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과정이 끝났다. 가장 쉬운 것은 고구마탕, 가장 어려운 것은 짜춘권이었다. 처음 짜춘권을 만들었을 땐 속이 터져서 썰어내지도 못했는데, 모의시험에서 다시 만들었을 땐 달걀피가 형편없이 부풀긴 했어도 썰어서 제출할 수가 있었다.
요리, 정확하게 조리를 배운 지 두 달이 넘었다. 배우면서 느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은 요리가 상상 이상의 체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내가 속한 반이 취미가 아닌 자격증취득과 직업훈련을 목적으로 한 곳이라 더 그럴 수도 있다. 네 시간짜리 수업을 듣고 난 나도 녹초가 되는데 하루의 반을 주방에서 뛰는 프로 요리사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재료 손질, 설거지, 청소까지 포함한다. 주방장 가운데 남자가 많은 것은 결코 통념을 깨는 현실이 아니다.
어제는 조리수업에 가지 않았다. 몸살기가 있었고 머리도 아팠다. 배우는 과정은 끝났지만 11월에 시험을 볼 계획이어서 모의시험에도 빠지지 않으려 했는데, 양식과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하루쯤 쉬는 것이 좋을 듯했다. 아니, 쉬어야 했다. 대신 전부터 읽고 싶었던 요리와 음식문화에 관한 책들을 찾아 헤맸다.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
14명의 요리사가 자신의 일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요리사 생활 보고서. 한식, 중식, 일식,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 요리, 외식업체 메뉴개발, 푸드 코디네이션, 제과제빵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요리사들의 일과 생활, 보람과 애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젋은 요리사를 위한 14가지 조언>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꼽히는 다니엘 뵐루가 소개하는 일류 요리사 숙련 과정, 요리사의 삶 이야기. 저자가 10년 동안 함께 일해 온 젊은 요리사 알렉스 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돼 있다.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아랍에미리트의 중심지인 두바이의 상징이자 “세계유일 7성급 호텔”로 불리는 버즈 알 아랍에는 400여 명의 요리사를 지휘하는 수석총괄조리장 에드워드 권이 있다. 그가 들려주는 요리 미학과 성공 레시피.
<음식의 역사>
선사시대 유물부터 1980년대의 스캔들까지,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한 음식의 세계사. 음식에 대한 인류의 욕망이 어떻게 인류 역사를 이끌고 사회와 종교, 탐험과 기술을 발전시켜나갔는지 풀어낸다. 고대의 작물 재배법과 동물 사육법, 로마의 요리에 사용된 특별한 조미료, 피를 마신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의 식사, 인도에서 발달한 소에 대한 신성의식, 19세기의 식품 대량생산, 20세기의 녹색혁명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먹거리의 역사>
인류의 기원, 수렵채취 생활, 채식에서 육식으로의 전환부터 특별한 먹거리, 식습관, 먹거리에 얽힌 일화, 가공기술과 다이어트에 이르기까지 먹거리에 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한 저술서. 꿀, 콩류, 버섯, 균류, 곡물, 육류, 해산물, 과일, 채소등의 기원을 밝힌다. 또한 과자, 포도주, 커피, 초콜릿, 차, 향료 등을 비롯한 기호식품과 식품저장법, 다이어트학, 비타민의 중요성 등 먹거리의 발전에 대해서도 저술하고 있다.
<죽음의 밥상>
논쟁적 윤리학자 피터 싱어, 그리고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농부이자 변호사인 짐 메이슨이 밥상을 향한 험난한 여정을 통해 크고 작은 식품업자들이 묻어두었던 진실을 캐낸다. 그 여정에서 대량사육 되는 가축의 현실과 시스템, 식품업자와 대형마트의 장난과 거짓 등 현대의 식생활을 둘러싼 논쟁의 지점들을 낱낱이 드러내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는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
우리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물으며, 음식이 우리가 세계와 교류하는 방식이라는 색다른 시각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주의 깊게 고민하기를 권하는 책. 오늘날의 식품산업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음식이나 식문화와 관련된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생태학적, 인류학적인 문제들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이 중 몇 권을 빌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와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부터 읽고 있다. 읽으면서 느낀다. 요리란 역시 엄청난 ‘체력’을 토대로 일구어내는 ‘예술’이라고.
요리는 예술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믿는 요리사가 만든 것이라면. 많이 팔기 위해 값싼 재료로 찍어내듯 만드는 음식들은 제외하자. 재료의 질, 먹는 이의 건강과 취향, 음식의 맛, 식기의 디자인, 데커레이션, 테이블 세팅까지 고려한 요리,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예술을 하려고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건 아니다. 그저 맛있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는 게 좋았고, 그런 음식을 만들어 권하는 것도 좋았다. 아주 어렸을 때의 막연한 장래희망 중에 ‘요리사’도 있었지만, 요리가 단지 1차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라 학습되면서부터 그것을 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일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주방에서 긴 모자를 쓰고 칼질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진 않는다. 다만 이런 장면은 떠올려본다. 작업실 겸 카페인 작은 공간. 그곳에서 글을 쓰고 요리를 한다. 작업을 겸하는 곳이므로 인테리어와 메뉴판은 단출하다. 촉감 좋은 목재 테이블 몇 개와 가장 자신 있는 밥, 디저트, 차로 구성된 메뉴. 영업시간도 짧다.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매일 준비한 최상의 재료가 떨어지면, 만들어놓은 음식이 동나면 카페 문을 닫는다. 작업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관련 책을 찾아 읽는 것은 요리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다. 가벼운 취미로 삼기에는 나와 잘 맞고, 내가 더 돈독한 관계를 원함을 알았다. 그러니까 열심히 배우고 만들고 맛보고, 또 읽고 쓰자. 나는 작가이며 요리사다. 화려한 세계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헤매며 길을 그려가는 탐험가,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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