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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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3중국 역사에서는 남과 북이 싸우면 언제나 남쪽이 집니다. 중국의 전쟁사는 언제나 남의 패배와 북의 승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한 남방인들의 기질이 험난한 풍토에 단련된 북방인의 기세를 당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싸움에 지는 것을 패배라고 하고 그것을 敗北라고 씁니다. 북에게 졌다고 쓰는 것이지요. 그런데 유일하게 남방이 북방을 물리진 정권이 바로 현대 중국입니다. 호남성 장사의 마오쩌뚱이 이끈 중국 공산당이 건설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테면 남방정권입니다.
 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마오쩌뚱이 닉슨에게 건넨 선물이 놀랍게도 ‘초사’라는 사실입니다. 마오쩌뚱은 ‘초사’를 손에서 한시도 놓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장정때에도 손에서 ‘초사’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P78 ‘초사’는 한나라 유황이 굴원,송옥 등의 작품을 모아 펴낸 책을 말합니다. 이 책이 나온 이후로는 일반적으로 초나라의 시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남방국가인 초나라의 시체로써 음악에 가까운 운문입니다. ‘시경’ 이 사실적이고 노동과 삶과 보행의 정서로 이루어진 시 세계임에 비하여 ‘초사’의 세계는 자유분방, 정열, 상상력, 신비, 환상 등 낭만적이고 서정적입니다.
 
P81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의 먼지를 떤 다음 갓을 쓰는 법이며,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의 먼지를 떤 다음 옷을 입는 법이라고 선언합니다."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을지언정 깨끗한 몸을 더럽힐까 보냐고 자신의 고고함을 선언합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가장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갓끈을 씻고, 반대로 물이 흐르면 발을 씻는 것입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좌경적이라고 하는 것은 비타협적인 원칙의 고수라 할 수 있습니다.우경적이라는 의미는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는 현실주의와 대중노선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P87 ‘주역’의 관계론에 초점을 두기로 합니다. ‘주역’에 담겨 있는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을 중심으로 읽기로 하겠습니다.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틀이란 쉽게 이야기 한다면 물을 긷는 그릇입니다. 생각하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주역은 동양적 사고의 보편적 형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P88 나는 점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면 된다’는 부류의 의기 방자한 사람에 비하면 휠씬 좋은 사람이지요.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못 되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있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P89 나는 인간에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 수상과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것이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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