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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눈의 여자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6월
평점 :

염매 : 어린아이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두어 죽지 않을 만큼만 음식을 준다. 오랜 시간 갇힌 아이는 음식에 강한 집착을 하게 되는데 아이의 집념이 손가락 끝에 모이게 되었을 때 그 손가락을 잘라 신체(神體)로 삼으면 무당의 신력이 영험해진다고 하여 행해지는 최악의 주술. - 다음 웹툰 바리공주 中
새타니 : 어린아이가 죽어서 된 귀신 혹은 그러한 귀신이 몸에 실린 무당.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보통 굶어 죽거나 천연두에 걸려 죽은 아이의 혼령 혹은 그 혼령이 몸에 붙은 무당으로 알려져 있다. 태주는 남녀 어린아이 모두의 혼령과 관련되기도 하지만 좁혀서 남자 어린아이에 한정하여 일컫기도 한다. 반면에 여자 어린아이의 혼령이나 그 혼령이 몸에 실린 무당을 '명도(明圖)' 혹은 '명두(明斗)'라 일컫는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태주보다 도령, 동자, 애기동자, 산신동자, 선동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 다음 웹툰 바리공주 참고
김동리의 [을화]라는 소설 봤어요? 거기 보면 신기가 떨어진 태주할미가 어린아이를 납치해서 독 속에 가두고 공진으로 만드는 내용이 나와요. 가둔 아이에게 첫째날에는 빨간 물을 한 종지 먹이고, 둘째 날에는 파랑 물한 종지, 셋째 날에는 노랑 물 한 종지, 넷째 날에는 검정물 한 종지를 먹여요. 넷째 날 아이가 숨을 거두자 할미는 가위로 아이의 손가락을 자르고 말하죠. '아가, 아가, 날 따라가자.' 손가락을 검정 비단에 싸서 간직하고 시체는 뒤꼍에 묻죠. 그렇게 해서 할미는 아이의 혼백, 공진을 취한 거예요. 무녀로서 그녀의 영험함은 아이의 혼을 취하기 전보다 월등히 나아지게 되고요. - P. 300
"남자 성인이잖아? 당신 말대로라면 죽은 여자아이가 대상이라면서?"
"공진, 태주, 명도라는 말의 공식적인 풀이가 그렇단 말이예요. 실제는 이론보다 더 광범위해요. 내 어머니가 치성을 불어넣으면 남자 아이도 다 큰 성인도 한 무녀의 위대한 몸주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어요. 단, 그 대상은 선택받은 자여야 하죠." - P. 301
솔직히 사주풀이, 점, 신.. 이런거 잘 믿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도 없다. 나 자신도 믿기 힘든 세상에 다른 존재가 알려주는 미래 혹은 현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귀가 솔깃해서 궁금하다. 그래서 쉽게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이나 앱을 통해 무료 사주풀이라던지 점을 보기도 한다. 보통 막연한 말들이 대부분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곤 하지만, 재미는 있다. 다만, 안 좋은 말이 있으면 그건 또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는 한다. 좋은게 좋다고 그래서 안좋다는건 되도록 피하게 된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 믿을 수 없다는건 알고 있다. 세상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많고, 잘 몰라서 무섭다 여겨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비롭기까지 해서 이야기 소재로 꽤 등장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보기 시작한 웹툰 <바리공주>도 무속신앙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런데 보다가 중단을 하고 말았다. '새타니' 이야기를 도저히 볼 자신이 없어서다. 봐야지 하면서도 도대체 클릭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웹툰 때문에 '새타니'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실제로 옛 무당들이 행했던 주술이란다. 이런 말도 안되는, 끔찍한 주술이라니. 왜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뜬금없이 '새타니'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바로 '새타니'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웹툰과는 달리 책속에선 조금 다르게 풀이가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무당이 혼을 취한다는 건 같았다. 무녀로서의 영험함을 높이기 위해 남의 목숨을 해친다니.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힘겹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무당의 신기를 높여주는 몸주가 아니라 악귀가 되어 무당의 신기를 더 방해해야 하는게 맞는거 아닌가? 도대체 이해불가다.
한 사람의 목숨을 취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일당들의 욕망을 보면서 그저 기가차고 어이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이 모두 다르므로, 그들의 소원이 절박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절박하다면 그만큼 스스로 노력을 하던가,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지. 사람의 목숨으로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 한다는게 말이 되는가. 결국 그 화살은 돌고 돌아 스스로에게 돌아올거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할까. 아무리 쉽게 얻어지는게 없는 세상이라지만,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없어야 함이다. 이번 작품은 제목부터 독특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읽기 시작하니 역시, 가독성이 엄청나다. 후루룩 읽힌다. 하지만 첫 작품 <살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를 너무 인상깊게 읽었었던건지 그만큼의 충격과 독특함은 느끼지 못했다. 그게 조금 아쉬웠다. 아직 만나지 못한 두번째 작품도 곧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