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한빛문고 6
박완서 글, 한병호 그림 / 다림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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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
P45 도둑질을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수남이는 스스로 그것은 결코 도둑질이 아니었다고 변명을 한다. 그런데 왜 그 때 그렇게 떨리고 무서우면서도 짜릿하니 기분이 좋았던 것인가? 문제는 그 때의 쾌감이었다. 자기 내부에 도사린 부도덕성이었다.

오늘 한 짓이 도둑질이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 도둑질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의 일이 자기와 정녕 무관한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아버지가 그러웠다. 도덕적으로 자기를 견제해 줄 어른이 그리웠다.
주인 영감님은 자기가 한 짓을 나무라기는 커녕 손해 안 난 것만 좋아서 "오늘 운 텃다" 고 좋아하지 않았던가.
수남이는 짐을 꾸렸다. 아마 내일도 바람이 불었으면, 바람이 물결치는 보리밭을 보았으면. 마침내 결심을 굳힌 수남이의 얼굴은 누런 똥빛이 말끔히 가시고, 소년다운 청순함으로 빛났다.

<시인의 꿈>
P89 "문명이 한 일은 그 다음 일이란다. 문명은 사람에게 해로운 곤충을 닥치는 대로 죽였지. -중략-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곤충을 멸종시키려고 한 노릇이 결과적으로 이로운 곤충의 먹이를 없애는 일이 되고, 그 일이 자꾸만 얼어나면서 곤충 세계의 조화는 깨어지고 말았단다.

P93 "시가 정말 쓸모없는 거라면 없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우리 엄마가 아이들한테 제일 많이 하는 잔소리도 ‘쓸모없는 건 제때 제때 내버려라’ 인걸요" (아이)

P94 "무엇이 쓸모있는냐가 문제였지. 그 시절 사람들은 몸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있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건 무시하려 들었으니까." (시인 할아버지)
-중략- "살맛이란, 나야말로 남과 바꿔치기 할 수 없는 하나 뿐인 나라는 것을 깨닫는 기쁨이고, 남들의 삶도 서로 바꿔치기할 수 없는 각기 제 나름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 아껴주고 사랑하는 기쁨이란다."

P96 "요새 떠 다니는 말은 새로 생긴 물건의 이름하고, 그걸 갖고 싶다는 욕심을 위한 말이 전부지. 그러나 시를 위한 말은 그런 물건에 대한 욕심과는 상관없는 마음의 슬픔, 기쁨, 바람 등을 나타내는 말이란다."

P98 "할아버지, 이상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까 괜히 가슴이 울렁거려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예요." (아이)
"아이야, 고맙다, 할아버지가 이제부터 말을 얻어다 시를 써도 늦지는 않겠구나,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거란다."

<옥상의 민들레꽃>
P104 궁전 아파트 사람들이 이제껏 행복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줬기 때문이니까요. 그것은 마치 엄마의 보석반지가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보석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보석이 진짜라는 보석장수의 보증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P127 그때 나 ("아이")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에겐 나의 가족이 필요한데, 나의 가족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었습니다. -중략- 나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없어져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데,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습니까?

P129 도시로 부는 바람을 탄 민들레 씨앗들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한 딱딱한 땅을 만나 싹트지 못하고 죽어버렸으련만, 단 하나의 민들레 씨앗은 옹색하나마 홁을 만난 것입니다.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자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임금님>
P158 권력과 재산이 있을 때에는 가족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나, 내가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나를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린 이제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부족한 것은 사랑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자 애쓰다보니, 보시다시피 이렇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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