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쪽
그는 형의 무신앙은 무신앙으로 사는 것이 편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현상에 대한 근대의 과학적인 해설이 한 걸음 한 걸음 신앙을 밀어젖히고 나아간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18쪽
그의 마음에는 분명 죽음을 욕망의 만족으로, 또 행복으로 보게 만드는 예의 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고통이나 상실감에 의해 그에게 환기되었던 개개의 욕망은 모두 굶주림, 피로, 목마름과 같이 쾌락을 주는 육체의 기능에 의해 채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상실감과 고통이 채워진다는 것이 없어지고, 채우려는 시도 자체가 단지 새로운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욕망은 오직 하나, 모든 고통과 그 원천이 육체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욕망으로 집중돼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해탈에의 욕망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말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제는 도저히 실현될 가망이 없는 욕망의 만족을 지금까지의 습관에 따라 구하는 것이었다.

"돌려눕혀다오" 라고 하고 나서 곧바로 다시 아까처럼 눕혀달라고 청한다든지 "수프를 달라"고 하고선 "수프 같은 건 저리 가지고 가"라고 했다가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이내 눈을 감고 피로와 무관심과 혐오의 빛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521쪽
그러나 지금은 아내가 옆에 있는 덕분에 이 느낌도 그를 절망으로 이끌지는 않았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고 또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통감했다.

그는 사랑이 자기를 절망에서 구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절망의 위협 아래서 이 사랑이 더욱 더 강하고 순결해졌다는 것을 통감했다.

죽음이라는 불가해한 하나의 신비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그에게는 사랑과 삶으로 손짓하는 역시 불가해한 또 하나의 신비가 나타났다.
의사는 키티에 대한 자기의 추정을 확인했다. 그녀의 병은 임신 때문이었던 것이다.

556쪽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에는 그는 모두 이해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혼자가 되자마자 그는 ‘갑자기’같은 아주 간단하고 알기 쉬운 말이 동작의 상황 부사라는 것을 기억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나 학원, 집 등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듣는 수업은 "공부하는 시간" 이 아님인데... 스스로, 자기주도형 학습 만이 진정한 공부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 책에서 이런 생각까지 들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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