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 것 - 나를 잃지 않고 관계를 단단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김달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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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많은 것을 강요당하고,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만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사랑은 아파도 참고, 견디고, 불합리한 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면 당연히 너의 감정보다는 나의 감정을 먼저 생각해달라고 하고, 사랑한다면 나게에 맞춰주길 바라고, 내가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내어도 날 사랑한다면 그런 것들을 모두 받아줘야 하고, 내가 투정을 부리면 달래주고, 힘들땐 도와주고, 어려울 땐 힘이 되어주고, 내 기분을 맞춰주고,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려도 날 사랑한다면 너만은 내 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때로는 그런 속에서 나를 잃기도 하고, 크게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자존감을 잃고 자존심을 다치고, 자신감을 갉아먹게 된다. 사랑은 사랑의 가장 큰 방해물인 셈이다.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 것] 책의 제목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흔히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라는 둥, 상대를 위해 아픔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런 프레임 때문에 내가 아픈 사랑을 많이 한다. 상처받고 아파도 그게 사랑이란 생각으로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해 가슴 속으로 상처를 쌓아가며 곪은 가슴을 부여안고 슬프고 아픈 사랑을 이어간다. 사랑한다고 내 마음이 상처받는 것을 당연시 한다면 그 사랑은 누굴 위한 것일까? 그것이 사랑인 것일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관계를 이어나가는 일은 많이 있다. 머리로는 이미 끝난 일이지만 마음으로는 놓아주지 못하고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불안해할 때, 갑자기 허무해지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 조금씩 내 안의 자아는 사라져가고, 자존감을 잃어간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지만 힘든 사랑이 끝나고 나면 모든게 나 때문이라는 자책을 할 때가 많다. 내가 더 참을 걸, 내가 조금 더 이해할 걸, 그때 그렇게 화내지 말 걸. 내가 부족해서 이렇게 된 것만 같아서 이별 후에도 오랜 시간을 힘들어한다. 아픈 사랑은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트리고 오래 참고 견딜수록 멘탈은 산산히 부숴지고, 이별의 고통은 오래 머무르며 나를 괴롭힌다. 저자는 나를 잃지 않고 관계를 단단하게 지키기 위해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랑을 붙잡기 위해 상처를 허락하는 것은 사랑을 떠나보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 어떤 관계도 당신보다 소중할 순 없습니다.
상처 주는 그 사람 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나를 잃으면서까지 그의 곁에 있지 마세요.
제발 아프게 사랑하지 마세요


저자는 너보다 나를 생각해야 하고, 생처주는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존감을 깎고, 나를 잃어가면서 사랑과 관계를 위해 나보다 그 사람을 1순위에 올려놓는 사람이 많다. 모든 관계는 중요하지만 그 관계의 중심은 자신이 되어야 한다. 너와 나가 중심이 되어야 우리가 될 수 있다. 나를 죽여가며 너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 관계는 이미 '우리'가 되지 못한다. 그 사람을 중심에 두고 나를 거기에 맞추기만 한다면 결국 상처입는 건 자신이고 기울어진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내가 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진짜 맞는지를

내가 마음을 주는 만큼
상대도 그만큼의 애정을 내게 주는지를


상대가 내게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정답은 하나다. 나만 사랑한 거다. 사랑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구걸하는 사랑은 동정이지 사랑이 아니다. 나는 사랑을 구걸받아야 할 정도로 작지 않다. 누군가를 만나는 동안 지속적으로 신경 쓰이는 문제가 있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면 잠시 관계에 쉼표를 찍고 이 관계를 이어가야 할지, 그럴 필요와 가치가 있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자고 한다. 사랑은 둘이서 하는 것이다. 진짜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신경 쓸 일을 만들지 않는다. 만약 계속 신경 쓸 일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런 사랑이라면 더 이상 혼자 마음 주고 아파하고 힘들어하지 말자. 아파하며 흘려버리는 시간과, 낭비되는 감정과, 깎아내리는 자존감이 아깝다.

혹시 나 혼자 너무 퍼다 주기 식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희생과 침묵만이 답은 아니다
사랑받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랑해줄 필요가 없다


어느 순간 연락은 줄어들고, 만나면 짜증을 내고,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의 마음이 식어가는 것이 느껴질 때가 온다. 그럴수록 내가 먼저 연락하고, 더욱 양보하고, 많이 이해하려하고, 잘못이 없어도 사과를 하며 자발적 을의 입장이 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이기 때문에 더 호감을 가질수록 호구가 되어 을의 입장이 되기 일쑤다.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속상한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면 나를 떠날까 걱정이 되기도 하겠지만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불편한 마음을 참게 되면 그렇게 얻은 가짜 평화는 오래 갈 수가 없다. 을의 관계를 벗어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본인을 지킬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선의를 베풀고, 그 선의에도 한계가 있을 말하라고 한다. 이것조차 자신이 없다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자존감을 지켜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기다리라고 한다. 연애에서 을이 되지 않고 나를 지키려면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소중해져야 한다.


본인의 가치는 남들의 평가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내가 내 가치를 믿는 만큼
남들에게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알고
다앙하게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연애는 물론 인간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관계를 망치기 쉽다. 자존감은 단순히 나 하나만 사랑하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높아진다. 나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세상의 눈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전까진 타인 역시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결국 많은 관계의 해답이 된다. 중요한 건 나이고, 필요한 건 자존감이다.


저자는 연애의 잘못된 여러 상황을 짚어가며 하나씩 해답을 말해준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연애를 하려면 마음이 단단해져야 한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삶의 1순위에 올려놓아서도 안되고, 스스로 깎아내리지도 말라고 조언한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되고,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그동안 나의 잘못된 행동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반성하게 한다. 그 많은 시간동안 왜 그렇게 힘들어했었는지, 왜 그렇게 아파했었는지 진단을 받는 기분이 든다. 연애에 아파하고, 힘들어한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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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환상적 모험을 통한 신랄한 풍자소설, 책 읽어드립니다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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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는 아마 어릴 적에 아동용 소설로 한번쯤 접해봤을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소설이다. 책이 아니어도 소인국과 대인국 이야기는 만화나 영화로 한번쯤 봤을만한 내용이고 걸리버의 이야기는 많은 콘텐츠에서 차용되어 사용되기 때문에 굉장히 익숙하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나 포털 야후라는 이름도 걸리버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걸리버가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소인국과 대인국의 이야기만 알려졌을 뿐 그 이후의 이야기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동용 소설로 접하고 소인국과 대인국을 오가는 모험 이야기로만 알고 있을텐데 사실 걸리버 여행기는 당시 유럽 사회를 비판한 풍자소설이다. 1, 2부인 소인/대인국 이야기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만 비판과 풍자는 3, 4부에 집중되어 보여진다. 1, 2부는 익숙한 내용이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3부가 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풍자와 비판이 시작되면서 내용이 조금은 어렵고 심각해지다보니 재미는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재미는 없지만 흥미는 생기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걸리버 여행기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작품으로 무려 18세기에 쓰여진 의외로 굉장히 오래전에 나온 이야기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영국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정확히는 아일랜드인이고 이 당시는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 시절이었다. 그러니 조너선 스위프트를 영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한국인 작가를 일본인으로 소개하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아일랜드인이었기 때문에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국을 가열차게 비판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건 걸리버 여행기를 제대로 읽기 위해선 17~18세기의 유럽의 상황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비판과 풍자라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지 비판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원류를 알지 못하면 무엇을 비판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가령 사회비판과 풍자의 최고봉이라고 알려진 동물농장은 소련의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소련의 역사와 인물들을 그대로 매칭하고 있지만 소련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지금의 한국 사회와 한국의 역사에 대입하여 비판의 텍스트를 읽어낼 수도 있지만 걸리버 여행기는 철저하게 당시의 시대상과 유럽의 상황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의미를 알기 어렵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당시의 유럽의 정치와 사회, 17세기에 시작된 당시 자연과학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담겨 있다. 소인국에서는 줄 위에서 춤을 잘 추는 사람이 관리 등용에 된다거나 당파와 파벌이 많아지면서 정치가 혼란하게 되었고, 삶은 달걀 껍질을 깨는 순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벌인다는 등 소인/대인국 편에서도 당시 유럽의 정치상황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자연과학과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의 풍자와 본격적인 사회비판은 주로 라퓨타편에서 나온다. 라퓨타인들은 머리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졌고, 한쪽 눈은 하늘을 향하고, 다른 쪽 눈은 안쪽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옷에는 해, 달, 별의 천체와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등의 악기가 수놓아 있었다. 하늘을 보는 눈은 하늘을 관찰하는 천문학자를 뜻하고, 안쪽으로 향한 눈은 내면을 관찰하는 철학자를 의미한다. 복장에 그려진 천체의 그림 역시 천문학자를 의미하고, 악기는 수학자를 뜻하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음악, 천문학, 철학, 수학을 연구했는데 그것의 메타포이다. 이들은 늘 깊은 생각에 빠져있어서 발성기관과 청각기관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말을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그래서 하인들이 오줌통이 달린 막대기로 눈과 귀를 쳐줘야 생각을 멈추고 듣고 보고, 듣고, 말을 한다. 얼마나 대단한 철학을 하길래 보고, 듣고, 말하는 것도 못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하늘과 내면에만 관심을 가지느라 정말 자신이 속한 주위의 상황과 현실을 보고 듣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자기가 통제하는 하인에 의해 듣고, 말하는 것을 통제당한다. 아무리 생각이 깊고 철학적 고찰을 한들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에게 휘둘리며 말해야 할 때, 보고 들어야 할 때는 통제당하는 것이다. 당시의 유럽의 과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철학자들이 현실과의 괴리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공중에 떠다니는 성이라는 설정도 공중에 떠다닐 정도의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고 내가 서 있는 곳과 현실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의미가 있다.


라퓨타 성에서는 수학과 기하학, 음악을 중요시해서 심지어 식사 때 음식의 모양에조차 마름모꼴, 정삼각형 등 기하학적 모양의 음식과 피들, 플루트, 오보에 모양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라퓨타인들에겐 수학, 기하학, 음악이 삶을 이끌어가는 원리이다. 그리고 이들은 건축기술은 형편없다. 응용기하학을 천박한 것으로 간주하여 이론은 잘하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서툴고 둔하다. 그리고 수학과 음악을 제외한 문제에 있어서 이들은 느리고 조리있게 설명도 못하고, 의견이 일치하지도 않는다. 상상, 공상, 창의력도 없고 그걸 표현하는 말조차 없다. 그들의 정신과 마음은 오직 수학과 음악에 완전히 갇혀 있다.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실용성도 없는 이론적 학문에만 매달리고 있으며 그 외에는 잘하는 것도 없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는 당시의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따지고, 국책을 비판하며, 정당의 의견에 대해 열정적으로 논쟁을 벌인다고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그리고 아예 유럽의 수학자들도 대놓고 비판하기도 한다. 수학과 정치 사이에 아무런 유사성도 없는데 자질도 없는 학문을 한답시고 정치에 관여하고, 정치비편을 하며 잘난척한다고 유럽의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걸리버는 라퓨타를 떠나 '발니바르비'의 수도 '라가도'로 가는데 그곳은 농지는 비옥하나 곡식이나 작물이 재배되고 있지 않고, 처참한 농지, 황폐한 집, 사람들의 몰골은 엉망이고 비참하고 가난하였다. 라가도의 몇몇 사람들이 라퓨타를 방문하였다가 거기서 어설픈 수학지식과 라퓨타인들의 잘못된 삶의 방식을 배워와서 기존의 방식을 부정하고, 예술, 과학, 언어, 기술을 새로 세우려고 했다가 완성된 계획도 없이 실행하다가 나라는 비참할 정도로 황폐해졌다. 실용학문도 아닌 이론학문에만 매달려 현실을 보지 못하면서 정치에 관여하고, 사회를 이끌려고 하는 지식인은 물론 그런 사람을 쫓아 어설픈 지식을 따라하는 가짜 지식인도 결국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걸리버가 다음으로 간 곳은 말의 나라 휴이넘이다. 휴이넘은 말의 형상이지만 인간 이상의 지성을 가진 존재이고, 말들의 나라에서 이성 없는 인간은 야후라 불리는데 야후들은 탐욕스럽고, 타락하고, 음탕하고, 추악하고, 역겨운 존재로 묘사되는데 영국인의 생활과 습관, 행동거지가 야후와 다를바 없고, 야후들은 영국인들이 전쟁을 벌이는 것과 똑같은 이유 때문에 싸운다며 영국인을 야후에 비유하여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소인국이 인간의 우월감과 오만함을, 대인국이 인간의 왜소함을 나타내었고, 라퓨타에서는 과학자, 철학자, 수학자, 음악가와 같은 지식인에 대한 비판을 했다면 휴이넘에서는 영국인과 인간 본성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하고 하고 있으며 비판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하고 직설적으로 나타난다.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하 아동용 동화나 모험 소설이 아니었고, 당시 사회와 정치, 문화를 강하게 비판하는 아주 신랄한 풍자소설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조너선 스위프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 마지막 편인 휴이넘의 세계에서의 비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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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 최신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한 명작의 백미, 책 읽어드립니다
조지 오웰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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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은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본것과 아동용 소설을 본것이 전부로 원작을 읽은 적은 없다. 풍자와 사회비판의 끝판왕이라고 알려졌지만 어릴 때 읽었던 아동용 문학책과 만화 영화로는 풍자적인 요소를 읽어내는 것은 힘들었다. 사회 비판이라는 것을 알기도 어려운 나이었고, 그저 돼지와 온갖 동물이 나오는 재미있는 소동극으로만 봤지 거기에 사회주의나 전체주의의 함의와 은유를 읽어낼리 만무했다.


동물농장은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대놓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알려져있다. 소설의 무대인 동물농장은 사회주의 사회인 소련이고, 돼지들은 스탈린이나 마르크스의 상징이며, 농장주 존스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렇기에 러시아혁명이나 소련의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이 소설의 정확한 의미를 알겠지만 소련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은유와 풍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회주의의 기치아래 만들어진 소련은 몰락했고, 사회주의 체제는 실패한 이념이 되었다. 이념과 체제가 바뀌었으며, 사회는 빠르게 변했고, 더 이상 냉전시대도 아니다. 이렇게 많은 것이 변한 21세기에 과거 사회주의 사회를 비판한 동물농장을 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 때의 체제와 가치관을 풍자한 내용이 지금 사회에서도 똑같이 풍자의 의미로서 읽혀질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사회주의 체제는 붕괴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꼬집던 똑같은 문제를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복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 적어도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는 동물농장과 같은 사회문제를 읽어낼 수 있다. 동물농장은 사회주의 비판이기도 하지만 전체주의 사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해방 이후 전체주의적 사회였던 대한민국에서도 그와 같은 메타포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여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따라가며 동물농장을 읽어보자.


늙은 돼지 메이저는 인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동물을 착취하여 배를 불리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몰아내면 동물들만의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중노래로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고양시키고, 동물들끼리 단결하게 만든다. 여기서 메이저의 연설을 눈여겨 볼만한데, 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선언의 마지막 구절 '프롤레타리어여 연대하라'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 메이저가 죽자, 그 유지를 이어받은 세 마리 돼지-지혜로운 스노볼, 권력욕에 불타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똘마니 스퀼러가 나타나 동물들을 이끈다. 어느날 농장주가 술에 취해 먹이 주는 것을 잊자 동물들이 굶주림에 분노하여 봉기하여 농장주를 내쫓는다. 혁명을 성공한 동물들은 농장 이름을 동물농장으로 바꾸고, 7계명을 만들어 공표한다. 배고픔은 민중을 가장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모든 농민 봉기의 원인은 배고픔이었다.


혁명에 성공한 동물들은 스노볼과 나폴레옹을 지도자로 하여 각자 자신의 능력대로 노동을 하고, 식량을 배급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돼지들은 점점 노동에서 열외하여 다른 동물들을 지시하며 편하게 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쫓겨난 농장주는 사람들을 모아 농장을 찾기 위해 처들어오지만 동물들은 사람들을 무찌르고 농장을 지켜낸다. 동물들은 이를 '외양간 전투'라고 부르며 승리를 축하한다. 그러나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서로를 견제하고 대립하기 시작한다. 이상주의자였던 스노볼은 동물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자급자족을 위해 풍차를 지을 것을 입안하지만 나폴레옹이 그것을 반대하고 몰래 개들을 풀어 스노볼을 숙청하는데 이는 이승만이 서북청년단을 이용해 김구를 숙청한 것과 유사하다. 권력욕을 가진 음흉한 나폴레옹이 현명한 지도자였던 스노볼을 추방시키듯, 권력욕에 빠진 이승만이 김구선생을 암살한 것이다. 그리고 스퀼러는 나폴레옹을 옹호하고 스노볼을 음해했고, 동물들은 그 말을 믿고서 스노볼이 나쁜 돼지였다고 믿게 된다. 박정희가 정치적 라이벌인 김대중을 죽이기 위해 빨갱이라고 정치공작을 하고 그 말을 아직까지 굳게 믿고 있는 것과 같다.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풍차 계획이 원래 자기 아이디어였다며 동물을 속이고 풍차 만드는 국책사업을 시작한다. 풍차건설은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을 떠올리게 한다.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경기를 부양하고, 국민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고속도로 건설이라는 국책사업을 했고, 이명박도 4대강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국책사업을 했었다. 풍차를 짓고 식량생산을 위한 노동을 하며 동물들의 노동 강도는 점점 심해져만 가지만 동물들은 그것에 길들여져 갔다. 마치 박정희가 자신의 정치자금, 돈줄을 대주던 쌍용 김성곤이의 요청에 남아도는 시멘트 악성재고를 처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각 마을마다 시멘트만 내려보내고 노동력을 동원해 국책사업을 벌린 새마을 운동이 농촌을 살렸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어처구니 없게도 개인의 재산과 노동력 착취를 미화하고 찬양하거나, 환경파괴의 주범인 4대강이 홍수를 방지하고, 농업용수에 유용하게 사용된다고 굳게 믿으며 4대강 사업을 미화하고 지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돼지는 금지사항이었던 인간과의 거래를 시작하였고, 역시 금지사항이었던 인간의 집에 들어가 인간의 침대에 누워자고, 옷도 입고, 술도 마신다. 그럴 때마다 모든 동물을 위한 7계명은 돼지를 위한 7계명으로 멋대로 바뀌었고, 그것은 돼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내용으로 고쳐졌다. 이승만은 불법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했었고,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통해 영구집권을 꿈꾸었다. 전두환도 헌법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을 노렸다. 돼지들이 7계명을 바꾸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독재자들은 멋대로 헌법을 바꾸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습성을 가진다.


그러던 어느날, 풍차 건설 중 바람에 의해 풍차가 무너지자 나폴레옹은 이를 스노볼의 소행으로 몰아가며 동물들의 분노를 외부로 돌린다. 한국의 보수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빨갱이 타령, 레드 컴플렉스를 건드리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농장의 식량 생산이 감소하여 동물들이 굶주리자 나폴레옹은 스노볼 탓을 하며 공포정치를 한다.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하기 위해 외부의 적인 북한을 이용하며 반공이라는 공포정치를 했었다. 이명박 시절 사자방으로 대변되는 말도 안되는 사기행각으로 나라살림이 거덜나자 모든걸 전임 대통령인 노무현 탓을 하였다. 정권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소 고발을 하고 국정원을 동원해 민간인 사찰을 하고, 집회에 나온 사람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등 공포정치를 하였다.


나폴레옹은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계명에도 불구하고 개들을 이용해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불만을 품은 세력들은 첩자로 몰아 죽여버린다. 이승만은 서북청년단을 동원해 수많은 제주 시민을 죽였다. 박정희는 중정을 동원해 수많은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으며, 전두환은 광주의 시민에게 총을 쏘았고, 백골단을 동원해 시위하는 우리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 이 독재의 시절은 동물농장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오랜시간 동물들이 불러온 '영국의 동물들' 노래도 금지시키는데 이명박 박근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금지시킨 것과 같다.


돼지는 점점 동물들에게 더 심하게 노동을 시키고 배급은 줄이는데 말 복서는 묵묵히 돼지의 압제에 반발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많이, 열심히 일을 한다. 복서는 다른 동물을 위해 헌신하지만 오히려 복서의 그런 행동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돼지의 독재에 침묵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열심히 일하는 복서가 독재에 수긍하고, 불평 불만 없이 앞장서서 일을 해버리니 다른 동물들은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권력가의 불법적인 행동에도 입을 다물고, 아둔하게도 독재자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대다수의 민중의 모습이지만 이런 자기 희생이 과연 동물농장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김대중은 옳지 않은 일엔 벽을 보고라도 욕을 하라고 했다.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는 것, 행동하지 않는 자는 악의 편이라 했다. 당나귀 벤자민은 혁명에 가담하지도 혁명에 반대하지도 않는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당나귀이다. 그는 '매사 불변한다'는 신념과 냉소주의, 무관심한 경향을 가진 지식인의 메타포이다. 침묵보다 이런 무관심이 더 나쁘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라고 말했고, 노무현은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라.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에게 있다고 강변했다. 자기희생으로 열심히 일을 했던 복서도, 무관심했던 벤자민도 모두 동물 농장을 망치고 있던 인물이었다. 복서가 중상을 입자 나폴레옹은 병원으로 보낸다고 하고서 도축장으로 팔아넘긴다. 우매한 민중의 결말은 이렇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 돼지들은 두발로 걷고, 사람처럼 행동하고, 다른 동물들 위에 군림한다. 돼지는 주위 농장의 인간을 초대하여 파티를 여는데 밖에서 동물들이 안을 들여다보니 어떤게 사람이고 어떤게 돼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동물을 위해 혁명을 했다던 세력은 권력을 가지게 되자 자신들이 혁명으로 축출한 권력자와 똑같이 변해버렸다. 결국 모든 동물을 위한 혁명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위한 쿠테타였던 것이다. 박정희의 5.16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민중을 위한 혁명은 민중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정 세력에 의한 쿠테타는 결국 그 세력이 권력화되는 수단에 불과하다. 진정한 민주사회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촛불혁명과 같은 시민에 의해 주도되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은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 동물농장의 동물들처럼 인격과 자유의 탄압에 침묵하고, 독재에 항거하지 않는다면 권력층은 부패하고, 민중은 스스로 억압당하는 것을 허락하는 셈이다. 권력층의 부패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의 집단지성 뿐이다. 멍청하게 독재자, 권력자의 빨갱이 타령이나 슬로건에 세뇌당하고 있으면 안되는 것이다.


소련의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직접적인 풍자극이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반공국치로 대변되는 한국식 전체주의에 대한 의미로도 읽어낼 수가 있어서 우리에겐 더욱 와닿지 않을까 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한국의 독재권력과 민중억압, 쿠테타 그리고 시민혁명 등을 대입하며 읽는다면 조지오웰이 말하려고 했던 원래 의미와는 또 다른 한국식 동물농장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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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인원 - 끝없는 진화를 향한 인간의 욕심, 그 종착지는 소멸이다
니컬러스 머니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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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세계적 규모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다. 공장은 멈추고, 도로에서 차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은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도시는 물론 휴양지 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았던 모든 곳에서 사람의 흔적이 지워졌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자 야생동물들이 서식지로 돌아오거나 대기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 야생 동물들은 사람이 사라진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고, 맑아진 강물엔 고기들이 돌아왔으며, 환경오염과 인간들의 간섭으로 인해 서식지를 떠났던 동물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케이스도 보고되었다고 한다. 또 교통량과 공장 가동 감소되면서 대기환경도 크게 개선되었다. 지구 대기의 오염물질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올 봄에는 매년 우리를 괴롭히던 미세먼지 대신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인류에겐 코로나가 살인 바이러스지만 지구에겐 인류가 기생충이었던 셈이다.


인류는 우리가 만든 과학 기술과 문명의 발전으로 쾌적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해 왔지만 그로 인해 지구적 차원에서는 환경 오염과 생물의 멸종을 초래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우월하다고 말하는 인류가 바로 자신이 만든 그 과학기술로 인해 인간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의 터전인 지구의 생태계와 문명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심과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진화를 해 왔고 그 결과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진화라는 프로세스는 세대가 거듭될수록 환경에 적응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는 뜻인데 인간만 그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여, 환경에 적응하기보단 환경을 정복하려는 쪽으로 진화를 해온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이런 사고방식에서 자아도취와 자기파괴의 나르시시즘이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신의 형상을 한 피조물이고, 특별한 존재이며,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 우월하고, 뛰어나고, 영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유전자는 미개한 선충의 유전자 수와 크게 다르지 않고, 유전학적으로도 버섯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리 뛰어날 것이 없는 평범한 존재이다. 이런 인간이 이기심에 지구와 다른 지구상의 생명체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유전적으로도 별반 뛰어나지 않고,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 현명한 존재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책의 제목은 인간이 그런 별것 아닌 존재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유인원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저자는 이기심에 자신만을 생각하며 파괴행위를 멈추지 않는 인간은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호모 사피엔스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한다. 대신 자기 중심적인 인간이란 뜻의 '호모 나르키소스'로 불리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처럼 인간의 자기파괴적인 모습은 벌써 몇 십년 전부터 문제가 되어왔었다. 7~80년대에서부터 영화나 에니메이션의 주제로 환경파괴나 과학기술로 멸망한 지구와 같은 이야기가 있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자기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기술개발은 오래전부터 우려하던 문제이고, 멈추지않고 점점 가속화되어 왔던 것이다. 그동안 많은 학자와 환경 단체들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무시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만큼 우리의 멸망의 시계는 계속 흐르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남은 시간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계속 기후변화가 생기고, 생태계에 이상이 발견되고 있지만 인류는 개발을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계속 급속도로 줄여나가고 있다.


얼마전 바다 거북이의 코에 박혀있던 빨때를 빼내는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영상으로 충격을 받았고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 이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우리별 지구와 그 안의 무수히 많은 생명들, 그리고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이기적인 행동을 멈추어야만 한다. 이제는 이기심이 아니라 공존을 생각해야할 때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우리에겐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우리 이기적인 유인원이 지구를 망쳐버리기 전에 이기심을 버리고 환경과 생명을 생각하고 공생하여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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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 말하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화법
박민영 지음 / 책들의정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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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 한마디의 영향력은 크다. 좋은 말은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기도 하지만 나쁘고 부정적인 말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상대방을 상처입히고,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고, 원수가 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어릴적 부모에게 들었던 말 한 마디가 아이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바꾸게 만들거나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도 있을 만큼 말의 중요성은 크다고 하겠다. 문제는 본심과는 다르게 잘못된 언어 습관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부부, 연인, 직장동료 등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주위의 모든 사람이 그 대상이며 우리는 잘못된 말과 언어습관으로 상대방에게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대방을 상처주면 곧바로 후회하고 그 상처의 몇 배만큼 스스로 상처입게 된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정도가 자존감의 정도를 결정한다'는 책속의 말처럼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은 물론 상대방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대화법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좋은 대화법을 모르는 사람을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느끼고, 말실수를 했던 기억에 말을 줄이게 된다. 자신감이 없이 할말을 하지 못하고, 속에 담아두고 참다가 마지막에 터트리게 되는데 참고 참다가 말을 하면 격해진 감정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일도 허다하다. 때로는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거르지 않고 말을 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말하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서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다면 인간관계는 한층 좋아질 것이고, 자신의 말을 어려움 없이 당당하게 잘 표현한다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행복감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말하기 습관은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혹은 자신의 말하는 방식에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 책은 이런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대화하는 법을 말해준다.


책에서는 대화 중 상처를 줄 수 있는 여러가지 경우를 산정해놓고 먼저 잘못된 대화법을 보여준 후 그것을 대체할 좋은 대화법을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책에 나오는 내용들을 요약하여 몇가지 소개하면 돌려서 말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므로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을 하고, 명령보다는 부탁을 해야 한다. 부탁을 한 후엔 감사인사를 해주고, 요청은 미리 말을 해야한다. 돌직구란 이름의 무례한 말이나, 농담이라며 웃자고 상처주는 막말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막말을 한 사람들은 생각없이 한 말이라며 사과하지만 말은 생각을 하고 해야 하는 것이다. 막말하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불편해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막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있거나, 사회경험이 적거나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유심히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막말을 많이 한다면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지 생각해보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저자는 무심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려는 습관을 들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한다.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되면 자책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게 심한 말을 했다는 것과 상처를 줬다는 생각에 후회하고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데 그럴 때 '난 왜 이럴까'하고 자책만 한다면 결코 그 언행은 고쳐지지 않는다. 저자는 '난 왜 이렇지?' 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생각없이 말을 뱉고서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면 내가 그런 말을 왜 했을까?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자기 반성과 자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잘못에 자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고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을 했어야 했는지, 어떤 식으로 행동했어야 옳았을지 생각을 해두어야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다시 실수하지 않고 제대로 된 언행으로 대처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책에는 비난, 변명, 경멸, 무시, 담 쌓기 와 같은 관계를 악화시키는 잘못된 대화법을 소개하고, 그런 마음을 다치게 하는 발언을 방지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에도 지켜야 할 몇 가지 싸움의 규칙을 일러준다. 또 대화의 단절을 불러일으키는 회피형 인간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유형 중 한가지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공격형'이고 또 한가지는 속마음이나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회피형'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회피형이 더 나쁘다라고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은 싸우는 것이 싫고, 비난 받는 것이 싫어서 대화 자체를 피하고, 참거나 도망가다가 결국 관계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 역시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많이 공감되고 반성하게 되는 조언이었다. 싸우는 것이 싫어서 회피했는데 그것이 더 큰 싸움을 불러일이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회피형 인간은 제대로 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나면 이후로도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로 갈등을 풀어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서로 양보하는 커플, 한쪽만 양보하는 커플, 각자 주장하는 커플 중 신뢰감이 가장 높은 쪽은 서로 주장을 하는 커플이라고 한다. 서로가 주장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서로 맞춰나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케이스보다 갈등 해결도 쉬울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도 살펴봤듯이 원하는 것을 돌려서 말을 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므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 좋은 대화법이다. 결국 대화가 갈등 해소에 가장 중요한 솔루션이 된다는 것이다.


또 최근 새로운 갈등의 매체로 떠오른 카톡 등의 메신저를 이용할 때의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잘못된 대화법과 조심해야 할 점 등을 다루는 것도 시의적절하고 도움이 된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대화법에 대한 조언도 주목할만 하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친구나 가족 간의 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당연히 대화의 기술과 관계의 기술도 달라야 한다. 직장에서 지켜야 할 대화법과 주의해야 할 언어습관에 대해서 알아보고, 직장문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대화법과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면접 시의 언행에 대한 조언은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도움이 되므로 평소에도 책의 조언대로 꾸준히 연습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의 특징은 후회하지 않는 대화법을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잘못된 말을 하는 사람의 심리까지 알려준다는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다. 저자는 말의 기술보다 관계의 기술이라는 보다 폭넓은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화법이 서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심리를 분석하고, 심리학적으로 잘못된 언행을 하는 사람을 고찰하고 원인을 찾아내려 한다. 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의 발현이므로 결국 말을 하는 사람의 언행은 그 사람의 심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언행을 고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기능적이고 방법론적인 대화법을 지도해주고, 한편으로는 관계에 대한 심리분석과 상담도 덧붙이고 있다.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는 심리와 성격, 성향을 분석함으로서 그것을 고칠 수 있게 도와준다. 대화법이라는 측면과 심리적인 측면을 모두 다루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어서 잘못된 언어습관와 잘못된 인간관계의 행동까지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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