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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평점 :

수전 케이시의 『언더월드』는 물속 깊은 곳, 인간의 감각이 닿을 수 없는 경계 너머를 향한 집요한 질문과 집착, 그리고 경이로움을 담은 책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케이시는 지구 표면 아래 약 9,000미터까지 이어진 심해의 어둠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은 빛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빛을 내는 생명체들, ‘화려한 괴물들’이 살아 숨 쉬는 세계다. 상상할 수 없는 깊이, 상상조차 어려운 아름다움,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위협적인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
저자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물음을 품고 있었다. “심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그곳에 가면 무엇을 보게 될까? 어떤 감정이 들까?” 이 책은 그 질문을 따라 마침내 실제로 심해에 발을 들인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그 현장을 생생히 전한다. 억만장자 탐험가, 해양 과학자, 잠수정 조종사 등과 함께한 여정은 과학보다 더 신비롭고, 소설보다도 극적이다.
심해는 수심 200미터 아래, 햇빛이 닿지 않는 세계를 말한다. 케이시는 박광층, 무광층, 심해저대, 초심해저대처럼 수심에 따라 나뉘는 해양 구조를 소개하며,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들—빛을 내고,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며,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을 소개한다. “바다는 마법으로 들끓고 있다”는 그녀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심해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은 말처럼 들린다.
지구 표면의 65%,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의 95%를 차지하는 바다. 그러나 그중 80퍼센트 이상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대부분이 사실상 ‘알 수 없는’ 세계인 셈이다. 케이시는 이런 현실 앞에서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큰 부분을 그냥 무시해도 괜찮은 걸까?” 그녀의 여정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고,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바다를 탐험하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지켜야 한다는 윤리적 감각이 함께 피어난다.
이 책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다를 향한 인간의 오래된 인식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스웨덴 웁살라에 있는 '카르타 마리나(Carta Marina)'라는 16세기 고지도를 보기 위해 직접 그곳을 찾는다. 이 지도에는 북대서양과 노르웨이 해의 해역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심해(abyss)’라는 단어 자체가 ‘바닥이 없는’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듯, 과거의 심해는 공포와 신비가 덧입혀진 상상의 공간이었다. 괴물들이 배를 집어삼키고, 지옥 같은 바다 밑에서 올라와 사람들을 끌고 내려가는 모습들—그건 과학 이전의 세계, 미지에 대한 인간의 상상이 낳은 결과였다.
케이시는 이 지도를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인식의 지도”라 부른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상상을 덧입히고, 그 공백을 두려움으로 채우는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지금의 우리는 바다를 정말 알고 있는가?”
과거에는 그 속에 괴물이 있다고 믿었고, 지금은 자원이 있다고 믿는다.
심해에는 니켈, 망간, 코발트 같은 희귀 금속이 풍부하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 자원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심해 채굴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채굴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파괴를 동반한다는 데 있다.
수백 년을 살아온 해면 동물, 미세한 균형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들,
그리고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생명들이 단 몇 시간의 작업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언더월드』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경이로움의 기록이 아니라, 분노의 기록이기도 하다. 눈부신 풍경 뒤에 감춰진 탐욕과 파괴의 흔적들을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에 묵직한 경고처럼 새겨진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심해 채굴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바닷속은 단순한 자원 저장고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생명계의 중심이다. 그리고 그 중심은 인간의 이익이 아닌, 생명의 지속 가능성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말이다.
책은 심해를 탐사하기 위한 기술적인 장비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룬다. 유인 잠수정, 무인 탐사정, 자율형 수중 로봇, 그리고 해저 지형을 측정하는 측심학까지. 얼핏 낯설고 전문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기술들조차 케이시의 손을 거치면 생생한 모험담처럼 읽힌다. 그녀는 단순히 기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술 너머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호기심, 책임을 함께 바라본다. 과학은 그녀의 문장에서 경이로움의 언어로 바뀌고, 탐사는 곧 철학이 된다. 케이시는 단순한 과학 저술가가 아니라, 진정한 기록자이자 모험가다.
『언더월드』는 과학책이자 모험기이며, 동시에 환경운동 선언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조용히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은 이 바다를 알고 있는가?”
“이 바다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히 한 가지는 마음에 남는다. 바다는, 인간 세계와 다르지 않게—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절실하게—우리가 지켜내야 할 또 하나의 세계라는 사실.
심해의 신비한 풍경이 궁금하다면, 바다를 사랑하거나 생명의 기원을 따라가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볼 만하다. 『언더월드』는 눈부신 생명들과 대면하게 하면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바다에 대한 경외와 책임, 그리고 오래된 공포와 새로운 희망이 함께 숨 쉬는 이 이야기는 단 한 권의 책이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 추천 대상 독자
- 심해, 자연,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
- 과학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독자
- 자연의 신비로움을 넘어 그 속에 숨겨진 의미와 질문을 탐구하고 싶은 사람
- 기술과 인간의 윤리가 맞물려 있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갈등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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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 활동을 통해
'까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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