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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여자, 그리고 세월..
지나가는 세월의 흔적속에 여자는 길을 잃는다.
가을 여자란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찌보면 가을 여자에 대한 의미는 이 두가지 단어를 합쳐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예감이 맞았구나 싶었던 것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 속 여성이었는데, 차 한 잔을 마시며 무엇인가 몰입해 있는 여성의 얼굴은 안타깝게도 온통 주름으로 가득하다. 과연, 여자와 세월은 멀리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일까?
늘어가는 여인네의 주름은 참 서글픈 것이란 생각에 가을 여자의 책장을 펼쳐든다.
오정희님이 바라본 여자에게 세월이란 상념과 고독, 소외감을 대신하는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처녀작부터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만을 고집하시고, 여성만이 가진 섬세함을 그 누구보다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여자이기에 아픈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 바로 오정희님의 작품이 아닐까?
물론 가끔씩 너털웃음을 지으며 읽을 수 있었던 글도 있었지만 이번 가을 여자 역시 읽는 내내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리는 듯한 아린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나에게 오정희님의 두 번째의 작품이었지만 두 번째 작품을 다시 만나기까지 한참동안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여자를 끌어안고, 삶을 포용할 수 있는 작가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가을 여자는 가을앞에 선 여자의 사랑과 넋두리, 그런 상념 따위의 감정을 실은 책이 아니다. 가을 여자속 가을은 우리 사는 인생의 가을을 의미하는 말이었고, 인생에서의 가을은 곧 중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문득 만일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고서 이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문장 하나하나 여성스럽고, 잘근잘근 되씹어가며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단번에 섬세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오정희님의 글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30대 중반을 넘어선 여자에게 삶의 무게와 세월은 버겁게만 느껴진다.
어느 날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미망인이 되어버린 여인, 30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결혼과 이상에 가까이 서지 못하는 여성, 남편에 대한 한이 평생 속앓이가 되어 살아왔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통해 여성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한계와 고뇌, 그리고 위태로운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지만 때로는 너무나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에 조금만 더 아름답게, 슬프지 않은 결말로 끝내주셨으면 어땠을까할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어쩌면 자신은 좋은 문장가가 되기를 원했는지 모른다라고 말씀하셨던 오정희님이 떠올랐다.
가을 여자는 일상과 삶의 괴리속에서 갈등하는 여자의 모습을 통해 너무나 사실적이지만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여성의 진짜 인생과 감성들을 제대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책이었고, 아련한 기억속에 머무르던 오정희님을 너무나 반갑게 만날 수 있었던 책이기도 했다. 중년을 넘어서는 가을 여자에게도 사랑과 희망은 한 송이 꽃처럼 피어 오르며 살아 있었다. 이 가을, 다시금 겨울을 준비하는 여성들에게 이 책은 가슴 한 구석 따뜻함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