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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ㅣ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2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9월
평점 :

언젠가부터 인문학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TV를 켜면 유명 강사들이 나와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을 대상으로 질문하고 비판하며 자유로운 성찰과 탐구, 비판과 질문을 통해 우리의 지성을 발달시켜준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럽이나 북미, 한중일의 인문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우린 흔히 유럽의 문화와 예술을 고급스럽게 생각하고, 서양의 철학을 가치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할 때에도 그런 것들에만 관심을 가진다.
반대로 인도나 이슬람 등의 국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문화적으로나 종교, 예술 모든 면에서 이들 국가는 철저히 제3세계로 치부되고, 논외가 되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흔히 중세라고 하는 6~16세기 서양은 다른 시대보다 낙후된 암흑시대였는데 우리는 그런 시대조차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개명의 시대로 그 어느 시대보다 앞섰던 비서양권 국가의 중세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슬람 문명이 탄생하고, 중국 불교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도 찬란한 문명이 개화했던 서양권 이외의 역사는 그동안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고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암흑시대라고 해도 그 속에서 배우고 성찰할 것은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중세의 비서양국가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엄숙주의나 마녀사냥, 역병, 빈곤 같은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보지 말고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시기로 가는 발판이며 자연과학과 법학 등이 시작된 출발점이기도 했고 '중세'에는 '서양의 중세'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앞서 말한대로 비서양권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으므로 중세는 암흑기라는 페러다임을 깨자는 것이다. 이는 저자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런 전챠로 이 책에선 서양권보다 중세의 인도와 이슬람의 사상, 문학, 예술을 먼저 이야기 한다.
우리가 비서양권 국가를 배제하고 서양권 국가의 역사, 문화, 예술,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근대가 되면서 서양권 국가들은 근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마침내 근대제국주의 시대가 전개되며 세계를 제패하며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기득권 세력을 숭배하는 사대주의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서양권 국가들이 중세 때까지는 비서양권 국가들에게 철저하게 밀리며 암흑기를 보냈지만 (비록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를 암흑기로 보지 말자고 했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비서양 근대는 서양 근대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 암흑시대로 전락되며 상황이 역전되버렸다. 중세의 비서양권 국가들은 개방과 관용의 문화를 꽃피웠는데 그 결과 근대가 되자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도와 이슬람의 현재의 모습들도 이들에 대한 일종의 비호감을 자극하여 관심을 멀어지게 한 것도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도는 지금도 중세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을 한다. 그것도 과거의 로맨틱한 공존의 중세가 아닌 야만적이고 배타적인 절망의 중세라고 말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카스트라는 계급사회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힌두교와 무슬림에게 적대적이며, 그야말로 돈과 쓰레기, 배타주의로 뒤덮혀있다고 한다. 이슬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슬람은 총기만 현대적이고 그외의 것들은 전근대의 야만이라고 한다. 인도도 무슬림에게 적대적이지만 아랍권 국가 역시 불교를 적대시 하고 있다. 중세의 이슬람은 정의와 평등, 인간 존엄성과 법의 지배를 옹호하고, 문화·부족·인종의 차이를 넘어선 인류애를 보였지만 지금은 사상과 교육, 이성을 존중하던 이슬람의 전통은 파괴되고 말았다. 인도와 이슬람 모두 지금 현재 중세 서양권 국가의 암흑기와 같은 시기를 거치는 중인 것이다. 이러니 인도와 이슬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 이들 국가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각에서 이뤄지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처럼 비서양국가를 서양인들의 가치관으로 재단하고 평가한다. 그런 과정에서 오인되고 왜곡된 정보들도 많이 있는데, 우리 역시 주관적으로 비서양권 국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권 (제국주의) 국가가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평가한 내용들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특히 최근엔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 혐오와 난민 혐오가 많이 발생하는데 저자는 이를 외부의 적을 만드는 보수의 정치적 방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매우 동의하며 개인적으로는 그들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무지가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중세의 인도와 이슬람이 지금과는 180도 다른 나라였다는 것도 몰랐었고, 다른 나라들보다 더 일찍 개명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도 알지 못했었다. 이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서양권의 국가가 심어놓은 선입견에 전도되어 그들을 판단했기 때문에 혐오나 비하를 한 것 같다.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암흑기였던 서양의 중세만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이슬람, 비잔틴문명 등 외부 문명과의 맥락에서 중세를 바라보면 그동안 편협한 시각에서만 세계사를 공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이것이 인문학의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우린 그동안 너무나 자연스럽게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비서양권 국가를 적이나 개도해야할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인문학의 거짓말을 바로잡고,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키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