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과학 -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꿀잼 과학 이야기 1분 과학 1
이재범 지음, 최준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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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실험실에서 하얀 실험복을 입고 여러가지 약품으로 화학실험을 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혹은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스티브 호킹 같은 천재들이 어렵고 복자한 계산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렵게 과학은 똑똑한 이과 전공자들이 하는 그들만의 리그이며 비전공자, 일반인들과는 상관없는 장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막상 학교에서 과학 과목을 배울 때도 입시 수험용의 이론을 배울 뿐이라서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학교에서 배웠던 과학 지식은 다 잊어버리게 되고, 설령 그런 이론들을 잊지 않고 있더라도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학교에서 배웠던 과학 지식을 써먹을 일은 거의 없다. 과학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져가게 된다.


책은 복잡한 공식이나 어려운 용어 등으로 가득찬 어렵기만 한 과학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과학 개념을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과학책이다. 용어를 외울 필요도 없고, 어려운 공식을 이해할 필요도 없이 생활 속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과학의 원리와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과학적 원리를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도 있는 실용주의 과학책이라 하겠다. 책의 저자는 7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1분과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인 과학 크리에이터라고 하는데 이 책은 그 유튜브 영상의 대표 에피소드를 만화로 풀어내었다.


그렇다. 책은 만화로 되어 있어서 더욱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림체도 깔끔하니 귀염귀염하고, 간간이 재미있는 개드립이 터져서 지루하지 않게 더욱 집중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도 앞서 말했듯이 어려운 과학의 이론적 설명이 아니라 우유는 정말 몸에 좋은지, 운동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 게이 담론, 고양이 이야기, 커피의 약발, 스트레스의 장점, 신이 인간을 만든 과정 같은 별 것 아니지만 한 번 들으면 궁금증과 호기심이 막 생겨나는 주제들이고, 책에 나온 과학적 원리들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여 작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내용이 많아서 굉장히 실용성이 있는 것들이다.


우유 : 건강에 좋다는 음식, 진짜 좋을까?
어릴 때부터 학교에 가면 우유를 하나씩 줬다. 자라나는 성장기 어린이에게 너무나 좋은 완벽한 식품이라며 하나씩 강제로 마시게 했는데 사람이 소젖 따위를 왜 마시냐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느네 과연 우유가 정말 건강에 좋을까? 지금도 우유를 마시면서도 마음으로 좋다고 믿고 마실 뿐이지 정말로 몸에 좋은지, 건강에 이로운지는 모르고 있다. 의외로 인류는 우유보다 발효과정을 거친 치즈와 요구르트를 먼저 먹었다고 한다. 초창기 인류에겐 우유를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서 성인이 쌩으로 우유를 마시는 것은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한다. 당연히 우유를 마시다가 발효기술을 이용해서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다. 그러다가 유당불내증을 이겨낸 사람이 나타났고, 우유를 마실 수 있는 돌연변이들이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우유를 꾸준하게 마시면 사망률과 골절환자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초기 인류에게 우유는 독소라고 했는데 여전히 독으로 작용하고 있었고, 칼슘이 많이 함유되었다고 말하는 우유가 몸의 캄슘을 뺏어가서 뼈가 오히려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학적 분석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라) 좀 충격적인 결과다. 저자는 한때 담배가 건강에 그렇게 해로운 줄 몰랐듯이 우유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을 한다.


야옹 : 고양이가 인간에게 말을 걸 때
한국 고양이는 야옹하고 울고 외국 고양이는 뮤하고 운다. 사실 고양이가 내는 소리는 이것 말고도 훨씬 더 많지만 흔히 떠오르는 발성법이 야옹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고양이 울음소리라고 하면 야옹을 떠올릴까? 야생 고양이들은 야옹 혹은 뮤하고 울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밤에 우는 고양이는 아기 울음소리를 내었다. 야옹하고 우는 것은 고양이들이 인간하고 있을 때만 내는 소리라고 한다. 야옹은 아기 고양이가 엄마의 주의를 끌기 위해 내는 소리라고 한다. 그래서 고양이가 크고나면 그런 소리를 내지 않게 되는데 집고양이들은 먹이를 주는 엄마 같은 집사가 있어서 야생의 소리 대신 계속 집사의 주의를 끌기 위해 야옹하고 운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괜히 관심 받고 싶은 때 아이같은 말투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듯 싶다. 말하자면 고양이가 집사를 향해 야옹하고 우는 것은 며느라 국이 짜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스트레스 : 스트레스는 나쁘기만 한 것일까?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라고 배웠다. 병원에만 가봐도 의사들이 어떤 병이건 죄다 마치 녹음된 테이프를 틀듯이 하나같이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언제나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고, 체지방과 함께 몸에서 떼어내야하는 공공의 적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과거 원시시대 때 인간이 맹수 등을 만나는 위험에 처하면 맞서 싸우거나 도망쳐야 했다. 어느 쪽이건 인간에겐 극도의 스트레스이고 이때 인간의 몸은 싸우거나 도망치기 좋은 상태로 바뀐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않다보니 스트레스로 인해 변화된 신체의 상태가 해소되지 않고 몸안에 축적되는 것이다. 근육은 긴장되고, 혈류를 증가시키기 위해 심장도 빨리 뛰고, 소화기관으로 가는 혈류를 줄이고, 형당 속 당과 콜레스테롤을 높인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당뇨나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의사 말이 틀린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스트레스에 대한 생각의 변화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 방법은 책을 사서 읽어보시길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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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센티 인문학 - 매일 1cm씩 생각의 틈을 채우는 100편의 교양 수업
조이엘 지음 / 언폴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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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문학이 대세이다. TV 유튜브 어딜가나 인문학 강의가 넘치고 인문학 책이 수도 없이 출간되고 있다. 인문학은 단순히 시사나 일반상식을 알려주는 잡학지식이 아니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가 녹아있고,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넓고 방대한 학문이다. 인문학에서 다루는 분야도 많아서 꽤나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라고 하겠다. 인문학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생각의 깊이와 사고의 시간를 깊고 폭넓게 만들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서 당연하다고 믿어온 지식과 진리에 태클을 걸게 만든다.


과거에는 고전들이 이런 역할을 했다. 따지고 보면 위대한 고전을 공부하는 것도 결국 인문학의 한 과정이라고 하겠지만 고전은 어렵고 혼자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가 사실 너무 힘들다. 그래서 요즘은 그것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인문학책으로 대신 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나이가 들수록 어려운 책이 부담스러워지는 이유도 있고,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짤이나 쿠키 같은 짧은 영상과 콘텐츠에 익숙해지다보니 점점 짧고 핵심만 요약해서 보게 되려는 탓도 있는 것 같다.


요는 과거에는 고전 그 자체를 읽었지만 지금은 고전에 설명과 해설을 더해서 그것을 요약하여 새롭게 가공된 형태로 그것을 접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것이 최근의 인문학의 추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서 설명과 해설을 더했다는 것에 방점이 있는데 똑같은 고전이라도 시대에 따라 그것은 다르게 소비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면 과거에는 진리라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빛을 잃고 새로운 가치가 나오거가 기존의 생각을 전복하는 경우도 많다.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바뀌는 시대에 발맞추어서 고전도 개선되고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새로운 고전이라 칭한다.


고전의 새로운 해석이건, 고전의 해체이건, 새로운 진리 체계의 탄생이건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실 반영의 지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소크라테스나 공자가 그 당시의 사회를 배경으로 했던 말에서 현재 사회를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직접적으로 대놓고 현재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가령 소크라테스나 공자, 맹자의 글에서 지구온난화나 신종독감, 조선총독부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는 없으니 고전에만 갖혀있지 말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방식은 아까도 말했지만 요즘 유행하는 짧고 잘 요약된 콘텐츠 형식으로 해야한다.


저자는 총 100가지의 질문으로 다양한 역사, 철학, 문학, 종교, 여러가지 현대의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이슈들까지 건드리고 있다. 공감이나 혐오, 디지털성범죄 같은 말 그대로 요즘 유행하거나 화제가 되고 있는 핫한 주제도 있고, 논란이 되는 판사의 판결, 소년범죄, 인서울 라이프, 극우/빨갱이 논란 같은 지금 시점에서 한번쯤 꼭 생각해봐야할 주제도 있다. 각각의 질문에는 해시태그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키워드를 함께 달아놓아서 핵심키워드를 중심으로 그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한두장을 넘지 않는다. 아주 짧은 글로 되어 있어서 부담없이 읽으며 소소한 지식을 쌓아갈 수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고전처럼 올드한 문장이 아니라 요즘 온라인에서 쓸만한 재미있고 깔끔하게 정리된 글로 되어 있어서 가독성도 좋다. 옛날 글을 인용할 땐 현대어로 바꾸어서 한방에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뭔가 정보를 주는 이런 류의 책들은 읽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름대로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 책은 어렵지 않은 내용에, 쉬운 문체로 되어 있어서 잘 읽히고, 머리속에도 잘 들어온다.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정치적이고,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많이 보인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비판하고 꼬집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건 어딘지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또 일방적인 서술형이 아니라 문답형으로 마치 독자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생각해보게 한후 답을 알려주는 형태의 진행방식이라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게 하고, 계속 머리를 쓰게 만들어서 멍하니 눈으로 텍스트를 쫓아가는 글읽기가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독서를 할 수 있게 만든 점도 영리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용이 짧고, 압축했다고 해서 그 핵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고, 기존의 사고를 깨는 내용이 많아서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장을 열어놓았다고 하겠다. 단순히 짧은 지식을 알려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지금까지의 생각을 다시금 돌아보게 해서 생각과 관점을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다. 좁고 깊은 우물을 파는 사람은 전문성은 있어도 자기만의 좁은 시야에 갖히게 되지만 1센티의 얇지만 넓은 지식이 있는 사람은 사고의 큰 틀 속에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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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2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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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인문학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TV를 켜면 유명 강사들이 나와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을 대상으로 질문하고 비판하며 자유로운 성찰과 탐구, 비판과 질문을 통해 우리의 지성을 발달시켜준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럽이나 북미, 한중일의 인문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우린 흔히 유럽의 문화와 예술을 고급스럽게 생각하고, 서양의 철학을 가치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할 때에도 그런 것들에만 관심을 가진다.


반대로 인도나 이슬람 등의 국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문화적으로나 종교, 예술 모든 면에서 이들 국가는 철저히 제3세계로 치부되고, 논외가 되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흔히 중세라고 하는 6~16세기 서양은 다른 시대보다 낙후된 암흑시대였는데 우리는 그런 시대조차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개명의 시대로 그 어느 시대보다 앞섰던 비서양권 국가의 중세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슬람 문명이 탄생하고, 중국 불교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도 찬란한 문명이 개화했던 서양권 이외의 역사는 그동안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고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암흑시대라고 해도 그 속에서 배우고 성찰할 것은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중세의 비서양국가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엄숙주의나 마녀사냥, 역병, 빈곤 같은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보지 말고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시기로 가는 발판이며 자연과학과 법학 등이 시작된 출발점이기도 했고 '중세'에는 '서양의 중세'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앞서 말한대로 비서양권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으므로 중세는 암흑기라는 페러다임을 깨자는 것이다. 이는 저자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런 전챠로 이 책에선 서양권보다 중세의 인도와 이슬람의 사상, 문학, 예술을 먼저 이야기 한다.


우리가 비서양권 국가를 배제하고 서양권 국가의 역사, 문화, 예술,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근대가 되면서 서양권 국가들은 근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마침내 근대제국주의 시대가 전개되며 세계를 제패하며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기득권 세력을 숭배하는 사대주의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서양권 국가들이 중세 때까지는 비서양권 국가들에게 철저하게 밀리며 암흑기를 보냈지만 (비록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를 암흑기로 보지 말자고 했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비서양 근대는 서양 근대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 암흑시대로 전락되며 상황이 역전되버렸다. 중세의 비서양권 국가들은 개방과 관용의 문화를 꽃피웠는데 그 결과 근대가 되자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도와 이슬람의 현재의 모습들도 이들에 대한 일종의 비호감을 자극하여 관심을 멀어지게 한 것도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도는 지금도 중세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을 한다. 그것도 과거의 로맨틱한 공존의 중세가 아닌 야만적이고 배타적인 절망의 중세라고 말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카스트라는 계급사회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힌두교와 무슬림에게 적대적이며, 그야말로 돈과 쓰레기, 배타주의로 뒤덮혀있다고 한다. 이슬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슬람은 총기만 현대적이고 그외의 것들은 전근대의 야만이라고 한다. 인도도 무슬림에게 적대적이지만 아랍권 국가 역시 불교를 적대시 하고 있다. 중세의 이슬람은 정의와 평등, 인간 존엄성과 법의 지배를 옹호하고, 문화·부족·인종의 차이를 넘어선 인류애를 보였지만 지금은 사상과 교육, 이성을 존중하던 이슬람의 전통은 파괴되고 말았다. 인도와 이슬람 모두 지금 현재 중세 서양권 국가의 암흑기와 같은 시기를 거치는 중인 것이다. 이러니 인도와 이슬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 이들 국가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각에서 이뤄지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처럼 비서양국가를 서양인들의 가치관으로 재단하고 평가한다. 그런 과정에서 오인되고 왜곡된 정보들도 많이 있는데, 우리 역시 주관적으로 비서양권 국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권 (제국주의) 국가가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평가한 내용들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특히 최근엔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 혐오와 난민 혐오가 많이 발생하는데 저자는 이를 외부의 적을 만드는 보수의 정치적 방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매우 동의하며 개인적으로는 그들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무지가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중세의 인도와 이슬람이 지금과는 180도 다른 나라였다는 것도 몰랐었고, 다른 나라들보다 더 일찍 개명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도 알지 못했었다. 이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서양권의 국가가 심어놓은 선입견에 전도되어 그들을 판단했기 때문에 혐오나 비하를 한 것 같다.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암흑기였던 서양의 중세만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이슬람, 비잔틴문명 등 외부 문명과의 맥락에서 중세를 바라보면 그동안 편협한 시각에서만 세계사를 공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이것이 인문학의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우린 그동안 너무나 자연스럽게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비서양권 국가를 적이나 개도해야할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인문학의 거짓말을 바로잡고,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키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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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리스타트 - 생각이 열리고 입이 트이는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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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문학 공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리스타트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인문학 강의가 잘못되었으니 옳은 방향으로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인문학이라는 것이 너무 어렵다보니 책을 들었다가도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그들에게 쉬운 내용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일까. 결과론적으로 리스타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우선 이것을 이해하려면 인문학이 뭔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인문학은 자연과학의 상대적 개념으로 인간과 인간관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삶의 가치를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말하자면 인간과 관련된 모든 분야 예술, 정치, 종교, 사회, 문학, 철학, 역사 등 모든 것을 포함한 광범위한 학문인 셈이다. 예전엔 개인적으로 인문학을 일반상식이나 잡학상식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다양한 분야의 광범위한 내용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딱히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지식의 중심에는 인간과 인간의 삶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인문학에는 그동안 지나온 인간의 역사가 담겨있고,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지혜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인문학은 다른 학문들보다 가장 실용적이고 전투적인 도구라 할 수도 있겠다. 흔히 요즘 사회에선 지식과 정보가 무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무기가 되는 지식체계의 기반이 되는 것이 인문학인 것이다. 인문학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삶의 질과도 이어진다. 이것이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인문학은 삶에 대한 고민과 그 해답을 담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인문학은 지루하고 어려운 학문적 이론에 함몰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하다가 포기하는 일도 잦다. 이젠 어려운 학문적 이론이 아니라 실용적인 지식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단순히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해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직접 적용 가능한 지혜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의 판단이 최고의 결과로 빠르게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어려고 고리타분한 학문적 인문학 강의에서 벗어나서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는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 책에는 난해한 학문을 벗어난 삶에 쓸모있고 유용한 다양한 지식을 압축하여 담아놓았다. 저자는 인문학의 핵심이 역사, 철학, 종교의 세 가지라고 말한다. 책에서도 역사와 철학, 종교의 세 가지 분야를 집중적으로 배워본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역사를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경제를 단순히 학문의 한 분야가 아니라 학문의 뿌리이자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원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정치를 가져온다. 정치란 경제를 조정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말로 정치와 경제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정치는 경제를 조정하고, 경제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 정치와 경제가 곧 역사라는 개념이다. 정치와 경제를 통해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현재의 한국을 보더라도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정치와 경제적인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종교와 철학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종교와 철학이 추구하는 사상은 일맥상통한다. 각각의 종교와 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혹은 종교가 그 생명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 철학을 끌어와서 겹합하기도 한다. 그리고 철학과 종교가 결합하는 것에는 주류세력의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경우가 있다. 철학과 종교는 결합과 결별을 반복하고 있는 만큼 이 둘을 묶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책에서는 다른 책처럼 챕터 하나 당 하나의 분야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두, 세가지 분야를 서로 연계해서 함께 이야기한다. 이것이 가장 큰 특징이고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1장에서는 메인은 역사지만 경제, 정치, 역사를 하나로 묶어서 서로의 상관관계 속에서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고, 2장은 선사시대부터 현재의 지식시대까지 인륜의 세계사를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3장은 종교와 철학에 대해 알아보는데 각각의 탄생과 종교와 철학의 논거 이면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 탄생 이면의 비하인드 알아본다. 4장에서는 종교와 철학이 어떻게 서로 결합과 결별을 해왔는지 둘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 분석해본다. 하나의 분야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란 큰 틀 속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서로 묶어서 각각의 연계성과 상관관계를 살펴보며 함께 분석하는 것이 굉장히 유익하고 지식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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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리커버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8.0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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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어들면 다른 책과는 다른점이 첫 눈에 확 들어온다. 여타의 책과는 다르게 책 전면에 책 제목과 저자의 이름 등이 적혀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오롯이 그림 뿐이다. 그리고 책이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하는 문구나 추천사, 저자의 약력 등으로 빼곡한 책 후면에도 그런 내용 대신 표지 그림에 대한 해설이 적혀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책은 텍스트가 아닌 그림을 봐 달라고 말을 하고있고, 책의 주인공은 저자나 저자의 글이 아닌 명화, 그림임을 이렇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언행일치. 시작이 좋다.


우린 음악을 들으며 감동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며 감정적으로 마음이 움직이고, 문학작품을 읽으며 정서적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미술, 회화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음악, 영화, 문학 같은 장르는 사전지식이 없어도 그 자체의 서사만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로인해 감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림은 고정된 한장의 프레임 속에서 서사와 의미를 찾아내야 하므로 관련지식이 없이 미술을 접하면 거기서 어떤 감흥을 얻기란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림 속에서 솔직한 느낌을 찾게 되고, 그것이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소통과 치유를 준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전문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어도 단순히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감각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거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우리가 단풍으로 붉게 물든 산을 바라봤을 때 산에 대한 정보나 단풍의 종류를 모르더라도 눈에 보이는 시각적 효과만으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셈이다.


이 책은 미술치료사인 저자가 그림의 힘으로 삶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 사회와 소통하며, 평안함과 자신감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미술테라피북이다. 그리고 그림을 보며 자신의 심리상태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도 확인할 수도 있다. 일, 사람 관계, 부와 재물, 시간관리, 나 자신 이라는 총 6가지 테마로 각각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그러니까 그림을 보여주고, 그 그림이 이런저런 의미를 가지고, 어떠한 맥락이 있고 블라블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을 바라봐'라고 외치던 어떤 정치인의 말처럼 그냥 그림을 보기만 하면 심신의 아픈 곳이 치유가 된다는 식이다. 거기에 그림에 대한 약간의 설명과 저자가 던지는 약간의 메세지가 더해질 뿐이다.

오늘 하루도 수고한 당신을 위한 밤의 테라스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일이 가끔 있다. 밤은 나만의 시간이다. 힘들었던 시간이 끝나고 의무와 속박에서 벗어나서 하루를 견뎌낸 자유를 만끽 할 수 있는 순간이다.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는 그런 느긋함과 자유로움이 잘 전해진다. 북적이지 않는 카페, 한적한 거리, 밤하늘의 별까지 고요하고 낭만이 흐른다. 카페에 사람이 없어서 더 좋다. 하루종일 사람에 치이고 힘들었는데 내 시간만이라도 사람에게서 멀리 있고 싶은 마음에 잘 부합된다. 그래서 우린 일을 마치고 나면 사람 없는데서 조용하게 한잔 하자.라고 말을 하는 것인가보다. 고흐의 그림 같은 북적이지 않는 카페에서 가볍게 한잔하며 그날의 피로를 푼다. 그런 일과를 마친 직장인의 마음이 그림속에 보이는 듯 하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자유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바쁘게 정신없이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의 진공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은 게으름이나 나태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그것을 의미있는 무의미의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그림을 소개하는데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창가의 남자]다. 그림을 보면서 우린 저 남자가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생각한다.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오래 보고 있으니 정말 뭔가 멍해지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한 박자 멈춰 선 느낌'인 것 같다.


사람에게 실망할 때
살다보면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일이 많다. 돈을 잃은 것도 눈물나지만 사람을 잃은 것은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돈이야 또 벌면 된다지만 사람은 다시 만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 크게 좌절하고 마음을 다치게 된다. 살면서 사람과 충돌하고, 사랑에 속고, 마음을 다치고,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끼게 되지만 결국 다시 사람을 믿고, 사랑을 믿어보려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책에 나온 [모네]의 [임종을 맞은 카미유]를 봤을 땐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어떤 모습인지, 어떤 장면인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몰랐는데 그림에 대한 설명과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대한 스토리까지 듣고 나서 그림을 다시 보니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말로 못한 애틋함과 아련함, 안타까움이 느껴지나. 그래, 결국 사람이 먼저다.


나도 부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인기 연예인이 억단위의 성금을 냈다는 뉴스를 들으면 그 사람들은 그만큼 돈을 벌기 때문에 몇억이나 기부를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아무리 수십, 수백억을 번다 하더라도 억단위로 기부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같은 논리라면 수백만원 버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백만원씩 기부를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여러가지다. 돈이 있으면 당연히 좋다. 그런데 뭐가 가장 좋을까? [그랜마 모지스]의 [퀼팅 비]에서는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 각자 모임을 가지고 있다. 퀼팅비를 하거나, 요리를 하기도 하고, 목공일을 하는 등 저마다 사람들과 어울려 활기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돈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기보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울음은 영혼이 회복되는 첫걸음
사회에서는 우리에게 감정을 갖는 것과 우는 것이 나쁘고 옳지 않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애써 괜찮은 척 하기보단 울고 싶을 때 우는 것이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비극을 보는 경험이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말했다. 카타르시스란 배출이란 의미로 눈물은 가슴 속에 쌓인 찌꺼기를 내보내는 행위인 것이다. 눈물을 흘린다지만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쪽 눈에서 눈물 방울이 하나 또르르 흐르는 그런 정도로는 안된다. [조지 클로젠]의 [울고 있는 젊은이]에서는 한 여성이 엎드려서 오열하고 있다. 온 몸으로 슬픔을 표출하는데 다양한 기관들로 슬픔을 발산할수록 카타르시스는 커진다고 한다. 슬플 때는 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걷어내려면
그림유형테스트를 했을 때 나왔던 [피터르 브뤼헐]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분명히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 안에 그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상징이 들어가 있나? 그림만 봐서는 모르겠으니 작가의 해설을 보자. 넓게 펼쳐진 바다는 미지의 세계를 뜻한다고 한다. 아마도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메타포처럼 읽히는 것 같다. 바람을 가득 안은 범선은 당장이라도 신세계를 향해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앞에 두고도 밭일을 하는 사람과, 양을 치는 사람이 보인다. 미래를 향해 나가기보다 현재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허황된 꿈을 꾸다가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이카루스도 보인다. 과거에 빠져있거나 미래를 계획하기보단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불안은 사라지고, 삶의 질도 높아진 것이라 한다. 그러는 중에 변화와 희망도 생길 것이라고.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울림이 있고, 치유가 되는 것도 있고, 설명이 더해져서 그림에 대한 이해가 조금 생기자 진하게 여운이 남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건 한장의 그림으로 사색하고, 사유하며 자신을 둘러싼 여러가지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이 책의 겹치는 가운데 부분에선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책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서 좀 아쉽지만 해당 그림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펼쳐진 상태로 보면 되니 크게 문제될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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