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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겠는가 - 고전부적
이방원 지음 / 흑막 / 2026년 6월
평점 :

살다 보면 분명 선택해야 하는 순간인데도 결정을 미룰 때가 있다.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서, 누군가가 상처받을 것 같아서, 괜히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한 발 물러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꽤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신중해야 한다고, 관계를 지켜야 한다고, 도리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전부적』은 태종 이방원의 삶을 통해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책이다.
책의 시작에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가 등장한다.
이방원은 정몽주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그는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고, 결국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았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역사적 장면이지만, 이 책은 여기서 선악을 판단하기보다 다른 질문을 던진다.
명분을 끝까지 지키는 것과 실제로 시대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하는가.
책은 명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명분이 행동의 기준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기 위한 핑계가 되는 순간을 경계한다.
결정을 미루면서 스스로를 ‘신중한 사람’,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위로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이 지점은 우리의 일상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부모가 실망할까 봐 머물고, 부당한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만 관계가 틀어질까 봐 받아들이고, 잘못된 상황임을 알면서도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 싫어 침묵한다. 그렇게 자신의 판단을 계속 뒤로 미루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삶의 중요한 결정들이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채워진다.
책에서는 이를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으로 설명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은 타인의 입에서 만들어진다.
그 평판을 유지하려다 보면 싫어도 웃고, 화가 나도 참으며, 원하는 것이 있어도 욕심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반복되면 결국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먼저 떠오른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아들 가운데 문과에 급제한 인물이었다.
학문을 익혔고 명망 있는 선비로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책은 이를 통해 묻는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입혀준 것인가.
직업, 가족의 기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너무 오래 맞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역할이 자신의 한계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자유라기보다,
타인의 기대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 자기 판단을 선택하는 자유에 가깝다.
다만 결정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온다.
책에서 말하는 ‘내 손에 피를 묻힌다’는 표현 역시 잔혹해지라는 의미보다 자신이 내린 결정의 흔적을 남에게 떠넘기지 말라는 뜻으로 읽혔다.
우리는 선택한 뒤 자주 말한다.
“다들 그렇게 하자고 해서.”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누가 시켜서.”
이 말이 반복될수록 삶에서 나는 점점 사라진다.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면 내가 직접 이야기하고,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면 그 이후의 삶까지 준비해야 한다. 무언가를 끊어냈다면 그 빈자리에 무엇을 세울 것인지까지 책임져야 한다.
결단의 가치는 무엇을 버렸는가보다, 그 이후 무엇을 새로 세웠는가에서 완성된다.
책에서 또 하나 강하게 남은 주제는 ‘망설임’이었다.
충분한 정보가 모이면, 돈이 더 생기면, 상황이 좋아지면 시작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한 조건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신중하게 판단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문제는 정보 수집과 결정 회피를 스스로 구분하지 못할 때다.
계속 검색하고, 비교하고, 고민하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신중함 속에 두려움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정하지 않는다고 결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결정하지 않는 동안 상황이 나를 대신해 결정한다.
다만 나는 이 책의 모든 주장에 그대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이방원의 강한 현실주의와 숙청을 현대인의 삶에 그대로 성공의 논리처럼 가져오는 것은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다. 행동 없는 명분은 공허하지만, 반대로 명분 없는 행동 역시 위험하다. 빠른 결단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며 어떤 순간에는 충분히 숙고하고 멈춰 서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고전부적』은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가치관과 부딪치며 읽을 때 더 흥미로운 책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과 자기주장이 없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미움받을 용기와 독선의 경계는 어디인가.
신중함과 우유부단함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해 본다면 더욱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책은 반드시 독자를 설득하는 책이 아니라, 읽기 전에는 하지 않았던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전부적』 역시 그런 책이었다.
나는 지금 신중한 것인가, 아니면 두려운 것인가.
나는 정말 배려하는 것인가, 미움받기 싫은 것인가.
그리고 지금 내 삶의 중요한 결정권은 정말 내 손에 있는가.
결국 책을 읽고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이방원의 권력이나 승리가 아니었다.
내 삶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좋은 이유’를 만들어 결정을 미루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내가 선택하고, 결과를 바라보고, 잘못했다면 고치고, 무언가를 끊어냈다면 다시 세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결단을 오늘의 삶에서 가장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닐까.
결단은 칼을 휘두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칼이 지나간 자리를 책임 있게 다시 세우는 데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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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쥬리 서평단 @happiness_jury‘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이방원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이성계 가문에서 무과가 아닌 문과를 택해 급제한 인물이었다.
누구보다 글을 읽었고, 누구보다 명분의 무게를 알았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명분만 외치는 자는 결코 새 시대를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정몽주가 옳지 않아서 죽은 것이 아니다. 옳음만으로는 한 시대를 끝낼 수 없기에 죽은 것이다. 낡은 왕조의 마지막 명분은 그 자체로 견고한 성벽이었고, 그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단 한 번의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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