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척학전집 : 싸움의 교양 - 야망은 큰데 왜 맨손인가 세계척학전집 5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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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쯤 그런 순간이 있다.

분명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다른 사람이 가져가고,

내가 먼저 아이디어를 제시 했는데 더 크게 말한 사람이 인정받고,

실력은 쌓이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삶은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질 때 말이다.

공감한다면 이 책에 집중해보시라~!

예전에는 그런 상황이 생기면 단순히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성실해야 하나, 더 참고 더 노력해야 했었나 싶었다.

그런데 『세계철학전집 : 싸움의 교양 편』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부족했던 건 진심이나 노력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하고.

처음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은 아주 직설적으로 다가왔다.

“진심은 전략이 아니다.”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 괜히 마음이 멈칫했다.

살면서 늘 진심은 통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성실하면 알아봐 줄 거라고, 묵묵히 열심히 하면 결국 결과가 따라올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은 냉정하게 말한다. 세상은 당신의 본질보다 당신이 내보이는 신호에 먼저 반응한다고.

호텔 로비에서 정장을 입었을 때와 트레이닝복을 입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예시는 이상하게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달라진 건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밖으로 내보인 모습이었다.

협상 테이블에서도, 조직 안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진심 자체보다 그 진심이 어떤 모습으로 전달되는지에 먼저 반응한다.

나는 늘 진심이면 된다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이라 억울하면 더 설명하려 했고, 답답하면 더 많이 이해시키려 애썼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사람들도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진심이 있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묻히고,실력이 있어도 그것을 꺼내는 방식이 서툴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에게 부족했던 건 단순한 실력이 아니라 그 실력이 보이고, 전달되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설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말도 전한다.

“사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우의 교활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조금 거칠게 느껴졌는데

읽다 보면 여기서 말하는 교활함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에서 흔들리는지,

언제 밀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를 읽는 능력에 가까웠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제갈량의 이야기였다.

2,500명으로 15만 대군 앞에 섰을 때 그는 성문을 열고 거문고를 탄다.

얼핏 보면 허세 같지만 사실 그건 30년 동안 쌓아온 평판 위에서 가능했던 전략이었다.

그 장면을 읽는데 사람은 결국 보이는 모습 하나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쌓아온 이미지와 신뢰 전체를 보고 판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척”이라는 것을 단순한 허세로 보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을 가장 강한 형태로 배치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같은 실력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느냐에 따라

무시당하기도 하고 압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세상은 결국 내가 가진 것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반응한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특히 “싸워서 이긴 밤”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말다툼에서 분명 내가 이겼다.

논리도 맞았고 마지막 한마디도 정확했다.

그런데 다음 날 상대와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져 있다.

읽는데 괜히 숨이 턱 막혔다.

살면서 그런 경험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승리는 가져왔지만 그 이후의 관계는 완전히 멀어져 버리는 일들.

이 책은 이 이야기를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연결해 보여준다.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국 전쟁 전체에서는 실패했던 구조처럼,

순간의 승리에만 몰두하다 보면 더 큰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손자의 문장이 정말 오래 남았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전쟁, 병법, 철학, 협상, 정치 같은 어려운 이야기들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자연스럽게 연결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손자의 병법 이야기를 하다가도 인간관계와 조직 이야기로 이어지고,

협상 이론을 설명하다가도 어느 순간 회사 생활과 사람 사이 거리감 이야기로 연결된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모두가 합리적인데 모두가 지는 이유”라는 내용이었다.

사람은 늘 자기 입장에서는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모두가 자기 이익만 계산하다 보면 결국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또 “정면으로 가는 자가 가장 먼저 진다”라는 내용도 꽤 인상 깊었다.

예전의 나는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억울한 일이 생겨도 최대한 참고 넘기려 했고,

부당하다고 느껴도 괜히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삼킨 적이 많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맞서기만 하는 사람이 위험한 것처럼

아무 전략 없이 계속 참기만 하는 사람 역시 결국 불리한 판에 오래 남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중요한 건 감정적으로 부딪히느냐, 끝까지 참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판 위에 서 있는지 읽는 능력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책은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비스마르크의 현실정치, 저우언라이의 외교, 탈레브의 안티프래질 같은 내용들이 이어지는데

읽다 보면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탈레브의 안티프래질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충격을 받으면 그대로 깨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충격 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다.

살면서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견디고

다시 움직이느냐가 결국 한 사람의 힘을 만든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결국 인생은 한 번 크게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자기 판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 게임에 가까운 것 같다.

읽는 내내 계속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나는 그동안 너무 진심만 믿고 살아온 건 아닐까.

진심은 중요하다. 성실함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 책은 성실함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실함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내보일지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철학전집 : 싸움의 교양 편』은 누군가를 짓밟기 위한 책이라기보다

현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한 책처럼 느껴졌다.

사람과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만 바라보다 자꾸 상처받았던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의 문장들이 꽤 깊게 들어올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왜 그렇게 맨손으로만 세상을 상대하려 했을까?”


'책읽는 쥬리 @happiness_jury'님을 통해

'모티브 출파나'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사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우의 교활함이 필요하다."
사자는 힘이 있다. 하지만 함정을 보지 못한다. 여우는 힘이 없다. 하지만 함정을 읽는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교활함"은 속임수가 아니다. 구조를 읽는 능력이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가 약한지, 언제 밀어야 하고 언제 빠져야 하는지. 같은 힘을 가지고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뒤집힌다. 힘이 아니라 설계가 승패를 가른다. 이 설계를 우리는 "척"이라 부른다.
강한 척, 여유로운 척, 관심 없는 척. "척"은 가볍게 들린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략가들은 전부 이 "척"의 구조를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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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성장시키는 세계 문학 명문장 필사책 - 영원히 사랑받는 명작 소설 영어로 따라쓰기
제인 오스틴 외 지음 / 현익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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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단순히 ‘좋은 문장 모음집’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통 명문장 필사책이라고 하면 유명한 문장만 짧게 나열해 두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을 성장시키는 세계 문학 명문장 필사책》은 작품 설명과 줄거리, 문장이 등장하게 된 감정의 흐름까지 함께 정리되어 있어서 마치 한 권의 세계문학 안내서를 읽는 느낌에 가까웠다. 여기에 영어 원문과 주요 단어 뜻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어, 문장을 따라 쓰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어 표현과 문장 구조도 익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문장을 베껴 쓰는 필사책이 아니라, 왜 이 문장이 오랫동안 사랑받았는지 이해하면서 영어 공부까지 함께할 수 있는 책처럼 느껴졌다.

책의 첫 장에 실린 프롤로그는 “삶을 살아가면서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아 있던 문장이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 문장을 읽자마자,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오래 품고 살아가는 문장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장은 힘든 순간 다시 떠오르고, 어떤 문장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그런 문장들은 어느새 희미해지기 쉽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스쳐 지나갔던 문장들을 다시 손으로 천천히 불러오는 책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필사의 의미를 단순히 영어 공부로만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책에서는 눈으로 읽고 지나간 문장을 손으로 직접 옮기는 순간, 문장이 훨씬 천천히 마음속으로 들어온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써보면 정말 그렇다. 그냥 읽을 때는 스쳐 지나갔던 단어들이, 막상 따라 적기 시작하면 묘하게 오래 남는다. 그래서인지 필사 공간도 넉넉하게 구성되어 있어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 써볼 수 있게 만든 점이 인상적이었다.

수록된 작품들도 굉장히 좋았다.

『제인 에어』, 『작은 아씨들』,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같은 익숙한 작품부터 『안나 카레니나』, 『레 미제라블』, 『율리시스』처럼 조금 더 깊이 있는 고전까지 폭넓게 담겨 있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성장과 자기 인식”, “사랑과 감정의 밀도”, “사회와 인간의 구조”, “상상과 이야기의 세계”처럼 주제별로 구성해 둔 방식도 정말 좋았다. 덕분에 문장을 읽다 보면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들이 의외로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키다리 아저씨』였다.

사실 예전에는 『빨강머리 앤』의 밝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더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키다리 아저씨』 속 문장들이 훨씬 깊게 다가왔다.

특히 주디 애벗이 이야기하는 삶의 태도가 지금 읽으니 더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가장 크게 중요한 것은 거창한 즐거움들이 아니에요.

작은 즐거움들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끌어내느냐가 더 중요하죠.”

행복은 엄청난 성공이나 특별한 사건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내느냐에 있다는 말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고, “지금”을 살아가라는 문장은 흔한 조언처럼 보이지만, 주디의 편지 속에서는 이상하게 진심으로 다가온다.

또 하나 좋았던 건 상상력에 대한 문장이었다.

“상상력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문장은 단순히 문학의 역할을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세계문학을 읽는 시간이 결국 내 마음을 넓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인 에어』의 문장들도 강렬했다.

“나는 새가 아니에요. 그리고 나를 얽어맬 그물도 없어요.”라는 문장은 너무 유명한데,

직접 따라 써보니 문장이 조금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존엄과 독립적인 의지를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또 『빨강머리 앤』에서는 “10월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라는 문장이 참 사랑스러웠다. 평범한 계절 하나를 저렇게까지 기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앤이라는 인물의 매력인 것 같다.

이 책은 영어 필사책이지만, 단순히 영어 문장을 따라 쓰는 데 목적이 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사랑받아 온 세계문학 속 문장들을 천천히 읽고, 손으로 옮기면서 내 감정과 삶을 함께 돌아보게 만드는 책에 더 가깝다. 영어 표현과 리듬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남는 건 문장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오래 붙잡아 둘 수 있는가에 대한 경험이었다.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한 날, 조용히 한 페이지를 펼쳐 문장을 따라 적다 보면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빨리 읽고 끝내는 책이라기보다는, 천천히 꺼내 읽고 좋은 문장은 직접 필사해보면서 느리게 보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엑스리뷰어 12기‘ 활동을 통해

’현익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It isn’t the great big pleasures that count the most; it’s making a great deal out of the little ones—I’ve discovered the true secret of happiness, Daddy, and that is to live in the now. Not to be forever regretting the past, or anticipating the future; but to get the most that you can out of this very instant. It’s like farming. You can have extensive farming and intensive farming; well, I am going to have intensive living after this."
"가장 크게 중요한 것은 거창한 즐거움들이 아니에요. 작은 즐거움들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끌어내느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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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인생 공부 - 오만과 냉정 사이, 천하를 가른 심리전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PASCAL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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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인생 공부』라는 제목을 처음 보면,

‘초한지’가 무엇인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책이 조금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초한지는 중국 진나라가 무너진 뒤, 천하의 주인이 되기 위해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맞붙었던 격동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면초가, 토사구팽, 배수진, 파부침주 같은 고사성어도 바로 이 시대의 인물과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초한지는 단순한 옛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뒤엉킨 거대한 인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초한지 인생 공부』가 다른 초한지 관련 책들과 확실히 다른 점은,

이 이야기를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나 영웅담으로 정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통 초한지를 떠올리면 항우와 유방의 승패, 한신의 군사적 천재성, 유방의 리더십 같은 결과 중심의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결과보다 한 걸음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항우는 왜 그토록 강했지만 끝내 무너졌는지, 유방은 왜 완벽하지 않았는데도 사람을 얻었는지, 한신은 왜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비극을 피하지 못했는지, 여태후는 왜 권력을 향한 갈망 속에서 잔혹해졌는지를 ‘심리’의 관점에서 읽어낸다.

책의 프롤로그는 장기판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골목길이나 동네 어귀에서 보던 장기판 위의 ‘초’와 ‘한’이라는 글자.

저자는 그 작은 나무판이 단순한 놀이 도구가 아니라, 2,200년 전 대륙의 주인을 두고 모든 것을 걸었던 인간들의 전쟁터를 축소해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작이 좋았던 이유는 초한지가 갑자기 어렵고 먼 고전이 아니라,

우리 삶 가까이에 오래 머물러 있던 이야기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장기판 위에서 한 수 앞을 내다보려 애쓰는 사람들처럼,

초한지 속 인물들도 생존과 존엄, 권력과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선택했다.

이 책은 바로 그 선택의 배경에 있던 마음을 따라간다.

『초한지 인생 공부』는 사마천의 『사기』를 바탕으로,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의 난부터 기원전 179년 여태후 몰락 이후까지 약 30년에 걸친 시간을 다룬다. 여기에 『서한연의』의 문학적 장면 묘사를 더해 역사적 사실에 인간적인 감정과 심리의 결을 입힌다. 그래서 책은 정보만 나열하는 역사책처럼 딱딱하지 않고,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며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읽힌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그 안에서 인간의 감정과 갈등을 읽어내는 방식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진나라 말기의 혼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영원할 것 같았던 진 제국은 진시황 사후 빠르게 흔들린다. 여불위의 야망, 조희의 고독, 노애의 야심, 진시황의 두려움은 궁궐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뒤엉키며 결국 제국의 균열로 번져간다.

특히 여불위가 버려진 왕손 이인을 보고 ‘기화가거’, 즉 훗날 큰 이득을 남길 보물로 여긴 장면은 인상적이다. 한 사람의 계산과 투자가 한 왕조의 운명을 바꾸지만, 동시에 권력의 불안과 의심을 키워 결국 몰락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부분에서 책이 말하는 ‘권력의 착각’이 선명하게 보인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고,

불로초와 암살의 공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영원한 제국을 꿈꾸었지만, 그 제국은 진승과 오광의 봉기 이후 빠르게 무너졌다.

이 과정을 통해 권력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두려움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적인 욕망이 공적인 권력을 흔들 때 한 개인의 상처와 불안이 얼마나 큰 역사적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진승·오광의 난은 억눌린 자들의 외침으로 읽힌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라는 말은 단순한 반란의 구호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온 불평등과 억압이 폭발한 순간이었다. 정해진 기한을 어기면 처형당해야 하는 진나라의 가혹한 법 앞에서, 진승과 오광은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봉기를 선택한다.

이 장면은 초한지의 시작이 위대한 영웅 한두 명의 등장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결핍과 민심의 분노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진승과 오광을 무조건적인 혁명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봉기 이후 진승이 왕이 되자, 그는 자신이 외쳤던 평등의 정신을 잃고 권위에 집착한다.

옛 친구를 처형하고, 소통의 문을 닫고, 주변을 감시와 검열로 채운다.

결국 사람들은 그에게서 멀어지고, 봉기의 불길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사람은 어려울 때보다 오히려 무언가를 얻은 뒤에 더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이상이 될 수도 있지만, 권력을 만나면 오만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이 씁쓸하게 남았다.

항우의 이야기는 가장 강렬하다. 그는 신화적인 무력과 자존감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검술보다 만인을 상대하는 학문을 배우겠다고 말했던 항우는,

처음부터 천하의 판을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거록대전에서 보여준 파부침주의 결단은 항우라는 인물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뜨려 퇴로를 끊은 그는 병사들을 죽을힘으로 싸우게 만들었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항우가 왜 당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는지 이해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항우의 강함만을 찬양하지 않는다.

항우는 누구보다 강했지만,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세상의 법칙처럼 믿었고,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데 서툴렀다.

전쟁에서는 압도적인 존재였지만, 사람을 품고 권력을 나누는 정치적 그릇은 부족했다.

그래서 항우의 몰락은 단순히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가 아니라,

자기 안의 오만과 고립을 끝내 넘어서지 못한 한 인간의 비극으로 다가온다.

반대로 유방은 완벽한 영웅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젊은 시절 그는 한량처럼 보였고, 술과 사람을 좋아했으며, 성실한 농사꾼이나 모범적인 관리와도 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유방에게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고, 상대의 마음을 읽고,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기꺼이 쓰는 힘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소하의 행정, 장량의 책략, 진평의 이간책, 한신의 군사적 재능을 받아들였고, 그들의 능력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웠다.

이 지점이 『초한지 인생 공부』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사람이 리더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오래가는 리더는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유방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생존과 실리 앞에서 유연했고,

무엇보다 사람을 자기 확장처럼 받아들일 줄 알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불완전함’이라는 표현이 유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한신의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마음에 남는다.

그는 전쟁에서는 천재였지만, 정치의 세계에서는 끝내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젊은 시절 가난과 멸시 속에서 자랐고,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굴욕까지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 복수할 수 없는 순간에 무리하게 칼을 뽑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그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었다.

훗날 전쟁의 신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펼친 것도,

그 긴 수모와 인내가 쌓인 결과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한신은 결국 비극으로 향한다.

그는 전장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전략가였지만, 정치적 결단 앞에서는 망설였다.

주군을 배신하지 못하는 도덕적 결벽, 자신이 이룬 공에 대한 자존, 권력에 대한 미련 사이에서 그는 오래 머뭇거린다. 이 부분을 통해 능력만으로는 인생의 판을 끝까지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력이 있어도 때를 읽지 못하면, 결정적인 순간 선택하지 못하면,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오히려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정리되는 항우, 한신, 유방의 심리 비교도 좋았다.

항우는 자신의 힘을 믿었지만 타인을 품지 못했고, 한신은 천재였지만 결단의 순간을 붙잡지 못했으며, 유방은 불완전했지만 사람을 얻어 제국을 세웠다.

이 세 사람의 대비는 초한지를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의 거울로 만든다.

나도 어떤 순간에는 항우처럼 내 능력만 믿고 타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어떤 순간에는 한신처럼 답을 알면서도 망설였다.

또 어떤 순간에는 유방처럼 부족함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초한지 인생 공부』는 초한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이미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다른 방식의 재미를 준다.

초한지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이 책을 통해 초한지의 큰 흐름을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알고 있다면 인물들의 심리와 선택을 통해 새롭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역사 속 영웅들을 멀리서 바라보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 앞에 나를 세워보게 한다.

나는 지금 항우처럼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지, 한신처럼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미루고 있는지, 아니면 유방처럼 나를 낮추고 사람을 얻어가고 있는지 묻게 된다.

초한지의 장기판 위에서 중요한 것은 가장 강한 말이 아니라,

판을 끝까지 읽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초한지 인생 공부』는 역사와 고전, 인간 심리와 리더십을 함께 읽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인문학 책이다.


'파스칼/리텍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유방은 젊은 시절, ‘한량’이라 불리며 국가의 대사를 논할 인물로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알아가면서도 이상하게 그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유방이 가진 천성적인 친화력과 사람을 보는 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마을의 거지에게도 말끝을 흐리며 웃어주었고, 자신의 하인을 대할 때도 반말을 하거나 함부로 다루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고, 사소한 부탁도 쉽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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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 - 트라우마와 삶 사이, 멈추지 않고 걸어온 기록
이안나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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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책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제목에서 말하는 ‘함께’는 다른 사람만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오래 밀어내고 싶었던 기억, 자꾸만 나를 멈춰 세우는 불안, 어른이 된 뒤에도 문턱 앞에서 한 번 더 망설이게 만드는 어린 시절의 나와 이제는 함께 살아보겠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왜 하필 ‘이제는’이라는 말을 붙였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말이 조금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숨고, 피하고, 괜찮은 척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그 시간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조심스러운 다짐 같았다.

이 책은 트라우마를 다룬 에세이지만, 흔히 말하는 극복담처럼 읽히지는 않았다.

저자 이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폭력과 불안, 가난과 고립을 겪으며 자라온 시간을 차분히 꺼내놓는다.

그런데 그 방식이 과장되어 있지 않아서 더 마음에 남았다.

어떤 문장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오래 멈추게 만들었다.

상처를 크게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데도 그 안에 얼마나 오래 숨죽인 시간이 있었는지 느껴졌다.

책의 초반에서 저자는 “세상은 문틈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이 문장이 이 책 전체를 여는 문처럼 느껴졌다. 어린아이였던 저자에게 세상은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문을 닫는 일도, 문을 여는 일도 혼자 배워야 했고, 멀쩡해 보였던 날들 안에는 겁에 질린 아이의 소리 없는 외침이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드러낼 수 없었던 이야기이자 더는 같은 방식으로 숨고 싶지 않아 남겨두는 기록이었다.

특히 문을 닫는 법을 먼저 배웠다는 고백은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저자와 동생은 단둘이 집에 남겨졌다.

벨이 울리면 숨을 죽였고, 문밖의 웃음소리와 발소리, 알 수 없는 기척은 어린 자매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 엄마가 남긴 “절대 문 열지 마”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하나의 생존법이 되었다.

누군가 문밖에서 벨을 누르면 “어른 안 계세요”라고 외쳐야 했던 아이.

그 말은 문을 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었고, 동시에 안쪽에 머물 수 있게 해주는 작은 방어막이었다.

공포는 집 안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친구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폭력은 다른 얼굴로 반복된다. 동네 남자아이들이 문을 부술 듯 두드리던 날, 아이들은 위급할 때 누르라고 배웠던 번호로 전화를 걸지만 경찰은 오지 않는다. 그날 이후 저자는 현관문이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잠금쇠와 보조키까지 확인하는 아이가 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조심성 많고 말 잘 듣는 아이였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 조심성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었다.

도움을 기대하지 못했던 시간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도 오래 이어진다.

저자는 울음을 들키지 않는 법부터 배웠고, 도움을 기대하기보다 자기 안의 문을 닫아두었다고 말한다. 어른이 언제든 도와주러 올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오지 않거나, 늘 너무 늦었다.

그래서 그는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먼저 혼자 해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야근이 늘어나도, 아파도, 마음이 다급해도 모든 걸 혼자 해결했다는 고백이 낯설지 않았다.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괜찮다는 말이 대화를 끝내기에 유용했기 때문이라는 문장은 오래 생각하게 했다. 나도 가끔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해버릴 때가 있다.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더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말 뒤에 숨어 있는 오래된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팠던 건, 저자가 겪은 폭력과 가난 자체도 물론이지만 그 이후의 방식이었다.

아빠의 사업 부도 이후 낯선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오고, 집 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는다.

냉장고와 티브이, 벽에 걸린 그림 위에 같은 색의 종이가 붙어 있는 장면은 집이 더 이상 나를 품어주는 공간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저자는 평소처럼 집을 정리하고, 우리 것이 아니게 된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저녁을 먹는다. 누구 하나 늘 하던 일을 멈추면 그날이 특별한 날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였다는 말이 너무 슬펐다.

가난은 단순히 불편한 문제가 아니었다. 저자에게 가난은 들키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숨겨야 하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나눠주던 문제집은 도움이면서 동시에 표시처럼 느껴졌고, 이름이 불리는 순간 모든 것이 설명되어 버릴 것 같았다.

대학생이 되어 어학연수나 유럽 배낭여행을 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때도 침묵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저자는 설명 대신 관계를 포기하고, 열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난을 숨긴다.

위험이 될 만한 사람을 하나씩 내려놓는 방식은 그렇게 오래된 생존법이 되어갔다.

이 책은 트라우마가 꼭 큰 사건의 기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소리에 놀라는 것, 늘 출구를 먼저 찾는 것, 사람들 앞에서 울지 못하는 것, 도움을 청하기 전에 혼자 해결할 방법부터 찾는 것, 상대가 묻기 전에 먼저 괜찮다고 말해버리는 것.

이런 작은 습관들이 사실은 오래된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저자는 하나씩 보여준다.

뒤로 갈수록 저자가 지나온 시간은 더 깊은 곳까지 이어진다.

통제는 늘 큰 소리로 다가오지 않았다. 때로는 배려의 얼굴을 하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 늦게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폭력보다 상대의 미래를 먼저 걱정하던 순간,

저자는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겨울 찬 바람을 맞으며 또다시 도망치고, 공중화장실 제일 마지막 칸에 몸을 숨긴 장면에서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혼자 외로운 싸움을 이어온 사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숨을 삼키는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주말의 연구실에서 겪은 불안의 장면도 오래 남았다.

조용히 일할 곳이 필요해 아무도 없는 토요일 오후 연구실로 향했고, 컴퓨터도 모니터도 서류도 모두 정상적으로 놓여 있었다. 소음도 없고 위험도 없고 누군가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시야가 좁아지고 숨이 막히며 불안이 밀려온다. 이 부분은 내가 경험했던 증상과 닮아 있어서 놀라기도 하면서 읽었다.

불안한 감정들, 그리고 타인을 통해 미움을 받는 듯한 감각이 공황장애 같은 증상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한 번 경험하고 조금 나아진 것 같아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이거나, 심지어 아무 일도 없는 상황에서도 그 감각이 불쑥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는 불편함이기에 나는 이 부분을 더 깊이 공감하며 읽게 됐다.

그래도 이 책은 끝내 무너지는 이야기로만 남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이 기적처럼 살아난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로 시작되는 싸움 끝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그 싸움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고,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면서도 자신과 지켜야 할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겪고 있던 것들이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의 결과라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간다. 지난날 왜 도망치지 못했는지 묻고 자책하는 대신, 그 시간을 잘 지나온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이제는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가 좋았던 이유는 회복을 너무 쉽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상처가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문을 열어도 괜찮아지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마흔이 되어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치유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오늘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말처럼,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단단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아직도 문턱에서 멈추는 나를 알아차리고 그런 나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일에 가까운 것 같다.

결국 제목 속 ‘이제는’은 너무 늦은 말이 아니라, 이제라도 시작해보겠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상처를 없애겠다는 말이 아니라, 상처 입은 나를 더 이상 밖에 세워두지 않겠다는 말이다. 문을 닫아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아이, 울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던 아이와 이제는 함께 살아보겠다는 다짐. 앞으로 저자의 삶에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들이, 불안보다 편안함이 더 오래 머무는 날들이 조금씩 많아지기를 응원하게 된다. 오래 괜찮은 척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작은 아이를 한 번쯤 조용히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이안나 작가'님께 도서를 선물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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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오늘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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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군산 - 바다가 부른다, 이야기가 있다, 오래도록 새로운 여행지, 군산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4
권진희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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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군산』은 제목부터 괜히 마음이 갔다. 그런데 사실 나는 군산이라는 도시를 잘 몰랐다.

어디에 어떤 분위기의 도시인지 막연했고, 여행지로는 왠지 오래된 느낌의 도시라는 이미지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군산에 가면 짬뽕을 먹는다는 이야기나, 야채빵으로 유명한 오래된 빵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으로 군산의 느낌을 알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군산은 내게 궁금한 도시이면서 흐릿한 도시였다.

그런데 『언제라도 군산』을 읽다 보니 그 흐릿했던 도시가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관광지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서가 아니라, 군산을 오래 좋아해온 사람이 자신이 아끼는 공간과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유명한 장소보다 골목의 공기, 오래된 나무 한 그루, 자주 가는 책방과 카페 같은 것들이 더 오래 남는 책이었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군산이라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저자는 건축을 배우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중국인 교환학생과 군산 앞바다에 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산간 지방에서 자란 그에게 군산 앞바다는 첫 바다였고, 그는 “바다가 이렇게 금방이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시에 ‘군산’이 무리 군, 뫼 산을 쓴다는 사실을 신기해한다.

지금의 군산은 산보다 바다와 평야의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원래 군산은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같은 섬들을 묶어 부르던 이름이었다고 한다.

섬들이 산처럼 무리 지어 있다는 뜻이라는 설명을 읽고 나니 도시 이름조차 다르게 보였다.

여행지는 원래 이런 식으로 가까워지는 건가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저자가 군산을 바라보는 속도였다.

요즘 여행 콘텐츠를 보다 보면 어디를 꼭 가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하고, 사진은 어디서 찍어야 하는지가 중요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언제라도 군산』은 그런 방식과 조금 다르다.

오히려 천천히 걷고, 우연히 멈추고, 마음에 드는 공간에 오래 머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명궁칼국수와 영화건강원 앞 버드나무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저자는 칼국수를 먹고 나오다 가지치기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무슨 나무인지 몰랐지만 바로 검색하지 않고 계절을 기다린다.

3월에는 웅크린 듯하던 나무가 4월에는 조금씩 잎을 내고, 5월이 되어서야 버드나무라는 걸 알아차린다. 이후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 지나면 다시 가지치기를 당한다.

읽으면서 괜히 마음이 차분해졌다. 여행이라는 게 꼭 거창한 경험이 아니라, 어떤 나무 한 그루의 계절을 기억하게 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틈’ 이야기도 좋았다.

영화타운 근처에 있지만 입구를 찾기 어렵고, 여름이면 담쟁이덩굴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겨울이면 붉은 벽돌이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원래 곡물창고였던 건물을 그대로 살렸다는 점도 군산이라는 도시와 잘 어울렸다.

저자는 그곳에서 밤라테를 마시며 친구와 떠났던 공주 여행을 떠올린다.

장소 하나가 다른 장소의 기억을 불러오는 흐름이 참 자연스러웠다.

실제 여행도 그렇다. 어떤 카페 하나가 오래전 계절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음료 하나가 사람을 기억하게 만든다.

군산과자조합 이야기를 읽을 때는 괜히 나도 그곳에 앉아 밀크티를 마시고 싶어졌다.

군산은 짬뽕이나 빵 정도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책 속에는 이런 감각적인 디저트카페들도 등장한다. 1939년 제과·제빵사들이 함께 세웠던 군산과자조합의 역사를 바탕으로 다시 태어난 공간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밀크티와 계란찜과자, 비엔나커피와 바스크치즈케이크를 앞에 두고 일을 미루는 장면은 이상하게 현실적이라 웃음이 났다. 특히 밀크티 향을 맡으며 짙은 보랏빛을 떠올리는 부분은 이 책 특유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맛을 단순히 맛있다고 설명하는 게 아니라 향과 색, 감정과 기억으로 연결해 표현한다는 점이 좋았다.

영화타운 이야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영화동이 영화와 관련된 이름인 줄 알았는데,

책에서는 ‘영화’가 movie가 아니라 ‘길 영’, ‘화할 화’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오래 화목하자는 의미라니 이름부터 정감이 갔다. 그 안에는 40~5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오래된 가게들과 새로 생긴 바와 와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바 ‘해무’와 와인 공간 ‘시가지’ 이야기를 읽다 보면 군산의 밤공기가 상상된다. 특히 해무가 만석이라 우연히 들어간 시가지에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좋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공간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여행에서 그런 우연이 가장 오래 남는 것 같다.

‘돌아서 돌아오다’에 나오는 젤라또 노베오와 재즈클럽 머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친구와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젤라또집, 그 뒤편에 숨어 있던 재즈클럽,

해방 직후 미군클럽이었다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장소다.

군산은 한 공간 안에 여러 시간이 겹쳐 있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목조건물 안에서 젤라또를 먹고, 재즈 공연 이야기를 하고,

놓쳐버린 봄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들이 참 군산답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어졌던 건 군산의 책방들이었다.

원래 여행을 가면 작은 책방부터 찾아가는 편인데, 『언제라도 군산』에는 내가 좋아할 만한 공간들이 정말 많이 나왔다. 그래픽숍, 심리서점 쓰담, 책방 조용한흥분색 같은 이름만 봐도 괜히 궁금해졌다.

특히 쓰담 이야기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저자는 그곳에서 생일책을 주문하고, 논알콜 맥주를 마시고, 책 두세 권을 사 들고 나온다.

강아지 직원 키코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단순한 서점이라기보다 마음이 잠깐 쉬어가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다고 하는 책들이 많다”는 문장이 특히 좋았다.

여행지에서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꽤 큰 위로일 것 같다.

나도 군산에 가게 된다면 유명한 관광지를 빠르게 돌기보다, 책방 하나에 오래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천천히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사고, 커피나 논알콜 맥주를 마시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언제라도 군산』은 군산을 소개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여행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책처럼 느껴진다.

어디를 얼마나 많이 가느냐보다 어떤 속도로 걷고, 무엇을 오래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골목을 천천히 걷고, 오래된 가게에 들어가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 한 그루를 기억하고, 우연히 발견한 책방에 머무는 여행. 그런 여행을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직 군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상하게 익숙한 도시처럼 느껴졌다.

바다가 있고, 오래된 건물이 있고, 책방이 있고, 누군가의 취향과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도시 같은 느낌이다. 오래되었지만 계속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날 도시인 것 같다.

그래서 제목처럼 정말 언제라도 떠나고 싶은 곳으로 군산이라는 도시를 마음에 새겨넣어 본다.

'푸른향기 서포터즈13기' 활동을 통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군산’은 산이 무리 지어 있다는 뜻입니다.

땅 자체를 보자면 별로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익산과 인접한 높이 230미터 망해산이 최고봉일 만큼 큰 산이 거의 없고, 오히려 탁 트인 평야가 강과 바다에 접해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조선 초기까지 군산은 임피, 옥구, 군산으로 구분된 행정구역이었습니다. 그중 군산은 내륙이 아니라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등 10여 개의 유인도와 횡경도, 소횡경도, 보농도 등 40여 개의 무인도를 한데 묶어 부르던 이름입니다. 조선 태조 때 군산도의 중심인 선유도에 설치했던 수군부대를 세종 때 옥구 진포로 옮기며 내륙을 점차 군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기존의 군산도를 고군산이라 불러 구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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