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2000>
P275 선호하는 영화로 상대의 취향을 판단하고 문화 수준을 논하는 일이 과히 그릇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브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사람이 취향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취향이 사람을 계급적으로 분류한다." 라며 취향을 문화계급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문화는 구별하고 차별한다." 혹은 "문화는  섬세한 상징폭력이다." 라는 책표지의 카피처럼 취향은 단순히 개인이 취득한 성향이 아닌 학력자본(학벌) 이나 상징자본 (집안), 그리고 사회관계 (각종 연줄) 등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내재된 삶의 한 형태라고 보는 것이지요. 한 개인의 취향에는 그의 삶의 이력이 모두 녹아있다고 보면 되는 셈입니다.

P280 사실 앙젤리크(카스텔라의 아내)는 우리 주변에서 보기 쉬운 캐릭터입니다. 자신의 시선과 취향에 대한 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타인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경우는 인간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류이기도 하지요.

어떤 취향이 옳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취향도 키가 자라듯 자랄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P283 집으로 돌아온 카스텔라는 자기가 처음으로 선택한 그림이 세련된 아내의 손에 의해 치워진 것을 발견하고 분노합니다. 그는 헨리크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의 여주인공인 노라처럼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한 절망감에 집을 뛰쳐나가버립니다.

P284 타인의 가치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편협한 외로움을 안고 살 수 밖에 없으며 결국 한쪽 벽만을 바로보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비티, 2013>
P311 강사는 마지막으로 항아리에 마시던 차를 부으며 인생이라는 항아리에 큰 돌멩이를 먼저 넣지 않고 자갈이나 모래부터 채운다면 영원히 큰 돌멩이를 넣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강의의 말미에는 우선 가족이라는 튼튼한 돌멩이를 넣고 그 다음에 명예, 성공, 부 등을 상징하는 모래와 자갈 등을 넣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아리를 완전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은 물이라는 것도 잊지 않아야 겠지요. 그 물은 내 삶을 촉촉하게 적셔줄 독서나 공부 혹은 취미 등과 같은 것일테고요.

"청소년 감상문 중에서"
P324 우주 관련 분야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비해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우주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고 쓸모없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이다.

P325 영화에 나온 라이언 박사에게도, 나에게도 중력은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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