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생활 습관의 문제야.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면 별도 정성스럽게 단장을 해 줘야 해. 장미와 바오밥나무를 구분할 수 있게 되면 그 즉시 뽑아야 해. 바오밥나무는 어렸을 때는 장미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거든. 이건 아주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는 나쁜 나무다. 바오밥나무 씨앗은 무시무시한 씨앗이다. 그 뿌리가 별에 구멍을 뚫고 파고들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별은 작은데, 그 작은 곳에 덩치 큰 바오밥나무가 자라면 별은 산산조각 나게 된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매일 아침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오밥나무 싹을 뽑았다.

동생은 내가 만든 밤식빵을 보더니 바오밥나무가 떠오른다고 했다. 토핑 위에 뿌린 해바라기 씨 덕분이었다. 바오밥나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 맞는지 모르겠지만, 연둣빛을 띤 해바라기 씨가 나뭇잎과 비슷해 보이긴 했다. 동생은 바오밥나무를 귀엽고 희망이 깃든 소재로 기억하는 것 같았다.

원래 밤식빵 토핑 위에는 슬라이스 아몬드를 뿌려야 한다. 그러나 집에는 아몬드가 없었다. 아몬드를 대신할 만한 재료를 찾아보니 해바라기 씨가 있었다.

   
  재료
생지:
강력분 200g, 중력분 50g, 인스턴트 드라이 이스트 6g, 설탕 35g, 소금 4g, 달걀 1개, 무염버터 30g, 물 100g, 밤조림 80g
토핑: 중력분 60g, 설탕 50g, 달걀 1개, 무염버터 60g, 우유 1큰술, 해바라기 씨
 
   

먼저 제빵기 오븐에 강력분, 중력분, 이스트, 설탕, 소금, 달걀, 물을 넣고 반죽을 시작한다. 5분쯤 지나 모든 재료가 한 덩어리로 뭉쳐지고 오븐 속 벽면이 깨끗해질 즈음 버터를 넣는다. 그 다음엔 완료되었다는 소리가 울릴 때까지 토핑을 준비한다. 제빵기를 이용하면 반죽이 한결 차지고 1차 발효까지 되어 아주 편하다.

토핑을 만들고 짜는 데는 큼직한 볼, 거품기, 짤주머니와 톱니형 깍지가 필요하다. 우선 버터를 볼에 넣고 녹여 준다. 이때 물이 아닌 마요네즈 같은 상태가 되도록 신경 쓴다. 거품기로 볼 안쪽 벽면을 치며 버터를 풀어 주다 설탕, 달걀 흰자, 달걀 노른자, 중력분, 우유 순으로 넣어 크림 상태가 되도록 섞는다. 완성된 것을 짤주머니에 채워 넣으면 토핑 준비 끝. 

나는 스프링 거품기와 별형 깍지를 썼다. 양식을 배울 때 사 둔 녀석들이다. 스프링 거품기는 일반 거품기보다 거품을 훨씬 잘 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골랐는데, 밤식빵 토핑을 만들 때 역시 재료들을 잘 섞어 줬다. 제빵실기시험을 볼 때 갖고 갈 생각으로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갖고 가도 되긴 하지만 시험 볼 땐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하기에 일반 거품기 큰 것을 써야 한다고 하신다. 에고, 커다란 스프링 거품기는 구할 수 없으려나?

다 된 반죽은 둥글리기 한 뒤 볼에 넣어 비닐을 덮고 20분간 중간발효 시킨다. 이때 식빵틀에 기름칠을 해 둔다. 중간발효가 끝나면 빵 성형을 시작한다. 밤식빵은 ‘한 덩이형’이다. 손바닥으로 반죽을 눌러 공기를 뺀 뒤 밀대를 이용해 큰 타원형으로 밀어 주고, 뒤집어서 밤조림을 올린다. 완성된 빵을 잘랐을 때 밤이 한쪽에 쏠려 있으면 안 되므로 골고루 잘 올려야 한다. 밤이 튀어나오지 않게 반죽을 잘 말아서 끝을 여미고 틀에 담는다.

자, 이제 2차 발효를 시킬 때다. 오븐을 이용하면 좋다. 가장 낮은 온도(40도)로 맞춰 반죽이 틀 아래 0.5cm 높이로 올라올 때까지 두면 된다. 2차 발효가 끝나면 반죽을 꺼내 짤주머니에 든 토핑을 올리고 해바라기 씨를 뿌린 뒤 다시 오븐에 넣어 굽는다. 집에서 쓰는 미니오븐은 학원에 있는 데크오븐과 달라 온도를 낮추고 시간도 짧게 잡아야 한다. 컨벡스 미니오븐 160도에서 25분 구우니 알맞은 듯했다.

듬뿍 짜 넣은 토핑이 조금 흘러넘치긴 했지만, 완성된 밤식빵은 소담하고 노릇하여 보기 좋았다. 맛을 본 식구들도 모두 흐뭇해 했다.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뭉텅뭉텅 베여 사라졌으니 괜찮게 만든 것 같았다. 접시가 비었을 때에야 생각이 났다. 어린 왕자,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오밥나무 싹을 뽑던 아이와 나눠 먹을걸.

며칠 전 미용실에 갔을 때 처음으로 미용사의 손을 보았다. 내 머리를 감겨 주었던 훤칠한 남자 미용사의 손, 내게 요리잡지 <쿠켄>을 건네주었던 어여쁜 여자 미용사의 손 모두 많이 상해 있었다. 매일 독한 약을 다루다 보니 붉어지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난 왜 이제야 그들의 손을 보게 된 걸까. 하마터면 그 손들 위에 내 손을 포개고 “아파 보여요” 할 뻔했지 뭔가.

여자 미용사는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전에 일했던 미용실의 단골 가운데 유명한 쉐프가 있었는데, 그분이 열정만 있다면 함께 일해 보자고 제안했단다. 갈등하다 결국 지금 미용실로 왔지만 아직도 생각이 난다는 걸 보니 퍽 아쉬운 모양이었다.

“드라마 ‘파스타’ 보세요? 정말 그렇게 힘들까요? 그러고 보면 요리랑 미용은 비슷한 것 같아요.” “엄마는 말씀하세요. 요리는 결혼하면 네 남편한테만 해 주라고.” 그렇게 말하며 웃던 미용사가 내 손등을 만져 본다. “아유, 이 손으로 요리를 하신다는 거죠? 계속 재미있게 하시면 좋겠어요.” 

어린 왕자는 장미를 사랑했다. 그리고 별을 지키기 위해 바오밥나무 싹을 뽑았다. 습관처럼, 귀찮지만 어렵지 않다고 여기면서. 문득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해바라기 씨를 토핑한 밤식빵을 나누어 먹고 싶다. 우리의 습관은 뭔지, 삶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은 뭔지, 뽑아내는 것과 뽑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뭔지… 달콤한 밤과 바삭바삭한 토핑, 쫄깃한 빵을 느끼며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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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기능사반 수업 듣기. 새해에 시작한 일 가운데 하나다.

일주일에 두 번, 집 근처 여성센터에 가서 듣고 있다. 커다란 반죽기와 오븐에 놀라고 발효가 뭔지, 비상법이 무슨 말인지, 오븐스프링이 뭘 가리키는지 몰라 허둥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렇다고 지금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배운 빵 이름을 읊으면 놀랄 것이다. 식빵, 우유식빵, 버터톱식빵, 건포도식빵, 호밀식빵, 풀먼식빵… 식빵 갈래만 여섯 가지다. 팥앙금빵, 소보루, 스위트롤, 빵도우넛, 데니시페이스트리, 트위스트, 치즈스틱, 모카빵, 더치빵… 많기도 하다.

실은 제과를 먼저 배우고 싶었다. 더 쉽고 아기자기하다는 말을 들어 왔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강신청 날 아침 9시, 여성센터 누리집이 불안정해 9시 3분에야 수강신청 게시판에 들어갔는데 제과기능사반은 이미 마감돼 있었다. (수강생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주머니들의 학구열이 그토록 뜨거움을 새삼 느꼈다. 여하튼 맙소사, 난 빵보다 쿠키, 케이크를 더 만들고 싶었다고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 배우려고 했던 제빵을 당겨 배우게 된 것이다. 듣던 대로 빵 만들기는 어려웠다. 원래 수업은 세 시간이지만 재료 계량과 반죽, 발효까지 포함해 네 시간은 족히 걸렸다. 처음에 식빵 한 가지만 만들 때도 정신이 없었는데 두 가지씩 만들게 되니 강의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예전 조리수업은 선생님 시연을 쫙 본 뒤 연습하는 짜임새라 내용을 꼼꼼히 기록할 수 있었으나, 제빵수업은 휴지를 둬야 하는 빵 특성상 그럴 수 없어 놓치는 내용도 생겼다. 반죽과 성형은 과연 어려웠고, 수시로 온도와 시간을 살피느라 손은 물론 눈도 쉴 새가 없었다. 아, 생전 처음 빵을 만들어 보는 내겐 진정 그러했다.

 

같은 조에 있는 동갑내기 친구는 나와 달리 빠르고, 힘 있고, 능숙하다. 요리 쪽으로 진로를 바꾸고자 회사를 그만둔 뒤 계속 자격증을 따 온 친구인데, 반 년 사이에 벌써 한식․중식․일식자격증을 다 땄다. 요즘은 떡․샌드위치 과정을 들으며 양식시험까지 보고 있다. 정말 탁월한 재주와 체력이다. 그 친구가 만든 식빵의 엉덩이는 양쪽 균형이 잘 맞고 예쁜데, 내가 만든 식빵은 늘 ‘짝궁둥이’로 나온다. 기운 빠진다. 그리고 야속해진다. 식빵이? 아니, 내 손을 탓해야겠지.

이제 둥글리기는 곧잘 하지만 반죽 분할이나 막대 밀기, 꽈배기 만들기 같은 과정은 여전히 더디다. 같은 조에 있는 분들이 “손해 비해 반죽이 너무 크다”, “손이 작으니 시간이 더 걸리지”, “아이고, 그렇게 해서 뭐 먹고 살래?” 하고 말씀하실 때 ‘나는 제빵에 소질이 없나’란 생각도 얼핏 했다.

하지만 얼마나 우스운 생각인지 이내 알아차렸다. 제빵을 배운 기간은 고작 한 달이고, ‘소질’을 들먹이기엔 아직 이르며, 설령 소질이 없다한들 내가 제빵사를 꿈꾸는 사람은 아니기에 문제될 일은 없으니까.

물론 나는 빵을 잘 만들고 싶다. 잘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 해서 자격증시험도 볼 것이다. 그러나 빵을 찍어 내듯 만들진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을 터이다. 지금으로선 빵집을 차릴 생각도 없으며 유명한 빵집에 취직할 마음 또한 없다. 다만 손수 만든 빵을 가까운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 주면 좋겠다. 식구들이, 친구들이, 결혼한 뒤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내가 구운 빵으로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나무숟갈 이야기’에 올리는 빵 이야기도 점점 구수해지겠지. 나는 ‘제빵사’가 아닌 ‘빵 굽는 사람’으로서 소소한 기쁨을 만들어 내며, 지금 내가 그러하듯 손 느리고 매번 쩔쩔매는 누군가한테 빵 만들기를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막연히 생각해 온 요리봉사를 보탠다면 숟갈이 만드는 빵은 한결 넉넉해지리라.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제빵기능사 수업에서 가르치는 빵들은 맛없고, 모양도 밉고, 몸에도 나쁘다고. 해 보니 알겠다. 맛이나 모양이야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은데, 버터와 설탕과 첨가물이 워낙 많이 들어가니 건강에 이로울리 없다. 설탕을 줄이고 참신한 모양을 빚는 일은 기본기를 닦고 난 뒤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숟갈은 빵순이가 되었다. 아니, 빵순이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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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스타’를 본다. 요리를 주된 소재로 삼아서 좋고 뜨거운 주방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좋다. 쉐프와 초보 요리사 사이에서 무르익어 가는 사랑, 그것을 지켜보는 맛도 고소하다.

쉐프가 눈을 가린 상태에서 음식 맛만 보고 요리사를 뽑는 블라인드 테스트, 매출이 떨어진 레스토랑을 살릴 목적으로 펼쳐진 신메뉴 개발 콘테스트 같은 소재도 신선했다. 듣자하니 일본 드라마나 일본 만화에서는 쓸 만큼 쓴 이야깃거리라던데, 그쪽에 발을 깊이 담가 보지 않은 내게는 제법 새로웠다.

한 가지 더, ‘알리오 올리오’란 파스타를 알게 되었다. 별다른 소스 없이 올리브유로 마늘과 면을 볶아 내는 이 파스타를 맛본 적은 있다. 프랜차이즈 스파게티집에서 ‘마늘오일스파게티’란 이름을 보고 골랐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때 입맛에 안 맞았던지 또 찾아 먹은 기억은 없다. 스파게티 맛은 토마토소스 아니면 크림소스에 있지 하고 줄곧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나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던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 속 쉐프가 ‘숟가락으로 받쳐야 될 만큼 소스 흥건한 파스타는 정통 파스타가 아니다’라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를 때, 괜스레 부끄러웠다.

알리오 올리오는 드라마 초반에 꽤 비중 있게 다뤄진 소재다. 주인공 초보 요리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과 함께 먹었던 파스타이고, 또 그가 주방에서 쫓겨난 뒤 복귀하고자 참가한 블라인드 테스트 때 선보였던 파스타이다. 누구보다 울상이 잘 어울리는 초보 요리사가 몇 번을 삶고 볶고 맛보고 버리며 눈물과 애증으로 완성한 알리오 올리오를 나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이미 많은 조리법이 올라와 있었다. ‘드라마 파스타에 나온’, ‘공효진 따라잡기’ 같은 제목들로 말이다. 여러 개를 살펴본 뒤 면, 마른 고추, 파슬리, 올리브유, 파마산치즈 가루를 사 왔다. 마늘은 냉장고에 넉넉히 있었다.

먼저 마늘을 얇게 저미고 마른 고추는 잘게 썰었다. 파슬리 잎은 다져서 준비했다. 재료 손질을 마친 뒤 올리브유와 굵은소금을 넣은 물(면 삶기용)을 올렸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 두 큰술을 두르고 마늘과 마른 고추를 볶았는데, 이때 마늘을 태우고 말았다. 연갈색으로 익어 버린 마늘 조각들 앞에서 혀를 차며 일단 불을 껐다. 면을 삶아야 할 차례였다. 면을 미리 삶아 놓으면 불고 맛이 떨어지니 마늘을 볶은 다음에 하라는 지시를 봐 둔 터였다.

내가 쓴 면은 납작하게 나온 ‘바베떼’였는데, 8분 가까이 삶아도 잘 익은 것 같지 않았다. 면 한 가닥을 끊어 보았을 때 속에 샤프심 같은 심이 생겼으면 다 익은 것이다. 그러나 샤프심을 확인하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만큼 바베떼란 녀석이 주는 식감은 낯설었다.

여하튼 그렇게 삶아 낸 면을 프라이팬에 넣어 마늘, 마른 고추와 함께 볶았다. 면 삶은 물 세 큰술을 넣고 소금, 파슬리 가루, 파마산치즈 가루도 넣었다. ‘파스타’ 속 쉐프와 초보 요리사가 했던 것처럼 프라이팬을 흔들고 나무주걱도 휘둘렀다. 용쓰는 나를 지켜보시던 어머니가 한마디 건네셨다. “이건… 썩 맛있어 보이진 않네.”

어쩜, 내가 봐도 그랬다. 맛을 보니 과연 그러했다. 올리브유를 적게 쓴 모양이었다. 기름이 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 풍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간도 못 맞춘 데다 태운 마늘은 씁쓸했다. 이 녀석을 만들기 전에 일부러 성신여대 앞 ‘마늘과 올리브’에 가서 먹었던 ‘마레 알리오 올리오’와는 심히 동떨어진 맛이었다. 기대하고 있던 동생이 포크질을 몇 번 하더니 알 수 없는 맛이라며 못 먹겠다고 했다. 간만의(?) 실패작이었다.

'마늘과 올리브'에서 먹었던 '마레 알리오 올리오'.
오징어, 홍합, 새우 등 해산물이 들어 있다.
   

드라마에서 초보 요리사가 얼굴을 찌푸린 채 싱크대에 쏟아 버린 파스타도 이런 맛이었을까? 재료를 적게 쓰는 만큼 맛을 내기 어려운, 소스가 없어 요리 결과가 훤히 드러나는 알리오 올리오가 퍽 까다로운 녀석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실패한 알리오 올리오와 상관없이 ‘파스타’는 계속 보고 있다. 쥐치 간 푸아그라, 피쉬볼 파스타 같은 새로운 요리와 함께 요리사들은 매회 애정의 다양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고 보니 알리오 올리오는 사랑에 서툴고 용감한 초보 요리사를 쏙 빼닮았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속내를 얼굴에 생중계하는 그.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실패작이면 실패작이라고 맛을 접시 위에 재현해 내는 파스타.

문득 이런 생각이 솟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맛있는 알리오 올리오 같은 사람이 되어 주자는. 담백하고 감칠맛 나서 맛볼수록 끌리고, 속을 가리는 소스 따위가 없는 까닭에 더욱 좋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알리오 올리오 만드는 연습도 더 해야겠지? 재료는 충분히 남아 있다. 연습은 아무리 해도 넘치지 않는다. 노력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스승이다. 나는 요리에서도, 사랑에서도 천재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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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간단하다. 고추장, 식용유 또는 버터, 간장 또는 굴소스, 참기름, 찬밥 또는 더운밥, 이것이 전부다.  

만드는 방법 또한 아주 쉽다.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찬밥으로 할 때다. 프라이팬에 식용유 또는 버터를 알맞게 두르고 밥을 넣는다. 한 공기라면 고추장 한 큰술, 굴소스 반 큰술을 넣어 볶아 준다. 뭉쳐 있던 밥알들이 잘 흩어질 때까지 볶다가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향을 낸다.

다른 하나는 더운밥을 준비했을 때다. 이때는 굳이 볶지 않아도 좋다. 밥에 고추장, 간장을 넣어 잘 비벼 주면 된다. 볶을 때와 달리 참기름은 한 큰술쯤 넉넉하게 넣기를. 너무 쉽지 않은가? 깔끔하면서도 풍미 있는 맛이야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취향에 따라 달걀프라이를 올리거나 김, 오이지를 곁들여 먹어도 감동적이라는 말밖엔.

이 고추장밥은 내가 집에서 가장 즐겨 해 먹는 요리다. 반찬이 없을 때, 배고픈데 뭔가 만들기는 귀찮을 때 서슴없이 이 녀석을 택한다. 재료가 떨어지는 경우가 없고 달걀프라이까지 넉넉잡아 십 분이면 만들 수 있으니 사랑한다. 그런데 이 녀석을 사랑하게 된 까닭은 단출한 재료와 짧은 시간 말고도 더 있다.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7월, 그러니까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친구들과 넷이서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다. 영국에 가면 피시 앤 칩스, 독일로 넘어가면 소시지와 생맥주, 이탈리아에선 정통 피자와 까르보나라를 먹어 보는 거야! 출발할 무렵만 해도 얼마나 꿈이 야무졌던가. 여행서와 블로그를 뒤져 정리한 현지 맛집 목록을 손에 쥔 채 몹시 든든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우리는 돈도 시간도 부족한 배낭여행자였고, 더구나 길치였다. 끼니 대부분은 어딜 가도 눈에 띄는 맥도날드에 가서 해결해야 했다. 다시는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먹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건 그때 먹은 맥도날드 패스트푸드 때문이다. 결코 싸지 않았던, 그러나 똑같이 니글니글하고 찜찜했던 유럽 맥도날드. 남들은 배낭여행을 하면서 살이 쑥쑥 빠진다던데, 우리는 주구장창 맥도날드를 드나든 탓인지 경이로운 체중감량 같은 건 경험할 수 없었다.

여행 식생활이 늘 그렇게 기름진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요구르트보다 유산균이 몇 배는 더 많이 든 것 같은 요구르트, 햇빛을 듬뿍 받아 풍성하고 달디 단 과일도 종종 섭취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비상식량으로 챙겨 간 햇반을 먹었다. 반찬이라곤 튜브 고추장과 통조림 참치뿐이었음에도 왜 그리 꿀맛이었는지. 밥을 먹으면서 되뇌고 또 되뇌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 가면 밥만 먹을 거야, 매일매일 고추장이랑 먹을 거야!

고추장밥과 열렬한 사랑에 빠진 것은 그때부터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요리 두 가지가 이 고추장밥과 떡볶이다. 그 이유는 틀림없이 매운맛을 내는 고추장에 있다. 짜릿한 매콤함, 기분 좋은 얼얼함, 뿌리칠 수 없는 쌉쌀함 때문에 지금껏 고추장밥을 아낀다. 아마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다.

며칠 전에 들었던 인문학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은 고통이다’라는. 혹자는 당연한 말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옳다, 우리가 숱하게 들어 온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그만큼 삶에 새기고 있는지 돌아보면 ‘당연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터이다.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고통과 맞닥뜨렸을 때 절망한다. 또는 터무니없이 희망한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누군가에게 매달리며, 누군가의 위로를 움켜잡는다. 삶이 매운 것을 견디지 못하는 까닭에 발돋움 따위는 내다보지 않는다. 뭐, 괜찮다. 어쨌든 살아 내고 있다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약했던 모습이야 나중에 깨달아도 늦지 않는다. 깨달음이 오는 그때에 곧 한 뼘 자라 있을 테니까. 새로 맞은 호랑이해에 고추장밥을 먹는 나도 그러하리라. 적어도 배낭여행 때 고추장밥을 먹던 나와는 다르지 않겠는가.

어머니가 나를 뱃속에 넣고 계실 때 암호랑이 꿈을 꾸셨다고 들었다. 꼬리를 살살 흔드는 작은 호랑이가 한눈에 봐도 암놈이었다고 한다. 그 녀석은 지금쯤 꼬리를 흔드는 대신 어디론가 달리고 있을 것이다. 삶이 얼마만큼 맵다는 점도 알아차렸을 터이다. 눈매는 또렷해지고, 이빨과 발톱은 한결 날카로워졌겠지. 나는 달리는 호랑이를 지지한다. 고추장과 밥을 섞어 놓아도 맛있게 먹어치울 듯한 호랑이를 응원한다. 멈추지 마라, 호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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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본 인디필름 페스티벌 상영작 가운데 하나인 <남극의 쉐프>를 봤다. 한 마디 감상평을 써 보자면 ‘자극 없이 웃기고 신파 없이도 짠한 요리영화’라고 할까. 졸지에 기러기 아빠가 된 조리사가 식사시간이 유일한 낙인 남극관측 대원들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기쁨을 준다는 줄거리가 튀지 않으면서 신선하고 훈훈한 작품이었다. 

영화에는 여러 가지 요리가 나왔다. 계란말이와 미소된장국이 기본인 일본 가정식부터 연어와 장조림과 명란젓을 넣은 주먹밥, 회전식 반찬대에 담아 돌려 먹는 중식, 타르타르소스를 끼얹은 닭새우튀김, 쥐불놀이 하듯 구운 고기, 천연얼음 위에 시럽을 부어 숟갈로 긁어 먹는 셔벗, 프랑스 거위간 요리인 ‘푸아그라’를 포함한 만찬, 손수 만든 간수로 끓인 라멘까지, 아침을 거른 채 영화를 보는 내 오관이 떨릴 만큼 많은 요리가 스쳐 갔다.

다 맛있어 보였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눈에 띈 요리는 거대한 닭새우튀김이었다. 조리사 ‘니시무라’가 회로 먹자고 거듭 권했으나 다른 대원 모두가 강력하게 밀어붙여 튀김으로 거듭난 닭새우. 너무 커서 한 접시에 가지런히 담길 수 없는 탓에 머리는 따로 세워지고 몸통은 옆에 누였다. 통통하다 하기엔 터질 듯하고 먹음직스럽다 하기엔 무지막지한 녀석 앞에 할 말을 잃은 대원들에게 니시무라가 어정쩡한 웃음을 보이며, 그러나 자상한 목소리로 한마디 건넨다. “머리내장을 섞은 타르타르소스를 곁들였습니다.”

닭새우는 누가 봐도 튀김을 해 먹기엔 알맞지 않은 녀석이었다. 회로 먹었다면 틀림없이 더 생생하고 담백한 새우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원들이 부득부득 튀김을 고집했던 이유는 뭘까?

해발 3,810m, 평균 기온 -54도인 남극 돔 후지 기지. 그곳엔 펭귄도, 바다표범도 살지 않는다. 심지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지 못한다. 기지 밖에 있으면 얼굴에 난 털이란 털에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다. 바람과 눈보라보다 더 지긋지긋한 것은 ‘추위’다. 그들은 늘 추위에 시달린다. 가족과 애인을 떠나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들에게 극한지는 한층 가혹한 곳이다. 당연히 따뜻한 음식이 그리울 테고, 날카로운 칼로 뜬 차가운 회보다는 뜨거운 기름에 튀겨 낸 소복한 튀김이 더 먹고 싶었으리라.

그들이 두툼한 새우튀김을 한입 가득 베어 무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새우튀김이 먹고 싶어졌다.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중간크기 새우를 넉넉히 튀겨 식구들과 함께 먹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더구나 타르타르소스는 양식실기수업 때 배운 요리였다. 군침이 돌았다. 좋았어, 고소한 소스도 만들어 바삭한 튀김에 곁들여 먹자!

그렇게 해서 타르타르소스를 먼저 만들게 됐다. 소스는 만들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났을 때 맛이 한결 좋아짐을 기억했다. 양파와 피클, 삶은 달걀흰자를 다지고 달걀노른자는 체에 내렸다. 손질한 재료들을 한데 모은 뒤 같은 양의 마요네즈를 넣어 섞었다. 조리법에 따르자면 소금과 흰후추를 넣어야 했지만, 마요네즈 자체가 짜기 때문에 건너뛰었다. 마지막으로 냉장고 서랍에서 굴러다니던 레몬을 토막 내 짜서 묽기를 맞췄다. 소스 완성! 

다음은 새우를 튀길 차례였다. 중하 한 모둠을 샀더니 열다섯 마리가 들어 있었는데, 온 식구가 배불리(?) 먹기에는 부족한 듯해서 고구마도 튀기기로 했다. 새우를 튀기면 내장이 흘러나와 기름색이 변한다니 고구마튀김을 먼저 해야 했다.

어머니가 고구마튀김 만들기를 도와주시는 사이에 새우를 손질했다. 가시와 수염을 잘라 내고 마디 끝부분을 뺀 나머지 부분 껍질을 벗겼다. 수업시간에 했던 것처럼 이쑤시개를 등 두 번째 마디에 찔러 넣어 내장도 뺐다. 시간이 꽤 걸렸다. 손질한 새우에는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리고 튀김옷을 입혔다. 밀가루 묻히고 달걀물에 빠뜨리고 빵가루 위에서 굴리고. 모양을 생각해 머리와 꼬리에 묻은 가루는 털어 냈다.

튀길 때는 기름을 적게 썼다. 깊은 바다에 풍덩 빠뜨리는 느낌이 아니라 얕은 물에 눕히는 느낌으로 했다. 그렇게 마무리한 튀김도 바삭하고 고소했다. 새우튀김은 군소리할 나위 없이 맛났고, 고구마와 ‘삐죽삐죽 튀김옷’도 제법 잘 어울렸다. 양파를 듬뿍 넣은 타르타르소스에 찍어 먹으니 느끼한 가운데서도 상큼해 계속 손이 갔다. 다들 맛있다며 잘 먹어 주었다. 내가 한결 즐겁게 맛볼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때문일 터이다.

 

따듯함과 바삭함, 고소함을 나누다 보니 웃음이 번졌다. 온몸을 출렁이게 하는 ‘큰웃음’은 아니었지만 한겨울 추위를 덮기에는 알맞춤했다. 니시무라가 식사시간마다 흐뭇해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가 사람들에게 준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고, 그가 먹은 것 또한 음식만이 아니었다. 추위와 외로움을 잊게 하는 훈훈함, 입 속과 마음속을 동시에 채워 주는 포만감, 함께 씹고 삼키고 마신다는 유대감… 그는 그 모든 요리를 만들어 먹이고, 먹어 온 것이다.

요리란, 그래서 예술이기 이전에 삶이다. 두꺼운 튀김옷을 입은 새우는 파란 장미 새겨진 ‘접시’가 아니라 차가운 ‘계절’에 꼭 들어맞는다. 삶은 접시 위에만 놓이지 않고 남극에, 대한민국 서울에, 겨울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듯함과 바삭함, 고소함을 전해 준다. 추워도 춥지 않게 하는 것. 아, 이보다 맛있는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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