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39쪽
대신 ‘고마워’ 와 ‘미안해’는 습관처럼 입에 달고 있어야 했다. 그 두 가지 말은 곤란한 많은 상황들을 넘겨 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여기까진 쉬웠다. 상대방이 내게 천 원을 내면 거스름돈을 이삼백 원 내주는 것과 비슷했다.

50쪽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그것이 죄가 될지 독이 될지 혹은 꿀이 될지 영원히 알수 없더라도 나는 이 항해를 멈추지 않으리.

53쪽
엄마의 연애 패턴은 일정했다. 먼저 접근하는 건 늘 남자들이었지만 끝에 가서 매달리는 건 언제나 엄마였다. 할멈은 남자들이 원하는 건 그저 연애인데, 엄마가 원하는 건 내 아빠가 되어 줄 남자여서 그런 거라고 했다.

129쪽
- 친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 예를 들어, 이렇게 너와 내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 같이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특별히 돈이 오가지 않는데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이런게 친한 거란다.

131쪽
미쳐 날뛰던 아내의 심장이 갑자기 멎었다. 전기 충격기도 없었고 코드 블루를 외쳐 봐야 뛰어 올 사람도 없었다. 박사는 아마추어처럼 가망 없는 가슴에다 미친 듯이 펌프질을 했다. 한 시간이나 지나서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아내의 몸은 이미 차갑고 딱딱했다. 그렇게 아내는 그를 영원히 떠났고 그 뒤로 박사는 메쓰를 놓았다.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러면서도 왜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는지만 돌이켰다. 다시는 누군가의 살을 갈라내 그 안에서 뛰는 심장을 볼 자신이 없었다.

132쪽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137쪽
- 근 데 넌, 쓰는단어가 진짜 몇 안 되나 보다
- 뭐?
- 욕이 대부분이긴 한데, 하는 욕도 거기서 거기고, 어휘량이 너무 한정된 거 같은데 책을 좀 읽어 보면 도움이 될거야. 그럼 사람들이랑 더 많은 얘길 할 수도 있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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