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 환상적 모험을 통한 신랄한 풍자소설, 책 읽어드립니다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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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는 아마 어릴 적에 아동용 소설로 한번쯤 접해봤을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소설이다. 책이 아니어도 소인국과 대인국 이야기는 만화나 영화로 한번쯤 봤을만한 내용이고 걸리버의 이야기는 많은 콘텐츠에서 차용되어 사용되기 때문에 굉장히 익숙하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나 포털 야후라는 이름도 걸리버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걸리버가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소인국과 대인국의 이야기만 알려졌을 뿐 그 이후의 이야기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동용 소설로 접하고 소인국과 대인국을 오가는 모험 이야기로만 알고 있을텐데 사실 걸리버 여행기는 당시 유럽 사회를 비판한 풍자소설이다. 1, 2부인 소인/대인국 이야기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만 비판과 풍자는 3, 4부에 집중되어 보여진다. 1, 2부는 익숙한 내용이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3부가 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풍자와 비판이 시작되면서 내용이 조금은 어렵고 심각해지다보니 재미는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재미는 없지만 흥미는 생기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걸리버 여행기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작품으로 무려 18세기에 쓰여진 의외로 굉장히 오래전에 나온 이야기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영국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정확히는 아일랜드인이고 이 당시는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 시절이었다. 그러니 조너선 스위프트를 영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한국인 작가를 일본인으로 소개하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아일랜드인이었기 때문에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국을 가열차게 비판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건 걸리버 여행기를 제대로 읽기 위해선 17~18세기의 유럽의 상황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비판과 풍자라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지 비판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원류를 알지 못하면 무엇을 비판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가령 사회비판과 풍자의 최고봉이라고 알려진 동물농장은 소련의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소련의 역사와 인물들을 그대로 매칭하고 있지만 소련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지금의 한국 사회와 한국의 역사에 대입하여 비판의 텍스트를 읽어낼 수도 있지만 걸리버 여행기는 철저하게 당시의 시대상과 유럽의 상황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의미를 알기 어렵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당시의 유럽의 정치와 사회, 17세기에 시작된 당시 자연과학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담겨 있다. 소인국에서는 줄 위에서 춤을 잘 추는 사람이 관리 등용에 된다거나 당파와 파벌이 많아지면서 정치가 혼란하게 되었고, 삶은 달걀 껍질을 깨는 순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벌인다는 등 소인/대인국 편에서도 당시 유럽의 정치상황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자연과학과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의 풍자와 본격적인 사회비판은 주로 라퓨타편에서 나온다. 라퓨타인들은 머리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졌고, 한쪽 눈은 하늘을 향하고, 다른 쪽 눈은 안쪽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옷에는 해, 달, 별의 천체와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등의 악기가 수놓아 있었다. 하늘을 보는 눈은 하늘을 관찰하는 천문학자를 뜻하고, 안쪽으로 향한 눈은 내면을 관찰하는 철학자를 의미한다. 복장에 그려진 천체의 그림 역시 천문학자를 의미하고, 악기는 수학자를 뜻하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음악, 천문학, 철학, 수학을 연구했는데 그것의 메타포이다. 이들은 늘 깊은 생각에 빠져있어서 발성기관과 청각기관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말을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그래서 하인들이 오줌통이 달린 막대기로 눈과 귀를 쳐줘야 생각을 멈추고 듣고 보고, 듣고, 말을 한다. 얼마나 대단한 철학을 하길래 보고, 듣고, 말하는 것도 못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하늘과 내면에만 관심을 가지느라 정말 자신이 속한 주위의 상황과 현실을 보고 듣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자기가 통제하는 하인에 의해 듣고, 말하는 것을 통제당한다. 아무리 생각이 깊고 철학적 고찰을 한들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에게 휘둘리며 말해야 할 때, 보고 들어야 할 때는 통제당하는 것이다. 당시의 유럽의 과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철학자들이 현실과의 괴리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공중에 떠다니는 성이라는 설정도 공중에 떠다닐 정도의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고 내가 서 있는 곳과 현실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의미가 있다.


라퓨타 성에서는 수학과 기하학, 음악을 중요시해서 심지어 식사 때 음식의 모양에조차 마름모꼴, 정삼각형 등 기하학적 모양의 음식과 피들, 플루트, 오보에 모양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라퓨타인들에겐 수학, 기하학, 음악이 삶을 이끌어가는 원리이다. 그리고 이들은 건축기술은 형편없다. 응용기하학을 천박한 것으로 간주하여 이론은 잘하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서툴고 둔하다. 그리고 수학과 음악을 제외한 문제에 있어서 이들은 느리고 조리있게 설명도 못하고, 의견이 일치하지도 않는다. 상상, 공상, 창의력도 없고 그걸 표현하는 말조차 없다. 그들의 정신과 마음은 오직 수학과 음악에 완전히 갇혀 있다.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실용성도 없는 이론적 학문에만 매달리고 있으며 그 외에는 잘하는 것도 없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는 당시의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따지고, 국책을 비판하며, 정당의 의견에 대해 열정적으로 논쟁을 벌인다고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그리고 아예 유럽의 수학자들도 대놓고 비판하기도 한다. 수학과 정치 사이에 아무런 유사성도 없는데 자질도 없는 학문을 한답시고 정치에 관여하고, 정치비편을 하며 잘난척한다고 유럽의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걸리버는 라퓨타를 떠나 '발니바르비'의 수도 '라가도'로 가는데 그곳은 농지는 비옥하나 곡식이나 작물이 재배되고 있지 않고, 처참한 농지, 황폐한 집, 사람들의 몰골은 엉망이고 비참하고 가난하였다. 라가도의 몇몇 사람들이 라퓨타를 방문하였다가 거기서 어설픈 수학지식과 라퓨타인들의 잘못된 삶의 방식을 배워와서 기존의 방식을 부정하고, 예술, 과학, 언어, 기술을 새로 세우려고 했다가 완성된 계획도 없이 실행하다가 나라는 비참할 정도로 황폐해졌다. 실용학문도 아닌 이론학문에만 매달려 현실을 보지 못하면서 정치에 관여하고, 사회를 이끌려고 하는 지식인은 물론 그런 사람을 쫓아 어설픈 지식을 따라하는 가짜 지식인도 결국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걸리버가 다음으로 간 곳은 말의 나라 휴이넘이다. 휴이넘은 말의 형상이지만 인간 이상의 지성을 가진 존재이고, 말들의 나라에서 이성 없는 인간은 야후라 불리는데 야후들은 탐욕스럽고, 타락하고, 음탕하고, 추악하고, 역겨운 존재로 묘사되는데 영국인의 생활과 습관, 행동거지가 야후와 다를바 없고, 야후들은 영국인들이 전쟁을 벌이는 것과 똑같은 이유 때문에 싸운다며 영국인을 야후에 비유하여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소인국이 인간의 우월감과 오만함을, 대인국이 인간의 왜소함을 나타내었고, 라퓨타에서는 과학자, 철학자, 수학자, 음악가와 같은 지식인에 대한 비판을 했다면 휴이넘에서는 영국인과 인간 본성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하고 하고 있으며 비판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하고 직설적으로 나타난다.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하 아동용 동화나 모험 소설이 아니었고, 당시 사회와 정치, 문화를 강하게 비판하는 아주 신랄한 풍자소설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조너선 스위프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 마지막 편인 휴이넘의 세계에서의 비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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