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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스
곤도 후미에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2월
평점 :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 정말 끔찍하게 싫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범죄들이 지금 이 시간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을거란걸 알고 있다. 그래서 참 속상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체 왜 이 아이들 주변엔 제대로 된 어른들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주었다면,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대처를 했더라면, 자신의 아이와 어울리지 못하게 하기 전에 좀더 알아보고 참견을 했더라면.. 그랬다면 아이들의 인생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모의 방치, 알면서도 외면한 어른들, 그리고 남의 가정사에 끼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이 결국 20년에 걸친 세 아이의 기묘한 관계를 만들어낸게 아닐까 싶다.
이야기는 소설가인 '나'가 한 여성을 만나 세 여자의 비밀스러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 여자 유리, 사토코, 마호의 관계는 유리가 초등학교 시절 사토코와 단짝 친구로 지내다가 사토코에게 벌어지는 성적 학대에 대한 사실을 알고 어른들에 의해 사이가 멀어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무엇이 잘못된건지 알지 못하는 어린 초등학생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유리네 집 어른들 그 누구도 나서서 사토코를 보호해 주려 하지 않았다. 사토코가 부모의 외면 아래 할아버지에 의해 성적 학대를 받고 있었음이 분명한대도 그 이상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외면하며 유리에게 사토코와 어울리지 못하게 했을 뿐이다. 아이가 이후 친구를 돕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가지게 될 줄도 모른채 말이다.
첫 단짝친구에 대한 죄책감은 중학생이 되어 사귄 전학생 친구 마호가 괴한에 의해 납치 당할 뻔한 일로 폭발한다. 급박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 괴한을 칼로 찔러 죽이게 되었던 것. 너무 놀라 그 자리를 벗어났으나 어쩔 줄 몰라하던 유리는 사토코가 자신을 대신해 잡혀갔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대체 왜 사토코가?! 1년 후 소년원을 나온 사토코와 재회한 유리는 사토코로부터 할아버지를 죽여달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사토코는 성적 학대로부터 아무도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유리의 죄책감을 건드렸고, 유리의 죄를 뒤집어 쓰고 소년원을 다녀온 것(부탁한 적이 없긴 하지만) 또한 유리에겐 사토코에게 큰 빚이 있는 것과 다름없었기에 유리는 사토코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간다. 유리가 사토코의 할아버지를 죽이기로 한 날, 할아버지가 마호에 의해 살해 당한 것이다. 그러니까 유리의 할 일을 마호가 해버린 것. 이렇게 유리, 사토코, 마호의 기묘한 관계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것도 20년이나.. 아이는 보호의 대상이지, 범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나 성적 학대라니.. 아이들 대상으로 대체 이 무슨 파렴치한 짓이란 말인가. 게다가 심각한 학폭이라니. 난 이 세 여자들이 벌인 일들이 그저 그녀들이 살고 싶어 벌인 발버둥으로 보였다. 주변에 옳은 어른 하나 없었던 아이들의 잘못된 선택을 그저 잘못이라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 어른들의 잘못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술 잘 읽혔던 심리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