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
에릭 사댕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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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오면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궁금한 것을 검색하는 대신 질문하면 정리해 주고, 몇 줄의 지시만으로 글과 이미지, 음악까지 만들어 준다. 분명 놀라운 기술이다.

그런데 에릭 사댕의 『멸종 위기의 사고』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바로 그 ‘편리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바라보라고 요구한다.

이 책의 시작을 여는 나이팅게일 이야기가 이를 아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나이팅게일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소리를 관찰하고 수없이 연습하면서 자신의 발성을 찾아가고, 성장하면서 저마다 다른 화음과 개성을 만들어 낸다.

그러던 어느 날 원하는 리듬과 후렴만 입력하면 대신 노래를 만들어 주는 기계가 등장한다.

더 이상 힘들게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새들은 기꺼이 자신의 능력을 기계에 넘겨준다.

이 우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무겁다. 능력은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계속 나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용하고 연마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편리한 도구가 등장할 때 우리는 보통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간과 함께 어떤 능력을 잃고 있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이 약해지듯 사고력과 창의력 역시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편안한 둥지를 얻는 대신 스스로 노래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나이팅게일이 될 가능성을 경고한다.

그래서 저자가 챗GPT의 등장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도 단순히 ‘AI가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고유하다고 생각했던 사유하고 표현하고 창작하는 능력이 인간의 외부로 이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이미지, 음악뿐 아니라 판단과 조언까지 기계가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점점 결과를 받아들이는 위치로 이동한다.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은 부분은 언어에 관한 이야기였다.

폴 발레리는 “창조하는 것은 바로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수많은 단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화가는 색과 선을 선택하며, 작곡가는 리듬과 음을 선택한다. 심지어 짧은 문자 한 줄을 보낼 때도 우리는 상황과 감정, 상대방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단어를 선택한다.

바로 그 선택 속에 한 사람의 경험과 취향, 기억과 판단이 스며든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글을 직접 쓰는 과정은 단순히 문장을 생산하는 작업이 아니다.

생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무엇을 먼저 말할 것인지 고민하고,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한동안 멈춰 있는 시간까지도 사고의 일부다.

그래서 글쓰기에서 모든 시행착오를 제거하고 완성된 문장만 빠르게 얻으려 한다면 결과물은 더 매끄러워질 수 있어도 정작 내 안에서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줄어들 수 있다.

샤를 페기의 말도 오래 남았다. 그는 나쁜 생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나는 이 문장을 AI 시대의 핵심 경고처럼 읽었다.

틀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생각한 것이다. 틀렸다면 반박당하고 고치면서 더 나은 판단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이 만들어 놓은 생각을 자신의 생각처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면 사고 과정 자체가 사라진다.

생각의 가장 큰 적은 틀린 생각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이미 노동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책에는 AI로 먼저 번역한 원고를 번역가에게 넘기고 수정만 맡기는 사례가 등장한다.

문제는 AI 번역의 오류가 많아 번역가가 사실상 전체를 다시 손봐야 하는데도 ‘보조 작업’으로 평가되면서 보수는 낮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창작자에서 기계의 결과물을 정리하는 사람으로 밀려난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직업 감소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과 역할 자체가 평가절하되는 문제로 본다.

교육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학생이 자료를 찾고, 이해하지 못해 다시 읽고,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고, 틀린 문장을 고치는 과정은 모두 사고 훈련이다. 그런데 과제와 글쓰기를 AI에게 넘기기 시작하면 ‘시간은 절약’할 수 있지만 배우는 과정까지 함께 생략될 수 있다.

이 책은 효율성과 학위 취득에만 매달리는 교육이 결국 글쓰기를 익히고 사고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시간을 ‘낭비’처럼 여기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AI가 인간관계까지 대신하려는 현상도 경고한다.

언제든 대답해 주고, 나를 비판하지 않으며,내가 듣고 싶은 방식으로 공감해 주는 AI는 현실의 인간보다 편안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관계에는 불편함과 오해, 반대와 갈등이 존재한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견디는 능력 역시 인간이 사회 속에서 배우는 중요한 사고 능력이다.

저자는 기계와의 완벽하고 편안한 관계가 자기 능력을 낮게 평가하게 하고 현실과 타인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위험을 지적한다.

물론 이 책은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도 있다. 사댕은 생성형 AI가 가져올 위험을 매우 강한 언어로 경고한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능력을 무조건 퇴화시키는 방향으로만 작동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에게 AI는 사고를 대신하는 도구가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자료를 더 넓게 탐색하고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며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보다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료를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문장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반론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믿을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어떤 문장을 내 생각으로 남길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어야 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사유의 공허’를 경고하며, 지금 필요한 것은 AI의 장단점을 계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기술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우리의 삶과 교육, 노동, 문화,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멸종 위기의 사고』라는 제목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검색을 대신 맡기고, 글쓰기를 맡기고, 판단을 맡기고, 선택까지 맡기는 동안 조금씩 사라진다.

AI 시대에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AI보다 더 빨리 답을 내놓는 능력이 아니다.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가장 귀해질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고, 선택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은 AI를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책이라기보다, 너무나 편리한 기술 앞에서 우리가 무엇만큼은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지켜야 하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생각하는 수고를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ㅡ

‘헤세드의서재 서평단 @hyejin_bookangel’님을 통해,

'헤이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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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골 -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권민창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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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골’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거칠고 반항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권민창의 『반골』에서 말하는 반골은 무조건 세상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과 책임을 스스로 쥐는 사람에 가까웠다.

책의 서문은 꽤나 강렬하다. 저자는 몇 년의 시간과 1억 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은 유튜브 채널을 직접 삭제한다. “조금만 더 해보자”는 미련으로 계속 붙잡고 있었지만, 결국 사람들이 좋아한 것은 ‘권민창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콘텐츠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장면에서 먼저 떠오른 것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만큼 잘못된 방향을 버릴 줄 아는 판단도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이미 많이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붙잡는 것은 끈기가 아니라 집착이 될 수도 있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더 이상 잘못된 곳에 시간과 돈을 쓰지 않겠다는 새로운 결정일 수 있다.

저자는 이후 대중 앞에서 사라져 사업에 집중했고, 2025년 25억 원의 매출, 성수동 사옥 매입, 일본 출판사 설립까지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이 있다.

“결국 결과로, 내 인생으로 증명하면 된다.”

이 문장은 지나치게 결과주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읽었다.

타인의 현재 평가를 내 가능성의 최종 판결처럼 받아들이지 말라는 의미다.

저자 역시 운동도, 글도, 새로운 일도 처음부터 잘한 것이 아니었고 비웃음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 비웃음은 질투가 되고, 다시 “어떻게 그렇게 잘하느냐”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결과가 없을 때는 쉽게 무모하다고 평가하고, 결과가 나온 뒤에는 같은 행동을 결단력과 통찰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남의 평가에 반박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는 것이 더 강한 답일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100% 완전한 내 의지로 결정한 무언가가 있었나?”

저자는 직업군인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안정적인 직업과 연금이 정답처럼 주어진 환경에서 살았고,

이후에도 선배와 동료가 선택한 길을 따라갔다고 한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자신만의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우리가 생각보다 많은 결정을 타인의 기준에 맡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직장, 좋은 집, 적절한 결혼 시기, 성공한 삶의 모습까지 사회가 만들어놓은 표준을 참고한다.

하지만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화려한 삶을 원하고, 누군가는 적게 벌더라도 자기 시간이 많은 삶을 원한다. 그래서 조언은 참고할 수 있어도 인생의 결정권까지 타인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반골』은 이를 ‘야생 DNA’, ‘야생 지능’, ‘시작 중독’, ‘불완전 전략’, ‘선점자’, ‘금강불괴’ 등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표현은 거칠지만 핵심은 명확하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시작하고, 틀리면 빠르게 수정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특히 “조준은 달리면서 한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작을 미루지만, 현실에는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는 정보가 있다.

사업은 시장에 내놔야 반응을 알고, 글은 공개해야 독자의 반응을 알 수 있다.

생각은 가능성을 예측하지만 행동은 현실의 데이터를 만든다.

그래서 실행력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빨리 발견하고 수정하는 사람일 수 있다.

출판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흥미롭다.

저자는 “책은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다”라고 말한다. 좋은 내용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그 책이 독자의 눈앞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까지 출판의 책임이라고 본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은 것을 만드는 능력과 좋은 것이 발견되게 만드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존재를 모르면 선택받을 수 없다.

그래서 마케팅을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가치를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이 주장은 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AI에 대한 태도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는 위안에 머물기보다 반복 업무는 자동화하고 인간은 기획과 판단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중요한 경쟁은 인간과 AI의 대결이라기보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일 수도 있다. 결국 인간에게 더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물을지, 무엇을 선택할지, 결과물의 수준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능력일 것이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남의 돈 10억을 쓰는 엘리트와 내 돈 1천만 원을 쓰는 반골’의 비교였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핵심은 책임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결과가 나에게 직접 돌아올수록 사람은 더 세밀하게 판단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조언을 들을 때도 그 사람이 무엇을 아는지만큼, 자신의 말과 결정에 실제로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모든 주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큰 빚이나 극단적인 압박을 일부러 만드는 방식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성공법이 아니며, 번아웃이나 우울증 같은 문제 역시 의지만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다시 움직이는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후반 추천사들에서도 저자의 성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강연주 저자는 그를 세상을 거스르기 위해 반골이 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 세상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김민성 저자는 “이대로는 안 팔릴 것 같다”는 직설적인 피드백이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말한다.

윤만 저자는 빠른 실행력과 출간 이후까지 작가와 함께 움직이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이 추천사들을 읽으며 한 가지 생각이 남았다.

좋은 사람은 항상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때로는 듣기 좋은 위로보다 정확한 지적이 더 큰 성장을 만든다.

『반골』을 다 읽고 나면 결국 이 책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반골은 모든 규칙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규칙이 왜 존재하는지 묻는 사람이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것은 자유만 얻는 일이 아니다. 선택과 함께 책임까지 가져오는 일이다.

잘못된 길이라면 돌아가도 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도 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정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선택하고, 부딪히고, 수정하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반골』이 말하는 ‘세상을 등진다’는 것은 세상과 싸우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정해놓은 방향에서 잠시 등을 돌리고 내가 정말 가고 싶은 방향을 처음으로 바라보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ㅡ

'책읽는쥬리 서평단 @happiness_jury'을 통해,

'모티브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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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타인의 무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지적 편향을 ‘지식의 저주’라고 부른다. 이론과 명분에 갇힌 사람들은 이 저주에 빠져 대중이 날것 그대로의 욕망을 읽지 못한다. 그들은 고상한 단어와 복잡한 논리에 집착하지만, 대중은 직관적이고 자극적이며 당장 내 삶을 바꿔줄 무언가에 지갑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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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겠는가 ㅣ 고전부적 1
이방원 지음 / 흑막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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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분명 선택해야 하는 순간인데도 결정을 미룰 때가 있다.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서, 누군가가 상처받을 것 같아서, 괜히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한 발 물러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꽤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신중해야 한다고, 관계를 지켜야 한다고, 도리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전부적』은 태종 이방원의 삶을 통해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책이다.

책의 시작에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가 등장한다.

이방원은 정몽주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그는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고, 결국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았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역사적 장면이지만, 이 책은 여기서 선악을 판단하기보다 다른 질문을 던진다.


명분을 끝까지 지키는 것과 실제로 시대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하는가.

책은 명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명분이 행동의 기준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기 위한 핑계가 되는 순간을 경계한다.

결정을 미루면서 스스로를 ‘신중한 사람’,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위로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이 지점은 우리의 일상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부모가 실망할까 봐 머물고, 부당한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만 관계가 틀어질까 봐 받아들이고, 잘못된 상황임을 알면서도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 싫어 침묵한다. 그렇게 자신의 판단을 계속 뒤로 미루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삶의 중요한 결정들이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채워진다.


책에서는 이를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으로 설명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은 타인의 입에서 만들어진다. 

그 평판을 유지하려다 보면 싫어도 웃고, 화가 나도 참으며, 원하는 것이 있어도 욕심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반복되면 결국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먼저 떠오른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아들 가운데 문과에 급제한 인물이었다. 

학문을 익혔고 명망 있는 선비로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책은 이를 통해 묻는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입혀준 것인가.

직업, 가족의 기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너무 오래 맞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역할이 자신의 한계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자유라기보다, 

타인의 기대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 자기 판단을 선택하는 자유에 가깝다.

다만 결정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온다.

책에서 말하는 ‘내 손에 피를 묻힌다’는 표현 역시 잔혹해지라는 의미보다 자신이 내린 결정의 흔적을 남에게 떠넘기지 말라는 뜻으로 읽혔다.

우리는 선택한 뒤 자주 말한다.


“다들 그렇게 하자고 해서.”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누가 시켜서.”


이 말이 반복될수록 삶에서 나는 점점 사라진다.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면 내가 직접 이야기하고,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면 그 이후의 삶까지 준비해야 한다. 무언가를 끊어냈다면 그 빈자리에 무엇을 세울 것인지까지 책임져야 한다.

결단의 가치는 무엇을 버렸는가보다, 그 이후 무엇을 새로 세웠는가에서 완성된다.


책에서 또 하나 강하게 남은 주제는 ‘망설임’이었다.

충분한 정보가 모이면, 돈이 더 생기면, 상황이 좋아지면 시작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한 조건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신중하게 판단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문제는 정보 수집과 결정 회피를 스스로 구분하지 못할 때다.

계속 검색하고, 비교하고, 고민하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신중함 속에 두려움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정하지 않는다고 결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결정하지 않는 동안 상황이 나를 대신해 결정한다.


다만 나는 이 책의 모든 주장에 그대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이방원의 강한 현실주의와 숙청을 현대인의 삶에 그대로 성공의 논리처럼 가져오는 것은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다. 행동 없는 명분은 공허하지만, 반대로 명분 없는 행동 역시 위험하다. 빠른 결단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며 어떤 순간에는 충분히 숙고하고 멈춰 서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고전부적』은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가치관과 부딪치며 읽을 때 더 흥미로운 책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과 자기주장이 없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미움받을 용기와 독선의 경계는 어디인가.

신중함과 우유부단함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해 본다면 더욱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책은 반드시 독자를 설득하는 책이 아니라, 읽기 전에는 하지 않았던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전부적』 역시 그런 책이었다.

나는 지금 신중한 것인가, 아니면 두려운 것인가.

나는 정말 배려하는 것인가, 미움받기 싫은 것인가.

그리고 지금 내 삶의 중요한 결정권은 정말 내 손에 있는가.


결국 책을 읽고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이방원의 권력이나 승리가 아니었다.

내 삶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좋은 이유’를 만들어 결정을 미루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내가 선택하고, 결과를 바라보고, 잘못했다면 고치고, 무언가를 끊어냈다면 다시 세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결단을 오늘의 삶에서 가장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닐까.

결단은 칼을 휘두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칼이 지나간 자리를 책임 있게 다시 세우는 데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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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쥬리 서평단 @happiness_jury‘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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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이성계 가문에서 무과가 아닌 문과를 택해 급제한 인물이었다.

누구보다 글을 읽었고, 누구보다 명분의 무게를 알았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명분만 외치는 자는 결코 새 시대를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정몽주가 옳지 않아서 죽은 것이 아니다. 옳음만으로는 한 시대를 끝낼 수 없기에 죽은 것이다.
낡은 왕조의 마지막 명분은 그 자체로 견고한 성벽이었고, 그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단 한 번의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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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쟁취된다 - 신 국부론 ㅣ 불후의 명작 1
애덤 스미스 지음 / 에버필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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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자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투자, 저축, 부동산, 사업처럼 ‘돈을 불리는 기술’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쟁취된다』는 그보다 먼저 돈은 왜 움직이는가,

사람은 왜 거래하는가, 부는 어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가를 묻는다.


책은 250년 전 애덤 스미스가 남긴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오늘의 현실로 가져온다.

마차가 자동차로, 편지가 메신저로 바뀌고 인공지능까지 등장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고, 손해를 피하려 하며, 더 나은 삶을 원한다.

저자는 바로 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250년 전의 문장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우리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이기심’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스미스가 바라본 인간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을 짓밟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을 보존하고 삶을 개선하려는 욕망을 가진 동시에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고 공감할 줄 아는 존재다.

『도덕감정론』의 ‘공명정대한 관찰자’라는 개념처럼, 인간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고 그것이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판단하려는 도덕적 감각도 존재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이기심은 탐욕과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자신의 시간에 정당한 값을 요구하고, 더 나은 보수를 원하며,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것까지 이기주의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어야 타인이 원하는 것도 제대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권리까지 침해하는 순간이다.


책 속 ‘빵집 주인’의 이야기는 이 원리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

빵집 주인이 매일 새벽 일어나 빵을 굽는 이유가 동네 사람들을 사랑해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바로 그 이익 추구 덕분에 우리는 매일 안정적으로 빵을 살 수 있다. 누군가의 호의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와 이익이 맞물리기 때문에 일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부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부는 단순히 많은 돈을 소유하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과 시간과 자원을 다른 사람의 필요와 연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 내가 돈을 벌고 싶다면 먼저 상대가 왜 나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시장에서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얼마나 절박한가”가 아니라 “나는 상대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가”다.


이런 관점은 일과 인간관계에서도 꽤 현실적인 메시지를 준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지금만 조금 희생하면 나중에 보답할게”라는 말이 언제나 선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당한 보상과 조건을 흐리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선을 말하는 것과 실제로 공정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책이 강조하는 ‘정직한 교환’이 기억에 남았다. 자신의 셈을 숨기면서 상대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관계보다 “나는 이것을 얻고 싶고, 대신 이것을 제공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오히려 더 건강할 수 있다. 한쪽이 베풀고 다른 쪽이 빚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수평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는 반드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 역시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의 이기심을 강조하는 책이기 때문에 더욱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타인의 자비에 기대지 말라’는 말은 경제적 자립과 협상의 측면에서는 강력한 조언이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해 “사람은 결국 자기 이익밖에 모른다”는 결론으로 확장한다면 스미스의 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된다. 인간에게는 이익 계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랑, 연대, 책임, 돌봄, 희생도 존재한다. 스미스 자신도 인간의 공감과 도덕 감정을 중요하게 다뤘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면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 역시 조건 없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이익이 소비자의 안전이나 노동자의 권리, 환경보다 앞설 때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사회 전체에는 큰 비용을 떠넘길 수도 있다. 독점이나 담합처럼 경쟁 자체가 무너지면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기도 어렵다. 시장에는 개인의 욕망뿐 아니라 그것을 견제하는 법과 제도, 정보의 투명성, 신뢰와 공정한 규칙이 함께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메시지를 ‘이기심을 따르라’보다 ‘인간의 이기심을 부정하지 말되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끝까지 살펴보라’는 말로 받아들이고 싶다. 누군가 선의를 이야기한다면 무조건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그 말 뒤에서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부담하는지는 볼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돈과 이익이 개입됐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관계를 속물적이라고 판단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교환이 투명한가, 서로 동의했는가,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다.

이런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주는 마법 같은 손이라기보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필요를 조율하면서 만들어내는 복잡한 결과에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손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그만큼 보이는 규칙과 보이는 책임도 필요하다.


결국 이 책은 부자가 되는 비법을 알려주는 재테크서라기보다 돈을 벌기 전에 인간과 시장을 이해하게 만드는 책에 가깝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상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얻는 이익의 뒤에서 누군가가 부당하게 비용을 떠안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을 함께 던질 수 있을 때 ‘부’라는 단어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가장 단단한 부는 단순히 더 많이 소유하는 데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알고 타인의 필요를 읽으며 서로에게 지속 가능한 이익을 만들어내는 능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 역시 저자의 문장을 정답처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을 현실에 대입해 보고 어디까지 유효하며 어디에서 한계가 생기는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일 것이다.


250년 전의 애덤 스미스를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그의 답을 그대로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인간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세상을 미화하지도 악마화하지도 않고, 이익과 도덕, 욕망과 책임 사이를 스스로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가장 위대한 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쟁취된다』는 돈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읽는 법, 관계를 바라보는 법,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어떻게 정직하게 지킬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ㅡ

‘책읽는쥬리 서평단 @happiness_jury’을 통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스미스가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관통하여 긍정한 것은 타인을 해치는 탐욕적 ‘이기심(selfishness)’이 아니라, 자신을 보존하고 삶을 개선하려는 신중한 ‘자기애(self-love)’였다. 그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발현되는 정당한 자기애야말로 공명정대한 관찰자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미덕(virtue)이라고 보았다.
이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비정함에 진저리를 치며, 차라리 도덕과 시장은 함께 갈 수 없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스미스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도덕이 무너진 시장은 결코 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신뢰가 사라진 거래는 비용을 끝없이 높이고, 결국 모든 교환을 멈춰 세운다. 그러니 가장 합리적인 자본가일수록 가장 도덕적인 인간이어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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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감정 수업 - 세상이란 파도를 거침없이 타기 위한 자현 스님의 가르침
자현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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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을 화내지 않는 사람, 욕심이 없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가 나면 참으려 하고, 질투나 욕망이 생기면 그런 마음을 가진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현 스님의 『부처의 감정 수업』은 이런 생각부터 뒤집는다.

감정을 없애거나 억누르는 것이 마음공부가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현 스님은 자신이 8개의 박사 학위와 200편 이상의 논문을 쓰게 된 이유를 거창한 구도의 과정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남는 시간에 공부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실패처럼 보였던 시간이 오히려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은 책 전체의 메시지와도 닿아 있다.

우리는 계획대로 흘러가면 성공, 어긋나면 실패라고 쉽게 판단하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을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 자리에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개념은 ‘인욕긍정론’이다.

오랫동안 여러 철학과 종교는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봐왔다.

하지만 자현 스님은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 역시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에너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화가 나거나 질투가 생기면 곧바로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자신을 평가한다.

그러다 보면 원래의 감정보다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더 큰 고통이 되기도 한다.

감정을 긍정한다는 것은 감정의 명령대로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질투나 욕망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지만 그것 때문에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감정에는 솔직하되 행동에는 책임을 지는 것. 나는 이 구분이 이 책을 읽을 때 특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책에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많이 등장한다. 10억을 가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10억을 가지면 비교 대상이 10억을 가진 사람들로 바뀔 뿐이라는 ‘고레벨 사냥터’의 비유가 재미있다.

특히 SNS 시대에는 남의 여행, 명품, 집, 성공을 실시간으로 보며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한다. 결국 비교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가도 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복의 기준을 계속 타인의 삶에 두면 내 행복의 주도권 역시 타인에게 넘겨주는 셈이다.

다만 책의 “돈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주장 역시 한쪽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안정은 주거와 의료, 교육, 시간의 자유 등 삶의 조건을 실제로 크게 바꾼다. 그래서 이 메시지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기보다 ‘돈은 중요하지만 돈만으로 인간의 모든 괴로움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도로 읽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감정을 설명하는 ‘거울’의 비유도 인상 깊었다.

거울은 앞에 무엇이 나타나든 그대로 비추지만 붙잡지는 않는다. 화가 났다고 내가 곧 ‘화’가 되는 것이 아니고, 슬픔이 찾아왔다고 내 인생 전체가 슬픔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화난 사람이다”가 아니라 “지금 내 안에 화가 올라오고 있다”라고 바라보는 작은 거리 하나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공간을 만들어준다.

《논어》의 ‘불천노(不遷怒)’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 사람에게 받은 화를 다음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다음 관계까지 점령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숙함이란 상처받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자현 스님은 이를 ‘연기하듯 살아가는 법’으로도 설명한다.

좋은 배우는 슬픈 장면에서는 진심으로 울지만 감독이 “컷!”이라고 하면 다시 다음 장면으로 이동한다.

우리 역시 슬플 때 충분히 슬퍼하고 화날 때 화를 느끼되, 동시에 그 감정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관통하는 가장 인상적인 비유는 역시 이것이었다.

“감정이 파도라면 당신은 바다다.”

바다에는 끊임없이 파도가 친다. 잔잔한 날도 있고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는 날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의 파도가 바다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오늘 실패했다고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늘 화가 났다고 내가 분노로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행복한 삶은 파도가 없는 삶이 아니라, 파도가 와도 그것이 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임을 알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삶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이 책 역시 모든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한 번 더 질문하며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욕망을 긍정한다는 말은 어디까지 유효한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감정에 끌려 행동하는 것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개인의 관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좋은 독서는 저자의 생각에 전부 동의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그런가?”, “반대의 경우는 없는가?”를 물으며 결국 내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의 감정 수업』은 감정을 없애는 기술보다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

완벽해진 뒤에 행복하려 하지 말고, 지금의 불완전함 때문에 현재의 나를 실패라고 규정하지 말 것.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되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흔들린 뒤 다시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 책이 말하는 마음공부는 결국 그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ㅡ

'카시오페아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느낌(감정)이 일어날 때
‘나에게 느낌이 일어났다’라고 여실히 알고,
느낌이 사라질 때
‘느낌이 사라졌다’라고 여실히 알아차려라.
이와 같이 오온(五蘊)을 여실히 알고 보면,
마음에 집착이 없어지고 번뇌로부터 해탈하게 된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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