 그 죄소자를 말로 자살하게 만들어버린다. 또 나중에 감옥에서 탈출한 이후에는 스탈링을 견제하며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만든 교도소장을 먹어치운다. 물론 교도소장에게는 개인적인 원한도 있겠지만 스탈링을 힘들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렉터는 딸의 역할인 스타링을 건드리는 인간들은 모두 처절하게 복수를 해준다.


소설이 출간된 80년대는 보이지 않는 남녀간의 차별이 존재하던 시기였고 더구나 FBI는 남성중심의 조직이다. 교도소장은 대놓고 스탈링이 여자라고 무시하고, 심지어 감방의 죄소자들조차 스탈링에게 성추행을 한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조직 내에서 체력적·신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남성 수사관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스탈링은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억압된 시대의 억압된 조직에서 어릴 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스탈링은 렉터 박사를 만나 자신의 억압된 내면과 마주하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찾게 된다. 반면 크로프트는 스탈링이 목표로 하는 FBI요원이 될 수 있는 직업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두 아버지의 도움으로 스탈링은 버팔로 빌을 죽이고, 납치된 상원의원을 딸을 구하고, 아카데미도 무사히 졸업하는 일련의 성인식을 거치고 성인이 된다.


버팔로 빌 역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버팔로 빌에게는 크로포드나 렉터 박사와 같은 멘토가 없다. 자신을 이끌어 줄 아버지가 없는 버팔로 빌은 스탈링처럼 통과의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버팔로 빌은 여자들을 납치해서 살해하고 목구멍 안에 나방 번데기를 넣는다. 번데기는 변화를 뜻한다. 벌레가 고치로 변하고, 고치는 다시 나비나 나방으로 변하듯이 버팔로 빌은 그것처럼 탈피를 꿈꾼다. 성전환을 하고싶은 버팔로 빌은 성전환 수술을 시도했지만 세 곳의 병원에서 퇴짜를 맞게 되고 몸집이 큰 여자들을 납치하여 그 여자들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으로 변화를 대신하려 한다. 아버지가 없는 버팔로 빌은 자신의 방식으로 통과의례를 치르려 하지만 그것은 실패한 성인식이고, 어른이 되지 못한 버팔로 빌에게 찾아올 것은 죽음 뿐이다.


스탈링은 어릴적 도축업장을 하는 친척집에 보내졌다가 이른 새벽 양들의 울음에 잠이 깨어 양들이 도축당하는 장면을 보고 그것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목자였던 스탈링은 어린 양을 구하지 못했고 거기서 오는 죄책감과 순서를 기다리며 차례로 죽어가는 약한 양의 모습에서 고아라는 약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느낀 공포가 상원의원 딸이라는 희생양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강하게 발현되는 것 같다. 상원의원의 딸을 구하면 어릴 때 구하지 못한 양들도 모두 무사해지고 어두운 새벽에 양들의 울음소리에 깨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는 믿음. 스탈링은 상원의원의 딸을 구하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버팔로 빌을 살해하고 만다. 스탈링이 남성중심의 조직에 여자라는 신분으로 어려움을 겪듯이 버팔로 빌 역시 스스로 성전환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세상은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고 남성중심의 세상에 안착하지 못한 상태다. 버팔로 빌도 스탈링처럼 고통을 받고 있는 양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을 인도해주는 목자가 없어서 늑대의 탈을 덮어쓰게 된 것일뿐. 그렇다면 스탈링은 상원의원의 딸이라는 양은 구했지만 버팔로 빌이라는 양은 구하지 못한 셈이다. 스탈링은 양을 모두 구하지 못했고, 소설에서는 단잠을 자는 스탈링의 모습으로 끝을 맺지만 어쩌면 스탈링에게 울리던 양들은 울음을 멈추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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