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예술이야
미사 지음 / 페이퍼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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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술이야 (명화 속에서 만나는 나)』는 오래된 명화들이 새롭게 태어나 아이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책이다. 미사는 고전 화가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그려, 아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다가간다. 그 그림들은 때론 어둠을 비추고, 때론 색으로 감싸 안으며,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감정의 여행길이 되어 준다. 이 책은 아이가 자존감을 찾아가는 여정에 따뜻한 길잡이처럼 함께해 준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고흐의 밤하늘을 닮은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불꽃 같은 갈기의 사자다.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이 이 책에서는 아이를 향한 따뜻한 말로 바뀌어 들려온다.

“낮에 뜬 태양은 네 생각을 밝혀주고, 밤하늘의 별과 달은 네 마음을 비춰주지.”

고흐가 원래의 그림에서 표현했던 불안과 고독은 이 책에서는 오히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으로 재해석된다. 하늘의 빛을 마음의 거울로 삼아 세상보다 스스로를 먼저 이해하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곧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마티스의 색채가 퍼진다.

불 같은 빨강과 생명의 노랑, 그리고 춤추는 듯한 형상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마티스의 「춤」이나 「붉은 실내」 시리즈처럼 이 장면에서는 색 자체가 감정이 되고 리듬이 된다.

“심장은 네 안에 뜬 태양이란다.

너의 태양빛이 쨍쨍하다면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넌 즐겁고 자유로울 거야!”

마티스는 원래도 색을 해방의 도구로 썼던 화가였다.

이 책은 그의 의도를 그대로 빌려와, 아이에게 “네 안에도 태양이 있다”고 일깨운다.

자존감은 그렇게 스스로 안에 빛이 있음을 믿는 순간 움튼다.

밤이 깊어지고, 무대가 바뀌면 살바도르 달리의 세계가 펼쳐진다.

기이하게 길쭉한 다리의 동물들, 아이스크림을 이고 가는 코끼리,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서커스가 열린다. 「기억의 지속」이나 「코끼리」 시리즈가 연상되는 이 장면은 밤이라는 시간이 아이에게 두려움이 아닌 자유로운 상상의 시간임을 알려준다.

“밤은 네 안의 달이 뜨는 시간. 감춰진 것들을 찾는 노련한 술래잡이거든.”

달리는 무의식과 환상을 다뤘지만 이 책 속의 밤은 따뜻하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까지 천천히 드러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공간이 된다.

그림 속 세상이 조금 어두워질 무렵, 에드바르 뭉크의 정서가 번져온다.

절규하는 이의 고통처럼 두려움과 외로움이 그림 속을 휘감는다.

하지만 이 책은 뭉크의 고통을 도피가 아닌 직면의 메시지로 바꾼다.

“너에게 잔뜩 겁에 질린 모습도 있어. 외면도, 도망도 가지 말고, 가만히 들여다보렴.”

진짜 용기는 두려움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 두려움조차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데서 온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마르크 샤갈의 환상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하늘을 나는 연인과 말, 사랑하는 사람들의 포옹, 동물과 사람,

마을과 우주가 한 공간에 뒤섞인 그림 속에서 이 책은 아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내 이웃이 누구이며, 서로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나요?”

샤갈의 그림이 과거의 기억과 사랑을 떠올리게 했다면,

『난 예술이야』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사랑과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그다음 장면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아들」이나 「이미지의 배반」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그림들이 이어진다. 사과로 가려진 얼굴,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구름, 창문으로 나뉜 수수께끼의 방들.

이 모든 구성은 하나의 선언으로 수렴된다.

“세상도, 너도 수수께끼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드러난 모습 뒤에 더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는 걸

아이는 이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중반 이후 등장하는 ‘수프캔’ 시리즈는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캔」을 그대로 패러디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난 용감해”, “난 따뜻해”, “난 신비해”… 각각의 캔은 아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말하는 선언이다.

“나는 나의 선물이고, 너는 너의 선물이야. 평범해 보여도 특별하단다.”

이 장면은 특히나 강력하다. 우리가 가진 개성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또렷하게 전달한다.

책의 마지막엔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재구성한 장면이 등장한다.

사람이 휴식을 취하는 풍경 위에 동물들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니? 그럼 멋진 행동을 시작하렴. 거대한 바다도 한 방울의 물이 시작했단다.”

점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그림을 이루듯, 나의 작은 행동 하나도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책은 마무리된다.

『난 예술이야』는 예술가들의 언어를 빌려, 아이가 스스로의 존재를 빛나는 작품으로 인식하게 돕는다.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나만의 색을 가진 작품이야”라고 대답할 수 있게 해주는 여정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도 있다.

아이와 함께 각 장면의 원작 화가를 찾아보며 비교하거나, 마지막 수프캔 장면에서는 “너는 어떤 캔이야?”라고 물어보며 자기만의 수프캔을 그려보게 하는 것도 좋다. 고흐의 하늘을 보고 자신만의 별을 그려보거나, 마그리트의 수수께끼 방을 만들어보는 것도 아이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서 아이는 말한다.

“난 내가 그려요. 세상에 하나뿐인 내 지문처럼, 나만의 색을 칠해요. 난 예술이야.”

그 말은 이 책은 모든 아이에게 그리고 한때 아이였던 어른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당신은 당신 자체로 예술이라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 충분히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고 말이다.


'페이퍼독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평생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외로움과 싸우며 그림을 그린 뭉클.
그의 감정은 깊고 어둡지만, 모든 걸 이겨 낸 빛을 담고 있어요.
"너에게 잔뜩 겁에 질린 모습도 있어. 외면도, 도망도 가지 말고, 가만히 들여다보렴.
그 모습도 너라는 걸 인정할 때 비로소 너에겐 진짜 용기가 생긴단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니? 그럼 멋진 행동을 시작하렴. 거대한 바다도 한 방울의 물이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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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몽실 몽상구름 - 백 번 자살 시도 끝에 살아난 여자의 찬란한 생의 기록
최애니 지음 / 아빠토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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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몽실몽실 몽실구름』은 한 사람의 깊은 상처와 그로부터 회복해 가는 시간을 담담한 고백처럼 풀어낸 책이다. 동화 같은 제목과 부드러운 표지와 달리, 이 책은 눈물겨운 진심의 기록이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기까지의 수많은 밤들을 지나온 저자의 속내 그 자체다.

살면서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모든 고통이 같은 무게는 아니다. 견딜 수 없어 말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해 더 깊어지는 고통도 있다. 저자는 그 끝을 실제로 마주한 사람이다. 절망의 문턱에 선 경험, 그 끝에서 다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과정은 책 전반에 진한 농도로 배어 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위로나 조언이 아니라, “나도 그랬어. 너도 그랬지?” 하고 조심스레 다가오는 고백이다. 그렇게 슬픔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따뜻하다.

책 속 고통의 이름은 다양하다. 불안, 우울, 관계에서 오는 상처, 그리고 무엇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 저자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희생했다. 무리 속에서, 연인에게서, 직장에서—그녀는 늘 웃었고 맞춰주었고, 상처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깎아내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것은 칭찬도, 사랑도 아닌 외면과 조롱뿐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지우며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가장 깊은 상처가 드러나는 장면은, 저자가 사랑이라 믿었던 관계에서 시작된다.

12살 연상의 남자였다. 그의 애틋한 눈빛, 죽음을 입에 담는 고백, 뜨거운 포옹에 마음이 무너졌던 저자는, 점점 그에게 빨려 들어간다. 그가 무너질까 봐, 그를 두고 떠나면 안 될 것 같아 끝까지 붙들며 자신을 버텨내던 그녀. 그와 함께라면 동반 자살도 괜찮겠다는 무모한 믿음 아래에서, 저자는 자신을 지워가며 그의 세계에 흠뻑 잠긴다.

그러나 그 남자의 어둠은 점점 짙어졌다. 질투와 독점욕, 자멸의 그림자가 그녀의 숨통까지 조여왔다.

술에 취해 반복되는 협박. “네가 나를 떠나면 넌 죽는 거야.”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손이 그녀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저자는 그를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의 눈물 어린 얼굴이 떠올라 끝내 외면하지 못했다.

그렇게 비틀린 사랑 속에서 그녀는 점점 사라졌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존엄까지 허물어뜨렸다.

그리고 결국,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아주 짧은 찰나, 아주 작은 틈을 노려 도망쳤다.

그리고 얼마 뒤에 들은 그의 소식. 자세한 말은 하지 않지만, 그 기억은 오랫동안 그녀를 붙잡았다.

죄책감, 공포, 심장이 뛰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그 감정들. 한때는 사랑이라 믿었던 그 관계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도, 그녀는 오랫동안 그 상처를 껴안은 채 허덕였다. 헛된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사랑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 대상이 사라진 순간, 삶의 목적 자체를 통째로 잃은 듯한 상실감이 그녀를 덮쳤다.

그 고통은 단순히 관계의 실패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저자 안에 있던 무방비한 선의와 착함, 그리고 사랑받고 싶은 절박한 욕구가 만든 치명적인 균열이었다. 그렇게 파괴적인 관계를 지나온 뒤 그녀는 말한다.

그 폭력적인 사랑에 속아준 내가, 이제는 잘 사는 것만이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그를 가슴속에서 천천히 태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 슬픔을 껴안고, 조금씩 걸어 나왔다.

이 책은 반복해서 말한다. 몽상은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세상과 나 사이의 안전한 거리이자, 나를 지켜내는 공간이다.

저자는 상상 속 구름 위에서, 스스로를 회복시키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낸다.

절망 속에서도 상상은 계속된다는 믿음.

그리고 그 구름은 결국 철학이 되고 방공호가 되며 다시 살아갈 용기로 바뀐다.

『몽실몽실 몽실구름』은 상처받은 이들이 끝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주는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그저 한 사람의 감정적인 기록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우울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이 건네는 위로는 너무도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진실한 언어다.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나의 몽실구름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힘든 현실이다.

그래도 문득 짧은 시간 틈으로 나답게 서 있기 위한 나만의 구름 한 조각을 찾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닐까싶다.

『몽실몽실 몽실구름』은 상처받은 이들이 결코 완전하지 않지만 끝끝내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잔잔한 연대의 언어다. 이 책은 상처받았다고, 쓰러졌다고, 그게 끝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는 나도, 당신도, 우리도 각자의 구름 위를 조금씩 걸을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한번 살아보자.


'도서출판 아빠토끼'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인간은 저마다의 변명이 필요하다. 좀 더 동화적인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상상의 재료가 필요하다. 발버둥 치며 애쓴 노력에 대해 명징한 결과를 고정된 언어로 내놓았을 때, 그것은 현실의 내가 온전히 소화하기에 거북하고 아프다. 진실을 냉정한 성적표로 삼아 겸허히 받아들이고 운명에 나를 맡긴 채 하늘에 굽신거리고 절망의 늪에 스스로를 가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 나는 더욱 상처를 깊게 후벼파면서 쓸데없는 자책과 생각을 더하게 된다. 추락의 늪을 계속해서 깊게 만들고 상상은 지옥에 다다른다. 평면의 땅 위에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감각되는 현재성이란 매 순간, 매분 매초가 나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정체된 무언가로 고정하는 느낌이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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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 1949~1992 아티스트웨이 2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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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의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는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 대한 가장 치열하고도 개인적인 해부이자, 문학과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하루키의 문학을 그저 감성적이고 위로를 주는 ‘힐링 소설’로만 여기거나, 재즈와 와인, 고양이, 달리기처럼 세련된 취향을 담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쿨한 문학’으로만 생각해온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전혀 다른 얼굴의 하루키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덤덤하게 일상을 살아가며, 복잡한 상황에서도 냉소적이거나 무심한 태도로 대응한다. 이러한 특징은 하루키 문학을 스타일리시하고 감각적인 작품으로 인식하게 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는 그 이면에 자리한 역사적 트라우마와 무의식의 상처, 그리고 일본 사회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책의 제목 ‘지금 어디에 있니’는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 마지막 장면에서 따온 문장이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전화를 건 미도리에게 “나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라고 되묻는다. 이는 단순한 위치 확인이 아니라, 자기 존재와 정체성, 삶의 방향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김응교는 이 질문을 하루키 문학 전체를 꿰뚫는 상징으로 본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질문에 응답하려는 시도다.

책의 시작부터 흥미롭다. 하루키가 소학교 시절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조개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는 일화가 소개된다.

이 발언의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김응교는 그것이 하루키 문학의 주제와 강하게 연결된다고 본다. 일본에서 1958년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나는 조개가 되고 싶다》는 전범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병사의 이야기이며,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인간이 아니라 조개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하루키가 아홉 살 무렵 이 드라마를 보았을 가능성은 높고, 그 충격은 그의 문학 세계에 깊은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 속 인물들은 자주 부당하게 억울한 일을 겪는다.

전쟁, 국가 시스템, 사회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지도 않지만, 무력하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비현실과 환상을 통해 도피하거나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저자는 이것을 ‘부조리한 역사에 대한 독특한 저항 방식’으로 해석한다.

“나는 조개가 되고 싶다”는 말은 그런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서 더는 상처받지 않고 조용히 숨 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이 문장은 하루키 문학 전반을 꿰뚫는 중요한 상징이다.

1장에서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키는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에세이에서 아버지 무라카미 치아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전선에 배치되었고, 전쟁 이후 평생을 참회의 마음으로 독경하며 살았다고 고백한다.

어릴 적 하루키는 아버지에게서 참수 장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충격을 평생 잊지 못한다. 이 기억은 소설 속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부정적인 아버지’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하루키는 1939년 소련과 일본이 충돌한 ‘노몬한 전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실제로 그 전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하루키의 여행법』에서 그는 “왜 그 전쟁에 끌리는지 모르겠지만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이 관심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이 아니라, 아버지 세대가 남긴 어두운 기억을 문학적으로 마주하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역사라는 것을 짊어지고 살고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감춰도 반드시 밖으로 나온다.”

그는 난징 대학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후 일본의 침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 대학살을 묘사한 대목은 일본 극우 세력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하루키는 “10만 명이든 40만 명이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의 군부, 사이비 종교, 부패한 자본주의를 모두 포함하는 ‘시스템 악’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버지’라는 상징이 놓여 있다.

김응교는 이를 ‘아시아적 아버지 콤플렉스’라고 명명한다.

이는 단순히 아버지 개인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 권력이 남긴 역사적 죄책감과 폭력의 기억을 온몸으로 짊어진 세대의 고뇌를 말한다.

하루키의 이 같은 태도는 프란츠 카프카와도 연결된다.

카프카 역시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변신』을 통해 가부장적 권위에 눌린 삶을 고백했고,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주인공에게 ‘카프카’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이 전통을 잇는다.

김응교는 하루키 문장 곳곳에서 “카프카적인 무거움”이 감지된다고 말한다.

둘 다 자신의 문학을 통해 아버지와 권위, 그리고 잊히는 기억과 싸워온 작가들이다.

하루키의 창작 계기 또한 흥미롭다.

그는 1979년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야구장을 찾아가 외야 잔디밭에 드러누워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그 순간 방망이에 공이 맞는 소리를 듣고 문득 “무언가를 써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즉시 서점으로 달려가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단 두 달 만에 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놀라운 데뷔는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눌려 있던 무의식의 응축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 사건이었다.

결국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 사회가 외면해온 역사적 상처를 소설 안에 조용히 묻는다.

전쟁의 그림자, 아버지 세대의 죄의식, 잊힌 기억의 파편은 그의 작품 속 곳곳에 스며 있다.

김응교는 하루키가 아버지의 전쟁 경험, 노몬한 전투, 난징 대학살처럼 일본이 침묵해온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기록하고 사유하려 했다고 말한다.

하루키 문학의 핵심은 ‘기억의 복원’이며, 그 중심에는 ‘말하지 않음에 대한 저항’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는 하루키를 단지 인기 있는 소설가로 소비하던 독자에게, 전혀 다른 얼굴의 작가를 보여준다.

문학을 통해 역사와 화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울림을 전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서 김응교는 우리가 하루키에게 던졌던 질문을 독자 스스로에게 돌려주듯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책읽는고양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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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대한 대지를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 중 이름모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한 방울 빗물의 역사가 있어서, 그것을(역사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한 방울 빗물의 책무가 있다. (‘고양이를 버리다’, 9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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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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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케이시의 『언더월드』는 물속 깊은 곳, 인간의 감각이 닿을 수 없는 경계 너머를 향한 집요한 질문과 집착, 그리고 경이로움을 담은 책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케이시는 지구 표면 아래 약 9,000미터까지 이어진 심해의 어둠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은 빛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빛을 내는 생명체들, ‘화려한 괴물들’이 살아 숨 쉬는 세계다. 상상할 수 없는 깊이, 상상조차 어려운 아름다움,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위협적인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

저자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물음을 품고 있었다. “심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그곳에 가면 무엇을 보게 될까? 어떤 감정이 들까?” 이 책은 그 질문을 따라 마침내 실제로 심해에 발을 들인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그 현장을 생생히 전한다. 억만장자 탐험가, 해양 과학자, 잠수정 조종사 등과 함께한 여정은 과학보다 더 신비롭고, 소설보다도 극적이다.

심해는 수심 200미터 아래, 햇빛이 닿지 않는 세계를 말한다. 케이시는 박광층, 무광층, 심해저대, 초심해저대처럼 수심에 따라 나뉘는 해양 구조를 소개하며,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들—빛을 내고,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며,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을 소개한다. “바다는 마법으로 들끓고 있다”는 그녀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심해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은 말처럼 들린다.

지구 표면의 65%,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의 95%를 차지하는 바다. 그러나 그중 80퍼센트 이상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대부분이 사실상 ‘알 수 없는’ 세계인 셈이다. 케이시는 이런 현실 앞에서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큰 부분을 그냥 무시해도 괜찮은 걸까?” 그녀의 여정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고,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바다를 탐험하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지켜야 한다는 윤리적 감각이 함께 피어난다.

이 책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다를 향한 인간의 오래된 인식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스웨덴 웁살라에 있는 '카르타 마리나(Carta Marina)'라는 16세기 고지도를 보기 위해 직접 그곳을 찾는다. 이 지도에는 북대서양과 노르웨이 해의 해역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심해(abyss)’라는 단어 자체가 ‘바닥이 없는’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듯, 과거의 심해는 공포와 신비가 덧입혀진 상상의 공간이었다. 괴물들이 배를 집어삼키고, 지옥 같은 바다 밑에서 올라와 사람들을 끌고 내려가는 모습들—그건 과학 이전의 세계, 미지에 대한 인간의 상상이 낳은 결과였다.

케이시는 이 지도를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인식의 지도”라 부른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상상을 덧입히고, 그 공백을 두려움으로 채우는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지금의 우리는 바다를 정말 알고 있는가?”

과거에는 그 속에 괴물이 있다고 믿었고, 지금은 자원이 있다고 믿는다.

심해에는 니켈, 망간, 코발트 같은 희귀 금속이 풍부하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 자원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심해 채굴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채굴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파괴를 동반한다는 데 있다.

수백 년을 살아온 해면 동물, 미세한 균형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들,

그리고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생명들이 단 몇 시간의 작업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언더월드』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경이로움의 기록이 아니라, 분노의 기록이기도 하다. 눈부신 풍경 뒤에 감춰진 탐욕과 파괴의 흔적들을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에 묵직한 경고처럼 새겨진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심해 채굴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바닷속은 단순한 자원 저장고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생명계의 중심이다. 그리고 그 중심은 인간의 이익이 아닌, 생명의 지속 가능성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말이다.

책은 심해를 탐사하기 위한 기술적인 장비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룬다. 유인 잠수정, 무인 탐사정, 자율형 수중 로봇, 그리고 해저 지형을 측정하는 측심학까지. 얼핏 낯설고 전문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기술들조차 케이시의 손을 거치면 생생한 모험담처럼 읽힌다. 그녀는 단순히 기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술 너머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호기심, 책임을 함께 바라본다. 과학은 그녀의 문장에서 경이로움의 언어로 바뀌고, 탐사는 곧 철학이 된다. 케이시는 단순한 과학 저술가가 아니라, 진정한 기록자이자 모험가다.

『언더월드』는 과학책이자 모험기이며, 동시에 환경운동 선언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조용히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은 이 바다를 알고 있는가?”

“이 바다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히 한 가지는 마음에 남는다. 바다는, 인간 세계와 다르지 않게—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절실하게—우리가 지켜내야 할 또 하나의 세계라는 사실.

심해의 신비한 풍경이 궁금하다면, 바다를 사랑하거나 생명의 기원을 따라가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볼 만하다. 『언더월드』는 눈부신 생명들과 대면하게 하면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바다에 대한 경외와 책임, 그리고 오래된 공포와 새로운 희망이 함께 숨 쉬는 이 이야기는 단 한 권의 책이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 추천 대상 독자

- 심해, 자연,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

- 과학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독자

- 자연의 신비로움을 넘어 그 속에 숨겨진 의미와 질문을 탐구하고 싶은 사람

- 기술과 인간의 윤리가 맞물려 있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갈등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 사람


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 활동을 통해

'까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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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모든 새벽의 앞
마미야 가이 지음, 최고은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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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모든 새벽의 앞』을 읽고 있으면, 너무 고요해서 삭막하기까지한 어느 시골 공간에 홀로 남겨진 기계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된다. “ㄱㄱ팔이라 저리지 않아서 좋습니다.”라는 뜻밖의 표현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문장 사이에는 ( )라는 빈칸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소설이라는 형식 안에 이런 파격적인 문장 구조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형화된 문장이 아니라서 그런지 의외로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에 언급했던 ‘ㄱㄱ팔’은 ‘기계팔’을 뜻한다고 한다. ‘기계’라고 쓰는 것도 귀찮아서 줄여 썼다는 설명까지 읽고 나면,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삶 속에서도 인간적인 농담만큼은 잃지 않았구나 싶다.

괜히 다행이라는 기분까지 들었다.

주인공은 25살에 ‘융합수술’을 받는다. 이 수술로 인해 몸의 거의 모든 부분이 기계화되고, 그녀는 늙지 않는 몸을 얻게 된다. 영생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지만, 삶은 전혀 가볍지 않다. 엄마는 너무 어릴 때 돌아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아빠, 고아빠, 마리 언니, 사야 언니, 그리고 연인이자 조카였던 신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문제는, 그들이 이제 모두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오직 그녀만이, 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살아남아 있다. 말할 상대도, 반응해줄 존재도 없는 고립 속에서, 그녀는 더 깊은 외로움과 마주한다.

소설은 2013년 10월 1일, 규슈 지방의 산속, 더는 아무도 살지 않는 장소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족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말을 더 좋아했지만, 신이 곁을 떠난 이후로는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어 기록으로 대신한다. “심심한데 어쩌지, 하고 난감해하고 있을 때 가족사가 떠올랐습니다.”라는 말처럼, 이 소설은 심심함을 견디기 위한 기록이자, 존재의 흔적을 되짚는 고독한 독백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한때 자살을 원했다. ‘자발적 방조 자살법에 기초한 안락사 조치’, 일명 ‘자살 조치’가 제도화되었을 때, 그녀는 전용 기계를 통해 조용히 죽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놓는다. 그때 아버지는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오며 절규한다. “정 죽겠다면 내 손으로 널 죽이고 아빠도 죽겠다.” 치매가 오기 전,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감정 폭발이었다. 그 장면은 소설 내내 반복되는 회상의 중심축이 된다. 그녀가 살아남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전환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살아남는다. 융합수술을 통해 기계의 육체를 얻고, 생을 연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생존일 뿐이다. “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하고 사고하는 뇌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 걸까요.”라는 문장처럼, 몸은 기계가 되어도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다. 감각은 계속되고,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해바라기에 대한 이야기다. 신이 40년 넘게 키워온 해바라기를 보며 그녀는 무덤덤하게 “까만 가운데 부분이 울퉁불퉁해서 무섭다”고 말한다. 기계 몸을 가진 존재가 식물의 한가운데를 무서워한다는 점이 묘하게 인간적이다. 게다가 이 세계는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세상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계절이 없어지고 계속 여름 같은 날씨가 계속돼서…” 벚꽃은 피지 않고, 해바라기 같은 꽃만이 피어난다. 기후, 문명, 사람의 감정마저도 흐릿해진 세계. 그곳에서 그녀는 익숙한 슬픔과 함께 덧없고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은 SF 장르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 “재능이란 노력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확실한 보상이 없더라도 계속해나가는 끈기, 바로 그것이 진짜 재능이라는 구절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녀에게도 그런 지속의 힘이 있었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까지 그녀를 살아 있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래의 일본, 주인공은 융합수술을 통해 기계의 몸을 얻는다. 가족은 모두 죽었고, 유일하게 함께했던 연인이자 조카였던 신마저 세상을 떠난다. 규슈의 외딴 산속,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된 그녀는, 과거를 더듬고 기억을 붙잡으며 ‘가족사’를 써 내려간다. 이 책은 그런 주인공의 독백과 기억, 그리고 잊히지 않는 감정들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는 모든 새벽의 앞』은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삶은 희망이나 구원이 아닌, 기억과 외로움으로 채워진 긴 새벽이다. 새벽은 낮이 아닌 밤의 끝이지만, 빛이 오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간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그 어둠을 견디는 이야기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살아남은 자가 느끼는 ‘심심함’이었다. 아무도 곁에 없어 너무 오래 혼자 있다 보니, “심심하다”는 그 고백. 그것은 기계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인간적인 외로움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그 말 한마디에 그녀가 얼마나 긴 시간을 견뎠는지, 얼마나 많은 기억을 안고 살아왔는지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반전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제된 농축액처럼 밀도 높은 서사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처음엔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인물이 후반부에 이르러 알고 보니 끔찍한 인간이었다는 반전도 있고, 반대로 어떤 인물은 의외의 진심을 품고 있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인간 군상의 복잡함, 누군가의 기억에 남겨진 ‘진실’의 형태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느끼게 된다.

이 책은 기술이 아닌 사람을, 미래가 아닌 과거를, 기계가 아닌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여기는 모든 새벽의 앞』은 SF라는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고요하고 쓸쓸하지만, 동시에 날카롭고 섬세한 생의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살아남은 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누구에게도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품은 채,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새벽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다산책방'의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재능이란 노력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무언가에 도전했을 때 확실한 보상을 받는다면 누구나 반드시 도전할 것이다.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도 똑같은 열정과 기력, 동기를 가지고 계속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며, 나는 그것이야말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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