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의 통일>
P179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 爲政
사 思는 생각이나 사색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리라고 한다면 경험적 사고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자의 구성도 전 田 + 심 心 입니다. 밭의 마음입니다. 밭의 마음이 곧 사 思입니다. 밭이란 노동하는 곳입니다. 실천의 현장입니다.
P180 학이 보편적 사고라면 사는 분명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실천이나 그 기억 또는 주관적 관점을 뜻하는 것이라고 읽어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P181 경험과 실천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성입니다. 그리고 모든 현장은 구체적이고 조직적이며 우연적입니다. 한 마디로 특수한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지는 보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학 學이 보편적인 것(generalism) 임에 비하여 사 思는 특수한 것 (specialism) 입니다.
따라서 학이불사즉망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 사상된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사이불학즉태는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 됩니다.
P182 세상이란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동 大同은 멀고 소이 小異는 가깝지요. 자기의 처지에 눈이 달려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시각과 이해관계에 매몰되기 쉽지요. 따라서 사회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학 學과 사 思를 적절히 배합하는 자세를 키워가야 합니다.
학이편에 학즉불고 學則不固 (固 굳을 ‘고’) 란 구절이 바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배우면 완고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학이 협소한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학이란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에 갇혀서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읽지 못할 때 완고해지는 것입니다.
크게 생각하면 공부란 것이 바로 한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작게 나타난 것일 뿐임을 깨닫는 것이 학이고 배움이고 교육이지요. 우리는 그 작은 것의 시공적 관계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빙산의 몸체를 깨달아야 하고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전과정 속에 그것을 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P186 진정한 지란 무지를 깨달을 때 전정한 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지가 어느 수준에 있는 것인가를 잘 아는 지 知가 참된 지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경우의 우 愚는 그 속에 대지 大知를 품고 있는 우입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어리석은 척 하는 것입니다.
P187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P188 무욕과 무사 無慾, 無私를 설파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과를 불문하고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그것을 치장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P189 마치 맨홀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치부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모든 타인은 그러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잡단적 타자인 대중은 현명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대중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사실은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겸허해야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