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60 공존과 평화
P162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 子路
동의 의미도 첫구와 다음 구에서의 의미가 각각 다르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구에서는 부화뇌동 즉 자신의 분명한 입장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다음 구에서는 동일함, 즉 차이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논어의 이 화동론 和同論은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P163 동의 논리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의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여 공존하지 못한다." 화 和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합니다.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요.
P165 우리의 통일론을 동의 논리가 아닌 화의 논리로 바꾼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입니다.
화의 논리는 무엇보다 먼저 공존과 평화의 논리로 통일 과정을 이끌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존과 평화 정착은 통일 과정에서의 요구되는 전 과제의 90%를 차지할 만큼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P166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은 대륙적 소화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불교, 유학, 마르크시즘, 자본주의 등 어느 경우든 더욱 교조화 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동의 논리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화의 논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자기 흉내를 내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