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신현철 지음 / 소명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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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한 번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났다”는 말이 나오는 나라,

한 재벌 기업 임원이 수백억 원대 퇴직금을 받았다는 뉴스가 뜨면 월급 통장을 보며 허탈해지는 나라,

특목고–스카이–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에 모두가 몰려 서로를 팔꿈치로 밀어내야만 할 것 같은 이 나라가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ㅡ 이 책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은 이런 현실을 “그냥 요즘 세상이 원래 그렇지!”라며 넘기지 않는다.

개화기 때 만들어진 일본식 번역어부터, 사회진화론이 들어오며 <경쟁, 생존경쟁, 적자생존> 같은 말이 어떻게 왜곡되어 퍼졌는지, 또 그 말들이 어떻게 한국 사회의 무한경쟁·승자독식 분위기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믿어 온 ‘경쟁’과 ‘진화’의 언어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게 만들고, “정말 다윈이 이런 세상을 원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적자생존”, “무한 경쟁”, “진화론적으로 그렇다” 같은 말을 너무 흔하게 쓴다. 이런 말들 뒤에는 늘 다윈의 이름이 따라붙고, 우리는 그 표현들을 깊이 따져보지도 않은 채 “과학이 증명한 진실이겠지”라고 믿어 왔다. 그런데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을 읽고 나면, 그 믿음의 바닥에 번역의 역사, 애매한 이해, 그리고 일본을 거치며 생긴 왜곡이 겹겹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그 불편함을 피하지 말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단어와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따라가 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먼저 개화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우리가 쓰는 서양 사상 관련 한자어들, 이를테면 “자유, 경쟁, 진화” 같은 말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만든 번역어를 일제강점기를 거쳐 그대로 들여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때 우리에겐 서양 사상을 자기 말로 소화할 여유도, 학문적 기반도 없었고,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들은 모양만 보면 익숙한 글자라 거부감도 덜했기 때문에 그냥 가져와 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단어들이 이미 “일본식으로 해석된 서양 사상”을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유’만 해도, 조선의 전통적 감각에서는 “윗사람 간섭 없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일본 개화기에는 생명·신체·재산·사상·종교·결사에 대한 권리, 즉 근대 시민권의 언어로 바뀌어 있었다. 표기는 같지만, 단어 하나에 담긴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이런 번역어들은 서양 사상의 깊이까지 충분히 품지 못한 채, 다소 피상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일본 내부에서도 서양 개념을 자기 언어로 깊게 녹여낼 토대가 부족했고, 그 결과 껍데기만 남은 번역어들이 양산되었다. 한국은 그런 단어들을 다시 가져와 사용하면서, “원래부터 우리 말이었던 것처럼” 쓰게 된다. 저자는 다윈의 “natural selection”이 “자연선택” 혹은 “자연도태”로 옮겨지는 과정도 이 흐름 안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선택’이라는 말은 흔히 “자연이 직접 골라 준다”는 뜻처럼 들리지만, 다윈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환경이 변하는 동안 그 환경에 잘 맞는 특징들이 조금씩 쌓여 가는 과정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 말을 자꾸 “자연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누가 더 나은지 따져서 뽑는 것”처럼 이해한다. 마치 자연이 심사위원이 되어 머리를 쓰며 합격·불합격을 정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다윈이 그린 모습은 전혀 다르다. 책에서 인용된 설명을 빌리면, 자연선택은 “도움이 되는 변이는 보존되고, 해로운 변이는 사라지는 것”이다. 눈 덮인 곳의 흰 새, 히더가 널린 들판의 자주빛 새, 나무껍질과 비슷한 색의 곤충은 환경 덕분에 더 잘 숨을 수 있고, 그만큼 살아남을 확률도 높다. “자연이 흰 새를 골랐다”고 말하고 싶어지지만, 실제로는 환경에 어울리는 특징이 살아남아 다음 세대로 이어진 결과일 뿐이다. 저자는 이런 예를 길게 풀어 설명하며, 자연선택의 ‘자연’은 의지를 가진 주체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어 가는 상태”, ‘선택’은 의식적인 눈과 손이 아니라 “결과로 드러난 차이”를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고 정리한다.

여기서 책은 ‘경쟁’이라는 단어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우리 고전 문헌에서 ‘경쟁(競爭)’이라는 한자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끔 나오는 용례도 시 구절 속 “다투다” 정도의 의미일 뿐, 오늘날처럼 “너 죽고 나 살자”는 느낌은 아니다. 중국 고전에서도 비슷하다. 공자가 활쏘기를 예로 든 “군자의 다툼”은, 서로 예를 갖추고 양보한 뒤 겨루고, 끝나면 함께 술을 나누는 장면이다. 결과보다 과정의 예를 중시하는 다툼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세 사람, 유길준, 후쿠자와 유키치, 가토 히로유키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

이 부분이 책의 백미 중 하나다.

후쿠자와 유키치 : 영국식 자유주의와 정치경제학을 받아들이며 ‘competition’을 번역했다. 그에게 경쟁은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 각자가 능력을 발휘해 발전을 도모하는 힘”에 가깝다. 더 잘하려고 애쓰는 과정이지만, 상대를 짓밟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익이 커지는 방향의 경쟁이다.

유길준 : 일본 유학 시절 후쿠자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경쟁론’과 『서유견문』에서 경쟁을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경쟁도 “문명과 부강함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각자가 분발하는 힘”에 가깝다. 공자의 활쏘기 비유를 인용하며, 예를 잃지 않는 경쟁, 서로를 자극하지만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경쟁을 강조한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이 “유길준이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정작 그가 말한 경쟁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약육강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한다.

반면, 가토 히로유키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그는 영어 struggle을 “경쟁”으로 번역하면서, 동식물 세계의 생존투쟁을 그대로 인간 사회에 가져온다. 그의 글에서 경쟁은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를 압도하고, 결국 열등한 존재는 자손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는 과정”이다. 여기서 “우승열패”,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힘을 얻는다. 경쟁은 더 나아지기 위한 자극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제거하는 자연법칙처럼 묘사된다.

저자는 이 세 사람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경쟁”이라는 같은 단어가 어떻게 자유주의적 자기계발, 그리고 사회진화론적 약육강식, 두 갈래로 찢어져 간 역사를 설명한다. 후쿠자와–유길준의 경쟁은 함께 나아가기 위한 경주에 가깝지만, 가토의 경쟁은 이기지 못하면 사라지는 싸움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 더 강하게 남은 것은 후자의 그림이다.

책의 1부와 2부는 이렇게 언어와 개념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우리가 너무 쉽게 쓰는 “경쟁, 생존경쟁, 적자생존, 진화” 같은 단어의 숨은 역사와 오해를 하나씩 드러낸다. 3부에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인간의 친연관계)』에서 실제로 말하고자 했던 바를 정리한다. 다윈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환경이 변함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이런 변이를 동반한 계승이 오랜 시간 누적되면서 한 종이 다른 종으로, 혹은 한 종이 여러 종으로 갈라져 나간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의 핵심에는 “종, 적응, 환경, 변이, 진화, 변형”이라는 개념들이 놓여 있는데, 저자는 우리가 이 단어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진화론을 다 안다고 착각해 온 것은 아닌지, 조용히 되묻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시선은 더 직접적으로 오늘의 한국 사회를 겨냥한다. 우리 사회는 “팔꿈치 사회”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서로를 밀어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교육은 시민을 기르는 장이라기보다, “경쟁 국가의 병정”을 만드는 체계가 되었고, 특목고–명문대–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는 공감과 연대보다는 “우리는 다르다”는 경계를 굳히는 역할을 한다. 경쟁은 사람들의 내면을 소모시키고, 끝없는 비교 속에서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키우며, 결국 자신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게 만든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다윈에게 질문을 돌린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경쟁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동시에 “생명체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더 중요한 것으로 꼽았다. 한 종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주변 생명들과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망이다. 오늘날 생태학에서 말하는 공생, 상호작용, 생태적 지위의 개념과 이어지는 지점이다. 붉은토끼풀–진홍토끼풀–꿀벌–뒤영벌의 관계처럼, 각 생물은 자신만의 자리를 찾고 서로의 틈을 메우며 공존한다. 다윈이 그려낸 세계는 “누가 누구를 이겼는가”로만 설명되는 세계가 아니라, 서로 기대고 얽힌 관계의 그물망이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결국 이것 같다. “인생과 사회를 오직 경쟁으로만 설명하는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관계와 상호연결의 언어로 다시 생각해 보라.” 다윈이 관찰한 것은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법칙이 아니라, 저마다의 자리에서 환경에 맞춰 살아남으려 애쓰는 다양한 생명의 모습이었다. 그 시선을 우리 삶에 옮겨 보이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살아가기 위해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에게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믿어 온 “경쟁의 상식”을 한 번쯤 의심해도 좋다는 허락을 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의심에서 출발할 때, 비로소 나와 타자를 모두 조금 덜 상처 주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했다.


'소명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후쿠자와는 개인의 자립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기초로 하는 영국 사상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한 반면, 가토는 국가의 개인에 대한 우월성을 지향하는 독일 사상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했다. 그래서 후쿠자와는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지향점으로 삼은 반면, 가토는 훗날 일본 제국주의 헌법 체제에서 볼 수 있는 독일식 입헌정치를 지향점으로 삼았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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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 - 삶의 인사이트가 넘치는 어른 사용법
이지행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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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는 얼핏 보면 그냥 귀엽고 가벼운 힐링 에세이 같지만, 몇 장만 넘기다 보면 슬쩍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나… 너무 오래 ‘어른 역할’만 하느라, 나로 사는 법을 까먹은 건 아닐까?”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회사, 집, 책임, 성실함으로 빽빽하게 채운 하루 뒤에 남는 게 묘한 허무뿐인 사람에게, 저자가 슬쩍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이제는, 조금쯤 잘 놀아도 되지 않겠냐고.”

그렇다고 “퇴사하고 세계 여행을 떠나라”, “비싼 취미 하나쯤 가져라” 같은 뻔한 해답을 내미는 책은 아니다. 거창한 성공 공식을 알려주거나, 현실을 통째로 박차고 나가자고 부추리기보다, 진짜 어른이 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 ‘놀아야 버틸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아주 현실적인 톤으로 들려준다.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도 좀 재미있게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조용히 스며든다.

무엇보다 저자 이지행의 이력 자체가 이 이야기에 힘을 실어 준다. 연봉 1천만 원 받으며 영화사에서 컵라면으로 버티던 시절부터, 더 배고픈 공연판, 하루 종일 게임만 해도 되는 것 같던 게임회사, 그리고 늘 ‘남들 쉴 때 일하는’ 광고회사까지, 그는 오랫동안 성실과 과로의 세계 한가운데에 서 있던 사람이다. 수천 번의 프레젠테이션과 주말 야근 끝에, 단테가 말한 것처럼 인생의 한가운데 어두운 숲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저 언덕 너머에는 편안한 어른의 삶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어른이 되어 보니 개미처럼 일만 하다 개미지옥 속에 빠져 있는 느낌.

“내가 이러려고 어른이 된 건가?”라는 자조 끝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어차피 못 놀아도 후회, 놀아도 후회라면 차라리 놀고 후회하자는 것. 그래서 평생의 짝꿍과 옥탑방 하나를 얻어,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한 번 놀아 보기 위해서’ 출근하는 삶을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부터 이 책이 말하는 ‘놀기’가 흔한 탈출 판타지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나답게 버티고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는 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책은 연극처럼 4막으로 구성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실수투성이 어른의 삶을 어떻게든 나다운 놀이로 바꿔 보려는 마음”이다. 첫 번째 막 ‘어른은 나도 처음이라’에서는 “이러려고 열심히 어른이 된 건가?”, “어차피 인생은 실수투성이다”, 끝없이 비교에 시달리는 마음이 구체적인 장면과 함께 펼쳐진다. 위대한 개츠비처럼 평생 쫓아온 환상이 사실은 허무한 동경에 불과할 수 있다는 깨달음, ‘이 산이 아닙니다’라는 푯말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느낌이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그렇다고 냉소로만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 속 고길동과 지니를 불쌍한 캐릭터로 랭킹하는 장난스러운 리스트 끝에, 소설 『향수』 속 ‘존재의 냄새를 잃어버린 남자’를 소환해 감정과 눈물을 잃어버린 삶의 위험을 짚는다. 어른이란 만남보다 이별이 많은 나이이기에, 슬퍼할 권리와 함께 울어 줄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에서, 이 책이 말하는 “잘 논다”는 것이 결국 더 깊이 느끼고 공감하는 법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후 막에서는 옥탑방 아지트 ‘놀고 있네’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강남 빌딩 숲 사이 작은 옥탑방에 부부가 출근하듯 오르내리며 기타를 치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중요한 건 이곳이 무책임한 도피처가 아니라는 점이다. 회사가 망해 가는 현실, 줄어든 수입, 주변의 시선과 내일에 대한 불안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저자는 더 이상 ‘언젠가의 안온한 삶’을 위해 오늘을 끊임없이 유예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여기서 떠오른 인용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다.

조르바는 오늘만 사는 인간이다. 그는 젊은 고용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목, 나는 말요… 금방 죽을 것처럼 삽니다. 산다는 게 이런 것 아닙니까? 죽기 전에 즐겨야죠! 서둘러야죠! 나는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합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야심 차게 준비하던 탄광 사업이 망한 뒤에도, 그는 좌절하는 대신 마지막으로 질펀하게 춤을 추며 말한다.

“보스, 이게 인생 아뇨! 이럴 땐 춤을 춰야 해요.”

실패하면 좀 어떤가, 잃어버리면 또 어떤가, 주어진 오늘 이 순간을 즐기면 그만이라는 이 태도가, 옥탑방에서 “오늘을 잘 놀아 두자”고 결심하는 이 부부의 마음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모두가 따라 부르는 교향곡 같은 정답의 템포 대신, 각자 자기 리듬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비유가 더 선명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흔을 “두 번째 사춘기”라고 부르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의 부모, 회사의 팀장,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면서 어느 순간 내 이름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저자는 사전에 적힌 ‘어른’의 정의를 되짚으며 어른이란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사람”에 더 가깝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내일은 누구에게나 여전히 한 번도 살아 본 적 없는 첫날일 뿐이라는 말과 함께, 거대한 도약 대신 오늘 삼겹살 한 끼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 완벽한 부모 대신 ‘오늘도 겨우 통과한 어설픈 어른’임을 인정하는 일, 1등이 아니어도 내 리듬으로 당당히 넘버투로 살아보겠다는 작은 결심들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고 말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의 “틀린 음도 괜찮다. 그걸 네 식대로 이어가면 그게 재즈”라는 말을 빌려, 엇박과 실수까지도 나만의 리듬으로 이어갈 때 그것이 곧 ‘나다움’이자 ‘아름다움’이 된다고 정리하는 대목에서는, ‘아름답다’의 ‘아름’이 ‘나’를 뜻한다는 설명과 함께 나답게 살아낸 하루의 가치가 또렷해진다.

읽는 동안 가장 좋았던 건, 이 책이 현실을 통째로 부정하거나 모두에게 퇴사를 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밥벌이와 꿈, 책임과 놀이 사이를 부딪히며 조율해 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어른답게보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오래된 욕구, 그리고 지금 자리에서 조금 덜 죄책감 가지고 쉬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당장 옥탑방까지는 아니어도, 집 한 켠의 작은 공간이나 잠깐의 산책 시간, 혹은 부담 없이 끄적일 수 있는 노트 한 권 같은 ‘나만의 쉬는 자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는,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문득 “이러려고 어른이 된 건가?”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오는 사람에게, 퇴사와 이직, N잡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사람에게, 부모와 직장인, 배우자라는 역할 속에서 ‘나’라는 이름이 흐릿해진 사람에게 특히 건네고 싶다. 정답이 없는 인생이라면, 언젠가 한 번쯤 “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 책은 그 결심 위에 작은 불씨 하나를 더 올려놓는, 유쾌하면서도 은근히 진지한 어른을 위한 삶의 태도 안내서였다.

본 포스팅은 푸른향기 서포터즈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로 직접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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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80세 노인으로 태어난 어느 아이의 이야기다. 사실 F.스콧 피츠제럴드가 1922년에 발표한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이라는 단편소설이 그 원작이다. 소설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남자, 즉 늙은이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한 남자의 삶을 다룬다. 벤자민 버튼은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와 맞담배를 피고, 세상사에 대해 논쟁하다가 나이가 들어 걷지도 못하는 기저귀 찬 갓난아이로 생을 마감한다. 보통의 인생과 반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늙어가면서 삶의 경험을 쌓고 성숙해진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고 소설은 말한다. 어른으로 태어났다고 한들,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로 태어났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는 거다. 원래 인생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이니까 말이다. 세상을 살아보았다 한들, 내일은 또다시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첫날일 뿐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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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툰 2 - 경제 고전툰 2
강일우.김경윤.송원석 지음 / 펜타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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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재미와 정보를 주는 영상들을 떠올리며 책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엔 이타적인 콘텐츠 같지만,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더 많은 구독자와 광고 수익, 인지도를 얻기 위해 영상을 만든다. 자기 이익을 좇아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웃음과 지식을 나눠 준다는 점에서, 이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하는 좋은 비유다. 사람들은 각자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만, 경쟁과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는 그 이기심이 전체의 부와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스미스의 핵심 주장이다.

이 책은 이 추상적인 개념을, 스미스의 삶을 따라가며 구체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자란 소년 스미스는 책을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동시에 항구에서 석탄을 나르고 흥정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왜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할까,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를 궁금해했다. 글래스고 대학에서 계몽주의 철학자 허치슨에게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도덕적 존재”라는 사상을 배우며, 인간이 과연 이기적인가 도덕적인가라는 평생의 질문을 품게 된다. 옥스퍼드에서 경쟁 없는 교육 현장을 보며 경쟁이 사라지면 사람은 게을러진다는 통찰도 얻는다.

교수가 된 뒤 급격히 변하는 글래스고의 무역과 산업 현장을 직접 목격한 스미스는, 인간 노동과 생산, 무역이 만들어 내는 부의 메커니즘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도덕감정론’으로 공감 능력을 가진 인간을 그려낸 그는, 이후 유럽 여행에서 계몽주의자와 중농주의자들을 만나 “부는 농업만이 아니라 모든 생산적인 노동에서 나온다”는 확신을 굳힌다. 새벽 다섯 시 산책과 집필을 반복한 끝에 완성한 『국부론』에서 그는 국가의 부가 금과 은이 아니라 노동 생산성에서 나오며,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질 때 무역은 상호 이익이 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행동이 시장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조정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국방·사법·도로·항만 같은 공공재는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보며, 시장을 만능으로 신격화하지도 않는다.

책의 다음 장면에서는 ‘지혜의 광장’이라는 가상의 북토크가 펼쳐진다. 진행자 아고라가 애덤 스미스, 케인스, 리카도를 불러 “시장은 정말 만능인가?”를 두고 토론을 연다. 스미스는 자신이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무조건적인 해결사가 아니며, 공정한 경쟁과 충분한 정보, 올바른 제도가 있을 때에야 시장이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역할 역시 국방과 사법, 공공사업 등에서 분명히 인정했음을 환기한다. 케인스는 대공황과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시장의 자율 조정만 기다리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파국을 맞게 된다고 반박하며, 정부의 적극적 재정 지출과 공공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리카도는 장기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에 기반한 경쟁이 전체 부를 극대화한다며, 과도한 보호와 보조금이 오히려 비효율을 낳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 사람의 대화를 통해 독자는 ‘시장 vs 정부’라는 흑백 구도가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과 균형을 생각하게 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스미스의 낙관을 뚫고 나온 다른 목소리들도 차례로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돈이 돈을 낳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가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파헤치며, 자본주의의 축적 메커니즘과 착취 구조를 비판한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 소유의 불평등과 불로소득이 진보 속에서 오히려 빈곤을 심화시키는 핵심 원인이라고 보고, 토지에서 생기는 이익을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명품과 SNS 과시, 유행 쫓기를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으로 분석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비이성적 욕망이 어떻게 계급과 모방을 통해 재생산되는지 보여준다. 조선의 박제가는 절약만을 미덕으로 삼는 풍조를 비판하며, 합리적 소비와 활발한 교류가 생산을 일으키고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책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출발해, 케인스와 리카도, 마르크스·헨리 조지·베블런·박제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사상을 교차시킨다. 그 과정에서 시장과 국가, 노동과 자본, 소비와 욕망, 토지와 불평등 같은 문제들이 한 권의 ‘경제 고전툰’ 안에서 입체적으로 엮인다. 결국 독자에게 남는 질문은 단순히 시장에 맡길 것인가, 국가가 개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누구를 위한 경제를 만들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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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재미와 정보를 주는 영상들을 떠올리며 책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엔 이타적인 콘텐츠 같지만,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더 많은 구독자와 광고 수익, 인지도를 얻기 위해 영상을 만든다. 자기 이익을 좇아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웃음과 지식을 나눠 준다는 점에서, 이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하는 좋은 비유다. 사람들은 각자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만, 경쟁과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는 그 이기심이 전체의 부와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스미스의 핵심 주장이다.

이 책은 이 추상적인 개념을, 스미스의 삶을 따라가며 구체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자란 소년 스미스는 책을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동시에 항구에서 석탄을 나르고 흥정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왜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할까,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를 궁금해했다. 글래스고 대학에서 계몽주의 철학자 허치슨에게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도덕적 존재”라는 사상을 배우며, 인간이 과연 이기적인가 도덕적인가라는 평생의 질문을 품게 된다. 옥스퍼드에서 경쟁 없는 교육 현장을 보며 경쟁이 사라지면 사람은 게을러진다는 통찰도 얻는다.

교수가 된 뒤 급격히 변하는 글래스고의 무역과 산업 현장을 직접 목격한 스미스는, 인간 노동과 생산, 무역이 만들어 내는 부의 메커니즘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도덕감정론’으로 공감 능력을 가진 인간을 그려낸 그는, 이후 유럽 여행에서 계몽주의자와 중농주의자들을 만나 “부는 농업만이 아니라 모든 생산적인 노동에서 나온다”는 확신을 굳힌다. 새벽 다섯 시 산책과 집필을 반복한 끝에 완성한 『국부론』에서 그는 국가의 부가 금과 은이 아니라 노동 생산성에서 나오며,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질 때 무역은 상호 이익이 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행동이 시장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조정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국방·사법·도로·항만 같은 공공재는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보며, 시장을 만능으로 신격화하지도 않는다.

책의 다음 장면에서는 ‘지혜의 광장’이라는 가상의 북토크가 펼쳐진다. 진행자 아고라가 애덤 스미스, 케인스, 리카도를 불러 “시장은 정말 만능인가?”를 두고 토론을 연다. 스미스는 자신이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무조건적인 해결사가 아니며, 공정한 경쟁과 충분한 정보, 올바른 제도가 있을 때에야 시장이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역할 역시 국방과 사법, 공공사업 등에서 분명히 인정했음을 환기한다. 케인스는 대공황과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시장의 자율 조정만 기다리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파국을 맞게 된다고 반박하며, 정부의 적극적 재정 지출과 공공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리카도는 장기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에 기반한 경쟁이 전체 부를 극대화한다며, 과도한 보호와 보조금이 오히려 비효율을 낳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 사람의 대화를 통해 독자는 ‘시장 vs 정부’라는 흑백 구도가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과 균형을 생각하게 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스미스의 낙관을 뚫고 나온 다른 목소리들도 차례로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돈이 돈을 낳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가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파헤치며, 자본주의의 축적 메커니즘과 착취 구조를 비판한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 소유의 불평등과 불로소득이 진보 속에서 오히려 빈곤을 심화시키는 핵심 원인이라고 보고, 토지에서 생기는 이익을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명품과 SNS 과시, 유행 쫓기를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으로 분석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비이성적 욕망이 어떻게 계급과 모방을 통해 재생산되는지 보여준다. 조선의 박제가는 절약만을 미덕으로 삼는 풍조를 비판하며, 합리적 소비와 활발한 교류가 생산을 일으키고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책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출발해, 케인스와 리카도, 마르크스·헨리 조지·베블런·박제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사상을 교차시킨다. 그 과정에서 시장과 국가, 노동과 자본, 소비와 욕망, 토지와 불평등 같은 문제들이 한 권의 ‘경제 고전툰’ 안에서 입체적으로 엮인다. 결국 독자에게 남는 질문은 단순히 시장에 맡길 것인가, 국가가 개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누구를 위한 경제를 만들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다.




바로 이것이 애덤 스미스의 핵심 주장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좇지만, 경쟁과 교환이 이뤄지는 시장에서는 그 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이런 자율적 조정의 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체계적으로 펼친 ’국부론’은 한 괴짜 교수의 날카로운 관찰력 18세기 스코틀랜드의 급격한 경제 변화, 그리고 유럽 전역을 훱쓴 계몽주의 사상이 뒤섞여 빚어낸 산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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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툰 1 - 정치 고전툰 1
강일우 외 지음 / 펜타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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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툰 1: 정치』는 제목만 보면 청소년용 교양 만화처럼 가볍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정치철학 입문서 + 토론 교재 + 시대 읽기 안내서가 한 권에 들어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큰 장점은 한 고전을 네 가지 층으로 나눠 보여주는 구성이다.

먼저 ① 히스토리에서는 고전이 쓰인 시대와 저자의 삶을 함께 보여준다. 플라톤을 예로 들면, 페리클레스 시대가 저물고 전쟁과 혼란 속에서 민주정이 타락해 가는 아테네의 분위기,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플라톤에게 어떤 충격이었는지를 차근차근 짚어 준다. 그래서 『국가』가 “철학자의 어려운 책”이 아니라, 무너지는 조국 앞에서 ‘정의로운 나라는 가능한가?’를 묻는 한 인간의 절규로 다가온다.

② 다이제스트는 그 고전의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파트다. 정의란 무엇인지, 이상적인 국가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왜 플라톤이 철학자 왕을 주장했는지, 동굴의 비유가 어떤 뜻인지 등을 한 번에 정리해 주어, 원전의 숲을 보기 쉽게 “지도”처럼 펼쳐 준다.

③ 고전툰은 이 내용을 만화 형식으로 다시 풀어낸다. 이미 한 번 읽은 내용을 또 보는데, 장면과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개념이 이미지와 함께 기억에 남는다. 철학 이야기가 머리로만 읽는 텍스트가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처럼 느껴져,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훨씬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백미는 ④ ‘북토크 – 지혜의 광장’이다. 여기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뿐 아니라 밀, 홉스, 롤스 같은 사상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대를 초월한 토론을 벌인다. 중요한 건, 이 대화들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각 사상가의 실제 저작과 맥락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이 북토크가 특히 좋았던 이유는, 고전의 논쟁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던져 준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 엘리트인가, 민중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플라톤은 전문가의 정치, 밀은 개인의 자유, 홉스는 질서를 강조하며 맞선다.

- 능력주의와 교육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한국 사회의 입시 현실을 예로 들며, “각자의 재능에 맞는 교육”과 “누가 재능을 판단할 것인가”라는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게 한다.

-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방역 정책, AI·빅데이터·가짜뉴스 문제를 놓고는 자유와 안전, 기술과 민주주의의 균형을 세 사상가의 언어로 설명해 주어 훨씬 이해가 쉬웠다.

이 책이 좋은 점은, 플라톤 『국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한비자 『한비자』, 마키아벨리 『군주론』, 루소 『사회계약론』까지 함께 다룬다는 것이다. 각 장의 도입부에서 헬조선, 법이 부자에게는 솜방망이·약자에게는 쇠망치가 되는 현실, 분열된 나라와 외세 의존, 자유로운 줄 알았더니 점점 노예처럼 느껴지는 삶 등 아주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고전 속 고민이 자연스럽게 오늘의 문제와 연결된다.

결국 『고전툰 1: 정치』는 다섯 명의 사상가의 삶과 고민만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 이 고전들을 연결고리 삼아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같은 주제를 두고 고민했던 여러 사상가들을 한 번에 만나게 하는 책이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정치 지식을 외웠다가 아니라,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을 조금씩 세워 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고전을 처음 만나는 청소년에게도, 정치철학 기본기를 다시 다지고 싶은 성인에게도, 고전의 지혜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충분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펜타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채손독 인스타 @chae_seongmo




정의로운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영혼을 올바르게 다스릴 때, 비로소 정의로운 국가가 가능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철학자가 되어,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진정한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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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색
추설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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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색』은 표지부터 내용까지, 말 그대로 “감정의 색”으로 가득한 로맨스 소설이다.

한국 남자 현서와 일본 여자 유카리가 일본의 어느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단 이틀 동안 서로의 세계를 바꾸어 버리는 이야기. 줄거리만 들으면 흔한 여행 로맨스처럼 들리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소설의 핵심이 사랑의 결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색을 잃고 다시 색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추설 작가는 1997년 9월생으로, 무용을 거쳐 패션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감각적인 작업을 이어온 사람이다.

현재는 콘텐츠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SNS 디자인, 그래픽 작업, 앨범 커버 제작 등 시각적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세상에 없던 색』에서 ‘색·공간·움직임’은 그저 장면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인물의 마음을 설명해 주는 또 다른 언어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현서는 힘든 일이 닥치면 그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마치 완성된 그림 위에 검은 물감을 통째로 부어 버리듯 자신의 감정을 한꺼번에 가려 버리는 사람이다. 상처받은 마음도, 실패한 순간도, 관계의 틈도 차분히 들여다보기보다 애써 없는 일처럼 덮어두며 버텨 온 인물이다.

반대로 유카리는 하얀 종이 위에 글을 한 줄씩 남기며, 어떻게든 지금의 자신을 기록해 두려고 애쓴다. 잊히지 않기 위해, 무너진 마음의 모양을 최소한 문장으로라도 붙들어 보려는 사람인 것이다.

이 서로 다른 태도는 두 사람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대비가 된다. 같은 상처를 안고도 정반대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두 사람이 만나 만들어 내는 감정의 대비는, 한 화면 위에서 전혀 다른 두 색이 섞이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톤을 만들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소설의 시작에서 현서는 버거운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일본행 비행기부터 끊어 버린다.

연인과의 이별 때문도, 대단한 목표가 있어서도 아니다.

한국에서의 삶이 더는 손쓸 수 없을 만큼 뒤엉켜 버렸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힘든데도, 계속 여기 있어야 하나?”라는 질문만 남은 채,

그는 그 엉망진창이라는 감정 하나를 들고 도망치듯 떠난다.

뭐라도 바꾸지 않으면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아서, 충분히 준비하지도 못한 채 비행기에 오른다.

유카리는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차분한 일본 여성처럼 보이지만, 속은 오래된 상처와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두 사람이 낯선 술집에서 우연히 부딪히듯 만나, 번역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툰 대화를 시작한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건, 보통 로맨스에서 기대하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고백 대신,

번역기를 타고 오가는 어색한 문장과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만 조용히 오간다는 점이다.

화려한 말을 주고받기보다는, “지금 나는 어디가 아픈지”, “어디까지 버텨 왔는지” 같은 진짜 속마음이 서툰 문장으로 흘러나온다. 언어가 완벽히 통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군더더기 말은 줄고, 남겨진 표정과 몸짓, 침묵의 온도가 두 사람의 색을 대신한다.

읽다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과정”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변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작품 속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금 사회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세상…

내용도 없이 결말만 있는 책은 없잖아요.

책은 결국 과정으로 이루어진 거니까요."

이 대목에서 저자가 겨냥하는 건 단순히 연애담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 자체다.

결과만 남기고 과정을 지워 버리려는 태도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저자는 현서와 유카리의 관계를 통해 천천히 보여 준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번에 ‘연인’이 되지 않는다. 불신과 도망, 두려움과 망설임이 계속해서 끼어든다.

하지만 바로 그 흔들리고 엇갈리는 순간들, 실패처럼 느껴지는 선택들까지도 모두 모여 두 사람만의 색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이 소설이 말하는 사랑은, 완성된 결말이라기보다 불완전한 과정이 겹겹이 쌓여 남긴 흔적에 가깝다.

도피와 불신을 다루는 방식도 솔직하다. 현서는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도망치는 사람이다. 또 상처받을까 봐서라기보다, 이미 충분히 망가졌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는 버틸 자신이 없어서 뒷걸음치는 인물로 보인다.

그에게 일본은 누군가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장소라기보다, 잠깐이라도 숨을 수 있는 어둑한 공간에 가깝다.

반면 유카리는 두렵지만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이다.

이미 아픈 기억을 겪었음에도, 그 기억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한 사람은 더 짙은 어둠 쪽으로 몸을 숨기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흰 바탕을 남겨 두려 한다.

이 대비를 가장 압축해서 보여 주는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검은색을 그렸고, 그녀는 흰 바탕 위에 글을 새겼다.

나는 덮어버렸고, 그녀는 기록했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 로맨스가 ‘국경을 넘는 사랑’이라는 설정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 단 이틀의 만남, 번역기라는 장치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저자는 그쪽으로 과하게 치우치지 않는다. 대신 언어와 문화의 간극을, 잘못 번역된 문장 하나를 붙들고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나, 서로의 말투와 표현 습관을 천천히 배워 가는 과정 속에 담아낸다.

낯선 언어 덕분에 오히려 더 솔직해지는 순간들, 어딘가 잘못 이해했지만 그 오해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이 이 소설의 큰 매력이다. 읽다 보면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와 한국 소설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이 동시에 느껴져, 두 나라의 감성이 절묘하게 섞인 작품 같다는 인상도 남는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이 소설이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는 문장을 너무 쉬운 운명론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과정에는 분명 우연이 있지만, 그 우연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기적이라기보다, 서로를 잊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꾸역꾸역 버텨 왔기 때문에 가능해진 재회처럼 느껴진다.

단 이틀이었지만, 그 시간은 두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다시 마주했을 때, 그들은 같은 사람인 동시에 이미 다른 색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다.

사랑이 둘의 인생을 통째로 구원했다기보다, 각자가 자기 안의 어둠을 인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색을 조금씩 얹어 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무용과 디자인을 해 오던 사람이 처음으로 온전히 하나의 세계를 소설로 구현해 보고 싶었을 때,

그 결과물이 이런 형태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인물의 심리 변화가 춤의 동선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페이지 위에 깔리는 색감이 조금씩 달라진다.

목차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무채색’에서 시작해, 점점 더 짙고 따뜻한 색들이 등장한다.

책을 읽고 나면, “이건 그냥 일본 배경 로맨스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팔레트를 다시 섞어 보는 이야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남는다.

읽는 내내 마음에 오래 남았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사랑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피난처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와 두려움을 솔직히 바라볼 때 맺어지는 불완전한 약속이라는 것!

이 소설의 사랑은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그림 같은 결말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쉽게 다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믿어 보기로 했다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세상에 없던 색』은 단순히 일본을 배경으로 한 설레는 로맨스를 기대하고 읽어도 좋고,

결과 중심적인 세상에서 조금 비켜난 과정의 이야기를 찾는 마음으로 읽어도 좋은 소설이다.

무채색처럼 느껴지던 하루에 다른 색을 살짝 섞어 보고 싶은 날,

조용한 밤에 천천히 읽기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모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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