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기능사반 수업 듣기. 새해에 시작한 일 가운데 하나다.
일주일에 두 번, 집 근처 여성센터에 가서 듣고 있다. 커다란 반죽기와 오븐에 놀라고 발효가 뭔지, 비상법이 무슨 말인지, 오븐스프링이 뭘 가리키는지 몰라 허둥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렇다고 지금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배운 빵 이름을 읊으면 놀랄 것이다. 식빵, 우유식빵, 버터톱식빵, 건포도식빵, 호밀식빵, 풀먼식빵… 식빵 갈래만 여섯 가지다. 팥앙금빵, 소보루, 스위트롤, 빵도우넛, 데니시페이스트리, 트위스트, 치즈스틱, 모카빵, 더치빵… 많기도 하다.
실은 제과를 먼저 배우고 싶었다. 더 쉽고 아기자기하다는 말을 들어 왔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강신청 날 아침 9시, 여성센터 누리집이 불안정해 9시 3분에야 수강신청 게시판에 들어갔는데 제과기능사반은 이미 마감돼 있었다. (수강생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주머니들의 학구열이 그토록 뜨거움을 새삼 느꼈다. 여하튼 맙소사, 난 빵보다 쿠키, 케이크를 더 만들고 싶었다고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 배우려고 했던 제빵을 당겨 배우게 된 것이다. 듣던 대로 빵 만들기는 어려웠다. 원래 수업은 세 시간이지만 재료 계량과 반죽, 발효까지 포함해 네 시간은 족히 걸렸다. 처음에 식빵 한 가지만 만들 때도 정신이 없었는데 두 가지씩 만들게 되니 강의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예전 조리수업은 선생님 시연을 쫙 본 뒤 연습하는 짜임새라 내용을 꼼꼼히 기록할 수 있었으나, 제빵수업은 휴지를 둬야 하는 빵 특성상 그럴 수 없어 놓치는 내용도 생겼다. 반죽과 성형은 과연 어려웠고, 수시로 온도와 시간을 살피느라 손은 물론 눈도 쉴 새가 없었다. 아, 생전 처음 빵을 만들어 보는 내겐 진정 그러했다.
같은 조에 있는 동갑내기 친구는 나와 달리 빠르고, 힘 있고, 능숙하다. 요리 쪽으로 진로를 바꾸고자 회사를 그만둔 뒤 계속 자격증을 따 온 친구인데, 반 년 사이에 벌써 한식․중식․일식자격증을 다 땄다. 요즘은 떡․샌드위치 과정을 들으며 양식시험까지 보고 있다. 정말 탁월한 재주와 체력이다. 그 친구가 만든 식빵의 엉덩이는 양쪽 균형이 잘 맞고 예쁜데, 내가 만든 식빵은 늘 ‘짝궁둥이’로 나온다. 기운 빠진다. 그리고 야속해진다. 식빵이? 아니, 내 손을 탓해야겠지.
이제 둥글리기는 곧잘 하지만 반죽 분할이나 막대 밀기, 꽈배기 만들기 같은 과정은 여전히 더디다. 같은 조에 있는 분들이 “손해 비해 반죽이 너무 크다”, “손이 작으니 시간이 더 걸리지”, “아이고, 그렇게 해서 뭐 먹고 살래?” 하고 말씀하실 때 ‘나는 제빵에 소질이 없나’란 생각도 얼핏 했다.
하지만 얼마나 우스운 생각인지 이내 알아차렸다. 제빵을 배운 기간은 고작 한 달이고, ‘소질’을 들먹이기엔 아직 이르며, 설령 소질이 없다한들 내가 제빵사를 꿈꾸는 사람은 아니기에 문제될 일은 없으니까.
물론 나는 빵을 잘 만들고 싶다. 잘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 해서 자격증시험도 볼 것이다. 그러나 빵을 찍어 내듯 만들진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을 터이다. 지금으로선 빵집을 차릴 생각도 없으며 유명한 빵집에 취직할 마음 또한 없다. 다만 손수 만든 빵을 가까운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 주면 좋겠다. 식구들이, 친구들이, 결혼한 뒤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내가 구운 빵으로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나무숟갈 이야기’에 올리는 빵 이야기도 점점 구수해지겠지. 나는 ‘제빵사’가 아닌 ‘빵 굽는 사람’으로서 소소한 기쁨을 만들어 내며, 지금 내가 그러하듯 손 느리고 매번 쩔쩔매는 누군가한테 빵 만들기를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막연히 생각해 온 요리봉사를 보탠다면 숟갈이 만드는 빵은 한결 넉넉해지리라.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제빵기능사 수업에서 가르치는 빵들은 맛없고, 모양도 밉고, 몸에도 나쁘다고. 해 보니 알겠다. 맛이나 모양이야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은데, 버터와 설탕과 첨가물이 워낙 많이 들어가니 건강에 이로울리 없다. 설탕을 줄이고 참신한 모양을 빚는 일은 기본기를 닦고 난 뒤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숟갈은 빵순이가 되었다. 아니, 빵순이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