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여행서를 좋아하는 내가 그동안에 읽어왔던 책들을 생각해보면 여행작가와 방송가 사람들의 책이 대부분 주를 이루어왔다. 따스한 봄이 다가오면서 설레이는 여행서를 찾아 헤매이다가 그 중에서도 특별히 굴라쉬 브런치가 가장 눈에 띄었던 이유는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라는 이 단 한 문장때문이었다. 여행과 독서법에 대한 책은 내가 가장 즐겨 찾는 분야이기도 하고 읽을수록 더욱 궁금한 장르이기도 하다.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굴라쉬 브런치란 제목의 뜻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무작정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아직 동유럽을 여행했던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아름다운 동유럽 구석구석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란 설레임이 컸고 또한 아직 접해본 적 없는 번역가의 독서여행기는 어떤 책일지.. 책에 대한 기대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독일작가 카프카나 체코의 소설가 흐라발이 아니었다면 그녀 역시 프라하를 이만큼이나 좋아하지 못했을 것이란 수줍은 고백을 털어놓는 것을 보며 어딘가를 여행하기 전에 그곳을 배경으로 한 책이나 영화로 예행 연습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자의 글은 꽤나 반가운 친구에게 오랫만에 받은 편지 한 통처럼 무척이나 익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사실 알고보면 여행이란 본래 시시한 것이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치사한 합리화가 허용될 수 있기 때문에 초라한 여행이라도 찬란히 빛날수 있는 것이란 저자의 말은 가슴 깊이 다가온 구절중에 하나였다. 프라하에 도착하기 직전 파리의 호텔방에서 한밤중에 냄새를 피우며 먹었던 컵라면에 대한 에피소드는 미식가의 본고장 파리를 떠남과 동시에 동유럽 여행의 서막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나 프란츠 카프카 등 체코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인물들이 있겠지만 프라하를 통해 알게 되었던 타인의 삶이란 영화와 촌극 한 사람을 위한 저녁 식사, 그리고 파란만장했던 체코의 근대사와 역사를 상징할 수 있는 여러 명소들은 이제껏 봐왔던 그 어떤 여행서보다도 더욱 각별한 의미를 심어주었다. 크로아티아의 남쪽 끝에 위치한 해안도시 두브로브니크.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가운데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스타리 그라드가 포함되어있다. 이 도시는 중세때부터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지만 옛 유고슬라비아의 영토에 속했던 탓으로 전쟁의 포화를 피할 길이 없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을 읽기 전부터 가장 많이 기대를 했던 슬로베니아를 만나게 되었다. 나라의 절반 이상이 숲인 나라, 동유럽의 스위스라 불리는 슬로베니아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숲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슬로베니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얼마 전 접할 수 있었던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란 책을 통해 내게 슬로베니아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슬라보예 지젝 뿐이었다. 저자에게 지젝은 꼬리가 아홉개나 달린 여우로 표현되었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참을 웃어댔다. 처음 동유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식있는 여행이란 바로 이런 여행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굴라쉬 브런치에 대한 만족감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여행 중에는 누구나 낯선 곳의 이방인이 되어 현지인들과의 서먹함을 피할수가 없다. 하지만 그 서먹함이란 것도 관성의 노예가 되어 일상의 권태를 느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함이란 생각이 든다. 이방인은 이방인의 모습일 때 가장 자연스러운 행복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거나 글을 읽고 쓰는 것,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가는 것 역시 삶의 또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결국은 모든 것이 살기 위한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굴라쉬 브런치를 읽으며 동유럽의 보석같이 귀한 도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지만 무엇보다 여행하면서 처음 접했던 여행지와 낯선 명소의 역사와 인물들, 작가와 작품, 영화와 음악을 모두 접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여행서라 해도 웬만한 인문서적 못지 않은 특별함이 묻어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