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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A. 하인라인 중단편 전집 세트 - 전10권 ㅣ 로버트 A. 하인라인 중단편 전집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고호관 외 옮김 / 아작 / 2023년 4월
평점 :
이 책이 알라딘 메인페이지에 떴을 때 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했고, 실제로 결국 사버렸다. 이 책을 사기 위해서 집 사려고 영끌하는 신혼부부마냥 계정에 있는 마일리지니 뭐니를 다 써서 결국 사 버렸으니. 전집 세트의 가격이 거의 20만원 했었는데 책의 디자인이나 그 분량, 규모에 비하면 나름 이해되는 가격이기는 했다. 야심차게 출간한 책이며 하인라인의 중, 단편 중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명 ‘미래사 시리즈’가 완역되어서 출판된 건 국내 최초이기에 SF팬으로서는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전집 세트는 총 10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게 1940~1950년대에 출간된 하인라인의 소설들을 수록하고 있다. 단편 개수는 모두 몇 개인지 세보지는 않았는데 책 하나하나가 웬만한 분량의 소설집 이상의 분량을 자랑한다. 페이지 수에 속으면 안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이 소설 중 일부를 이미 읽은 적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이제는 까마득한 시절이다.) 지금과는 비교는 안 되지만 나름 SF붐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처럼 정착된 형태가 아니고 동인으로 활동하던 SF작가들이 엔솔러지 형태로 책을 발간하던 시대다. 지금 한국SF에서 유명하고 대표적인 작가들은 그때 내게 생소한 작가들로 보였었다. 아무튼 그런 소소한 SF붐을 따라서 하인라인의 작품 몇 편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이 단편집에 수록된 <코벤터리>나 <므두셀라의 아이들>이 그렇다. 이 소설들은 사실상 장편인데 이 전집에서는 끝끝내 중, 단편이라고 우기기는 했다. 역자의 이름을 보니 내가 읽었던 그 판본이 맞았다. 반갑기도 하고 참신한 기획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많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서 모든 작품이 다 좋지는 않았다.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는 어찌보면 SF로서는 가장 기초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작품이며, 하인라인이 야심차게 그린 미래상이 대부분 실현되었고, 무엇보다도 대부분이 현재 SF소설들의 클리셰 모음집이라고 할만했다. 즉 내게 하인라인의 SF소설들은 그렇게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소설적으로도 정직하다고 해야 할지. 단순하다고 해야 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에 미국에서 출간된 온갖 소재를 다루는 SF소설들이나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출간되는 요즘 소설들이 스토리 텔링적으로 더 발전했다는 느낌? 물론 거의 80년도 전의 고전에게 이런 소리를 하면 하인라인 입장에서는 참 억울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작가의 SF가 낡게 느껴졌다면 오히려 판타지는 완전히 새롭고 무엇보다도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특히, <마법주식회사>라는 마법사와 악마가 서로 아웅다웅하는 소설은 요즘 시선으로 봐도 너무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다정한 할머니가 알고 보니 악마도 쩔쩔매는 최강자라는 설정은 요즘 유행하는 웹소설에서 나오는 설정 아닌가 싶었다.
방대한 분량을 다 읽는 게 힘들었지만 한 번은 읽을 만했다. 그중 괜찮은 소설을 고르는 요령마저도 깨우쳤는데 소설 앞부분에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었다고 쓰인 건 정말 괜찮은 게 많았다. 아무튼, 즐거운 독서를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