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 조리훈련수업이 끝났다. 4개월에 걸쳐 한식․중식․양식 자격증 시험에 나오는 요리들을 배우고 연습한 시간이었다.

나는 턱걸이 출석률로 수료증을 받았다. 수료를 한 달쯤 앞둔 때부터 재택일을 시작해 종종 빠지게 됐다. 마무리를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앞에서 채운 출석률이 좋아 수료증이 나왔다. ‘증’이 다는 아니지만, 사실 그것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칼질하고 볶고 찌고 끓이고 설거지했던 꽤 긴 시간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작은 소품 하나가 더 생긴 셈이었다.

양식실기시험과 중식실기시험도 봤다. 양식시험 때는 가자미 요리인 ‘솔 모르네(Sole Mornay)’와 구운 소뼈를 끓여 내는 ‘브라운 스톡(Brown Stock)’을 만들었는데 49점을 받아 떨어졌다. 조리법은 얼추 지켰으나 스톡을 끓일 때 토마토 넣기를 깜박했고 솔 모르네를 완성한 모양도 예쁘지 않았다.

중식실기시험 문제는 ‘탕수조기’와 ‘부추잡채’였다. 이때는 아예 요리를 완성하지 못했다. 손이 많이 굳은 데다 날씨가 추워서 더 느려졌던 것 같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시험장에 ‘난방’과 ‘온수’란 없다고 보면 된다.) 조리법은 머릿속에 다 있었는데 말이다.

한식실기시험을 준비할 때는 생활 한복판에 ‘요리’가 있었다. 꼬박꼬박 조리수업에 나갔고, 집에서도 꾸준히 연습했으며, 쉰한 가지 조리법을 외우고자 동영상강의까지 챙겨 봤다. 거기다 문제도 괜찮게 나왔으니(‘오징어볶음’과 ‘무숙장아찌’) 운이 좋았고, 얼마 안 되지만 갈고닦은 모든 알맹이가 서로서로 힘을 낸 것이다. 그래서 시험을 보고 난 뒤에도 조금 기대를 걸 수 있었다. 양식시험, 중식시험을 보고 나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은 것과 다르게.

다음 달부터는 제과제빵을 배우려고 한다. 이번에도 자격증 과정이다. ‘웰빙샌드위치 만들기’, ‘건강빵 만들기’ 같은 과정도 있는데 왜 또 까다로운 자격증 과정이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 대답은 이렇다. 자격증에 집착한다기 보다는 이런 과정이 기본기를 쌓기에 좋고, 관심이 있어 배우는 김에 자격증을 따면 좋다고 느끼니까요.

그리고 다시, 요리 이야기를 할 때다. 요리가 나에게 준 여러 가지 기쁨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몰입할 때 느끼는 희열, 상처를 감싸 주는 포용력, 새살을 돋게 하는 치유력, 완성된 요리를 맛볼 때 찾아오는 만족감과 음식을 권할 때 밀려드는 뿌듯함까지.

자격증 연습요리이든, 생활요리이든, 제과제빵이든 삶과 문화를 담아 이야기하련다. 어떻게 가닥을 잡아 나갈지 요리조리 궁리하고 있다. 한 가지 또렷한 점은 이곳이 조리법만 가득한 자리가 되진 않으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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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에 칼집을 넣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번 해본 ‘칼집 넣기’를 좀처럼 끊을 수 없음을.

칼집을 넣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눈을 즐겁게 한다는 것. 오징어를 막대 모양으로 뚝뚝 썰어놓은 것에 비하면 훨씬 재미있고 이색적이지 않은가. 뿐만이 아니다. 칼집 사이사이로 양념이 고루 배어 음식의 맛도 한결 좋아진다. 씹을 때의 오돌토돌한 느낌 역시 즐거운 식사에 한 몫 한다.

한식에 오징어볶음이 있다면 중식엔 오징어냉채가 있다. 오징어볶음은 ‘X’자 모양의 칼집을 넣어야 하고, 오징어냉채는 종횡으로 칼집을 넣어야 한다. 두 경우 다 칼이 몸통 두께의 절반까지 들어가야 하는데, 그래야 오징어를 데쳤을 때 모양이 제대로 살기 때문이다. 특별히 어려운 과정은 아니지만 눈이 나쁘거나 손 떨림이 있는 사람에겐 힘들 수도 있다. 칼 쥔 손의 힘을 잘 조절하며 한 번에 한 줄씩, 빠르게 만들어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완성 후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찍은 것이라 겨자소스가 뭉쳐 있다.
제출할 때 이런 상태여선 곤란하다!

중식과정 때 제출했던 오징어냉채다. 선생님은 제출된 완성품 중에서 가장 좋다고, 오징어에 재주가 있나보다고 하셨다. 수강생 분들은 칼집이 고르다, 활 모양이 살아 있다 등등의 칭찬을 해주셨다. 오징어볶음으로 한식자격증을 딴 나이니 칼집은 무조건 예뻐야 했다. 강박증을 안고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합격자로서 고른 솜씨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들이고 있으니까.

오징어에 칼집을 넣기 시작한 뒤로 일어난 변화들이 있다. 먼저 오징어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솔직히 전에는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재료다. 그런데 요리를 하면서 생각보다 맛나고 부드러운 식재료임을 알았다. 씹을 때는 질긴 오징어가 실은 얼마나 야들야들한 녀석인지, 직접 만지고 손질한 오징어의 맛은 얼마나 담백한지. 이는 오징어 요리를 해봄으로써 알게 된 것들이다.

변화는 또 있다. 오징어에 칼집을 넣는 데 집중하면서 마음 속에 있던 칼집들은 희미해졌다. 요리를 통한 몰입과 기쁨으로 패인 자리가 메워졌다. 투명한 오징어 몸통에 마지막 한 줄의 칼집을 넣을 때마다 든 생각, 타인의 가슴을 할퀴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삶은 종종 우리를 속인다. 그러나 ‘너 죽고 나 죽는’ 짓을 할 바에야 오징어에 칼집을 넣는 것이 백 배 맛있는 일이다. 신성한 식재료에 넣는 칼집은 흉하지 않다. 그것은 당신이 제거하고자 하는 무엇을 정확히 겨냥할 활(오징어냉채의 모양), 당신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줄 도깨비방망이(오징어볶음의 모양)가 될 수 있으므로.

지금 무언가에 금을 긋거나 상처를 내고 싶은 당신에게 오징어 한 마리를 바친다. 사선이든 종횡이든 칼집을 넣어보시라. 마음껏, 당신이 내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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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과정에 들어갔다. 첫 수업 때 배운 것 중 하나가 이 ‘채소로 속을 채운 훈제연어롤’. 추가된 지 얼마 안 돼 시험에 나올 확률은 낮다고 한다.

슬라이스 한 연어 위에 당근, 샐러리, 무, 피망, 양파 등의 채소를 넣고 말아 3cm 크기로 썰어내는 요리다. 본격적인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인데, 솔직히 이것을 먹고 식욕이 막 살아나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시험을 앞둔 학생이며 귀한 재료들이 주어졌으니 열심히 만들어봐야 했다.

보통은 고기나 생선보다 채소를 먼저 손질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이때는 연어부터 썰었다. 언 상태에서 썰어야 원하는 모양과 두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0.2cm 두께로 얇게 썬 연어 조각들을 비닐 위에 겹치게 놓고 밀대로 자근자근 두드렸다. 조각과 조각을 붙게 하는 과정이었다.

속재료인 채소들은 전부 채를 썰어 준비하고, 색을 구분해 연어 위에 올린 뒤 비닐을 이용하여 말았다. 한식의 어선과 중식의 짜춘권이 떠올랐다. 어선은 생선포 위에 속재료를 올려 말아서 찌는 요리이고, 짜춘권은 달걀지단 위에 속재료를 놓고 말아서 튀기는 요리이다. 둘둘 마는 요리를 할 때면 얼마나 쩔쩔맸던가. 대개는 실패했던 기억이 난다. 김밥 한 줄 말아본 적 없는 내게 ‘마는 요리’란 어려운 것이었다.

다행히 양식의 연어롤은 6개를 무사히(?) 썰어낼 수 있었다. 꾹꾹 눌러가며 말지 못한 탓인지 속이 듬성듬성했다. 남아 있던 채소들을 슬쩍 끼워넣으며 예쁘고 실한 연어롤을 위해서는 첫째로 연어를 얇고 고르게 썰어야 한다는 점, 둘째로 속재료를 올린 뒤 야무지게 말아야 한다는 점을 되새겼다.

특이하게도 소스에는 생크림을 쓴다. 먼저 거품기로 빠르게, 팔이 떨어져라 저어 휘핑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홀스래디쉬(양고추냉이)와 소금, 후추, 레몬즙을 넣어 섞는다.

만들 때는 요상한 배합이라 여겼고 만든 후에도 소스에 연어롤을 찍어 먹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하니 후회된다. 차가운 연어와 부드러운 크림이 잘 어울렸을 법한데. 요즘 <라따뚜이>의 레미처럼 맛을 그려보는 버릇이 생겼다. 분홍빛 연어와 하얀 크림이 어우러진 그림은 제법 그럴 듯하다.

 

곁들인 레몬이 단순한 장식만은 아니다.
훈제연어에 산성의 레몬즙을 뿌려 먹으면 소화에 도움이 된다.

연어류는 ‘귀족 생선’이라고 한다. 그만큼 비싸고 구하기 힘든 것인데, 비교적 싼 값에 살 수 있는 녀석은 자연산이 아닌 양식 연어일 가능성이 높다. 양식 연어는 소금물에 산소를 공급하며 키운 것으로 바다에서 산 적이 없다.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갔다가, 다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 본디 연어의 일생을 생각하면 몹시 애석한 일이다. 생선으로 살아가는 연어에게도, 그것을 찾아 먹는 인간에게도. 내 접시 위에 올렸던 녀석의 고향은 어디일까?

연어의 여행은 가을에 시작된단다. 강에서 바다로, 다시 강으로. 물을 거슬러 헤엄칠 때 꿈틀거렸을 그들의 아가미와 지느러미와 꼬리를 그려본다. 길고 험한 여정에서 지켜냈을 물기와 소금기와 기름기를 핥아본다. 그것은 짜고 아름답다. 설령 낚시꾼의 그물 속이나 인간의 식탁 위로 귀결된다 하여도, 연어로 태어나 연어로 살고자 치러진 것이기에, 그 여행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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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과정이 끝났다. 가장 쉬운 것은 고구마탕, 가장 어려운 것은 짜춘권이었다. 처음 짜춘권을 만들었을 땐 속이 터져서 썰어내지도 못했는데, 모의시험에서 다시 만들었을 땐 달걀피가 형편없이 부풀긴 했어도 썰어서 제출할 수가 있었다.

요리, 정확하게 조리를 배운 지 두 달이 넘었다. 배우면서 느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은 요리가 상상 이상의 체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내가 속한 반이 취미가 아닌 자격증취득과 직업훈련을 목적으로 한 곳이라 더 그럴 수도 있다. 네 시간짜리 수업을 듣고 난 나도 녹초가 되는데 하루의 반을 주방에서 뛰는 프로 요리사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재료 손질, 설거지, 청소까지 포함한다. 주방장 가운데 남자가 많은 것은 결코 통념을 깨는 현실이 아니다.

어제는 조리수업에 가지 않았다. 몸살기가 있었고 머리도 아팠다. 배우는 과정은 끝났지만 11월에 시험을 볼 계획이어서 모의시험에도 빠지지 않으려 했는데, 양식과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하루쯤 쉬는 것이 좋을 듯했다. 아니, 쉬어야 했다. 대신 전부터 읽고 싶었던 요리와 음식문화에 관한 책들을 찾아 헤맸다.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
14명의 요리사가 자신의 일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요리사 생활 보고서. 한식, 중식, 일식,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 요리, 외식업체 메뉴개발, 푸드 코디네이션, 제과제빵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요리사들의 일과 생활, 보람과 애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젋은 요리사를 위한 14가지 조언>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꼽히는 다니엘 뵐루가 소개하는 일류 요리사 숙련 과정, 요리사의 삶 이야기. 저자가 10년 동안 함께 일해 온 젊은 요리사 알렉스 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돼 있다.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아랍에미리트의 중심지인 두바이의 상징이자 “세계유일 7성급 호텔”로 불리는 버즈 알 아랍에는 400여 명의 요리사를 지휘하는 수석총괄조리장 에드워드 권이 있다. 그가 들려주는 요리 미학과 성공 레시피.

<음식의 역사>
선사시대 유물부터 1980년대의 스캔들까지,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한 음식의 세계사. 음식에 대한 인류의 욕망이 어떻게 인류 역사를 이끌고 사회와 종교, 탐험과 기술을 발전시켜나갔는지 풀어낸다. 고대의 작물 재배법과 동물 사육법, 로마의 요리에 사용된 특별한 조미료, 피를 마신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의 식사, 인도에서 발달한 소에 대한 신성의식, 19세기의 식품 대량생산, 20세기의 녹색혁명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먹거리의 역사>
인류의 기원, 수렵채취 생활, 채식에서 육식으로의 전환부터 특별한 먹거리, 식습관, 먹거리에 얽힌 일화, 가공기술과 다이어트에 이르기까지 먹거리에 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한 저술서. 꿀, 콩류, 버섯, 균류, 곡물, 육류, 해산물, 과일, 채소등의 기원을 밝힌다. 또한 과자, 포도주, 커피, 초콜릿, 차, 향료 등을 비롯한 기호식품과 식품저장법, 다이어트학, 비타민의 중요성 등 먹거리의 발전에 대해서도 저술하고 있다.

<죽음의 밥상>
논쟁적 윤리학자 피터 싱어, 그리고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농부이자 변호사인 짐 메이슨이 밥상을 향한 험난한 여정을 통해 크고 작은 식품업자들이 묻어두었던 진실을 캐낸다. 그 여정에서 대량사육 되는 가축의 현실과 시스템, 식품업자와 대형마트의 장난과 거짓 등 현대의 식생활을 둘러싼 논쟁의 지점들을 낱낱이 드러내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는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
우리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물으며, 음식이 우리가 세계와 교류하는 방식이라는 색다른 시각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주의 깊게 고민하기를 권하는 책. 오늘날의 식품산업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음식이나 식문화와 관련된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생태학적, 인류학적인 문제들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이 중 몇 권을 빌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와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부터 읽고 있다. 읽으면서 느낀다. 요리란 역시 엄청난 ‘체력’을 토대로 일구어내는 ‘예술’이라고.

요리는 예술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믿는 요리사가 만든 것이라면. 많이 팔기 위해 값싼 재료로 찍어내듯 만드는 음식들은 제외하자. 재료의 질, 먹는 이의 건강과 취향, 음식의 맛, 식기의 디자인, 데커레이션, 테이블 세팅까지 고려한 요리,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예술을 하려고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건 아니다. 그저 맛있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는 게 좋았고, 그런 음식을 만들어 권하는 것도 좋았다. 아주 어렸을 때의 막연한 장래희망 중에 ‘요리사’도 있었지만, 요리가 단지 1차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라 학습되면서부터 그것을 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일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주방에서 긴 모자를 쓰고 칼질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진 않는다. 다만 이런 장면은 떠올려본다. 작업실 겸 카페인 작은 공간. 그곳에서 글을 쓰고 요리를 한다. 작업을 겸하는 곳이므로 인테리어와 메뉴판은 단출하다. 촉감 좋은 목재 테이블 몇 개와 가장 자신 있는 밥, 디저트, 차로 구성된 메뉴. 영업시간도 짧다.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매일 준비한 최상의 재료가 떨어지면, 만들어놓은 음식이 동나면 카페 문을 닫는다. 작업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관련 책을 찾아 읽는 것은 요리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다. 가벼운 취미로 삼기에는 나와 잘 맞고, 내가 더 돈독한 관계를 원함을 알았다. 그러니까 열심히 배우고 만들고 맛보고, 또 읽고 쓰자. 나는 작가이며 요리사다. 화려한 세계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헤매며 길을 그려가는 탐험가,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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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one can cook.”
“누구든지 요리를 할 수 있다.” 영화 <라따뚜이>에 나온 말이다.

주인공은 절대후각을 지닌 생쥐 ‘레미’. 다른 쥐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상한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이 녀석은 버섯에 치즈와 로즈마리를 얹어 굽는 실험을 한다. 뿐만 아니다.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 ‘구스토’가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가 펴낸 요리책을 넘기며 맛에 대한 꿈을 키워간다. 겉모습은 사람들의 비명을 자아내는 혐오동물이지만, 그 영혼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프로요리사다.

‘누구든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말은 무한정 관대한 듯하다. 그러나 영화를 따라 속뜻을 헤아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요리를 하는 데 당신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학연, 지연, 경력… 그런 것 없이도 얼마든지 요리를 할 수 있다. 단, 요리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당신의 체력, 열정, 그리고 상상력. 요리사라면 부산스럽고 후텁지근한 주방에서 종일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식재료를 맛보고 만지는 일에 오감이 열려 있어야 하며,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재료를 써서 새로운 요리를 창작할 수 있어야 한다.

<라따뚜이>의 메시지에 고무되어 학원에서 배운 중식 몇 가지를 만들어봤다. 뼈 발라낸 닭을 두 번 튀겨 간장소스에 버무리는 깐풍기, 옥수수반죽을 공 모양으로 빚어 튀기고 시럽을 묻혀내는 옥수수탕, 고추기름과 두반장으로 매콤한 소스를 끓여 두부를 섞는 마파두부, 이렇게 세 가지였다.

 

깐풍기는 어려운 요리가 아니지만 닭이 작아서 뼈 바르는 데 애를 먹었다. 뼈를 바르든 포를 뜨든 채를 썰든 다른 동물의 살을 손질할 땐 어쩔 수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능숙하기라도 하면 나을 텐데 낑낑거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더 착잡해진다. 닭다리뿐만 아니라 가슴살도 쓰고, 대파와 생강 등의 향채도 듬뿍 넣어서 맛은 괜찮았다. 

옥수수탕엔 옥수수 통조림이 아닌 삶은 옥수수를 이용했다. 그러다보니 반죽이 뻑뻑해서 동그랗게 빚어지질 않았다. 통조림으로 만든 것보다 딱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위적인 단맛이 줄어서 훨씬 나았다. 어떤 요리를 하든 방부제덩어리에 유전자변형가능성이 있는 통조림은 가급적 사용하지 마시길. 음식의 격이 떨어져 보이는 건 둘째 문제다. 무엇보다 먹는 이들의 건강을 위해 돌아볼 일인 것이다.

마파두부의 키포인트는 두반장인데 자주 가는 마트에 없어서 준비하지 못했다. 두반장 대신 고추장을, 간장 대신 굴소스를 넣어 감칠맛을 맞춰봤다. 3인분을 하느라 설탕 계량에 헷갈려 너무 달게 된 것이 흠이었다. 그래도 이열치열하기에 적합한 요리였다고 생각한다.

마파두부를 만들며 떠올린 사람이 있다. 얼마 전에 만난 그는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가학적인 연애, 사랑도 아닌 사랑으로 고생하던 그. 헤어지자는 말과 다름없는 상대의 언동들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몸 달아 있던 그. 나는 그가 버리지 못하는 분홍색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쩌면 저렇게까지 상대에 대해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말을 잃었다. 아니, 헤어지기 전에 할 말을 다 하고야 말았다.

그 사람이 얼마나 치졸한지, 폭력적인지, 주제파악을 못하는지 있는 그대로 봐요. 그리고 밀어내요. 단 몇 퍼센트라도 갖고 싶다구요?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녀도 좋다구요? 사랑이 완벽한 백퍼센트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사랑이 하나인 건 맞아요. 둘이고 셋인 게 어떻게 사랑인가요. 소설이나 영화 속에선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생활인의 사랑은 단순할 수밖에 없어요. 그 사랑이 진짜라면, 그처럼 여러 개의 거울을 동시에 필요로 하진 않아요. 그 사람이 죽는 걸 상상만 해도 모든 게 용서된다구요? 잘못한 사람이 구할 때 해주는 게 용서지, 구할 생각도 없는 사람한테 혼자 주는 건 용서가 아니에요.

그를 위한 마파두부에는 홍고추를 아낌없이 넣어야 할 것이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매콤한 요리를 먹다보면 후들후들한 마음에 어떤 각성이 스미게 될까. 그렇다. 하나마나한 말을 하느니 차라리 마파두부를 권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중식의 조리과정은 한식의 그것보다 간단한 편이다. 가짓수도 21가지로 훨씬 적고, 각 문제마다 주어진 시간도 짧다. 그럼에도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인지. 닭을 만질 때 살아있는 닭이 떠올라서? 튀김요리가 많아서? 기름냄새가 지독해서? 전부 그럴듯하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중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리를 배우기 전까지 자장면, 짬뽕 외에 알았던 게 뭔가. 탕수육, 깐쇼새우 이상으로 알았던 게 뭔가. 꼽을 만한 게 없다. 고로 당연한 일이다. 중국인이 왜 볶고 튀기는 요리를 많이 먹는지, 강한 맛과 향을 선호하는지, 그 드넓은 대륙에 사는 모든 사람의 입맛이 그러한지 모르는 것은. 내가 배우는 나라음식의 문화에 대해 공부할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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