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기능사반 수업이 끝났다. 삼 개월 간 재료관리를 맡아 했던 반장 언니는 상장을 받았고, 개근한 사람들은 상품을 받았으며, 마지막 수업에 나온 사람 모두가 함께 대청소를 했다. 밀가루와 버터로 범벅되었던 72시간이 말끔히 마무리되었다.
시험을 본 사람도 있고 봐야 할 사람도 있다. 우리 조 막내 ㅎ은 정시 시험에 응시해 단팥빵을 만들었다고 한다. 학원에서 했을 때보다 반죽이 많이 질어 당황했다고. 다른 조 언니 ㄱ은 더치빵을 구웠는데 색이 너무 옅게 나왔나 보다. 선생님이 소리를 빽 지르셨다. “넌 그렇게 구워 놓고 잘했다 하니? 백 프로 떨어져!” 우리 조에서 가장 부지런한 언니 ㅇ은 내일 시험을 보신다. 악명 높은 데니시페이스트리가 나올까 봐 걱정하시기에 말씀드렸다. “옥수수식빵이 나오길 빌어 드릴게요!”
나는 아직 접수도 하지 못했다. 상시 시험을 보려 했는데 접수 단계에서부터 경쟁이 너무 치열한 거다. 틈틈이 연습하다 나중에 정시 시험을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정시 시험은 상시 시험에 비해 접수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그 대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뻑적지근함이 있다.)

1월 초 수업 첫날이 떠오른다. 어떻게 이 자리에 오게 됐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한 사람씩 자기 이야기를 꺼내 놓았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언니도 있었고, 빵집을 내야 한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제빵사가 되겠다는 고등학생, 그냥 빵을 좋아한다는 직장인도 있었다. 선생님은 봉사활동을 하고자 배운 제빵이 일로 연결되었다고 하셨다.
나는 뭐라고 했더라. 요리를 배웠는데 재미있어서 빵 만들기도 배우고 싶어졌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배우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반죽을 만지고 밀대를 굴리다 보면 기운이 쭉 빠지곤 했다. 요리보다 어렵다고 생각될 때도 많았다. 조리수업 때는 내가 막내여서 선생님과 아주머니들이 퍽 귀여워 하셨는데, 제빵수업엔 제과제빵에 일찍이 눈뜬 대학생이 있어 나는 노화 시작된 이십대 후반으로 밀려났다.
무채를 썰어 놓으면 “아가씨가 무채를 이렇게 잘 썰어?” 하는 칭찬을 듣고, 조기를 튀겨 놓으면 “놀랍다, 정말” 하는 감탄을 받았었지만 여기에선 그런 재미도 없었다. 주로 손이 느리다, 기운 없어 보인다, 그렇게 만들면 탈락이다 같은 말을 들었으니까. 한때는 스트레스를 받을 뻔했다. 그러나 내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어 준 사람들 덕분에 괜찮았다. 내가 못했던 게 아니다. 우리 조에 유독 빠릿빠릿한 사람이 많았던 거다.

동갑내기 ㅁ도 빠릿빠릿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서두르고 앞서 가는 바람에 선생님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눈에 띄게 손 빠르고 솜씨 좋았던 건 사실이다. 그는 중반 이후부터 수업에 나오지 못했다. 이름난 요리강사의 보조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강사가 꽤나 강퍅한 사람이었다. 터질 듯한 눈물과 욕설을 꾹 참는다던 ㅁ, 지금도 힘들게 일하고 있겠지. 알다시피 사회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데 그 강사가 최고 악질에 속하는 것 같진 않다고 나는 말했었다. 힘든 시기를 견디고 나면 빛 볼 날이 온다는 것을 그도 알 터이다.
막내 ㅎ은 야무지고 눈썰미 있는 친구였다. 미대생이라 그런지 맛과 모양 면에서 남다른 감각을 보였다. 그 덕분에 괜찮은 제빵기를 골랐고, 처음으로 시나몬롤을 구워 봤으며, 집에서 가까운 맛집 몇 군데를 알게 됐다. 아버지 생신 케이크를 만들려고 틀을 두 개나 빌렸는데, 결국 내가 산 틀을 쓰게 됐지만 선뜻 빌려 줘서 고마웠다. 나중에 너무 번화하지 않은 곳에다 예쁜 베이커리를 차리는 게 꿈이란다. 재주가 많으니 무엇을 해도 잘 할 것 같다.
ㅇ언니는 타고난 일꾼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조리사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자격증시험을 보시는 부지런함에 놀랐다. 제빵수업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일을 마친 뒤 오시는 거였다. 늘 가장 먼저 도착하셨고, 오셔선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팬과 틀부터 챙겨 놓으셨다. 반죽을 발효실에 넣고 나서 시간이 남을 땐 수업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보시거나 설거지, 작업대 정리를 하셨다. 그분 옆에서 닮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마음과는 다른 차원의 존경심을 느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난 뒤 팔짱을 꼈던 내게 또 보자며 지어 보이신 웃음은 달처럼 환했다.

그들과 함께했던 제빵수업이 끝났다. 힘차게 돌아가던 반죽기 훅도 멈췄고, 열기 가득했던 오븐과 발효실도 꺼졌다. 녹인 버터와 빵부스러기로 얼룩졌던 작업대는 반질반질해졌으며, 곳곳에서 활개 치던 알뜰주걱과 스크래퍼는 상자 속에 얌전히 뉘였다. 사람들은 밀가루 묻은 앞치마를 벗었다. 앞으로도 그들은 빵을 구울까? 이제 나는 무엇을 지향하며 빵을 구워야 할까?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자.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 데 있는 거니까.”
“내 나이와 다른 분야의 경력을 염두에 두고 뻗대면 뻗댈수록 나만 손해다.”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나온 대목들이다. 요리와 제빵을 배우는 동안 한결 절절히 다시 보게 되었다. 더욱이 제빵수업 때는 퍽퍽 소리와 함께 반죽기 안에서 사정없이 패대기쳐지는 반죽을 지켜보며 ‘그래, 뻗대면 나만 손해야’ 하고 읊조린 적도 있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뻗대지 말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 비교하면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다. 먹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내가 만든 요리와 빵, 과자를 먹으며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친구들, 그밖에도 다정한 혀를 가진 사람들한테 내가 더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 그들이 놀라워하고 맛있어 하면 신바람 나기 마련이다. 글로 남기게 되고, 새로운 조리법을 찾게 되고, 시장에 가게 되고, 부엌에서 춤추게 된다. 그들로 하여금 살아 있는 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제빵수업에서 함께 빵을 구웠던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먹이는 기쁨을 아는 사람들과 보낸 삼 개월이었다. 이 소소한 기쁨이 값비싼 기쁨으로 커지길 바라지는 말자. 작은 대로, 고마운 대로, 신바람 나는 대로 살뜰히 지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