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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픽 -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진 인간의 비이성적 본성 탐구
톰 밴더빌트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김영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운전자들의 다양한 심리! 도로위에 그대로 표출되어진다
오너드라이버로 생활한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면허를 따고 황홀감을 누리던 잠시를 제외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운전대만 잡으면 나는 또 다른 나로 변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핸들만 잡으면 평소보다 성격도 급해지는 것 같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을 하게 된다. 트래픽. 이 책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져 있던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성에 관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나 역시 직접 경험하며 생각해왔던 궁금증이기도 하다.
도대체 운전석에만 앉으면 사람들은 왜 변하는 걸까?
내 차선이 잘 빠지는 것, 또는 막히는 것을 단지 운에 맡겨볼 수 있는 문제일까?
단지 도로 상황에 따라 그날 그날 운전 방식이 달라지는 것뿐이라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들일까?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듯한 몇 가지 문항이 트래픽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내 차선이 항상 더 막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거나, 남성보다 여성이 운전은 더 약하다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다른 차와 나의 속도를 비교해가며 운전을 한다든지, 내 운전에 방해되게 끼어들려는 차는 끝까지 끼어주지 않으려 하는 것, 또는 차선을 바꿔야 할 때 먼저 끼어드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최후까지 버티다 마지막 순간에 차선을 바꾸며 끼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고속도로를 달리거나, 늦은 시각 차가 별로 없는 한산한 도로에서는 추월만이 나의 살길이란 식의 도로위의 무법자들도 만나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또 한 가지 의문은 바로 마지막 순간에 차선을 바꾸는 사람이 앞서 나갈 수 있을까? 아님, 차선을 일찍 바꾸는 운전자가 앞지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과연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고, 옳은 것인지 상황마다 달라지는 내 운전습관을 생각해 본다면 도로교통법을 어기지 않는 한 정답이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나갈 수 있는 상황을 계산하며 운전하느라 한층 바빠지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도로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운전자들의 어떤 차라도 지날 수 있는 길이고, 도시의 규모와 도로가 커짐에 따라 언제나 복잡한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같은 운전면허시험을 보고 같은 도로를 달린다. 운전자들이 모인 이상한 그 곳, 도로 위의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압축해 놓은 곳이자, 운전자의 정신세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성격과 정체성, 더 나아가 국가의 문화와 환경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인문학적 소재이기도 했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교통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 시작한 이래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사회적, 기술적인 대책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2륜 전차가 갑자기 증가하면서 낮 시간에 한정적으로 전차 통행을 금지했고, 15세기 런던에서는 빈 수레 속도제한법이 존재했었다.

그동안 운전에 대한 감각이 무뎠던 것인지, 아님 운전자의 심리에 대해 통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이 책으로 알게 된 운전자와 교통체계의 놀라운 비밀은 정말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수 만가지 일들을 읽다보면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 더욱 흥미로운 주제가 바로 도로 위의 상황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교통을 주제로 사람들의 운전습관 이면에 숨어있던 운전자들의 심리, 인간의 본성에 이르기까지 트래픽은 분량도 상당한 책이었지만 (무려 77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다) 바로 내 자신의 이야기라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이기도 했다.

이제 운전은 현대인들에게 걷는 일만큼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매일 길을 달리지만 운전 방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중요한 것은 도로위에서 지켜야 할 것은 신호등만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트래픽을 통해 운전하는 사람들의 본성과 습관 하나하나가 만들어 낸 도로 위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욱 실감나게 느껴볼 수 있다면 자동차 문화와 더불어 엇갈리는 사람들의 운전규칙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운전이야말로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을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재였고, 인간의 사고는 습관이 되어 그 모습 그대로 우리의 도로 위에 나타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