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새긴 이, 김상유 - 100년의 시간, 작품 회고집
김상유.김삼봉 지음 / 아이리치코리아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판화는 회화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 
부식이라는 자연 작용을 통해 시간성을 반영할 수 있고, 
찍어낼 때마다 달라짐으로써 우연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반복해서 생산해내지만 매번 다르다는 인생의 일상성을 내포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판화와 판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표지에서 느껴지는 저작물에 대한 정성이 느껴진다. 
그림 부분만 별도의 재질로 만들어 독자가 온전하고 선명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책의 내부 역시, 질 좋은 종이와 인쇄가 돋보인다. 

김상유는 한국 미술사에서 동판화의 선구자라는 분명한 위상을 지닌다. 
또한 새로운 기법, 추상적 요소, 소박하고 친근한 화면 구성 등으로 그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인상적인 면은 전통적인 물건, 무늬, 풍경 등을 소재로 삼지만, 그 형상성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브제의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들에 자유롭게 자신 내면의 감정과 사상을 발현한다.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소재, 고전적 문양, 시서화, 민화적 소재, 집과 정자 등 다양한 대상을 그렸지만 그만의 정취가 묻어나는 이유이다. 

예컨대, 그의 작품 속에는 고독과 정적이 있다. 정면으로 앉아 있는 정자 안의 사람, 무념무상한 자연과 토속적 정경 등에서 그 주제가 일관하여 흐른다. 
그 안에는 그의 학문적 배경과 작업의 과정이 반영되어 있고, 그가 추구한 가치와 사상도 내포되어 있다.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그가 심취한 동양철학적 요소와 선도적인 기법을 택하여 고독하게 이끌고 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동판화라는 매체가 가진 매력도 눈에 띈다. 
금속적 질감과 색감이 독보적인 감흥을 주고, 그림 속 고색창연한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린다. 
거친 면과 매끄러운 면이 공존하면서 만들어내는 조밀함과 조화도 시선을 이끈다. 

구성적으로는 둘째 딸, 친척, 제자의 회고록이 함께 실려있어 본문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아버지, 백부, 스승으로 본 김상유에 대해 차분히 써내려간 내용을 보며, 
그의 가정과 일, 그가 거쳐간 시간과 공간에 대해 내밀한 정감을 느낄 수 있고,
아울러 그 시대, 20세기 한국에 존재했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추억에도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새긴이김상유 #김상유 #김삼봉 #아이리치코리아
#책과콩나무 #책과콩나무서평단 #책과콩나무리뷰단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 과거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과거는 흔히 추억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대게 고통의 원천이고, 아픔의 근원이며, 회한이라는 지옥을 선사한다. 
죽을 때 우리 모두는 후회하고, 오직 드물게만 만족한다.

이 책은 그런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공들인 표지와 표지그림이 독자에게 차분하지만, 호화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전면의 은은한 진주 그림은 혼란의 현실 진흙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과거를 상징하고, 
일반 책과는 다르게, 미묘하게 코듀로이의 감촉처럼 부드럽게 처리한 표지 종이는 우리의 과거처럼 자꾸 문지르고 싶게 만든다. 
제목에서 '빛난다'는 구절 앞에 공백을 둠으로써 독자들의 사유 공간을 남겨놓은 것도 섬세한 디자인이다. 
 
본문 역시, 빛나는 통찰과 수려한 문장이 필자의 생각을 내보이고 있다. 
예컨대, 기억은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사이고, 
자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과 인격이 동기화 되었을 때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부연하자면,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로서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래에 활용되기 위해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또한 자유는, 베르그송의 말을 빌어서, 
무언가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인격과 행동이 일치되어 어느 행동을 해도 자신의 인격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거(기억)의 본질을 이해하고 마주하면서, 
자신의 자유를 통해 과거와의 관계를 정립해야 우리가 온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라는 모호한 주제에 대해, 이렇게 우아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한 저작은 보지 못했다. 
독서 후 자신의 생각에 투영한다면, 저자의 말처럼 과거에 얽매여 있는 '존재의 부종'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즐거움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될 수도 있고, 과거로부터 의미를 발견하고 교훈을 얻는 스토아 학파도 될 수 있다. 



#삶은어제가있어빛난다 #샤를페팽 #이세진 #푸른숲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컬처블룸리뷰단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 친화적인 영화를 판별하는 기준 중에 다음 항목이 있다. 
'여성들끼리만 하는 대화 장면이 있을 것'
이 문장을 보며, 이 기준은 너무 쉽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영화들을 볼 때마다 살펴보니, 그 기준은 충족하기 아주 어려운 항목이었다. 
남자들끼리의 대화는 모든 영화에 나타나지만, 여자들끼리의 대화는 정말 드물다. 
그만큼 여성은 아직 사회에서 소수자이며, 메이저가 되지 못하는 '마이너 리거'이다. 

이 책은 그런 여성들끼리 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집에서만큼은 '여성들끼리의 대화'를 힘들게 발굴할 필요가 없다.

우선 인상을 남기는 것은 작가들의 섬세한 시각과 상징이다. 
여성을 멸시하는 호칭을 하나씩 정하여 작가들이 단편소설로 풀어내는데,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클리셰가 내포된 멸칭을 다루면서도 아주 유연하고 새로운 심상들을 만들어낸다. 
고지식한 언어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들은 그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작가들만의 개성을 발휘한다. 

여성에 대한 멸칭에 대해 정면대결을 하겠다는 출판사의 기획도 기발했지만, 
참여 작가들의 노력과 재능을 통해, 
그것을 감정이 앞선 사회적 반항이나, 판에 박힌 사회운동처럼 만들지 않고,
소설적 완성도와 문학적 가능성을 접할 수 있도록 한 단계 위로 승화시킨다.   

Stories of the wicked, wild, and untamed.
이 책의 원서 제목이지만, 이와 상반되는 관대함, 부드러움, 세련됨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는 각 주제에 대한 작가들의 깊은 고민과 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독서 후에는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여성은 항상 여섯 번째 감각을 지닌 영감의 원천이었다는 것을. 


#복수의여신 #마거릿애트우드 #이수영 #현대문학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컬처블룸리뷰단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나이 먹었으면 즐길 때도 됐잖아 - 좋은 건 계속하고 싫은 건 그만두는 거침없고 유쾌한 노후를 위한 조언
와다 히데키 지음, 유미진 옮김 / 오아시스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험자들이 체득한 여러 고민과 그에 대한 솔루션을 보다 보면, 우리에게 생각 측면에서 자극, 행동 측면에서 위급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이라는 선험자의 빛나는 통찰과 조언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노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전체에 적용해도 유용한 '인생 즐기기' 요령이 담겨 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아닌, 우러나오는 이야기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많은 조언들이 있다. 
'인생 즐기자, 재미있게 살자, 타인의 눈치를 보지 말자' 등등.

이 책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을 포함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시니어 세대들에게 마냥 즐기고 허비하며 쾌락을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필요하고 좋은지, 왜 이익/효용 측면에서 현명한 것인지 명확한 근거와 이유를 제시한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사고방식에서부터 행동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구분하여 설명한다.  
특히 실천방식을 다음 두 가지로 나눠서 상술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 하던 대로 해야 하는 것 
  - 하지 않던 대로 해야 하는 것 

예컨대 전자는 움직이고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 자신에 대한 소비를 줄이지 않는 것,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것 등이 되고,  
후자는 스스로를 자제하고 구속하는 것, 절약하고 소비활동을 하지 않는 것, 세상 안목에 구애되는 것 등이 된다. 

또한 노화 과정에서 사람들이 온화해지고 정신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로 괴팍해지고 사고적으로 퇴보하게 된다는 통찰력 있는 설명도 뛰어나다. 
아울러 이런 일련의 변화에 대해 전두엽의 노화 등의 의학적인 근거도 알려주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대처법을 제안한다. 
예컨대, 주위 사람들과 서로 대화를 많이 해야 하고, 자신의 상태 및 의견을 밖을 향해 계속 소리내야 한다는 것 등.

이와 함께 노화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움직임 능력과 인지 능력과 관련한 좋은 습관을 
1년이라도 젊었을 때 루틴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아주 유용하다. 
필자가 권장하는 소통과 소비, 모두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세삼 느끼게 한다. 

책 전체적으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사회 성장의 과실을 만든 주역이었던 시니어 세대에 대한 저자의 걱정, 존경, 애정이 느껴진다. 


지루한 전문의가 아닌, 재미있는 전문의

우선 '늙었다, 노쇠했다'라는 말 대신, '시니어 파워가 생겼다'라고 얘기해야 한다는 저자의 유쾌한 생각이 강한 인상과 쾌감을 준다. 
본문에서는 유머감각 있는 이웃집 지인이 말하는 것처럼 친근하고 위트 있는 문장들로 서술하고 있어, 술술 읽힌다.
게다가 꼼꼼한 디테일까지 갖추고 있어, 심지어 시니어의 말투까지 재미있고 세심하게 조언한다. 
 
또한 저자의 전문적인 경력이 내용의 설득력을 높이는 동시에 현 시점에서 필요한 내용을 정확히 짚어낸다. 
이런 전문성이 있어, 개개인의 생활 팁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거시적으로도 시니어 세대의 복지와 사회적 행복 향상을 위해 준비하고 해결해야 하는 점들을 잘 정리한다. 
이는 초고령 사회을 앞두고 있는 여러 나라에게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나이먹었으면즐길때도됐잖아 #오아시스 #와다히데키 #유미진
#책과콩나무 #책과콩나무서평단 #책과콩나무리뷰단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 모든 판단의 순간에 가장 나답게 기준을 세우는 철학
히라오 마사히로 지음, 최지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미제사건을 가지고 있다. 
지식적으로 이해되기 않거나 해결되지 않은 것. 
예컨대, 도저히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양자역학, 열역학 제2법칙, 함량 미달의 지도자를 뽑는 대중의 심리, 거시경제의 이론증명법 등등.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윤리학이다. 
제도권 교육에서 언제나 확고한 과목의 위상을 차지해왔고, 삶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두에게 의문, 모호함, 불확실함으로 남겨져 있는 분야. 

그리고 누구가 그 미제사건이 우연한 기회에 단번에 풀리는 경험도 해봤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우선 찬사부터 나열하자면, 이런 책이 출판되어서 정말 고맙고 즐겁다. 
윤리학에 대해 무지로 인한 찜찜함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명쾌한 설명과 해답을 준다. 
아울러 한 번의 지적 유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윤리라는 중요한 주제에 대해 지속으로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행동에 가치있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저자는 어떻게 이런 뛰어난 저작을 쓸 수 있었을까.

우선 필자가 이 분야에 대해 최상위 수준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공으로 장기간 공부를 했고, 유수의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의 최대 강점은 수많은 학생들과 이 주제에 대해 소통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의 편견, 잘못된 인식, 이해가 떨어지는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에 대해 디테일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본인 스스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게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는 점이다. 
윤리학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윤리학자의 연구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어떻게 윤리적 기본원리를 정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자신이 그동안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왔던 내용을 서술하고 있어 독자들은 그 의미있는 과실을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끝으로 저자가 선택한 독자 친화적인 접근법이 빼어나다.  
가능한 전문용어를 쉽게 풀어쓰고 있어 비전공자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췄고, 
본문의 절을 세분화하여 하나의 절에는 하나의 포인트만 넣음으로써 독자들이 생소한 내용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한다. 
또한 지식인의 허세를 버리고, 소설, 만화, 애니매이션, 텔리비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예시를 가져와 재미있게 설명한다. 


저자는 강조한다. 
경제, 정치, 과학, 모두 윤리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고. 
왜냐하면 모든 학문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관한 것이며, 
그 사유와 행위는 윤리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서를 완료한 후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왜 그렇게 이뤄졌는지, 왜 그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명확히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왜그렇게살아야할까 #히라오마사히로 #북하우스 #최지현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컬처블룸리뷰단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