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베이킹 책을 사고 싶었다. 서점엔 이름난 블로거들의 책이 잔뜩 깔려 있었다. 그 책들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정성과 솜씨가 담겼을 터. 그러나 ‘김영모’란 이름이 눈에 띄자 다른 책을 살펴볼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최근 『김영모의 건강빵』 에 이어 나온 책이다. 화려한 수사를 달지 않은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김영모’란 이름 하나로도 넉넉하기에 그렇게 지었겠지만. 수수한 갈색 바탕에 과일과 곡물을 듬뿍 올린 케이크 쿠키가 수놓인 표지도 좋다. 비닐 포장이 돼 있어 목차를 볼 수 없는 점은 아쉬웠으나 갈등하지 않고 골랐다. 작년에 본 『스위트 로드』를 통해 그가 어떤 제과인인지 알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파프리카머핀, 천연 시럽을 넣은 금귤타르트, 떡을 응용한 호박고지쌀케이크, 카레향 가득한 쌀카레칩스, 버섯을 볶아 넣은 흑설탕버섯빵 등 먹음직스러운 케이크 쿠키가 가득했다. 주재료도 요즘 각광받는 채식과 건강식에 맞추어 쌀가루, 우리밀가루, 두유, 식물성 유지로 잡고 있었다. 복분자, 대추, 호박, 연근, 토마토, 고구마, 감자 같은 식재료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 재료들을 손질해 빚고 굽는 김영모 아저씨의 두툼한 손에 믿음이 갔다.

‘제과명장’이라 불리는 김영모 아저씨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기술을 배워 온 파티시에다. 그럼에도 더 좋은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식지 않는단다. 맛있는 빵을 찾아 떠난 수차례 연수와 여행에서 100년 이상 대를 이어 온 일본의 윈도베이커리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다시 일본으로 떠나 40일간 30개 도시를 다니며 제과점 220여 곳을 둘러보고 남긴 기록이 『스위트 로드』였다. 그런 그가 거듭 연구하고 맛본 끝에 내놓은 케이크 쿠키일 테니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았다.

마침 무염버터가 떨어졌다. 다음엔 카놀라유를 사서 베이킹을 해 볼 생각이다. 생크림 대신 쓸 수 있다는 두부크림도 만들어 보고 싶다. 물론 『김영모의 케이크&쿠키』를 펼쳐 놓고서. 머리말을 맺는 글월이 마음에 남는다.

“첫눈에 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가도 계속 생각나고 궁금해지는, 최고의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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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기능사반 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다. 듣고 싶긴 하지만 시간 맞추기가 어려울 듯했다. 요즘 여러 군데 이력서를 내고 시험을 본다. 쌓아 놓은 것도 얼마 없는 데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닌 이력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도 다시 일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대로 이루어질 거다. 아니, 이루어야 한다. 그러려면 요리수업을 듣고자 하는 소망은 잠시 접는 게 맞다.

쿠키든 케이크든 제과수업을 들어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책이나 블로그를 보고도 얼마든지 해 볼 수 있다. 친구 생일 때 계피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었었다. 아버지 생신을 맞아서는 녹차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방산시장에서 사 온 둥근 케이크 틀과 스패츄라를 써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고구마 케이크를 먹고 싶다 하셨다. 이왕이면 원하시는 케이크를 만들려고 했으나 조리법을 찾아보니 꽤 까다로웠다. 케이크라곤 한 번밖에 해 보지 않은 내가 근사하게 만들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생각 끝에 녹차 가루와 밤조림을 넣어 시트를 만들고 생크림을 바른 뒤 딸기를 올리기로 했다.

   
  재료
시트:
박력분 115g, 버터 100g, 설탕 70g, 달걀노른자 2개, 녹차 가루 10g, 베이킹파우더 2g, 생크림 2큰술, 밤조림 적당량, 달걀흰자 3개, 설탕 30g
토핑: 생크림 500cc, 설탕 약간, 딸기 
 
   

제과가 제빵에 비해 쉬운 감은 있다. 반죽을 틀에 붓기만 하면 돼서 성형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자잘한 과정이 포함되므로 더 복잡할 수 있다. 이번처럼 케이크를 만들 때는 달걀흰자와 생크림까지 팔 떨어져라 저어 주어야 한다. 집에서 만들 땐 핸드믹서를 써도 되지만 제과수업이나 제과시험에선 오직 거품기만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웃으며 먹는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 힘든 것쯤 쉽게 넘길 수 있으니 걱정 말자. 

시트는 무난히 완성했다. 180도로 맞춘 오븐에서 30분 구우니 색도 향도 괜찮았다. 원래 녹차 케이크는 팥배기와 찰떡궁합인데 밤조림이 들어가도 그럭저럭 어울릴 것 같았다. 학원에서 밤식빵을 만들고 남은 통조림 밤이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집에서 만들어 써도 좋을 듯하다.

생크림을 지나치게 저었나 보다. 뒤집었을 때 쏟아지지 않으면 멈춰야 하는데, 내 힘을 믿지 못한 탓에 더 해야 한다고 휘젓다가 쪼글쪼글하게 만들어 버렸다. 바르는 솜씨도 시원찮은 마당에 크림마저 이렇게 되다니. 싱싱한 딸기가 울퉁불퉁한 시트를 살려 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받침대가 따로 없어 나무도마를 이용했다. 그 위에 시트를 올려놓고 생크림을 발랐다. 예상대로 잘 발리지 않았다. 매끈하게 마무리하는 사람들은 대체 몇 번이나 발라 본 걸까?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짤주머니에 넣은 크림으로 자리를 만들어 딸기를 올리니 어설프나마 케이크 모양새가 갖춰졌다.

생신상은 집에다 차렸다. 평소 먹는 반찬에 어머니가 만드신 요리 몇 가지를 보탰다. 선물은 동생과 함께 준비한 용돈, 법정스님의 책 두 권, 그리고 내가 만든 녹차 생크림 케이크였다. 못 만들었다고 하며 내놓으니 동생은 보자마자 “왜 이렇게 잘 만들었어?”라고 탄성을 질렀다. 어머니는 수고한 과정을 생각해 족히 5만 원어치는 된다 하셨고, 맛을 보신 아버지는 “괜찮다, 자꾸 먹고 싶어지는 맛이네.” 하고 칭찬하셨다.

‘눈학교 딸기반’. 뒤늦게 지은 케이크 이름이다. 동생이 지어 줬다. 아이들에게 한글과 중국어를 가르치는 동생이라 이런 이름은 곧잘 만들어 낸다.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동생은 가르치는 일과 아주 잘 맞는다. 아이들을 아끼고, 교구 만드는 일도 즐겁게 하며, 목청도 좋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일을 얼마나 진지하게 하고 있는지 다 헤아릴 순 없다. 모쪼록 하얀 케이크에 빨간 딸기를 올리는 마음으로 정성껏, 즐겁게 해 나가길 바란다.

아버지께 내 취업 소식도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생크림을 매끈하게 바르는 일처럼 쉽지 않다 느끼고 있지만. 이력서를 내기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중요한 시기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나를 가다듬으며 의연히 해야겠다.

집에서 만든 녹차 생크림 케이크는 제과점에서 파는 녀석처럼 달고 촉촉하진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 말씀처럼 자꾸 먹고 싶어지는 맛을 지녔다. 앞으로도 내 속에서 그 질리지 않는 맛, 그윽한 맛이 우러나오도록 힘쓰자. 손으로도, 마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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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긍정아침감사 2010-03-2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기가 느껴져서 참 좋습니다^^ 글구 생신선물로 법정스님의 책을 선물받으신 아버님이 부러울따름입니다~~ 우리딸도 숟갈님처럼 마음이 대견스럽고 이쁘게 컸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 되시길 빕니다!! 멋진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서 근무하시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주부인저로서는 참 좋고 설렙니다^^좋은 하루되십시요~~

숟가락 2010-03-29 12: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리더긍정아침감사님.^^ 이 다정한 기운은 어쩐지 눈에 익은데 제 느낌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녹차 생크림 케이크 모양은 근사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아버지가 좋아해 주셨답니다. 앞으로도 중요한 날이면 케이크를 구워 보려고 해요. 리더긍정아침감사님, 즐거운 오후 보내셔요. 늘 건강하시구요.(^^)(__)
 

 

제빵기능사반 수업이 끝났다. 삼 개월 간 재료관리를 맡아 했던 반장 언니는 상장을 받았고, 개근한 사람들은 상품을 받았으며, 마지막 수업에 나온 사람 모두가 함께 대청소를 했다. 밀가루와 버터로 범벅되었던 72시간이 말끔히 마무리되었다.

시험을 본 사람도 있고 봐야 할 사람도 있다. 우리 조 막내 ㅎ은 정시 시험에 응시해 단팥빵을 만들었다고 한다. 학원에서 했을 때보다 반죽이 많이 질어 당황했다고. 다른 조 언니 ㄱ은 더치빵을 구웠는데 색이 너무 옅게 나왔나 보다. 선생님이 소리를 빽 지르셨다. “넌 그렇게 구워 놓고 잘했다 하니? 백 프로 떨어져!” 우리 조에서 가장 부지런한 언니 ㅇ은 내일 시험을 보신다. 악명 높은 데니시페이스트리가 나올까 봐 걱정하시기에 말씀드렸다. “옥수수식빵이 나오길 빌어 드릴게요!”

나는 아직 접수도 하지 못했다. 상시 시험을 보려 했는데 접수 단계에서부터 경쟁이 너무 치열한 거다. 틈틈이 연습하다 나중에 정시 시험을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정시 시험은 상시 시험에 비해 접수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그 대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뻑적지근함이 있다.)

1월 초 수업 첫날이 떠오른다. 어떻게 이 자리에 오게 됐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한 사람씩 자기 이야기를 꺼내 놓았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언니도 있었고, 빵집을 내야 한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제빵사가 되겠다는 고등학생, 그냥 빵을 좋아한다는 직장인도 있었다. 선생님은 봉사활동을 하고자 배운 제빵이 일로 연결되었다고 하셨다.

나는 뭐라고 했더라. 요리를 배웠는데 재미있어서 빵 만들기도 배우고 싶어졌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배우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반죽을 만지고 밀대를 굴리다 보면 기운이 쭉 빠지곤 했다. 요리보다 어렵다고 생각될 때도 많았다. 조리수업 때는 내가 막내여서 선생님과 아주머니들이 퍽 귀여워 하셨는데, 제빵수업엔 제과제빵에 일찍이 눈뜬 대학생이 있어 나는 노화 시작된 이십대 후반으로 밀려났다.

무채를 썰어 놓으면 “아가씨가 무채를 이렇게 잘 썰어?” 하는 칭찬을 듣고, 조기를 튀겨 놓으면 “놀랍다, 정말” 하는 감탄을 받았었지만 여기에선 그런 재미도 없었다. 주로 손이 느리다, 기운 없어 보인다, 그렇게 만들면 탈락이다 같은 말을 들었으니까. 한때는 스트레스를 받을 뻔했다. 그러나 내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어 준 사람들 덕분에 괜찮았다. 내가 못했던 게 아니다. 우리 조에 유독 빠릿빠릿한 사람이 많았던 거다.

동갑내기 ㅁ도 빠릿빠릿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서두르고 앞서 가는 바람에 선생님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눈에 띄게 손 빠르고 솜씨 좋았던 건 사실이다. 그는 중반 이후부터 수업에 나오지 못했다. 이름난 요리강사의 보조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강사가 꽤나 강퍅한 사람이었다. 터질 듯한 눈물과 욕설을 꾹 참는다던 ㅁ, 지금도 힘들게 일하고 있겠지. 알다시피 사회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데 그 강사가 최고 악질에 속하는 것 같진 않다고 나는 말했었다. 힘든 시기를 견디고 나면 빛 볼 날이 온다는 것을 그도 알 터이다.

막내 ㅎ은 야무지고 눈썰미 있는 친구였다. 미대생이라 그런지 맛과 모양 면에서 남다른 감각을 보였다. 그 덕분에 괜찮은 제빵기를 골랐고, 처음으로 시나몬롤을 구워 봤으며, 집에서 가까운 맛집 몇 군데를 알게 됐다. 아버지 생신 케이크를 만들려고 틀을 두 개나 빌렸는데, 결국 내가 산 틀을 쓰게 됐지만 선뜻 빌려 줘서 고마웠다. 나중에 너무 번화하지 않은 곳에다 예쁜 베이커리를 차리는 게 꿈이란다. 재주가 많으니 무엇을 해도 잘 할 것 같다.

ㅇ언니는 타고난 일꾼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조리사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자격증시험을 보시는 부지런함에 놀랐다. 제빵수업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일을 마친 뒤 오시는 거였다. 늘 가장 먼저 도착하셨고, 오셔선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팬과 틀부터 챙겨 놓으셨다. 반죽을 발효실에 넣고 나서 시간이 남을 땐 수업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보시거나 설거지, 작업대 정리를 하셨다. 그분 옆에서 닮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마음과는 다른 차원의 존경심을 느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난 뒤 팔짱을 꼈던 내게 또 보자며 지어 보이신 웃음은 달처럼 환했다.

그들과 함께했던 제빵수업이 끝났다. 힘차게 돌아가던 반죽기 훅도 멈췄고, 열기 가득했던 오븐과 발효실도 꺼졌다. 녹인 버터와 빵부스러기로 얼룩졌던 작업대는 반질반질해졌으며, 곳곳에서 활개 치던 알뜰주걱과 스크래퍼는 상자 속에 얌전히 뉘였다. 사람들은 밀가루 묻은 앞치마를 벗었다. 앞으로도 그들은 빵을 구울까? 이제 나는 무엇을 지향하며 빵을 구워야 할까?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자.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 데 있는 거니까.”

“내 나이와 다른 분야의 경력을 염두에 두고 뻗대면 뻗댈수록 나만 손해다.”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나온 대목들이다. 요리와 제빵을 배우는 동안 한결 절절히 다시 보게 되었다. 더욱이 제빵수업 때는 퍽퍽 소리와 함께 반죽기 안에서 사정없이 패대기쳐지는 반죽을 지켜보며 ‘그래, 뻗대면 나만 손해야’ 하고 읊조린 적도 있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뻗대지 말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 비교하면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다. 먹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내가 만든 요리와 빵, 과자를 먹으며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친구들, 그밖에도 다정한 혀를 가진 사람들한테 내가 더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 그들이 놀라워하고 맛있어 하면 신바람 나기 마련이다. 글로 남기게 되고, 새로운 조리법을 찾게 되고, 시장에 가게 되고, 부엌에서 춤추게 된다. 그들로 하여금 살아 있는 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제빵수업에서 함께 빵을 구웠던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먹이는 기쁨을 아는 사람들과 보낸 삼 개월이었다. 이 소소한 기쁨이 값비싼 기쁨으로 커지길 바라지는 말자. 작은 대로, 고마운 대로, 신바람 나는 대로 살뜰히 지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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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3-2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개월이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기간인데 섭섭함도 크신 듯 해요.
내가 지은 따뜻한 밥을 먹어주는 사람, 내가 정성들여 만든 빵을 먹어주는 사람들은 이미 나에게 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도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숟가락 2010-03-26 11: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손수 만든 음식을 주고 다정한 소감을 받는 일은 아주 살갑고 소중한 나눔이 돼요.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한 주도 즐겁게 마무리하시길 바라요-*
 

중식실기시험을 보고 왔다. 문제는 ‘경장육사’와 ‘오징어냉채’였다.

제빵기능사반에서 만난 친구 ㅁ은 ‘홍쇼두부’와 ‘해파리냉채’를 했단다. 역시 제빵수업을 통해 알게 된 언니 ㅇ은 ‘짜춘권’과 ‘탕수조기’를 하셨다고. 산업인력공단 앞 서점 예상에 따르면 경장육사 나올 확률이 높다고 언니가 일러 주셨다. 수십 년 전통을 이어 오는 족집게라더니, 과연.

경장육사는 북경 지방의 춘장인 ‘경장’을 넣어 볶은 돼지고기요리이고, 오징어냉채는 삶은 오징어에 오이와 겨자소스를 곁들이는 냉채요리이다. 어찌어찌 해서 주어진 한 시간 안에 두 가지 요리를 만들어 진행요원이 자바라를 치기 직전에 제출했다. 하마터면 못 낼 뻔했다. 진행요원이 비켜 주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내고 올 수 있었던 건 다행이다. 그러나 합격할 자신은 없다. 돼지고기 채는 두꺼웠고 춘장소스 간을 잘 맞추지도 못했다. 오징어는 어떻고. 몸통이 워낙 두툼해서 칼집을 깊게 넣었음에도 삶을 때 제대로 휘어지지 않았다. 숫돌을 사 칼을 갈고, 스물한 가지 조리법을 거듭 읽고, 깐풍기와 탕수육을 만들어 봤다고 해서 시험을 잘 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동생은 탕수육이 나오길 빌어 줬었다. 이번에 집에서 만든 탕수육을 아주 맛나게 먹었기 때문이다.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로 노릇하게 튀긴 고기와 너무 짜지도 달지도 않은 소스가 어우러진 요리는 내가 맛봐도 괜찮았다. 동생은 중국집의 자극적인 탕수육과 구별되는 ‘건강한 맛’이라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마치 ‘바르게 자란 청소년’ 같다나.

드라마 ‘파스타’에서 버럭쉐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매출이 떨어진 레스토랑을 살리고자 마련한 신메뉴 개발 콘테스트 때였다. 쉐프는 붕어요리사가 만든 피시볼 파스타를 맛보곤 이렇게 평했다. “맛은 있지만, 꼬시는 맛이 부족하다.” 그가 내 탕수육을 맛봤다면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아마도 이렇게 받아쳤을 것이다. “꼬시는 맛이 뭔데요? 꼭 꼬셔야 하나요?”

지금도 궁금하다, ‘꼬시는 맛’이 뭔지. 설탕범벅 피클은 죄 갖다 버리라 했던 쉐프의 말이니 조미료로 감칠맛을 내란 이야기는 아니었겠지. “이래도 안 먹을래?” 혹은 “이보다 더 맛있는 거 먹어 봤어?”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요리했을 때 나오는 맛(?)이 아닐까 헤아려 본다. 막 프라이팬을 잡은 초보한테 무리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쉐프는 그 부분을 짚어 내며 개선하길 요구했다.

같은 조리법으로 요리해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완성품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꼬시는 맛이 꼭 필요하다면, 간을 싱겁게 보는 편인 내 요리에도 그 맛이 깃들게 될까. 숟갈, 정신줄 잡자. 이건 ‘간’과 상관없는 이야기야. 짬이나 싱거움과는 다른 문제라고. 또, 2인분 넘게 만들어 놓은 탕수육을 동생 혼자 먹어 버리지 않았어. 거기 꼬시는 맛의 불씨가 있는 것 아니겠니?

못 본 시험은 일단 잊으련다. 앞으로 더 즐겁게, 정성껏 요리할 생각을 해야겠다. 지금 꼬시는 맛 운운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미숙한 칼질을 향상시키는 일이 먼저니까. 요리로 업을 갖지 않게 되더라도, 그것이 제2의 취미에 머물게 되더라도 허투루 하진 않을 테다. 이 갈래에서 부족한 나와 나아지는 나를 함께 느끼고 싶다. 완성접시를 맛있게 비워 주는 사람들 앞에 고개 숙이며 꾸준히 요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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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실기시험에 나오는 요리들은 하나같이 푸짐하다. 또 먹음직스럽다. 튀김요리가 많기 때문이다.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한식이나 소스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양식에 비해 먹을거리가 넉넉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맛난 것을 꼽으라면 단연 ‘깐풍기’다. 닭고기를 두 번 튀겨 간장소스에 버무려 내는 이 요리는 ‘양념치킨 담백한 맛’ 그대로다. 녹말이 들어가지 않아 중식소스 특유의 걸쭉함이 없어 우리 입맛에 더 잘 맞는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두 번째 도전이라 꼭 합격하고 싶은데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다. 깐풍기와 탕수육만 해 보고 나머지 열아홉 가지는 조리법을 확인하는 걸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탕수조기나 짜춘권은 안 나오길 바라면서.


다섯 번째로 만드는 깐풍기였다. 학원에서 두 번, 집에서 두 번 해 보았으니. 할 때마다 반응은 좋았지만 너무 짠 적도 있었고 튀김옷이 물러진 적도 있었다. 이 녀석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물 없이 바삭하게 완성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 점에 각별히 주의하기로 했다.

다음은 학원에서 선생님 옆에 찰싹 붙어 기록했던 조리법을 다시 정리한 내용이다.

   
  깐풍기(30분)

1. 채소를 씻는다. 청피망과 홍고추는 사방 0.5cm 정도로, 대파, 마늘, 생강은 굵게 다진다.

2. 닭을 흐르는 물에 씻는다. 껍질은 그대로 두고 기름기만 제거한다.

3. 닭 튀길 기름을 올린다.

4. 닭뼈를 발라낸다. (닭다리 기준) 몸 안쪽을 보면서 칼날을 세워 뼈 바로 옆에 집어넣는다. 칼날이 안 들어갈 때까지 뼈를 따라 긁어 내려간다. 뼈 다른 쪽 옆에도 마찬가지로 칼금을 넣는다. 관절은 끊는다. 굵은 뼈 밑에 가느다란 뼈가 있는데, 이 뼈 아래에도 칼날을 넣어서 바깥쪽으로 민다. 뼈와 살 사이를 긁어 나가는 느낌으로.

5. 손질한 닭을 사방 3.5cm 크기로 썬다.

6. 썬 고기를 간장 한두 방울, 청주 약간, 소금 약간으로 밑간 한다.

7. 간장 1큰술, 설탕 1큰술, 식초 1큰술, 청주 1작은술, 물 2큰술로 소스를 만든다.

8. 고기에 튀김옷을 입힌다. 달걀흰자 1큰술, 녹말가루 3~4큰술, 물 1~2큰술을 넣어 조물조물 섞는다.

9. 기름에 튀김옷 반죽을 넣었을 때 3초 후 떠오르는 온도에서 고기를 튀긴다. 한 번 튀겨 익힌 뒤 노릇한 갈색이 날 때까지 한 번 더 튀겨 준다.

10. 팬에 기름을 두르고 ‘홍고추→대파, 마늘, 생강→소스→튀긴 고기→청피망’ 순으로 볶는다. 이때 고기는 소스가 반쯤 졸여진 상태에 넣어 강정을 버무리는 느낌으로 볶아야 한다. 피망을 빨리 넣으면 푸른색이 죽으므로 유의한다. 참기름을 둘러 마무리한다.
 
   

깐풍기는 무리 없이 완성되었다. 어머니가 사 오신 닭이 토종닭이라 살이 적었지만 열량과 영양은 가득했을 것이다. 또 튀김옷에 녹말가루가 부족했는지 삐죽삐죽한 모양이 안 나왔지만 맛은 퍽 좋았다. 깨물 때 바삭함이 살아 있었고 짭짤함과 달달함이 알맞게 어울렸다. 동생이 지금껏 만든 깐풍기 중 최고라 했을 정도다. 대파를 다지다 왼쪽 넷째 손가락을 베여 여태 밴드를 감고 있어야 하는 점은 안타깝다. 시험 전까진 아물어야 할 텐데.

베인 자리가 애매해 타자를 치기가 불편하다. 그래도 더 맛난 깐풍기를 만들게 됐으니 웃어 본다. 칼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요리를 할 수 없다. 하나 칼이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은 요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숟갈, 아직도 칼을 쥐면 겁이 나지만 꿋꿋이 닭뼈를 발라낼 수 있잖아. 내일 시장에 가서 칼을 갈아 오자. 그리고 시험에 깐풍기가 나오길 기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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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3-1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풍기는 아니지만 저도 오늘 저녁 메뉴로 닭날개 튀김을 했답니다. 아이가 먹어보더니 지난 번에 해준 닭날개 조림이 더 맛있다네요.
곧 시험 보시는군요. 중식이 제일 어렵다고 들은 것 같은데, 잘 하실 것 같아요. 시험에 깐풍기가 나오길 저도 빌어드릴께요, 손의 상처도 하루 빨리 회복되시길 바라고요 ^^
(매일 칼 쓰지 않는 날 없으면서도 저는 지금도 칼이 무서워요.)

숟가락 2010-03-13 06:23   좋아요 0 | URL
아, 닭날개 조림에도 간장소스가 쓰이는지 궁금하네요.^^ 맛있을 것 같아요~
조리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께서 양식이나 중식이 한식보다 쉽다고 하셨는데, 저한텐 중식이 더 어렵더라구요. 스케일이 크다고 해야 하나, 고런 느낌 때문에요. 그래도 1년에 기회가 네 번뿐이라 이번엔 꼭 붙었음 좋겠어요.^^
즐겁고 맛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