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한국어판 발매 20주년 기념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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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강제 수용소라는 극한의 현실을 기록하면서도, 인간이 그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책이다. 영어판만 73쇄에 이르렀고, 19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어판만 250만 부 이상이 팔린 기록은 이 책이 전 세계 독자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를 증명한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에서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담담하고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고, 존엄과 자유가 박탈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프랭클은 작은 친절과 연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기억, 혹은 자연의 한 장면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지탱하는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카포라는 죄수 관리자들의 잔혹함과 배신이 절망을 더 깊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삶의 의미를 붙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이 물음의 답이 제2부 「로고테라피란 무엇인가」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로고테라피는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학파와 달리 인간을 쾌락(프로이트의 ‘쾌락의 법칙’)이나 권력(아들러의 ‘우월 욕구’)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프랭클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본다. 특히 그는 인간이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발생하는 ‘누제닉 노이로제(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정신적 공허와 절망으로 인한 신경증)’를 주목했다. 이 신경증은 단순한 심리적 갈등이 아니라 실존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프랭클이 강조하는 로고테라피의 특징은 몇 가지다.

첫째,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보다 덜 회고적이고 덜 자기 성찰적이다.

대신 환자가 미래에 성취해야 할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나 ‘피드백 기제(feedback machanism)’를 약화시켜 환자가 자기 집중에 빠지고 증상이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셋째, 환자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데 초점을 두며, 이를 통해 환자가 정신적 역량을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로고스(Logos)’가 그리스어로 ‘의미’를 뜻하듯,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그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근본적인 동력으로 본다.

프랭클은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단순한 본능의 ‘이차적 합리화(자신의 본능적 충동이나 행동을 그럴듯한 이유로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과정)’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이며,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해야 하고 그 사람만이 실현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고, 때로는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다. 프랑스와 빈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고 대답한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자신의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을 우선순위로 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프랭클은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될 때 ‘실존적 좌절’이 생긴다고 본다.

실존적 좌절은 병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이며,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잘못 해석하면 의사는 환자의 실존적 절망감을 단순히 신경 안정제로 잠재우려 하게 된다. 프랭클은 이를 경계하며, 의사의 역할은 환자가 실존적 위기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자신의 실존 안에 숨겨진 ‘로고스’, 즉 삶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도록 이끄는 과정을 과제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과 닮았지만도 다르다.

무의식 속 본능적 요소만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앞으로 성취해야 할 잠재적 의미까지도 고려한다. 인간을 단순히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존재, 사회와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로 보지 않고, 의미를 성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정신 분석과 구별된다.

프랭클은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마음에 평온보다는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긴장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다. 이미 성취한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역동성이다. 그는 이를 건축의 아치에 비유한다. 아치를 튼튼히 하기 위해 건축가는 하중을 더 얹는다.

마찬가지로 심리 치료사는 환자가 삶의 의미를 찾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긴장을 유도해야 한다.

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이러한 메시지를 현재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1983년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발표한 강연을 바탕으로, 프랭클은 인간 존재의 세 가지 불가피한 조건―고통, 죄,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여전히 삶에 “예스(Yes)”라고 말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비극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껴안으면서도 다시 삶을 긍정하는 힘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낙관이란 현실을 가볍게 덮는 긍정이 아니라, 고통과 상처를 껴안은 채로 나아가는 용기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책의 1984년 서문에 담긴 프랭클의 조언은 지금도 울림이 크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행복과 마찬가지로 성공은 목표로 삼는 순간 멀어진다.

그것은 무관심할 때, 어느 날 불현듯 다가오는 것이다.”

그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우리가 성공을 집착처럼 좇는 습관이 오히려 삶을 더 빈곤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할 때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였던 고든 W. 올포트의 추천사는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적 동기와 불안에 초점을 맞춘 반면, 프랭클은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누제닉 노이로제(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정신적 공허와 절망으로 인한 신경증)’를 주목했다고 말한다. 프랭클은 프로이트의 업적을 무시하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학파를 세웠으며, 다른 실존적 치료법과 대립하기보다 함께 논의하며 발전시켜 나갔다. 올포트는 이 책이 단순한 체험담을 넘어, 인간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지막 자유, 곧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를 지닌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준다고 평하며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전하는 핵심은,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없지만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자유는 언제나 남아 있다. 로고테라피는 그 자유를 현실 속에서 실천하도록 돕는 철학이자 치료법이며, “비극 속에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자유는 바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삶의 안내서가 된다. 절망의 순간에도 의미를 붙잡을 수 있고, 그 순간 삶은 다시 빛을 발한다.

바로 이것이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세대를 넘어 읽히는 이유이자,

내가 이 책을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권하고 싶은 이유다.

'청아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정신 분석과 비교해 볼 때 로고테라피가 덜 회고적이고, 덜 자기 성찰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로고테라피는 미래, 즉 환자가 미래에 성취해야 할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실제로 로고테라피는 의미에 중점을 둔 정신 치료법이다). 동시에 로고테라피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 formation)’와 ’피드백 기제(feedback mechanism)’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 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 집중 증상아 발생하고 깊어지는 것을 막는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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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 - 김익한 교수의 읽고 쓰는 실천 인문학
김익한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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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서문에 적힌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어른이 되면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면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현실은 규범과 책임, 끝없는 경쟁과 성과의 굴레가 나를 가뒀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착하게 살아가며 스스로를 억누르는 어른들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고 싶었다는 고백이 더 진하게 와닿았다.

책은 ‘탐색–변화–성장’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탐색의 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자유를 배우지 못한 채 성장했다고 지적한다.

학교는 규율과 통제를 가르쳤고, 사회는 성과와 경쟁으로 우리를 몰아세웠다. “왜?”라는 질문은 문제적 태도로 간주되고, “다르게 하고 싶다”는 욕망은 묵살당했다. 개성보다 조화, 비판보다 순응을 배워온 우리는 자유를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자유는 관념으로만 존재하고 실제 삶에서는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게 되었다.

변화의 장에서는 자유를 가로막는 사회 구조와 권력의 실체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저자가 인용한 미셸 푸코의 이론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푸코는 현대 사회를 ‘규율사회’라 불렀다. 과거의 권력이 법과 강제력으로 사람을 통제했다면, 근대 이후의 권력은 제도와 규칙 속에 스며들어 우리를 훈련하고 조율했다. 감시와 비교, 평가라는 장치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규제하며 내면화된 복종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철학자 한병철의 분석이 이어진다. 푸코가 규율사회의 권력과 통제를 말했다면, 한병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을 ‘성과사회’로 진단한다. 더 이상 외부의 감시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를 감독하고 채찍질하며, “더 노력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구호 아래 자발적으로 자신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듯 보이는 자기 동기는 결국 피로와 번아웃을 낳는다. 한병철이 말했듯, 이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 착취”일 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옭아매는 감옥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성과사회의 문제를 넘어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철학자도 책 속에 등장한다.

바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이다. 그는 소득이나 실력이 삶의 질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역량(capability)이 진정한 자유의 척도라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이 빵이 없어서 굶주리는 것과, 빵이 있음에도 금식을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할 자유’다.” 이 비유는 자유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 주었다. 단순히 돈이나 성과가 아니라, 내 삶의 선택지를 얼마나 확보하고 실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역량이라는 메시지가 크게 다가왔다.

마사 누스바움이 이를 확장해 제시한 ‘10가지 인간의 필수 역량’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경제적 풍요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특히 공감한 부분은 “무기력감은 자기결정감의 상실에서 비롯된다”는 구절이었다. 자유란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매 순간 나의 일상을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해야 할 일들에 파묻혀 자기 목소리를 잊고 살아간다. 결국 삶의 주인이 아닌 손님처럼, 외부의 요구에 반응만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던져야 할 질문이 바로 “나는 지금 누구의 선택에 따라 살고 있는가?”라는 문장이었다. 이 물음은 책장을 덮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성장의 장에서는 이 모든 사유가 ‘기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자신을 옭아매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기록이었다고 고백한다. 아주 사소한 메모 하나, 선언 하나가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많은 SNS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나도 읽으며 줄을 긋고 짧은 문장을 메모하는 과정 자체가 자유를 연습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유는 거창한 투쟁이나 혁명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작은 실천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이 책이 알려주었다.

저자는 기록을 통해 파편적인 경험과 상처가 다시 하나로 묶이고, 무력감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가 발견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지나간 일을 적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나는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오늘의 선택은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막연했던 감정과 사건은 기록 속에서 탐구의 대상으로 구체화되고, 축적된 기록은 곧 삶의 숨은 규칙과 의미를 드러내는 의식의 자산이 된다.

이 과정에서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적 시간’ 개념이 소환된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선형적으로 작동한다. 현재의 경험이 과거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그렇게 재해석된 과거는 또 다른 방식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연다. 어린 시절 실패가 무력감으로 남았더라도, 성인이 되어 그것을 배움으로 재구성한다면 상처는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바뀐다. 기록은 바로 이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실천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또한 기록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그는 방황과 갈등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며 내면의 질서를 다시 세웠다. 글쓰기는 상처를 객관화하고 재해석하는 자기 치유의 과정이 되었고, 이는 ‘자기 서사화(self-narration)’라는 이름으로 자아를 새롭게 구성하는 행위였다. 저자 역시 두 차례 자기 역사 쓰기를 경험했고, 매년 한 해를 정리하는 ‘연사(年史)’를 적으며 잊고 있던 감사와 진짜 바람을 되살려냈다고 한다. 기록은 결국 “누가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내가 내 삶의 저자가 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이 책 『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은, 자유는 먼 곳에 있는 이상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권력과 사회 구조를 성찰하고, 나 자신을 억누르는 내적 감옥을 깨며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기록하는 작은 실천 속에서 살아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란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며 사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힘, 곧 역량을 키워가는 여정이다.

📚 이 책을 읽으면 좋을 사람들

- 바쁘게 살아가지만 문득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잊어버린 어른

- 성과와 경쟁에 지쳐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싶은 직장인

- 철학이 멀게만 느껴졌지만 삶 속에서 자유를 찾고 싶은 사람

- 기록과 글쓰기를 통해 자기 성찰을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


'김영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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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며, 행복한 삶을 향한 가장 본질적인 길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더 미루다 보면, 내 인생은 타인의 것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삶, 의미 없이 휘둘리는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자.
본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누가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책임도 불안도 커지겠지만, 동시에 창조적인 자유의 여정을 시작할 수도 있다. 나를 가두는 감옥은 어쩌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감옥을 깨기 위한 첫걸음은 아주 사소하다. 메모 하나, 생각 하나, 선언 하나,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이 한 문장이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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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따위 모르고 살고 싶었겠지만 - 물리 덕후가 들려주는 십대가 꼭 알아야 할 일상 속 물리 199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 엮음, 황선영 옮김, 나재흠 감수 / 뜨인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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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따위 모르고 살고 싶었겠지만』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 책이 물리학을 단순한 공식이나 문제 풀이가 아니라 모험 이야기처럼 풀어낸다는 점이었다. 실험을 반복하다 지쳐버린 물리 군이 어느 날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림이 새겨진 맨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낯선 세계 ‘물리도’에 도착한 그는 말하는 고양이 수냥이를 만나게 된다. 물리 군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서 주어지는 미션들을 하나씩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물리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책은 집, 음식, 학교, 전자제품, 빛, 날씨, 우주, 연구소라는 여덟 가지 테마로 나뉘어 있다. 각 영역은 우리가 살아가며 흔히 궁금해했지만 대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들로 채워져 있다. 양치질 후 치약거품이 물속에서 사방으로 퍼지는 이유, 거품망을 쓰면 비누 거품이 풍성해지는 까닭, 햇볕에 말린 이불이 왜 푹신해지는지, 대형마트의 무빙워크가 어떻게 카트를 붙잡아 주는지 같은 질문들이 등장한다. 답변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장면과 연결되어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치약거품이 퍼지는 원리를 설명하면서 계면활성제의 구조와 표면장력의 변화를 함께 알려주고, 이불이 푹신해지는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자외선이 세균을 없애고 섬유 속 공기량을 늘려주는 원리까지 덧붙인다.

읽다 보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깨달음이 이어진다. 무빙워크의 홈과 카트 바퀴 외륜이 만들어내는 마찰력이라든가, 거품망 속 촘촘한 구멍이 공기를 비눗물에 잘 스며들게 한다는 원리처럼, 익숙한 풍경 뒤에 숨겨진 과학이 차례차례 드러난다. 이밖에도 “높은 층에 살수록 모기가 덜 올까?”, “인형 뽑기 기계에서 인형을 쉽게 뽑는 방법이 있을까?” 같은 호기심 가득한 질문들도 다뤄지는데, 단순히 생활 팁이 아니라 물리적 원리로 접근해 답을 들려주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미션 수행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물리 군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질문이나 고민을 듣고 그것에 과학적으로 답해야 한다. 그 답변이 곧 미션의 해결이고, 미션이 완료될 때마다 “미션 완료! 다음 단계로 출발!”이라는 문구와 함께 다음 여정이 열린다. 독자 역시 물리 군과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풀어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셈이다.

책을 덮고 나면 결국 이 모든 모험이 단순한 이야기 놀이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매일 마주치는 현상들을 과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이라는 걸 알게 된다. “혹시 내가 무슨 사명을 가지고 이 세계로 넘어온 게 아닐까?”라고 자문하는 물리 군의 말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작은 사명을 가진 존재인지 모른다.

『물리 따위 모르고 살고 싶었겠지만』은 물리를 어렵게만 느껴온 사람들에게는 생활 속 호기심으로 들어가는 친근한 길을, 이미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잊고 있던 탐구심을 다시 불러내는 자극을 준다.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도 좋고, 청소년에게는 배움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 주며, 어른에게는 일상에서 과학을 발견하는 새로운 눈을 열어 준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과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곁에 있고, 질문하는 순간 세상은 달라 보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양치질, 햇볕에 널린 이불, 무빙워크 같은 작은 장면 하나하나가 과학적 탐구의 출발점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뜨인돌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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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형마트의 무빙워크가 카트를 고정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관찰력이 좋은 친구들은 분명 무빙워크 바닥에 줄줄이 파여 있는 오목한 홈을 발견했을 거예요. 카트를 끌고 무빙워크를 타면 카트의 바퀴가 홈에 끼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이때 카트가 붙잡힌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도 그렇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카트의 바퀴는 바깥쪽 바퀴인 고무 재질의 외륜과 안쪽 바퀴인 내륜, 브레이크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외륜의 폭은 무빙워크 표면에 있는 홈의 폭과 비슷하지요. 카트가 무빙워크에 오르면 외륜이 눌리면서 홈에 끼워지고, 바퀴의 측면과 홈의 측면에 마찰력이 생겨서 바퀴가 앞이나 뒤로 쏠리지 않는 거예요. 다만 외륜이 심하게 마모되면 마찰력이 줄어들거나 생기지 않아서 바퀴가 홈에 완전히 끼어도 카트가 움직일 수 있어요. 브레이크 블록은 이런 상황을 방지합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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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다음 집
상현 지음 / 고래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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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현 작가의 그림책 『집, 다음 집』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며 느낀 건,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읽는 동안 오래전에 살았던 집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집, 크기가 작아 답답했지만 자유의 설렘이 깃들었던 첫 자취방,

잠시 머물다 간 임대 집까지.

이 책에서 특히 “아담한 방의 첫인상은 작은 큐브 같았다. 당연히 불편함 투성이었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예전에 살던 작은 원룸이 눈앞에 그려졌다. 공간은 비좁았고 불편했지만, 혼자서 살아간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던 곳이라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책 속에서 알바 알토의 ‘마이레아 주택’ 이야기를 만났을 때는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마이레아(Marie’s)는 집주인 아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자, 핀란드어로 ‘사랑스럽다’는 뜻이라고 한다.“사랑스러운 집이란 무엇일까? 머물던 집을 사랑스럽게 여겨본 적이 있었을까?”

돌이켜보니 내게도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집이 있었다.

멋진 설계나 근사한 구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함께했던 사람들과 품어낸 시간이 집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책은 집에 머물지 않고 동네로까지 이야기를 확장한다.

“굽이진 골목은 복도 같은, 나무 아래 벤치는 안방 같은,

조용한 서점들은 서재 같은, 곳곳 계절을 펼쳐낸 풍경은 경계가 사라진 무한한 창문 같은”이라는

표현은 주변 동네를 바라보며 머물고 싶은 집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동네 속에서 발견하는 시각이 재미있다.

또 한 구절이 오래 와닿았다.

“좋은 집이란 어쩌면 다음 집을 꿈꾸고 상상하게 만드는 집이 아닐까 싶었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현재가 아니라, 언제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발판이다.

이사라는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삶의 전환과 미래의 꿈까지 포함하는 말처럼 들렸다.

책의 제목 ‘집, 다음 집’이 더욱 깊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책 속에는 사소한 일상도 따뜻하게 포착돼 있다.

저자는 집에서 읽기 좋은 곳을 정하기 어렵다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벽에 기대기도 하고, 바닥에 눕기도 하고, 창가에 걸터앉기도 한다. 부산스럽지만 “흔들리는 문장들 사이에서 균형감을 찾는 느낌이 좋아서” 멈춰 선다고 말한다. 그 고백들이 나 또한 책을 읽다가 자리를 옮겨가며 시간을 보내던 모습이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났던 장면이기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점이 다시 공간이 되는 것처럼, 집은 언제나 나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다 놓는다. “짧은 산책으로 확인한 단순한 진실은 나를 안도하게 하고, 비로소 적당한 거리 속에서 다시 일상을 움직이게 만든다”라는 문장이 그 감각을 잘 담아냈다. 세상 속에서 흔들려도 결국 집이 있기에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이 책은 집을 치유의 공간으로도 그린다.

“마음의 회복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 집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볕이 오래도록 드는 창,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동체,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당 같은 곳에서 우리는 서서히 회복한다. 치유의 종착역은 결국 바깥이다. 창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다시 걸어 나가는 힘. 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햇살 좋은 날, 창문을 활짝 여는 작은 행동에서 비롯된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 <업>과 닿아 있다. 칼 할아버지가 아내 엘리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놓쳐버렸을 때, “집은 그냥 집일 뿐이야”라고 담담히 말하던 순간. 결국 중요한 건 집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쌓인 기억이라는 메시지였다. 저자는 집을 여러 개의 그릇에 비유한다. 금이 간 그릇도, 상처가 담긴 그릇도 결국은 사랑할 만한 테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어떤 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집 자체를 사랑하는구나. 그저 집다운 집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지나온 집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금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

앞으로 꿈꾸는 집의 모습은 어떨까?

『집, 다음 집』은 짧고 간결한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남겨주는 여운은 길다.

단순한 그림책을 넘어 집을 매개로 자기 삶을 비춰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고래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멋진 공간의 사진은 찰나의 장점만을 보여줄 뿐이다. 사실 현실은 불완전함을 적당히 메우며 살아가는, 임시방편의 삶일 뿐이다. 잡지 속에서든, SNS 속에서든 내가 살아보지 않으면,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빈틈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적당히 해결하며 살아간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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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이재아 지음 / 담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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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는 퇴직 후에도 한시를 배우고 친구들을 가르칠 만큼 똑똑하고 품위 있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약속을 잊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친구분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 이미 알츠하이머라는 낙인이 찍혔다.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같은 병을 진단받는 순간, 우리 가족의 삶은 전혀 다른 궤도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주 깜빡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짐을 싸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나중에 되어서 알게 되었지만, 그건 불안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집 안 곳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보따리들을 보면서,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가슴이 저려왔다. 그때는 왜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저자는 엉뚱한 소리만 하며 짐을 풀어 놓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쓰라렸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만 앗아가는 병이 아니었다.

성격이 달라지고, 때론 억지를 부리고, 작은 일에도 짜증을 냈다.

신사에 멋쟁이셨던 아버지가 목욕을 거부하시며 화를 내실 때마다,

“이게 정말 우리 아빠가 맞나?” 싶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스스로를 달랬다.

“내가 미워서 이러는 게 아니야. 다 병 때문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억지로 웃었다.

그러나 돌봄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부모의 돌발행동을 받아내는 건 단순히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끝없는 불안, 책임감,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부모만 신경쓰고 버티고 있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와 정신의학과를 찾게 되었다.

의사 앞에서 10분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날도 많았다.

대화 도중에 의사 선생님이 “고생 많았어요”라는 한마디의 위로가 삶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선명하게 꺼내셨다.

6.25 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영어를 배우지 못한 아쉬움,

원래 가고 싶었던 법대 대신 아버지의 권유로 들어간 공대 이야기, 이루지 못한 아메리칸드림….

환자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청년으로서의 아버지를 다시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낯설게 다가오는 아버지의 과거를, 나는 늦게나마 곱씹었다.

끝내 병세는 악화되었고 중환자실에 누운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

팔이 묶인 채 애절하게 “이거 다 풀어다오”라고 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코로나 시국이라 병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유리창 너머로 마지막 얼굴을 본 것이 생전 마지막이었다. 집에 돌아와 무릎 꿇고 엎드려 목 놓아 울며 “끝까지 돌봐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사망신고를 하루 늦게 하며 과태료를 낸 것도, 아버지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어서였다.

그 후의 시간은 공허했다. 엄마마저 돌아가시자 우울은 더 깊어졌다.

두 달 동안 집 안에만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본 바이크 영상이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자연 속에서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이 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나도 한번 타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은 설렘이 내 삶의 시동을 다시 걸게 만들었다.

아버지를 돌보며 받았던 수많은 작은 도움의 손길도 떠오른다.

휠체어를 들어 올려주던 낯선 사람, 문을 잡아주던 이웃. 그 사소한 친절이야말로 내 삶을 지탱해 준 힘이었다. 돌봄은 한 사람이 온전히 짊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도움, 나눔, 함께 버티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 집에 혼자 남았지만,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며 인사를 건네는 일상이 나를 지탱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저 들어왔어요.” 그렇게 속삭이면, 여전히 곁에서 대답해 주실 것만 같다.

텅 빈 방에 햇살이 스며들 때, 그 온기가 아버지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단순히 한 가족의 고통스러운 기록이 아니다.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이자, 돌봄의 무게와 상실의 아픔,

그리고 다시 살아내려는 의지에 관한 이야기다.

읽는 내내 저자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었고, 죄책감이 내 마음까지 짓눌렀다.

하지만 동시에, 작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응원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는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삶과 죽음, 사랑과 돌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현재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새삼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는 순간들 앞에서,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사랑을 표현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절절히 일깨워 준다.

결국 이 책은 한 사람의 기록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지금, 곁에 있는 이를 사랑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건넨다.


'담다스 5기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아빠의 영정사진은 슬픔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돌아가시고 한동안 집에서 누워만 있고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일주일 넘게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영정사진을 보고 대화를 시작했다.

"저 지금 나가요. 다녀오겠습니다."
"저 들어왔어요."

그렇게 말을 건네고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 멀리 어딘가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희미한 연결감을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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